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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가무단 독창가수 박경숙의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8월27일 09시20분    조회: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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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꿈을 이룬 시골소녀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니
장백천리 해란강반 붉은기발 물결치네
……

20세기 60년대말부터 연변가무단의 김인숙가수가 가요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를 부르면서 이 노래가 전국에 보급되였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장강남북을 넘나들며 이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고있는 가수가 있으니 그녀가 바로 연변가무단의 국가1급배우 박경숙이다.

30고개를 넘어서야 연변가무단에 입단하였지만 짧디짧은 10년사이에 국가4급배우로부터 1급배우로 성장하고 《길림성 돌출한 공헌이 있는 중청년전업기술인재》로 평의된 박경숙 가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불철주야 뛰여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가수의 꿈을 키우던 나날

장백산아래에 위치한 안도현 삼도향 남도촌에서 6남매중 셋째딸로 태여난 박경숙은 음악에 소질이 있는 아버지와 고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소학교시절부터 노래를 꽤나 잘 불렀다. 마침 음악교원인 엄영자선생님이 이 특장을 발견하고 학교선전대에 넣어주어 경숙이는 독창은 물론 사회며 연극도 해보면서 향내에서 소문을 놓았다.
18살때 현노래콩클에서 1등을 하고 로수하림업국문공단에 취직한 그녀는 얼마후 장백현에서 연변예술학원에 위탁해 꾸린 중등전문반에 들어갔고 1년후에는 아버지가 부림소를 팔아 마련해준 400원을 가지고 상해음악학원에 응시, 끝내는 입학통지서를 받아안았다.  

그때가 바로 1989년, 경숙이의 막내남동생도 연변농학원에 입학하였는지라 어머니는 가난한 농촌살림에 대학생 둘의 뒤바라지를 해야 할 일이 너무도 한심해서 딸애의 대학진학을 내켜하지 않았다. 이때 이미 결혼을 하고 어린애 둘을 키우면서 빠듯하게 살고있는 큰언니네 부부가 동생의 학비는 자기들이 도맡겠다고 하면서 한학기 비용으로 450원을 쥐여주었다.

20년전이라지만 번화한 상해에서 450원으로 반년을 살아간다는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할수없이 경숙이는 꼭 필요한 생활용품이나 책을 사는데만 돈을 좀씩 쓰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공부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해방언은 한마디도 모르고 한어보통말수준도 형편없는 경숙이가 산설고 물선 고장에서 공부를 한다는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이 아무리 곱씹으며 강의를 해도 통 리해를 하지 못하고 숙사에서는 쩍하면 발음을 틀리게 해서 웃음거리를 빚어내고 무대에 올라서서는 전주를 빼먹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이런 일들이 잦아지면서 사상부담이 늘어나서인지 어느날엔가는 그렇게 웅글지던 목소리가 모기소리만큼 가늘어지기까지 했다. 

이런 변화에 주의를 돌린 주척교수(주소연의 제자)는 강의를 할 때면 몇번이고 알아들을 때까지 반복했고 명절이면 집에 데려다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상호간의 거리를 줄이기에 최선을 다했다. 경숙이 또한 배움에 게을리 하지 않은 보람으로 얼마후부터는 장학금을 타면서 공부하게 되였다.

그후 경숙이는 노래실력도 제고하고 언니네 부담도 줄여줄겸 방과후면 나이트클럽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서 자력갱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하루수입이 고작해서 10원이고 한주일에 한두번 있을가 말가 하는 일이였지만 학업에는 크게 보탬이 되여더는 돈걱정을 하지 않고 공부를 할수 있게 되였다. 더욱 다행스러운것은 이런 실천을 통해 실력이 제고되여 교내에서 활동이 있을 때면 조선족의 대표로 《새타령》 등 조선말노래를 부르며 재간을 뽐내고 제3차 중국예술가곡콩클에서 2등상을 따내게 된것이였다.

보람찬 노래인생

상해음악학원을 졸업한후 수도강철공사예술단, 연산석유화학예술단 등 단위로 자리를 옮기며 가수로 활약하던 경숙이는 부모님들이 계시는 고향 연변에 나와서 생활해보고싶은 마음에서 연변가무단에 입단할 결심을 굳혔다. 마침 은사인 주척선생님이 동창생인 림성호선생님한테 연줄을 달아주고 림경진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연변가무단에 벨칸토창법가수가 모자란다는 정보까지 알려주었다.

