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연길중점대상집중착공식이벤트행사 총기흭, 설계, 제작.
6월 27일 연길한국중소기업전용시범공단 착공식이벤트행사 총기흭, 설계,제작.
8월 7일-10월 5일 한국인천국제도시박람회 연변전시청을 총기흭, 제작, 전시…
8월 28일-8월 30일 연길두만강지역국제투자무역박람회를 총설계, 제작, 홍보.
9월 1일-9월 5일 장춘동북아국제무역박람회 연변전시청을 총설계.
9월9일-12일 2009중국룡정. 천부지산송이민속문화관광축제를 총기흭, 설계, 제작, 홍보.
9월 5일_현재 2010상해세계도시박람회 연변전시청을 총기획, 제작중…
연길, 룡정, 화룡, 도문, 훈춘, 안도 등 주내 대부분 시, 현에서 만드는 고급화책, 투자지남 등 홍보물들도 거지반 여기서 맡아 한다. BO회사의 올해의 주요한 거동만 렬거한것이다.
지난 10년간 연변지역의 큼직하고 덩치 큰 행사에는 거지반 이들의 강력한 참여가 있었다. 여기서 상기 행사들을 흭책하고 제작하고 홍보하는 등 방면에서 항상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다. 연변BO회사이다. 이 회사를 창립하고 오늘날 이처럼 키워오기까지 거둔 세인에 괄목할만한 성취는 리성남리사장의 피타는 노력과 남다른 창의력의 결실이라 할수 있다.
1, 꿈을 가져라 그리고 크게 키워라
1988년 리성남도 연변대학조문학부를 졸업하면서 모든 대학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향후 사회진출과 진로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혹자는 허황한 꿈에 들떠 숱한 목표를 설치하고 이걸가저걸가 하면서 갈팡질팡하고 혹자는 졸업을 금방 앞두니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망연자실하였다. 하지만 리성남은 그렇지 않았다. 성격이 차분하고 문제에 봉착하면 항상 리성적으로 사고하면서 침착하게 풀어가는 성격이라 사회의 수요에 초점을 맞추고 자기자신의 특점과 우세를 접목하여 자기나름의 일터를 개척하리라 마음먹었다.
1990년 리성남은 한국 국가급일간지 조선일보사에 가서 학습하고 견학할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당시 대학교를 졸업한후 아직도 직업선택과 향후 진로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그로 말하면 절호의 기회였다. 아직 중한수교전이라 그의 한국행은 아주 간고하였다. 하지만 끝내 갖가지 난관을 물리치고 한국에 입국한 그는 여기서 88올림픽을 방금 성공적으로 펼치고나서 한창 상승일로를 질주하면서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고있는 한국 사회를 보게 되였다. 현대신문들이 어떻게 독자제일주의를 주창하면서 신문을 꾸리는가를 초보적이나마 알게 되였다. 선진적신문시스템을 접촉하고 현대신문의 방향에 대하여서도 미숙하나마 터득하게 되였다. 그는 특히 신문광고에 대하여 남다른 흥취를 가지게 되였는바 신문광고의 설계, 창의성광고의 제작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신문광고에 대하여 남다른 농후한 흥취를 가진것이다. 당시 우리 나라는 시장경제체제의 정립과 동시에 신문광고가 등장한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지반 천편일률적이고 따분하고 회사경리의 인물자랑이 되는 등 약점과 헛점들이 비일비재였다. 적지 않은 광고는 광고라기보다 문자놀음이나 하고 인물전시나 다름이 없었다.
리성남은 얼마후 한국 《세계일보》에 가서 견학하면서 더욱 많은걸 접촉하면서 안계를 넓혔다. 그는 연변에서 자기특색의 사업을 창출하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그리고 신심으로 한가슴 부풀어 올랐다. 꿈을 가진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크게 키워갈수 있는 그 경로를 모색한것이다. 이는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고 희망찬 스타트이기도 하였다.
