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이세현-한국 4.19동포후원장학회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1월26일 16시02분    조회:1580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동포자녀들에 사랑을 심어주는 길에서

한국 4.19동포후원장학회와 이세현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 김명환 서울특파원 = 한국 서울 성북구 보문동 6가 441번지, 큰길에서 좁은 언덕 받이를 굽이굽이 오르다보면 도심의 번화가를 등진 동네 한가운데 40㎡가량 되는 사무실이 있다.

소한 집기들로 꾸며진 이 자그마한 공간에서 18년 세월, 수많은 조선족동포 자녀와 한국내의 청소년학생들에게 사랑의 손길이 전달되고 있다.

사회공익사업의 첫 스타트

국가유공자 일원으로 4.19육영사업회를 이끌어 오던 이세현(66) 회장은 1995년 회원들과 함께 4.19민주장학회를 설립, 국가보훈단체인 4.19혁명공로자회의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월급과 퇴직금을 합친 3000만원을 기부하여 장학기금을 조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96년부터 국내서 소년, 소녀 가장 및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고등학생 3000여명에 약 4억원 장학금을 지급해 오다 2001년 중국현지를 다녀온 4.19관계자로부터 요녕성 철령시(铁岭市) 조선족학생지원요청을 제안받아 2002년 제7회 장학금수여식 때 별도로 철령시 10명 학생에게 송금형식으로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이를 계기로 2002년 6월, 4.19혁명동포후원장학회를 설립, 2002년 12월 2차로 용정시, 도문시에서 중.고등학생 50명에 장학금을 전달, 2003년 12월에는 3차로 화룡시 60명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였다. 이로부터 중국동포를 돕는 '사랑으로 가는 길'은 해마다 이어졌다.

이세현 회장은 번마다 '지리적으로 가까웠지만 마음속으론 아주 멀었던 우리의 혈통을 찾아 작은 정성과 사랑을 꾸준히 심어주고 전달하는 사명감을 갖고 왔다'는 소감을 터놓았다고 한다. 

2008년 9월, 흑룡강성 철려시조선족학교 4.19동포자녀 후원장학금 수여식 및 가야금 기증식에서 초등학생들이 한국 측 귀빈들에게 생화를 선사하고 있다.
끈끈한 정으로 감동을 주는 사연들

2006년 6월, 두 번째 장학금전달행사 차 흑룡강성 철려시 조선족중학교를 방문했던 이세현 회장은 학교 화장실의 오래된 판자가 물러나며 학생이 빠진 사연을 목격하였다. 너무도 가슴 아픈 충격을 받게 된 이 회장은 화장실 신축에 소요자금을 확인하고 귀국하였다. 두달 후 300만원 자금을 마련하여 다시 철려조선족중학교로 향했다.

화장실 개보수작업에 전격 투입하여 수세식 영구화장실을 지어주었다. 이세현 회장은 지금까지 불우이웃돕기 사업에서 가장 인상에 깊이 남는 것은 연변의 김연화 학생에게 의수를 지원해준 일이라고 했다.

1994년 어느 날 밤, 다섯 살 나는 연화는 정신질환자 외삼촌이 휘두르는 도끼에 두 손을 잃는 참변을 당했다. 어린 심령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는 물론 옷 입고, 머리 빗고, 밥 먹고, 두 팔로 글쓰기 등의 일상이 연화에겐 전쟁이나 다름없는 고역이었다.

2005년 4월 마침 장학금 관련 행사로 연변 방문 중이던 이세현 회장 일행은 연변 TV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를 시청하다 연화의 신세를 알게 되었다. 이세현 회장은 그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며 귀국 전 연화 학생에게 의수를 지원키로 약속을 했다.

