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족음악거장 안국민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9월2일 08시27분    조회:860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안국민프로필

1931년 흑룡강성 밀산시 출생.

중국음악가협회 리사. 제3기 연변음악가협회주석단 주석.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1, 2, 3,4기 명예회장 력임.

제2기연변정협위원. 제4, 5기 연변주인대 대표 력임.

독창곡 《연변목가》,《어머니》 무용곡 《물동이춤》,《양돈장의 처녀》 등 음악작품 200여곡 창작, 도합3천여차 가무공연을 출중하게 지휘, 조선족 가무와 악대가 국내외에서 명성 떨치는데 크게 기여

주요영예 및 수상작품

1991년 가극 《아리랑》(합작) ―  문화부 제1차문화신극목대상과 문화음악상 수상

1984년 가야금조곡 《심청》 ―   길림성창작극(종)목1등상 수상

2001년 성악작품 《밀림은 푸른 바다 나는 갈매기》 ―  중국음악 《금종상》우수성악작품 은상 수상

2000년 기상곡 《내가 살던 고향》uc0― 공화국창건 50주년음악작품응모추천활동에서 우수작품상,  2001년 중국음악《금종상》우수음악작품 동상 수상

2003년 가곡 《진달래》 ―  중국음악 《금종상》 우수가곡상 수상

1931년 7월 4일, 흑룡강성 밀산시 영안향의 한 농부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1930년대에 희한하게도 한개 촌에 취주악대가 있었다. 15살때인 1946년, 계서에서 있은 부상자위문공연에서 멋진 반주로 관중들을 깜짝 놀래워 때이르게 혼사말이 들어올만큼 인기를 모으기까지 했던 안국민이다.

1948년 여름,  중학교에서는계림문공대로 보내주었다. 1950년 11월,안국민은 연변문공단을 찾아갔다가 성분을 부농이라고 입을 뻥긋한 바람에 밀리웠다가1951년 연변문공단을 재차 찾아가 악대합주에 참가할만큼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그는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연변문공단에서는 그 당시 민족음악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책에 따라 그한테 가야금을 배울 임무를 맡겼다. 가야금으로 민족선률을 연주하면서 민족정서에 푹 빠진 그는 민족음악을 깊이 깨닫게 되였다. 그는 가야금을 익혀가지고 정진옥선생의 작곡인 《처녀의 노래》와 판소리 《떡메의 증오》 반주에 참가하였고 그것이 밑거름으로 되여 나중에는 전국 제3차음악작품평의 3등상과 1984년 길림성창작극(종)목평의 1등상을 수상한 가야금조곡 《심청》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성망있는 지휘가

안국민이 지휘가의 첫걸음을 떼게 된것은 1953년 12월, 서장참관단이 연길에 왔을 때 지휘를 처음 맡아서부터였다. 통솔력이 강한 정진옥선생의 지휘밑에서 연주하던 악대성원들이 지휘라고는 한번도 못해본 그의 지휘밑에서 연주하는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것은 퍽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하면 될것 같습니다. 저를 믿고 련습하는게 어떻겠는지요?》라고 자신심을 내비치자 악대성원들은 마음을 고쳐먹고 그의 지휘에 따라주었다. 생각밖으로 공연은 퍽 성공적이였다. 그러나 정식으로 지휘를 배우지 못했던 그는 1956년 중앙악단이 성립되면서 동부독일에서 청해온 그스린지휘를 스승으로 지휘를 배웠다. 그스린은 5, 60명 학생들중에서 번번히 그를 앞에 나와 시범하게 하였다. 1957년 6월에 연길로 돌아온 그는 악대대장으로 되여 지휘봉을 잡았다. 전문지휘가의 화려한 인생이 펼쳐진것이였다.

정년퇴직할 때까지 3천여차의 가무공연을 지휘한 그의 휘항한 지휘생애는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을 위한 공연, 캄보쟈 시하누크친왕, 뉴질랜드 총리 등 외국수뇌자들을 위한 공연과 출국공연 등으로 휘황하게 장식되였다.

1958년, 문화부부장 모순선생이 연길시찰걸음에 연변가무단의 가극 《콩쥐와 팥쥐》를 관람하고는 《악사석이 너무 깊어 발아래의 악대와 머리우의 배우들을 잘 통일하기 조련찮은데 지휘기능이 아주 훌륭하여 아래우를 잘 통일시켰다》고 높이  평가했고 그의 지휘에 매료된  시하누크친왕은 그에게 특별히 선물까지 주었다. 관중들에게 늘 뒤모습만 보여지는  지휘자의 역할을 충분히 리해해준 대목이였다.

