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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미인송문화전매유한회사 오향옥의 실적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7월20일 09시54분    조회:9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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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부터 문화사업인으로 되기까지

1990년대중반에 텔레비죤련속극 《사랑의 품》에서 어질기만 했던 백설이 친엄마배역을 맡은것을 계기로 여러부의 텔레비죤련속극과 연극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오향옥이 인제는 어엿한 문화사업인으로 변신하여 보람찬 사업을 펼쳐가고있다.
최근에 연길에 온 그녀는 중앙인민방송국에서 다가오는 8월초에 연변예술극장에서 마련하게 될 공화국창립 60돐 기념공연 《영원한 기념비》를 위한 준비사업과 무용창작에 바쁜 몸이지만 도문시 량수진에서 련꽃축제까지 펼쳐보려고 초부하로 뛰여다니고있다.

무용가의 꿈을 키워가던 시절

림업공정사인 아버지, 회계사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여난 오향옥은 이모인 지정선(현재 연길시조선족예술단 안무가)의 영향을 받아서일가 어려서부터 무용에 특별한 흥취가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시절부터는 고향인 안도를 떠나 연길에 와서 공부를 하면서 장차 이모처럼 멋들어진 무용을 창작하는 안무가로 되여볼 꿈을 고이 키웠다.
1984년에 안도현문공단에 들어간 그는 무용종목에서 주역을 맡으며 장끼를 자랑하는외 틈만 있으면 선배님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안무기교를 열심히 배웠고  안무를 위주로 하던 송미라(현재 연변가무단 안무가)선생이 연길로 전근해간후에는 무용창작의 중임을 넘겨받고 닥치는대로 해보느라 허둥댔다.

처음에 안도현 각지를 주름잡으며 무용전수에 많은 정력을 할애하던 그가 무용다운 무용을 만들어본것은 1990년대초였다. 당시 안도현문공단에서는 리천록선생이 수집한 장백산전설을 소재로 무용극을 창작하기로 결정하고 20대후반의 나젊은 오향옥에게 구체임무를 맡겼다. 이것은 그때까지 큰 작품을 접촉해본적이 없는 오향옥으로 말하면 비교적 버거운 짐이였다.  그러나 이 작품에 도전해서 꼭 성공을 안아오고 또 안무실력을 인정받고싶었던 그는 용감하게 그 짐을 떠메기로 했다. 

중앙민족대학에 가서 단기강습을 받고 안도에 돌아온 그는 꼬박 3개월간 생일도 잊고 창작에 정력을 몰부었고 당시 주창작평론실 주임으로 사업하던 김훈선생한테서 무용극본을 넘겨받은후에는 주내에서 배우들을 조직해서 련습에 땀동이를 쏟았다.   그런데 련습이 퍼그나 진척된후 특수한 사정이 생겨 무용배우들이 이 작품에 출연하지 못하게 될줄이야!?

그동안 련습을 지도하느라 목이 다 쉬고 어느 정도 지치기까지 한 오향옥은 그만 맥이 탁 풀렸다. 그러나 넉넉하지 못한 생활형편에서도 10원, 100원씩 의연해주면서 이 작품을 성공시키라고 고무격려해주던 고향인민들을 봐서라도 이렇게 물앉을수는 없었다.  오향옥은 생각던 끝에 장춘에 가서 이름난 무용가 진향란선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렇게 길림성가무단과 손을 잡은 그는 꼬박 2년간이나 장춘에 붙박혀있으면서 끝내는 대형무용극 《장백산천지의 전설》을 완성해냈다. 

화산이 폭발해서 장백산천지가 생겨나고 목동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아들딸을 낳아 키우면서 아기자기 살아가는 과정을 형상화한 이 무용극은 1992년에 국가문화부에서 조직한 제1차전국무용극콩클에 참가하여 2등상을 따내는 영예를 누리였다.  따라서 오향옥도 안무가로서의 실력을 인정받게 되였다.

연기자로의 탈바꿈을 실현하기까지

안무가가 꿈이였던 오향옥에게 있어서 텔레비죤련속극이며 연극에 출연하고 연기자로 탈바꿈하게 된것은 너무도 갑작스레 들이닥친 일이였다.

무용극 《장백산천지의 전설》이 국가급상을 탄후 오향옥은 주창작평론실에 전근되여 안도에서 기차를 타고 연길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텔레비죤련속극 《사랑의 품》 연출을 맡은 방미선선생이 극작가인 리광수선생한테 일보러 왔다가 오향옥을 백설이 친엄마역에 제일 적합한 인물이라고 점찍었다. 