2006년 1월 9일, 기대와 불안이 엇갈린 마음으로 인천공항에 내린 연길시 제5중학교 김연화(16)는 4.19육영사업회 회원들의 박수 환영을 받으며 모국의 뜨거운 정을 느꼈다. 육영사업회 1000만원 지원으로 이루어진 이번 행차에서 연화는 서울보훈병원 보장구센터로부터 의수를 선물받았던 것이다.
연화는 일찍 두 손을 잃은 동시 얼굴도 찍혀 험한 흉터가 남아있었다. 이세현 회장과 4.19장학회의 알선으로 서울 신사동에 있는 비케이 성형외과병원의 전격 후원을 쟁취, 2차의 무료수술을 거쳐 연화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가시고  명랑한 모습을 안겨주었다. 현재는 연변과학기술대학의 1학년 학생으로 되어 배움의 열망에 불타있다고 한다. 

두 손 없는 연화학생을 사랑하는 손녀마냥 따뜻이 맞아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2001년 첫 조선족학생 장학금지원사업을 시작하여 해마다 50-60명이 혜택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요녕성 철령시, 흑룡강성 하얼빈, 탕원, 철려 그리고 연변의 용정, 화룡, 도문, 연길 등지 지원사업에 이세현 회장의 사재를 털고 회원들이 힘을 모아 500여명 동포자녀에 8000만원(한화)을 지원하였다.

명년은 중국동포장학지원 사업 10년,4.19혁명 50주년을 맞는 해로서 이세현 회장은 지금부터 행사절차 등 구상에 몰입하고 있다. 연변에서 20명, 흑룡강에서 20명 추천하여 도합 40명에 장학금 지원활동을 연변 TV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를 통해 생방송 행사를 펼치게 된다고, 그 다음해는 장학생 범위를 동북3성 전역으로 널리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가 해마다 치르는 행사에 지원하는 금액은 약소하지만 동포학생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환한 웃음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동포를 사랑하는 계승세대가 맥을 이어가고 있으니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동포자녀를 위한 사업이 시작을 했으면 중도하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짙은 애정을 내비치었다.

해마다 정부지원 없이 자신이 30%를 부담(500만원)하고 나머지는 회원들이 주머니를 털어 장학금을 충당한다는 이세현 회장은, 현재 50여명 회원 중 퇴직금으로 여생을 보내는 분도, 생계형 회사를 차려 운영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포자녀를 지원하는 사업에 모두가 물심양면으로 성원을 아끼지 않아 자신으로선 고마울 뿐이라고 얘기했다.

2008년 9월, 한국 보훈대상을 수상한 이세현 회장은 추가지원금 100만원을 합친 300만원 수상금 전액을 독립유공자 후손을 지원하고 회원들이 모금한 1200만원으로 하얼빈 도리조선족소학교, 철려시 조선족학교, 탕원현 조선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가야금을 기증하였다. 
지난 10년간 4.19장학회는 동포학생 장학금 지원사업 외 노래자랑, 사랑나누기, 경로잔치 등 행사를 지원하며 동포사회에 따뜻한 정을 베풀어주었다.

올해 6월, 4.19동포자녀후원장학회는 연변TV가 주최한 동포사랑 '우리노래대잔치'를 후원하여 서울에서 공수해온 상품을 수상자들에게 안겨주고 모든 참가 노인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드렸으며 저녁엔 푸짐한 음식상을 차려 대접하였다. 아울러 20명 불우학생에게 한화 270만원 장학금과 학용품전달하였다.

그동안 이세현 회장은 장학사업관련 중국을 10여차 다니며 두루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일면식의 손님이라도 서울에 와 연락주면 이 회장은 찾기 쉬운 지하철 동대문역 5번 출구 바로 옆에 연변동포가 꾸리는 베이징양꼬치집으로 청한다.

우선 조선족동포가게에 매상을 올려주는 일이고 다음으로 이곳의 가격이 저렴하여 자기의 주머니 사정으로도 잦은 편인 손님을 부담 없이 모실 수 있다는 진솔한 고백이다.

이처럼 진실한 인간 이세현 회장이기에 그가 이끌어 가는 중국동포 장학사업이 한시기 거창한 업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단비마냥 어린 심령들에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는 듯 싶다.

j_mh8@hotmail.com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