2, 정한 목표는 드팀없이 추진하라
1994년 6월 AAC예술광고제작회사가 정식으로 세상에 고고성을 울렸다. 비록 리성남을 비릇하여 3명의 회사원으로 구성되였지만 연변지역에서는 이런 취지를 명시하고 이런 슬로건을 내든 전문예술광고업체는 처음이였다.
리성남은 그 이전에 먼저 연변의 실정을 가일층 료해하고 연변의 시장을 가일층 파악하고저 귀국하자마자 《가정신문》에 취직하였다. 그는 여기서 보도를 하는 동시에 광고를 전문 책임지고서 실천하였다. 먼저 한국에서 배운 그 취지와 방식과 방법으로 《독자제일주의》를 고양하면서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하기에 안간힘을 기울였다. 신문을 꾸릴 뿐만 아니라 직접 발행하면서 독자층을 연구하고 그들의 취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연구하고 탐색하였다. 과연 정성이 헛되지 않아 독자반향이 남달랐다. 가정신문도 훨씬 변모하여 호황을 맞았다. 여기서 얻은 경험과 신심으로 자기나름의 독자행로를 걷기로 한것이다.
남이 걷지 않은 길을 걷는만큼 창업은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이미 남이 개척한 길을 답습한다면 출로가 없는것이다. 그래서 생길를 내는만큼 창의력이 바로 생명력이였다. 그래서 시작이 절반이라고 실천하면서 자기나름의 진로를 모색하였다. 바로 그 이듬해 연변사상 첫 1995두만강지역개방개발투자유치상담회를 거행하게 되였다. 이는 절호의 기회였다. 리성남사장은 즉시 해당 부문과 해당 책임일군들을 찾아 다니면서 대회홍보대상유치에 나섰다. 그러나 누군들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이런 회사에 소홀하게 맡기겠는가.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리성남사장은 이미 닦은 기량이 탄탄하기에 믿음이 있는지라 잘할수 있는 신심이 있었다 그래서 해당 일군들을 찾아 반복적으로 자기구상을 피력하고 두번세번 찾아가면서 설복사업을 펼쳤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의 성심이 상담회조직자들을 감복시겼다. 그리하여 이번 투자유치상담회의 홍보와 홍보물 그리고 그 형식에 대한 흭책, 설계, 제작을 한 뀀에 꿴 작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뒤이어 《연변은 세계에로!》를 주제로 한 대형화책도 볕을 보았다. 대성공이였다. 만사는 첫 단추를 잘 꿰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리성남사장은 인생에서 그리고 창업에서 이 첫 단추를 바로 꿴것이다. 이는 의미있는 훌륭한 스타트이고 희망이 넘치는 발단이였다.
리성남사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앞선 의식, 앞선 창의력을 키우고저 1996년 1월 세계경제문화도시인 미국뉴욕의 견학길에 올랐다. 그는 뉴욕 AM회사에서 세계적브랜드 창출과 CEO들의 관리철학을 배우고 오늘날 글로벌시대에 인정하는 그런 리념과 지식으로 자기를 재충전하였다. 얼마후의 힘찬 도약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의 앞에는 광활한 천지를 펼쳐졌다. 리성남사장의 인솔하에 회사는 상승일로에서 매진하였다.
2000년 새 천년에 진입하면서 제1기중국조선족연길투자유치관광박람회의 모든 홍보물의 기획과 제작을 도맡았다.
2002년제3기중국조선족연길투자무역박람회 그리고 자치주창립 50돐행사의 상무활동총관리와 설계, 제작을 도맡았다.
2005년 제1기동북아국제무역박람회에서 주 당위와 주 정부 주요 책임자들의 지시정신과 의도를 잘 파악하고서 연변전시장의 기흭, 설계를 도맡아 출중하게 수행함으로서 연변전시장을 찾은 국무원부총리 오의의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2006년에는 심수국제문화박람회 연변전시청을 도맡아 기흭, 설계하여 연변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하고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장춘국제농업박람회 연변전시청을 도맡아 농업세계화를 향한 연변농업의 현황과 밝은 전망을 널리 홍보하는데 기여하였다.
2007년 화룡진달래문화관광절 축제행사를 기흭, 제작, 홍보하였다.
