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영준- 해방전쟁시기 대공세운 폭파영웅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9월28일 08시52분    조회:847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동북해방전쟁시기 대공을 세운 폭파영웅 박영준

장춘 제1자동차그룹에서 근무하다 리직한 박영준(조선족)이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라는 말을 듣고 기자가 그를 찾아간것은 지난 9월 21일.

80세 고령이지만 말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잽싼 일거일동에서 그가 칼날같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직감할수 있었다.

그는 해방전쟁시기에 받은 공훈상장과 메달, 조국건설에서 받은 영예증서와 메달 등을 수북이 내놓고 기자에게 보여주었는데 조국 해방과 건설에서 많은 피땀을 흘렸음이 력력했다.

동북해방전쟁시기 박영준은 동북민주련군의 《4차 림강보위전》과 《여름, 가을, 겨울 반격전》에 참가하여  폭파영웅으로 이름을 날린 영웅이였다.

1930년 6월 13일 조선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서 태여난 박영준은 형님 둘, 누님 둘 5남매의 막내로 3살때 어머니에게 업혀 중국에 건너와 당시 료동성 해룡현(지금의 매하구시)에 정착했다.

1946년 여름, 백성들이 팔로군이라고 부르는 장병들이 박영준네 집에 와 머물렀다. 그들이 마당을 쓸어주고 물을 긷고 잠잘 때도 맨 바닥에서 자는것을 본 박영준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7월 15일, 박영준이 집식구들 몰래 부대를 찾아간것이 동북민주련군 3중대 9사 25퇀이였다. 키는 크지만 16세란 말을 듣고 지도자가 나이가 어려 참군하지 못한다고 하자 박영준은 아예 전사들의 방에 들어가 3일동안 같이 먹고 자고 했다.   박영준의 굳은 마음에 흔들린 지도자는 그를 받아주고 보초를 서게 했는데 그때로부터 그의 군생활이 시작됐다. 

1946년 10월, 국민당은 "남공북수, 선남후북(南攻北守,先南后北)"의 방침을  내오고  남만해방구에 대한 대진공을 펼쳐 남만주력을 소멸한 다음 병력을 집중시켜 북만을 치고 전 동북을 점령하려 했다. 

동북의 아군주력부대는 북만에 철거하고 박영준의 소속인 동북민주련군 3중대와 4중대가 남만에 남기로 했다.  국민당의 강한 세력앞에 부대는 한발한발 퇴각했다. 3중대 9사 25퇀이 두도강에 이르렀을 때 상급에서는 국민당의 추격을 막기 위해 두도강 철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78메터 되는 키에 힘이 세다는 우월한 조건으로 참군한지 한달만에 사부에 가 폭파기술을 배운 박영준이 두도교 폭파임무를 맡게 되였다.

아군의 기관차가 다리 동쪽에서 박영준을 맞기로 하고 박영준은 다리 서쪽을 폭파해야 했다.

박영준은 25킬로그람이 넘는 폭파약을 끼고 다리서쪽에 이르렀다. 10여메터 되는 도화선에 불을 다는 순간 《씩~》 하는 소리와 함께 박영준은 기관차쪽으로 냅다 뛰였다. 《쿵~쾅~》 조금만 늦어도 목숨을 잃게 될 아슬아슬한 순간이다. 박영준은 16세 어린나이에 다리폭파에 성공한것이다.

1946년 12월 17일 동북해방의 중요 전환점인 《4차 림강보위전》이 시작되고 박영준은 1947년 4월 1일 《4차 림강보위전》이 끝나는 이틀전에 입당했다.

취재중에 박영준은 《4차 림강보위전》때  우리 군에서 류행했던 노래 《배추속(白菜心)》을 흥겹게 불렀다.

1947년 봄, 동북민주련군의 《3하 강남》, 《4차 림강보위전》승리는 동북 국민당에게 큰 타격을 주었는바 국민당은 진공으로부터 방어에 들어가는수밖에 없었다.