주지하다싶이 지휘의 최정상은 교향악지휘이라고 할수 있다. 베토벤의 서거 129주년인 그해 초에 베토벤의 제7교향곡 제2악장을 연주하기로 하고 연변의 첫번째 교향악연주회가 열린 1956년 , 연변에서 최초의 교향악지휘를 성공적으로 해내 인기를 모은 안국민은 그때 나이가 겨우25세였다.     

성취있는 작곡가

안국민이 연변가무단에 와서 처음 작곡한 곡은 《물동이 춤》이다. 기나긴 50여년세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물동이 춤》은 창작 당시 레코드에 취입이 될만큼 명곡으로 히트를 쳤고 새 천년 문턱을 넘은 오늘도 널리 연주되고있다.

1958년에 창작된 《연변목가》는 그해에 전국적으로 열조가 일고있는 민가수집을 위해 훈춘 경신벌에 내려간 그가 한 농민이 소수레를 몰고가면서 부는 휘파람선률이 하도나 좋아 기보해놓았다가 국경 10주년헌례작품을 창작하고저 동성향에 내려갔을 때 생활체험으로 방목을 하면서 완성한 작품이다. 방목을 하면서 보니 아득히 펼쳐진 벌이 한눈에 안겨오는 순간, 떠오른 아름다운 선률이 바로 연변목가의 서두이다. 이 노래는 장춘문예콩클에서 처음으로 불러진 뒤를 이어 중앙레코드사의 레코드에 취입, 발행되였으며 1959년 10월, 북경에서 열린 국경10주년헌례공연에 참가한 부인 김인숙가수가 불러 대번에 히트를 쳤다.    선률이  우아할뿐만 아니라 연변에서 처음으로  절가형식을 타파한 예술가곡으로 자리를 굳혀 력사적의의가 크다는것이 《연변목가》에 대한  음악리론 권위인사들의 평이다.

1981년에 작곡한 가요 《어머니》는 2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수들과 대중들에게 꾸준히 불리워지는 노래다. 이 독창곡은 류수용가수가 불러 널리 방송되면서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기 시작했고 1984년 호요방총서기를 위해 마련한 공연프로 합평회에서 북경의 송일가수가 불러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놀래워 이 노래의 진가를 알게 된것이였다.

1989년에 완성된 작품 《밀림은 푸른 바다 나는 갈매기》는 1965년 공연차로 내두산, 백하, 소사하 일대에 갔을 때 일망무제한 밀림을 걸으면서 느낀 진한 감수가 인차 곡상으로 떠올라 창작한 가곡으로서 정서기복이 크며 격조가 청신하고 청중들에게 드넓은 흉금을 안겨준다는 음악계의 한결같은 평가에 힘입어 이 가곡은 2001년에 제1차중국음악금종상 은상을 받았다.

공화국창건 50주년음악작품응모추천활동에서 우수작품상을 안아왔고 중국음악 《금종상》우수음악작품 동상 수상한 기상곡 《내가 살던 고향》은 중국교향악단의 연주로 2001년 중국공산당창건 80주년기념공연에서 연주되였고 한국 서울예술축제와 한국 제10회교향악축제에서 연주되였으며 하자끄스딴의 작곡가협회대표대회에서 연주하라는 제의를 받을만큼 유명해졌다.

중국음악《금종상》우수가곡상을 수상한 가곡《진달래》는 2002년 연변주창립50주년 대형기념행사에서 히트를 쳐 왕성한 생명력으로 지금 중국조선족음악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있다.

《연변은 나한테 음악으로 통하는 령감을 주었다》

안국민의 작품은 《연변목가》, 《연변의 노래》, 《아,  연변이여》 등 직접 연변이란 이름을 붙인것 외에도 대부분 작품은 연변을 열렬히 노래한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연변을 사랑한다. 연변은 비록 내가 태여난 고향은 아니지만 나는 20세에 연변에 온 후 장장 반세기가 넘도록 연변을 떠나지 않았다. 연변의 모든것이 나를 감동시키고 나한테 음악의 천국으로 통하는 령감을 주었다. 나는 연변을 나의 두번째 고향 아니, 나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가을언덕에 음악농사의 어거리대풍작을 맞아와 음악의 로적가리를 높게 쌓고도 성차지 않아 피끓는 젊은이마냥 부글거리는 정열로 피아노건판을 두드리는 중국조선족음악의 거장 안국민! 그는 선배 음악인들에게 부탁한다. 《전반 조선족 음악이 대중가요수준에만 머물러있지 말고 교향음악과 예술가곡 면에서도 다른 민족 특히 한족에게 뒤떨어지지 않도록 모든 조선족음악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고. 그는 후배 음악인들에게 강조한다. 《호시절을 맞은 우리 민족의 음악은 자기의 특성이 뚜렷하면서도 다른 민족들도 좋아할수 있는 높은 차원의 음악을 창조해야 한다》고.