2008년 중국북방투자관광교역회를 연길에서 펼치였는데 모든 전시장의 배치, 기흭, 설계, 전시를 총괄하고서 전반 행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담보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BO회사가 지난 10년간에 수행한 상기한 주요 행사들만 렬거하여도 이 회사가 어느만큼 컸는가를 가히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3, 《황제》를 모시고 운명공동체 이루어
BO회사는 시장경제의 망망대하에서 인젠 마음대로 자맥질하면서 질주할수 있게 되였다. 치렬한 시장경쟁의 세례속에서도 인젠 그 어떤 도전도 이겨낼수 있게 되였다. 그젯날의 애어린 나무가 뿌리깊은 거목으로 자라난것이다. 그 비결은 바로 《BO의 창조는 고객의 브랜드이다》는 초창기의 창업정신을 항상 좌우명으로 삼고 그대로 실천한것이다. 회사의 명칭 《BO》, 이름그대로 고객을 언제나 황제로 모신다는것이다. 이 기업정신은 회사의 모든 경영과정에 시종 관통되였다.
2000년을 맞아 새 천년에 진입하면서 연변에서는 그 의미로 중대한 거동이 펼쳐졌다. 제1회중국조선족연길관광박람회를 조직한것이다. 리성남사장은 이 중대한 행사를 놓힐세라 적시에 모든 대회장설계, 대형화책제작, 소책자제작과 발행 등 모든 홍보를 정체적으로 도맡았다. 이 과정에 리성남사장은 도문에 터를 잡은 연변특산물유한회사와 그 회사 박기춘사장을 알게 되였다. 당시 이 회사는 한창 구조조정을 하면서 새로운 제품의 창출과 재창업의 고비를 넘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리성남사장은 상기회사를 공동발전의 파트너로 삼고 2000년 5월부터 박기춘사장의 요청으로 이 회사의 과거를 총화하고 문제점을 진맥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데 직접 참여하였다. 회사의 명제품 《봉천표.고려인삼정》을 창출해내고 그 디자인부터 마케팅전략까지 공동연구하면서 뇌즙을 짰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이 회사는 3년만에 다시 춰서면서 총생산액과 판매액이 각각 3배로 껑충 튀여 올랐다. 《봉천표. 고려인삼정》도 길림성명브랜드로, 연변의 대표브랜드의 하나로 자리매김한것이다. 리성남사장은 이 와중에 상기회사와 운명을 함께 하면서 고락을 함께 한 그 쓴맛과 성공후의 희열을 함께 누리게 된것이다.
《순풍에 돛을 달면 복도 쌍으로 온다》고 한다. 연변특산물유한회사와의 합작이 한창 결실을 맺는 와중에 또 하나의 큼직한 대상이 강림하였다. 연변림업집단 백광신리사장이 요청한것이다. 백광신리사장은 리성남을 단순 기업문화홍보회사 경리로만 본것이 아니라 그룹의 사명, 그룹의 리념, 그룹의 형상에 대하여 함께 탐구하고 토론하는 파트너로 대하였다. 리성남사장도 백광신리사장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자기의 견해와 관점을 피력하고 자기주장도 펼치면서 조언을 주었다. 그리하여 연변림업기업그룹의 기업진단을 하고 명브랜드를 창출하고 문화획책을 하고 기업정신을 모색하여 출범시키는데 참여하게 되였다. 이는 그후 연변림업그룹이 제2차창업의 스타트를 힘있게 내디디고 새로운 기업문화전략을 펼치는데 크게 일조한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발전전략연구와 결책에도 참여하면서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면서 운명공동체를 이루는것, 이는 중대한 발전계기가 되고 한 차례 새로운 비약으로도 되였다.
올해초 리성남사장은 룡정시정부로부터 2009송이축제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리성남사장은 시정부 안명식시장과 먼저 지난 몇차례의 송이축제를 총화하면서 삼합현지에서 펼쳤거나 다른 축제와 더불어서 펼친것들이 성과는 이룩하였지만 미흡한점들이 많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리성남사장은 《이번 축제는 백성들이 직접 참여하면서도 백성들이 펼치고 백성들이 즐기는 립체적이고 정체적인 축제로 펼칠것》을 제안하고 일련의 자기타산도 피력하였다. 안명식시장은 대폭 지지한 동시에 일련의 구체요구도 제기하였다.
