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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자-10년전 미국 NBA와 대결한 "텐따마"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8월11일 09시45분    조회:8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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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미국 NBA와 대결한 "텐따마" 

미국 NBA가 “텐따마”를 만들어냈는지 아니면 “텐따마”의 소 같은 성격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는지 아무튼 대련 “전어머니불고기집”의 “텐따마”는 대련지역뿐만 아니라 중앙CCTV에까지 오른 당당한 뉴스인물로 된것만은 사실이다. 일전 인민일보출판사에서 출간한 두터운 책자 《중국을 개혁한 이들》(료녕권)에 개혁개방 30년간 괄목할 성과를 올린 성내 기업, 사업단위 300개가 소개되였는데 그속에 “텐따마”의 사적도 실려있다.

        미국 NBA와의 “악연”

“텐따마”의 이름은 전옥자이다. 1990년대 초반 산업화의 급물살을 타면서 많은 농촌사람들이 도회지로 몰려들 때 그녀도 부푼 꿈을 안고 목단강에서 대련으로 왔다. “전 NBA가 무슨 회사인지 지금도 잘 몰라요. NBA때문에 고생을 수태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악연’이 저에게 기회를 준것 같애요.”  

처음 흑석교에서 30평도 못되는 작은 불고기집을 개장하여서 현재 이미 6번째 “이사”하면서 눈덩어리 굴리듯 그녀의 자산도 현재는 천만이상 규모의 찬음회사로 성장했고 전옥자씨는 대련에서 “텐따마”로 명성을 크게 날렸다. 그녀가 NBA와 “악연”을 맺은것은 1997년 10월 대련상표사무소에 수속비 2,000원을 내고 소머리 상표의 간판을 걸면서부터다. 1999년 1월 11일, 태평양너머의 미국 NBA산물주식회사가 국가상표국에 “전어머니불고기집”을 기소하고 그 기소장이 4월 대련상표사무소를 통해 그녀에게 전달되면서 기나긴 송사싸움이 시작되였다. 

원래 서안로에 세번째 식당을 앉히면서 전선대에 광고판을 세우려 하자 상표사무소에서는 상표가 있어야 허가해주겠다고 하여 그녀는 며칠 고민끝에 소머리상표를 고안해냈다. 소고기를 위주로 경영하고 또 소가 우리 민족의 길상물인 점을 강조해 평소 그림을 그리기 좋아했던 그녀는 손수 소머리상표를 설계하였다. 처음에는 소머리에 “왕(王)”자를 그렸다가 소의 부지런함으로 풍년을 안아온다는 뜻에서 “풍(?E)”자를 그려넣어 소의 의력, 끈기, 인내, 정신 등이 외지에 와서 장사하는 자신에게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고무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렇게 전어머니의 상표가 태여난것이다.

미국 NBA산물주식회사는 “전어머니불고집”의 소머리상표는 미국 시카코 불스롱구팀의 상표를 모방하여 음식업상표로 도용하였다면서 타인에게 이 불고기집은 NBA에서 위탁경영하는것처럼 오해소지를 주었고 NBA의 세계적명성을 빌어 상업상 비법적리익을 챙기고있다고 기소하였다. 순박한 조선족녀인으로 줄곧 농촌에서 살아온 그녀는 당시만해도 NBA에 대해 전혀 몰랐고 불스롱구팀에 대해서도 더욱 몰랐다. 업체의 이미지를 살리고 자기가 손수 설계한 상표를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NBA의 “소”와 자기가 그린 “소”의 부동한 점을 렬거하면서 NBA와 당당하게 맞섰다.



