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룡수-어곡전 마을의 전국로동모범서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5월25일 09시28분    조회:762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전국 로동모범의 영예를 안고 천안문광장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김룡수당지부서기.

― 룡정시 개산툰진 광소촌서기 김룡수의 이야기
길림성 룡정시 개산툰진 광소촌에는 과학적인 산업구조조절과 자신의 시범으로 촌민들을 치부길로 이끌어 가고있는 선두주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광소촌당지부서기이며 촌민위원회 주임인 김룡수(56세)다.

광소촌은 개산툰진 정부소재지와 4킬로메터정도 상거해 있다. 이 촌에는 현재 586세대의 농가가 있으며 농업인구는 2253명, 경작지면적이 718헥타르인데 그중 논이 195헥타르다.  지난날 촌민들은 비록 같은 벼, 옥수수, 콩 등  농작물을 재배하였지만 전통적 사유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수입은 줄곧 낮은 수준에서 맴돌았다. 1999년 12월 김룡수는 광소촌 당지부서기직무를 맡은 이래 마을의 농업산업구조조절을 진행하고 농가의 수익증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

그는 우선 당지의 우세를 발휘해 목축업을 크게 발전시켰다.  촌민들의 뒤떨어진 관념을 개변시키자면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해 실제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 김룡수서기는 2003년 12만원을 투자해 면양 260마리를 사들이고 2헥타르의 옥수수와 콩을 심어 전용사료로 사용했다.  2년간의 발전을 거쳐 양마리수가 600마리로 늘어났으며 년수입이 만원도 안되던데로부터 2006년에 이르러서는 목축업수입이 20만원에 도달했다.

2006년 김룡수는 또 5만원을 투자해 18마리의 황소를 사서 황소양식업에 뛰여들었다.  이를 직접 목격한 촌민들은 그의 뒤를 하나둘 따라나섰다. 지금까지 김룡수서기의 인솔하에 광소촌에는 이미 20여세대의 농민들이 황소양식업에 종사하고있다.

2008년 그는 정부의 빈곤부축자금 40만원을 쟁취해  황소 100마리를  사들여 90세대의 농가에 나누어 주었다. 그의 노력하에 광소촌 촌민들의 황소사양 적극성은  전례없이 높아졌으며 수입도  이전에 비해 많이 증가되게 됐다.

촌민들을 주문농업의 길로 나아가게 한것도 김룡수촌당지부서기의 다년간의 고심한 사업과 갈라놓을수 없다. 지난날 주문농업이 없을 때 촌민들은 해마다 봄철이면 그해 농사가 잘 안될가봐 근심했었고 가을에는 또 수확이 좋아도 좋은 값으로 팔지 못해 애간장을 태웠다.

이런 상황을 개변하기 위해 김룡수서기는 여러 경로를 통해 주문농업정보를 수집하였다. 이렇게 그의 노력으로 전 촌의 대부분 촌민들이 경제효익이 비교적 높은 작은알 콩, 한국무우종자, 약재 등을 재배할수 있게 되였으며 회사와 계약을 체결해 판로와 가격을 보장함으로써 농민들이 증산해도 증수하지 못하는 현상을 줄였다.

지난 2009년 촌에서 주문농업으로 재배한 작물면적은 180헥타르에 달한다.

김룡수는 또 광소촌의 어곡전(御粮田)을 리용하여 어곡전협회를 설립하고  회원 100명을 받아들이고 70헥타르의 논을 협회의 무공해 벼 재배기지로 정하고 시장에 고가의 브랜드입쌀을 출시했다. 올해도 그는 어곡전모내기축제를 조직해 어곡입쌀을 대외에 홍보했다.

김룡수서기는 광소촌의 로무송출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해당 부문과 련계를 맺고 본촌 농민들을 출국로무에로 내보냈는데 지금까지 이 촌에서 모두 600여명이 국내외로 나갔다. 그중 2009년 1년동안 전이한 로력만도 60여명이 된다.

그는 또 정부의 항목자금을 적극 쟁취하여 기초시설을 개선하였다.

안전한 음용수를 마실수 없는것은 광소촌의 다년래의 난제였다. 김룡수서기의 노력으로 2004년 국가의 자금 35만원을 쟁취해 광소촌 3조의 150여세대 농가의 음용수개조를 진행하여 촌민들이 맑고 깨끗한 수도물을 마실수 있게 되였다. 그후 그의 노력으로 2조와 4조에서도 륙속 깨끗한 수도물을 마실수 있게 되였다. 2005년에는 빈곤부축자금 30만원을 쟁취해 100여호 농가에서 렉스토끼양식업에 종사하게 하였으며 2006년에는 30만원의 자금을 쟁취하여 7헥타르의 오미자를 재배하였다.

김룡수서기는 개산툰진 촌간부들중에서 제일 첫패로 중개인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다. 중개인 자격증을 따낸후 그는 마을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2006년 여러 방면의 노력을 거쳐  청도의 사용호와 15만근 입쌀판매계약을 체결해 촌민들의 실제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 다음해 그는 또 본 촌의 입쌀 25만근을 판매하였으며 2008년에는 50만근의 입쌀과 옥수수 720만근을 판매해 농민들이 쌀팔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2008년 그는 국가에서 농민들이 농기계구매시 실시하는 우대정책을 촌민들에게 설명하고 농업기계로 수익을 창출할수 있는 기회를 강조하면서 농업기계합작사를 건립할것을 제의하였다. 그의 고무하에 6명 농민이 자발적으로 농업기계합작사를 설립하였는데 등록자금이 30만원에 달한다. 

김룡수서기는 선후로 룡정시 우수공산당원, 룡정시 10.5기간 로동모범, 10.5기간 연변주 로동모범, 2007년 연변주 우수당사업자 등 영예를 수여받았다. 올해 5.1국제로동절을 맞으며 그는 영광스럽게 전국 로동모범으로 당선되는 영예를 지니고 북경에 가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표창대회에 참석해 국가주석과 총리를 비롯한  국가 당정지도자들의 따뜻한 접견을 받았다.

/ 손화섭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