5월, 동북민주련군 총부는 장춘-심양, 심양―길림 철도 량측 국민당에 대한 전략성 반격작전을 실시, 즉 여름공세를 발동했다.

박영준네 부대가 매하구와 청원사이의 산성진을 진공할 때이다.  적의  또치카 두개가 부대의 진공길을 막고있었다. 

또치카를 폭파해야 했다.

또치카와 아군의 거리는 30메터, 15킬로그람 되는 폭파약을 끼고 쏟아지는 총알을 피하면서 2, 3분내에 기여서 또치카밑에 닿아야 한다. 박영준이 기관총의 호위하에 또치카와 3, 4메터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박영준을 발견한 적들은 집중 소사한다. 박영준은 신속히 철거, 1차 폭파가 실패했다.

하극퇀장이 《쑈표, 집은 어데 있고 집에는 누구 있냐?》 하며 박영준을 고무해주는 한편 련장더러  중기관총으로 화력을 집중시켜 국민당의 소사를 막을것을  명령했다.  

박영준은 다시 또치카로 향했다. 《쾅》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또치카가 폭파됐다. 두번째 또치카 폭파소리와 함께 우리 군의 돌격나팔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졌다.

또치카에 있던 국민당의 한개 퇀이 아군에게 포로됐다. 

《내가 있던 동북민주련군 3중대 9사 25퇀 2영 5련은 주력련으로서 전투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이름 있었다》,  《매하구기차역 전투에서 전우들과 함께 지하실에 들어가 국민당 사장과 그의 부인을 나포한적도 있었다.》 당시의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말하는 박영준.

1947년 8월 동북민주련군의 가을공세가 시작됐다. 박영준은 료동성 서풍 (지금의 료녕성 서풍현)전에서 적들의 포탄에 다리를 맞아 쓰러졌다. 담가에 실려 이틀만에 산성진에 도착했는데 피를 많이 흘려 생명위험이 있었다. 

박영준은 《파편 6개가 다리에 들어갔는데 병원에서는 절단할것을 제의했으나 나는 그냥 수술하겠다고 우겼다. 당시 마취약이 없고 약도 부족한터라 고통은 더 말할것도 없다. 해방후에도 여러번 수술을 했으나 지금도 파편 하나가 다리에 묻힌대로 있다》고 말한다.

박영준에 따르면 원래 그는 2등 을급 잔페군인이였는데 항미원조에 가려고 3등 갑급 잔페군인으로 고쳤으나 비준을 받지 못해 가지 못했다고 한다.

1949년 1월 박영준은 해룡현(지금의 매하구시)인민정부 민족과에 배치 받았다.

1954년 4월에 제1자동차공장에 전근, 그때부터 박영준은 불구의 몸을 끌면서 어디에서 수요하면 어디로 가고 어느 곳에 곤난이 있으면 그 곳에 가 혼신을 다하여 조국건설에 바쳐왔다. 그는 선후 장춘시 신립성저수지 건설, 제1자동차공장 농장건설, 지식청년 공장 책임자로 있으면서 많은 일을 했는바 수두룩한 영예를 안았다.

1990년에 리직한 박영준은 지금도 제1자동차그룹 리퇴직 로간부들의 지부서기로 여생을 빛내고있다.