9월 9일 2009중국룡정. 천부지산송이문화관광축제가 정식을 펼쳐졌다. 정부가 무대를 만들고 백성들이 직접 참여하고 저마다 참여하여 부담이 없이 즐기면서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가 풍성한 축제의 장으로 되였다. 형상대사들의 집단표현으로부터 시작하여 낮에는 백성들이 펼치고 밤에는 시 정부가 주도하는 개막식을 포함하여 대형공연으로 인상적이였다.
리성남사장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축제를 마무리하는것과 함께 송이을 매개로 하여 룡정을 식용균버섯집산지로 건설할 구상, 룡정에서 펼치는 일련의 축제를 함께 묶어 명브랜드로 키워가는 청사진, 단순 축제의 장이 아니라 경제, 문화, 사회의 발전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하면서 경제적효과성과 사회적효과성을 동시에 창출하는 미래지형적산업을 구축할데 대한 제언을 룡정시 정부에 제기하여 중시를 불러 일으키면서 진정한 운명공동체로 되였다.
4, 나만의 특색, 중복은 없다
오늘날 BO환경예술미디어회사는 지난 15년간의 간고한 창업으로 예술, 상업과 공공사업령역에서 기업진단, 브랜드창설, 창의적디자인, 정품인쇄에서 공간디자인, 인테리어, 시공 등 제 분야를 일체화한 종합적회사로 성장하였다. 연변지역에서 그 누구도 대체할수 없는 그리고 아직 견줄만한 상대가 없을만큼 자리를 굳혔다. 회사는 기흭부, 창의디자인부, 인테리어부, 인쇄사업부, 문화상무이벤트부로 나뉘여 각자 자기나름대로 기량을 펼치고있다. 그리고 연길에 본부를 두고 총체적사업을 총괄하면서 상해, 장춘, 심수에 자회사를 3개 두고있는바 상해에서는 주로 포장인쇄를 도맡고 장춘에서는 인테리어가 위주이고 심수에서는 인쇄업을 주로 하고있다.
리성남사장은 연변지역에서 환경예술미디어산업을 구축하면서 남의 선진적경험과 리론, 기술을 열심히 학습하였다. 우리보다 한걸음 앞선 한국에서 배우고 북경, 상해, 광주, 심수 등지에 가서 앞선 회사들의 《밑천》을 열심히 뒤지여 자기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남의것에 대한 단순한 답습이거나 모조가 아니였다. 지난 7월 한국인천국제도시박람회에서 연변전시청을 고안할 때였다. 주정부 리룡희주장의 의도를 참답게 파악하고 연변특색과 당시 실제상황에 따라 자기아이디어를 창출해내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연변냄새가 물씬 풍기고 연변풍격이 두드러지면서도 《촌스럽지》않게 하기에 최선을 다 하였다. 《나만의 특색》을 만든것이다. 결과 가장 인기적인 전시청의 하나로 될수 있었다.
리성남사장은 지난 10여년간 수많은 행사를 맡아 수행하였고 수많은 화책, 투자지남 등을 펴내였다. 하지만 모두 자기나름의 뚜렷한 특점이 강하게 안겨왔다. 바로 지난날에 대한 단순한 중복과 과거경험과 기술 그리고 작법과 형식을 그대로 옮겨온것이 아니다. 같은 행사, 비슷한 격식이라도 지난날과 달리 하는데 창의력을 발휘하였다.
《BO창조는 고객의 브랜드이다.》오늘날 BO환22경예술미디어회사는 상기 경영리념에 따라 리성남리사장의 인솔하에 2010년상해엑스포에 참가하는 연변전시청의 총기획을 이미 제정하고 제작에 한창 땀동이를 쏟고 있다.
연변일보 장경률 허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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