길림신문 류일석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농촌교육기적》 만든 리석채조선족소학교 교장 김죽화 만나 《리석채조선족소학교는 리론과 실천을 결합한 중국농촌교육의 모범이고 중국농촌교육의 기적이며 중국민족교육의 기치이고 중국기초교육의 시범이다.》 - 유네스코련합회 부주석 저명한 교육가인 도서평에서김죽화 프로필: 1948년 12월 10일, 료녕성 신빈...
  • 2009-11-01
  • 조선족칼럼리스트 김범송: KBS 라디오 사회자와의 대담 ▲ 중국 흑룡강신문 김범송 론설위원 조선족칼럼리스트 김범송: KBS 라디오 “한민족 하나로” 사회자와의 대담    1. 얼마 전 김범송 논설위원께서 서울에서 열린 ‘한인정치인포럼’ 행사에 참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관련 행사...
  • 2009-10-30
  • 진가촌의 한송이 진달래 33년 한족농민들의 건강을 지켜온 전국우수향촌의사 림민화 (흑룡강신문=하얼빈) 김태산 윤선미 기자 = 한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고 농촌에 뿌리를 내리기란 기실 조련치 않은 일이다. 그럴진대 한 조선족처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물설고 낯선 타향의 한족촌에 와서 장장 33년간을 향촌의료사업에 바...
  • 2009-10-30
  •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서 전국일주를 한 연변작가이고 야외낚시애호가인 리근호가 28일 오후 3시에 연길로 돌아왔습니다. 리근호는 지난 5월 8일 연길에서 출발해 174일동안 전국 21개성, 자치구, 직할시와 특별행정구를 거쳐 전국을 일주했는데 그 거리는 4만4천키로메터에 달합니다.  이번에 리근호는 내몽골고원,&nb...
  • 2009-10-29
  • 포스코를 유치한 항천전문가 김민달선생 만나 ○ 《동방홍》인공위성 풍운1호연구에 참석한 항천전문가○ 문화혁명시기 조선특무로 몰려 두번 감옥행○ 12억딸라 포스코를 비롯  20억딸라 유치한 상해개방의 공신○ 조선족기업가들의 상해진출 징검다리 되여준 고문 김민달 프로필 1941년 길림성 룡정시 덕신향 출생.1...
  • 2009-10-29
  •   내가 남희철씨를 우연히 알게 된것은 연변TV 《문화광장》프로를 시청하면서부터였다. 재작년 6월인가 어느 토요일 아침,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연변TV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생소한 《문화광장》프로가 눈길을 당겨  대관절 어떤 프로인가고 궁금해 보게 되였다. 그래도 낯설기는 하지만 프로는 볼...
  • 2009-10-28
  • 중국 최초 굴삭기 핵심부품 유압실린더 취급연대강산공무유한공사 허지환 사장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박영철 기자 = 연대강산공무유한공사는 중국에서 최초로 굴삭기 핵심부품인 유압실린더를 한국에서 수입하여 중국의 三一중공업, 상하이龙工, 中联重科 등 중국의 유명한 굴삭기업체를 포함한 50여 곳에...
  • 2009-10-26
  • 공화국이 키워낸 저명한 조선족의학박사생화학분야의 유명한 학자 윤종주교수 만나본다 ● 로기순박사의 제자 국내외 생화학분야의 유명한 학자 ●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의  건설에 중요한 기여를 한 회장 ● 장백산자원 개발로 민족의약업 이끄는 사람 윤종주프로필: 1935년 1월 25일 연길현 조양천 출생 1957년 ...
  • 2009-10-26
  • 박영애 회장은 중국 길림성 공주령시태생으로 미국 이민생활은 올해로17년째에 접어든다.박영애 회장 일가족은 1990년초 미국유학 왔을 때만 해도 조선족족 출신들이 손꼽을 정도였던 데다 박회장이 일찍 자리잡아 설날 등 명절때는 늘 뉴욕, 워싱턴,등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까지 불러 고향이야기 등을 나누며...
  • 2009-10-25
  • 소원조선족도농합작사 김경택사장의 야심찬 꿈 (흑룡강신문=하얼빈)“조선족농민들의 한국행이나 대도시진출은 우리 민족사회에 거대한 물질적재부를 가져온것은 사실이지만 실존공동체의 해체위기를 자초한 커다란 아픔도 낳고있다. 조선족농민들의 근본적인 출로는 한국행이 아니라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는 조선족...
  • 2009-10-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