길림신문 홍옥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기:교정의 목소리 오늘은 저희 방송국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 중앙민족대학 임해숙학생과 얘기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안녕하세요? 임: 안녕하세요?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 4학년을 다니고 있는 임해숙입니다. 기: 줄곧 학교에서 공부만 하다가 사회에 진출해 실습을 하니 느낌이 어떠했는가? 임:처음에는 많이 두려웠어요,하...
  • 2006-03-30
  • [원제: 비판보다 사랑이 연변을 키운다] 연변 성보빌딩 총경리 김성순 출장다니다보면 가는데마다 연변사람들을 만날수 있어 반가웠다. 반가워서 이렇게 저렇게 한자리에 모이다 보면 《연변》이야기가 나오지 않을수 없었다. 《락후한 연변이 언제 연해지구처럼 되겠는가?》 《연변사람 게으르다》 《연변사람 사기군이 많...
  • 2006-03-29
  • 중국 교육부 중앙교육과학연구소 교육이론부의 리수산 주임(49)은 대륙의 새마을운동 전도사로 통한다. 중국동포(조선족)인 그는 중국이 올해 '중앙 1호문건'을 통해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힌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인물로 중국 언론에서평가받고 있다. "중국 농업부 교육국장이던 93년 베이징에서 ...
  • 2006-03-29
  • 《와-이것이 과연 한복일가?》 기존 전통한복의 단아한 운치와 우아한 스타일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편의성, 개성미, 실용성을 두루 접목시킨 현대풍의 개량한복이 시중에 선뵈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화제를 만발하고있다. 새로운 성향과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이 패션작의 주인공은 류송옥씨...
  • 2006-03-28
  • 《누가 장애자는 자립못한다더냐!》 호트라인전화 접대원 맹인일군과 함께 사업에 골똘하고있는 박일씨(오른쪽) 3월 6일,《장춘시장애자창업협회》가 마침내 설립되였다. 협회는《장애자들을 위해 취업, 창업, 생활안내와 혼인 등 문제를 해결해주고 정부의 압력과 부담을 덜어주며 정부와 사회에 보답하기 위한것》을 취지...
  • 2006-03-21
  • 연길미주통상대사 박현우회장을 만나 일찍 2004년에 연길시정부로부터 미주통상대사로 위임받은 박현우(미국 캔터키한인재단 회장)회장은 그동안 십여차나 연변과 미국을 오가면서 기타 현, 시의 미주통상대사위임사업을 적극 주선하고 추진하여왔다. 박현우회장으로부터 다면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미주통상대사사업계획을 ...
  • 2006-03-21
  • 전자전공 대졸생 리남씨의 두부인생 탱탱한 스케줄때문에 약정된 시간을 두번이나 미루는통에 지난 16일 저녁 6시경에야 어렵게 남산콩제품유한회사 리남(46세)경리와 자리를 함께 할수 있었다. 두부를 만드는 사람이 아무리 바쁘단들 이렇게까지 바쁠수가? 나의 심사를 알아차린듯 리남씨는 《참 미안합니다. 요즘 공장확건...
  • 2006-03-20
  • 81세 최근갑옹 15성상 땀바쳐 오로지 민족의 뿌리찾기에 전념 룡정에 10개의 유적비 세워 한겨울 같은 혹한이 뼈속에 스며들던 지난 3월 13일, 룡정시 동남교외의 합성리 《3.13》반일의사릉에서는 룡정시와 연변 각지에서 온 지명인사 150여명이 모여《3.13》반일운동 87주년기념추모행사를 펼치고있었다. 찬바람에 백발을...
  • 2006-03-17
  • [원제: 조선족농민의 삶의 질 향상 기대] 중국정협 상무위원 김일광교수와의 인터뷰 일전 기자는 중국정협 제10기 제4차회의에 참석한 중국정협 상무위원인 김일광(72세, 조선족)교수를 인터뷰했다. 북경화학공업대학의 김일광교수는 중국의 저명한 과학자로서 중국정협 제8기, 9기, 10기 상무위원이다. 아래 김일광교수와의...
  • 2006-03-13
  • 기자(이하 기로 약칭):인사말 김병민 대표(이하 김으로 약칭): 연변대학 교장 김병민이다. 이번에 인민대표로 회의에 참석했다. 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서 이번 회의에 참석했는데, 지금까지 제기한 건의아 의안에 대해 많을텐데,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김: 의안은 제기한적 없고 정부건의안 같은 것을 제기했었다. 그...
  • 2006-03-1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