당시 오향옥은 무용밖에 모르기에 안된다며 단마디에 거절했다. 그런데 방미선선생은  무작정 극본을 안겨주면서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소학교시절 학급담임선생님의 따님인 방미선을 우상으로 떠받든적 있는 오향옥은 울며겨자먹기로 극본을 받는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기차에서 심심풀이삼아 극본을 펼쳐든 오향옥은 그만 작품에 푹 빠져버려 하마트면 안도역에서 내리지 못할번했다.  집에 돌아가서 밤늦게까지 극본을 단숨에 다 읽은 그는 작품내용에 크게 감동을 받고 시험삼아 한번 출연해볼 용단을 내렸다.

그러나 난생 처음 촬영장에 나선 그는 백설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장면을 촬영할 때 자꾸만 무용동작이 나와 련속 8차나 다시 연기를 하는 고역을 치렀다. 

(이렇게 하고서야 진짜 끝을 볼수 있을가?) 자신의 연기력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그는 아예 못하겠다고 나누웠다.  이때 아버지의 술친구인 리광수선생이 무조건 견지해나갈수 있게끔 밀어주었고 방미선선생은 사소한 동작 하나, 대사 한마디까지  씹어주면서 연기를 제대로 해나갈수 있도록 지도해주었다.  그 보람으로 오향옥은 백설이 친엄마역을 진실하게 창조하여 연기력을 긍정받게 되였다.

성숙된 연기자로 되기 위해

텔레비죤련속극 《사랑의 품》에 출연한후 오향옥은 연기자의 자호감을 진실하게 체험했다.  

한가지 동작을 연출의 요구에 부합될 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반복하면서 한장면 한장면씩 촬영할 때는 미처 몰랐는데 시청자들의 반향이 그렇게 클줄은 정말 뜻밖이였다. 

텔레비죤련속극 《사랑의 품》이 방송된후 오향옥은 거리에 나서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때로는 막 송구스러울 지경이였다. 그시기 시장에 나가면 장사군할머니들은 먹을것을 손에 쥐여주며 동정을 표했고 젊은이들은 옷에다 싸인을 해달라며 잔등을 들이밀기도 했다. 무용으로는 감수해보기 어려운 진한 감동을 체험하면서 오향옥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달랠길 없었다. 이때로부터 그는 연기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기회만 있으면 다시 연기자의 신분으로 시청자들앞에 나설 속구구를 했다.

그 이듬해에 오향옥은 연길텔레비죤방송국에서 제작한 텔레비죤련속극 《샘》에서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뒤따라 맞바람을 피우고 가난한 생활이 싫어  자식 둘을 버리고 외국으로 돈벌이를 떠나는 못된 엄마의 배역을 맡았다. 그런데 작품이 방송된후 거리에 나서니 사람들의 눈길이 달라졌다는것이 대번에 안겨왔다. 만날 때마다 그렇게 반겨주던 할머니들도 “남정이 바람을 피운다고 맞바람이 뭐요?” “어떻게 귀여운 자식들을 둘씩이나 버리고 외국으로 갈수 있소?”라고 하면서 혀를 끌끌 차는데 마치 진짜 죄를 지은것처럼 얼굴이 뜨거워나기도 했다. 

이렇게 실생활가운데서 연기자의 희로애락을 만끽하게 된 오향옥은 그후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제작한 텔레비죤련속극 《가족사진》에서도 조선족가정의 맏며느리형상을 성공적으로 창조하여 시청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텔레비죤련속극을 통해 시청자들과 대면하던 오향옥이 연극의 매력을 감지하게 된것은 연변연극단에서 2003년에 무대에 올린 연극 《하얀꽃》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이에 앞서 텔레비죤련속극 《하얀꽃》에서 주인공의 배역을 맡은 오향옥은 내두산에 들어가 촬영에 참가하면서 청진기를 목에 건채로 환자를 진찰하는 등 웃음거리도 적지 않게 만들어냈지만 고생도 퍼그나 했다.  심심산골인 내두산은 기온이 어찌나 낮은지 추위때문에 연기를 제대로 하기가 여간만 쉽지 않았다. 특히 주인공이 왕진을 가는 길에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단 한번만 연기를 했음에도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숱한 사람들을 놀래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연극으로 개편하여 무대에 올린다는 말을 듣자 오향옥은  무대에서의 체험을 실감해볼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기 아쉬워 연극에 출연하게 해달라고 자청해나섰다. 

련습을 시작하고보니 연극은 서로 련관이 크게 없는 장면들을 하나씩 촬영한후 편집을 거쳐 만들어내는 텔레비죤련속극과는 달리 제한된 시간내에 무대우에서 감정기복을 직접 체험할수 있는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오향옥은 혼신의 빛과 열을 다 쏟으면서 주인공인 영웅인물의 형상을 성공적으로 창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그런데 련습할 때는 제법 잘되던것이 성에서 검사를 내려온다고 하니 웬일인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해나갈수 없었다. 이때 원로연극인 허동활선생님이 다가와 《련습할 때는 공연처럼 하고 공연할 때는 련습처럼 하라》는 조언을 주시는것이였다.  덕분에 오향옥은 그후의 공연에서 출중한 연기력을 과시하면서 성숙된 연기자의 행렬에 들어서게 되였다.