얼핏 보면 비슷해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소머리의 이마, 눈, 눈섭은 각각 나름대로의 특점이 있다. 중국 소는 햇소로서 화목한 인상에 젊고 용기있는 느낌을 주나 미국 소는 로황소로서 사나운 눈매에 용맹스러워보이는 느낌을 주며 중국 소머리에는 “풍”자나 미국 소머리에는 “사(士)”자 아래 건너금이 하나 더 있다면서 위조나 모방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대련상표사무소는 상표관련 국제관례와 국내의 유관 규정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해 치밀한 조사를 거쳐 “전어머니불고집”에서 NBA의 상표를 모방했다는것은 근거가 없으며 완전한 합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NBA측은 대련상표사무소를 중국상표국에 기소하였는데 “텐따마”의 “소”와 NBA의 “소”간 겨룸이 결국 중국 “소”와 미국 “소”와의 대결로 비화되였다. 아직 최종 결론이 없지만 지금 대련 번화가에 위치한 “전어머니불고기집” 5층건물에 그녀의 상표와 함께 “중국소와 NBA의 이야기”란 간판이 번듯이 걸려있는것을 보면 승자의 저울이 완전히 그녀에게 쏠리고있다고해도 과언은 아닌가싶다.

            “우리의 상표의식 아직도 멀었어요”

“전어머니불고기집”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것은 NBA가 그녀의 식당을 기소하면서부터다. 1999년 5월 21일, 대련 《반도조간》이 한 식당녀인이 미국 NBA와 상표싸움을 하고있다는 소식을 내면서 대련지역뿐만아니라 《양주석간》, 《중화공상시보》, 《중국청년보》, 《남경주말》  등 신문매체들에게 큰 지폭으로 그녀의 사적을 다루었고 기자들의 취재가 줄을 이으면서 그녀가 접대한 기자만 무려 30~40명, 기자들앞에서 소를 그린 회수만 십여회가 넘는다 한다.

그중 《중국청년보》의 기자가 쓴 “소와 소의 겨룸, 텐따마 NBA와 대결”이란 기사는 당해 신문 1등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 1월 중국명브랜드잡지 《브랜드천하》는 “대련 텐따마의 상표의식”이란 글을 게재하였다. 이 소송사건이 조선의 한 법률잡지에 소개되면서 그녀는 18년만에 조선에 사는 친언니와 상봉하는 극적행운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녀는 소머리상표로 소송이 벌어지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의 상표를 갖게 되였다. 이것이 현재 그의 상표로 등록된 “텐따마” 초상이다. NBA와의 소송으로 기자들의 취재가 열기를 띠면서 누군가 “텐따마” 상표를 등록하라고 귀띔해주어 그녀는 2000년 12월 14일, 자신의 초상을 상표로 등록하였고 금년에 기한이 만료되자 또 10년 연장신청을 하였다.

2002년 4월 26일은 우리 나라의 두번째 “지적재산권의 날”이다. 이날 그녀는 중앙CCTV의 요청하에 CCTV2 채널에서 기자의 인터뷰를 접수하였는데 전국 청중을 대상으로 자신이 미국 NBA와의 상표분규과정을 죽 소개하고 자신의 체험을 유감없이 토로하여 청중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날을 기념하고저 2007년 4월 26일에 현재의 식당을 오픈하였고 기념행사를 진행하고있다.

“지금 중국의 ‘텐진꺼우부리보우즈(天津狗不理包子)’, ‘룽징차’ 등 유명 상품들이 외국인들에게 표절당하고있어요. 저는 이번 국제상표분규를 겪으면서 많은것을 배웠고 특히 외국인들의 높은 상표의식에 대해 매우 놀라왔어요. 저와 같은 무명 녀인이 미국의 유명 회사와 싸우는것을 보고 중국매체들도 적극 응원해주었는데 우리도 하루빨리 상표의식을 수립하고 자기의 지적재산권을 지키는것을 배워야죠.”  그녀는 중국인의 상표의식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녀는 자기의 초상을 상표로 등록하였는가 하면 29류(과일, 고기, 우유제품), 30류(당과, 빵, 아이스크림), 32류(맥주, 음료), 33류(알콜음료, 위소화음료), 42류(찬음) 등 무려 5대류 상표 11개 품목의 상표허가권을 “텐따마”로 등록하였다. 무릇 입에 들어가는 품목을 다 등록하려 했는데 채소는 아쉽게도 사천의 한 회사에게 빼앗겼다며 누가 자기가 등록한 상표품목을 경영하고싶다면 양도할수 있다고 했다. “텐따마”가 유명인물로 되면서 인터넷에 들어가 “텐따(田大)”를 검색하면 류사한 이름도 많이 볼수 있다.