경숙이의 노래를 듣고난 림성호선생님은 음역이 넓고 소리가 깊으면서도 음색이 감미로와 쏘프라노로 성장하기 적격이라고 하면서 3개월간이나 림경진이 부르던 노래를 위주로 입단시험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결과 경숙이는 1998년에 연변가무단의 입단시험을 순조롭게 통과하고 고향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장끼를 자랑할수 있게 되였다.

무대경험이 결핍해서인지 아니면 상해에서 한어말노래를 많이 부른탓인지 경숙이는 처음에 무대에 올라서면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애를 많이 먹었다. 그러나 선배님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그렇다고 하면서 용기를 안겨주었고 지도부에서도 크고작은 무대에서 단련할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여러가지 연수반이며 콩클에도 부지런히 참가하고 특히 1년 반동안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겸직교원으로 활약하면서 자기를 제고한 경숙이는 2003년부터 련속 4년간 연변가무단의 실무평의에서 1등을 따내였고 입단초기의 국가4급배우로부터 당당한 1급배우로 승진했으며 2008년에는 《길림성 돌출한 공헌이 있는 중청년전업기술인재》로 평의되여 표창을 받았다. 그동안 여러가지 콩클에 참가해서도 어거리대풍을 안아와서 전국공작새컵소수민족성악콩클, 조선 “4?5”국제예술축전, 한몽수교10돐기념문예콩클, 세계한민족전통예술콩클 등 국내외의 행사에서 묵직한 영예를 따내였다.

지금에 와서 경숙이는 한어말노래는 물론 연변노래, 조선노래도 잘 부르는데 몇해전부터는 연변가무단에서 다시 무대에 올린 무용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에서 쏘프라노를 맡고 사처로 불리워다니고있다.

이런 성과를 거둘수 있게 된 비결에 대해 경숙이는 귀인이 너무 많았다고 고백한다.   안도현문화관의 안홍민선생님으로부터 한동안 로수하림업국문공단에 내려와있은 중국인민해방군 총정치부가무단의 창전덕선생님, 연변예술학교와 상해음악학원의 은사님들 그리고 친딸처럼 사랑해주는 림성호선생님…이런 소중한분들이 밀어주었기에 가수 박경숙의 오늘이 있게 되였다는것이다.
 
고마운 부모형제

최근년래 연변TV의 음력설야회, 라지오나 텔레비죤 방송의 매주일가를 통해 청취자, 시청자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지는 경숙이는 자기가 여기까지 올수 있게끔 밀어준 1등공신으로는 또 고마운 부모형제들을 빼놓을수 없다고 말한다. 

경숙이의 부모들은 심심산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6남매를 키워 출세시키느라 별의별 고생을 다하였다.   외할머니까지 모시는 아홉식솔의 대가정을 거느리면서도 아들딸 6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려고 어머니는 농사일이며 재봉일, 뜨개질까지 닥치는대로 다했고 가정의 대들보를 떠멘 아버지는 언제나 말없이 자식들의 어려움을 헤아려주었다.

사랑에 받들려 자라난 6남매는 지금 모두 떳떳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였는데 그중 5명이 대학이나 중등전문학교를 졸업했고 당년에 아버지의 짐을 덜어드린다며 진학 대신 취직을 선택했던 큰남동생은 몇해전에 출국해서 신근한 로동으로 치부의 단꿈을 무르익히고있다.

지금에 와서도 박경숙은 돈은 비록 없었지만 깨끗한 마음으로 화목하게 살아가면서 5호가정의 영예를 빛내가던 그 시절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터놓았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전까지 1년 반가량 연길에 모셔와 함께 살면서 나름대로 효도를 하느라 했지만 아버지가 60고개를 넘기 바쁘게 하늘나라로 떠나가시는통에 무대에서 공연하는 장면도 보여드리지 못한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는것이다. 

경숙이의 인생에 크게 도움을 준 가정성원으로는 또 큰언니와 형부를 꼽을수 있다. 처녀시절 촌당지부서기로 사업하면서 농촌문예활동에서도 선줄군으로 활약하던 큰언니는 경숙이에게 있어서 부모처럼 의지해온 미더운 존재였다.   어렸을 때는 녀동생의 손목을 잡고 문화관선생님을 찾아다니면서 노래를 배우도록 해주고 대학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형편에서도 지원의 손길을 보내준 큰언니와 형부에 대해 경숙이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의 타산에 대해 경숙이는 우선은 부단히 진보하는 가수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자기를 갈고 닦으며 그 다음으로는 CD도 만들고 개인음악회도 마련할 구상을 내비치였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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