문화사업인으로의 변신

북경에 들어가 영화 《저하늘 끝까지(咫尺天涯)》의 조리연출을 맡으면서 영화제작을 배울수 있는 기회를 잡은 오향옥은 2007년에 《북경미인송문화전매유한회사》를 차리고 조선족명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며 CD 등을 제작하는라 부지런히 뛰고있다.

2007년에 CD 《아리랑》을 제작한 그는 몇년래 심양에 있는 조선족민간예인 신옥화로인(92세, 연변가무단 창시자의 한사람으로서 전화자, 강신자, 김선옥 등의 스승)과 북경에 있는 저명한 조선족시인 김철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김철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 《시인은 동트는 곳에서 왔다》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1월에 배우들과 제작진을 이끌고 안도현 이도백하의 약수동에 가서 살얼음속에서 촬영을 강행한 결과 이미 후기제작까지 끝마친 상태라고 한다.

2008년에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제8채널에서 제작한 30회 텔레비죤련속극 《산너머 바다너머》에 출연, 연변연극단의 최성훈과 더불어 주역을 맡은 오향옥은  또 공화국창건 60돐을 맞으며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와 연변인민방송국, 연변TV 위성채널과 손을 잡고 해방전쟁시기 조선족인민들의 력사적발자취를 더듬어보는 TV다큐멘터리 《영원한 기념비》의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여들었다.

이 사업을 보다 원활하게 추진하고저 그는 전국정협 전임부주석 조남기동지며 리영태장군, 리덕수부장을 방문하고 그들의 지지를 쟁취하였으며 중국인민해방군 군사연구원이며 무릇 소재를 발굴할수 있는 곳이면 다 찾아다녔다.  무려 1년 반동안 전국각지를 주름잡으며 전기촬영을 진행한 이 작품은 지금 후기제작에 한창, 제작일군들은 국경절전에 작품이 시청자들과 대면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손을 다그치고있다.

고향사랑 가족사랑

고향을 떠나 북경에 진출한지 여러해 되지만 오향옥은 나서자란 고향 안도와 나래를 키워준 연길 그리고 연변을 잊지 않고있다. 그래서 몸은 비록 연변을 떠나있지만 내지의 투자자들이 연변의 자선사업에 투자를 하도록 다리를 놓아주기도 하고 부산영화제에서 상을 탄 영화 《궤도》(연변텔레비죤방송국 제작)에 투자를 하는 등 연변을 위한 사업에 발벗고나서고있다. 

연변의 조선족연예인들이 내지의 작품에 출연할수 있도록 다리를 많이 놓아준 그녀는 자기 회사의 작품을 만들 때에도 우선 연변에 있는 조선족연예인들에게 무대를 마련해주기 위해 왼심을 쓰고있다.

중앙인민방송국에서 다가오는 8월에 연길에서 펼치게 되는 공화국창건 60돐 기념공연에서 무용감독을 맡은 오향옥(총감독에 중앙인민방송국의 안실, 예술지도에 연변TV의 고창모)은 요즘 공연을 위한 준비사업과 무용지도로 무척 바삐 보내고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도문시 량수진에서 련꽃축제를 마련하고 식당을 경영하는 팔없는 남자와 두다리가 불편한 촬영가의 이야기를 주선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그들이 “강가에 아담한 초가집 몇채를 지어놓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근심걱정이 없이 살아가는” 소망을 실현할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타산을 하고있다. 

가정에서 오누이중 누나인 오향옥은 연길에 이사온후 외손녀를 맡아키워서 연변대학에까지 보내준 부모님들에 대해 항상 고마와하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사업에서 성공하는것으로 부모님들에게 효도하려 한다. 

엄마의 마음을 리해하기라도 한듯 금방 20고개를 넘은 딸애도 《보모같은 엄마보다는 지혜로운 엄마가 더 좋다》고 하면서 엄마의 사업을 전적으로 지지해주고있으며 대련에서 복장업에 종사하는 남동생 또한 정신상, 경제상에서 누나의 사업을 대폭 지지해주고있다.

14년전의 착하고 어질기만 한 연약한 이미지에서 완전히 환골탈태한 오향옥이 8월초에 펼쳐지게 되는 기념공연과 련꽃축제에서 성공을 안아오고 연변 나아가 조선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기를 기대해본다. 
                                                            

연변라지오TV방송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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