전국우수기업가 등 영예 한아름

1993년 43살의 나이, 낯설고 물설은 타고장에 와서 자기의 식당을 하나 가져보고싶은 꿈을 꾸었던 “텐따마”는 예순고개를 바라보면서 8000원으로 시작된 장사가 오늘은 본점외 여러개의 식당을 갖고있는 리사장으로 변신했고 회사경영도 완전히 기업리념과 경영방식을 갖고 운영하고있다.

“음식은 처음도 마지막도 정성입니다.” 라는 회사의 슬로건은 그녀가 우리 민족의 음식은 완전히 우리의 손맛과 정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해지고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는 대목이다. 2층과 3층의 깔끔하게 잘 꾸며진 방마다 여러가지 좋은 글귀의 액자가 걸려있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층계사이에 속도(speed), 정확(smart), 미소(smile)를 말하는 “3S”가 붙어있었으며 벽에는 “중국바베큐문화명점(中?.??F政?閒o?” 등 상장이 걸려있었다.

그녀가 이 몇년간 받은 영예도 수두룩하다. 2008-2009년도 대련시소비자협회의 “대련시소비자만족단위”에서 전국우수기업가(국가공상국), 전국식품안전시범단위(국가공상국), 대련시계약신용중시단위(대련시정부) 그리고 대련시 제7회 시민들이 즐기는 상표로 선정되였다. 1층 입구에는 “장애자부조애심기업이란 간판이 놓여있었는데 “텐따마”의 사회에 대한 애심과 기여를 엿볼수 있었다. 

“백년 갈수 있는 식당을 하려면 인지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번의 실수는 회사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자칫하면 고객을 잃을수 있습니다.” 지금 식당에서 음용하는 물도 수십만원을 투자한 시설로 정수한 도자기광물질의 알칼리성물이며 고객들에게 언제나 평안한 느낌을 주고있다. 회원이 5,000여명, VIP고객만 60여명이 된다. 엄격한 위생관리와 높은 품질관리로 하여 제6회 중국식품안전년회에서 전국식품안전시범단위로 되였다. 많은 영예중 이 영예가 가장 자랑스럽다는 그는 5층 식당에 걸려있는 당시 인민대회당에서 대회의 수백명 참가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속의 자신을 가리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뒤에서 총괄지휘하고 큰 딸은 주방에서, 둘째 딸은 카운터에서 각기 관리하고있으며 여러가지 규장제도나 상벌정책 등으로 식당이 완전히 현대화기업관리를 도입하고있다고 했다. 매일 직원들의 부동한 매출액에 따라 상금 인상과 근무기한이 1년이상 되면 기본로임을 지급하는 동시에 매년 120원의 루계 상금을 지급한다. 또한 직원들의 자질 및 서비스질을 올리기 위해 1년에 두번 시험을 보며 성적이 불급격한 자는 도태시키고 우수한 자는 년말총화대회에서 표창하여 직원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직업도덕, 애사심, 창의력을 고취하였다. 

그녀와 인터뷰하면서 기자는 부지런하면서도 모든 고난을 이겨나가는 불굴의 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사실 그녀의 창업은 어찌 보면 자기 생활환경을 개변하기 위한 몸부림이였으나 성공한 뒤 자기의 힘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창조해주고 사심없는 사회봉사로 하여 더욱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인생가치를 창출한것이다. 그녀는 NBA와의 소송에서 떳떳하게 중국 “소”의 정신을 고양하여 중국인들의 상표의식에 대한 중시를 불러일으켰고 또한 보통 조선족녀인으로서 우리 민족 음식문화를 주류사회에 널리 홍보하는데도 기여하였다.

“텐따마”는 몇년전 미국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조류인플루엔자때문에 그 계획이 아쉽게 현실로 되지 못했다며 미국에 가면 꼭 NBA를 찾아가고싶다고 기자에게 토로했다. 취재수첩을 덮는 기자도 “텐따마”의 미국 NBA행이 꼭 이뤄지기를 바랬다.              


인터넷료녕신문 기자 지훈 성걸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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