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태복-빚더미 헤치고 억원 진을 만든 공신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10월27일 08시31분    조회:951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료녕성 안산시 달도만진 김태복진장을 만나본다

8년전, 김태복(남,조선족,51주세)씨가 료녕성 안산시 달도만진 진장으로 부임될 때만도 이 진은 1000여만원이나 되는 빚더미에 짓눌린 가난뱅이 진이였다. 그로부터 3년이란 시간에 빚을 몽땅 청산하고도 5년사이에 년간 재정수입을 1.47억원으로 기적을 창조해《새농촌건설의 선두》로 전국을 들썽하고있다.

 기자 일행은 지난 10월 20일 김태복진장을 찾았다.

《올해 재정수입은 2억원을 돌파할것입니다.》고 신심있게 전망한다.

 
독특한 3우세로 민족문화, 공업발전 촉진

김태복이 진장으로 부임된 해는 2002년, 그해는 가장 간고한 한 해였다. 당시 1500만원밖에 안되는 재정수입으로 모든것을 해결해야 했으며 거기에 1000여만원이나 되는 빚까지 얹혀있었다.

달도만진은 안산시 서쪽에 위치, 도시와 린접해있고 17개 행정촌과 2개 지역단지를 관할하고있으며 52.7평방킬로메터의 총면적에 5만여명이 살고있는 큰 진이다.

달도만진의 전신은 구보구송삼대자조선족민족향으로 2003년 안산시에서 향을 취소하고 진을 설립한후 천산구 달도만진으로 개칭하였다.

현재 달도만진에는 한족, 조선족, 만족, 몽골족 등을 포함한 8개 민족이 집거하고있는데 그중 조선족촌이 9개, 조선족인구는 5000여명으로 안산시 조선족인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달도만진은 안산철강회사와 가까이에 있으며 평원지대에 자원이 풍부하고 교통과 통신이 모두 발달되여 남다른 지리적, 교통적, 인문적 등 세가지 우세를 자랑하고있다.

김태복진장을 비롯한 진 지도부성원들은 이와 같은 독특한 우세를 충분히 리용하여 새로운 발전전략을 세웠다.

우선《민족문화를 고양하고 야금업을 발전시키고 경제건설을 강화하자》는 목표를 내세우고 야금 화학공업 설비제조, 물류, 부동산개발 등 다원화발전의 산업구도를 구축하여 잠재된 지역적우세를 현실적인 발전우세로 전환시켜 여러 업종의 발전을 병행함으로써 진의 경제발전에 튼튼한 기반을 다져놓았다.

 

 

투자유치로 재정수입 1.47억원 돌파

 달도만진은 지난 5년간 공업분야에서 삼흠그룹, 자동차형강전문기지 등 2개 선두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150여개 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또한 10만평방메터의 민족공업단지와 20만평방메터의 공업발전단지도 초보적인 규모를 갖추게 되였다. 제3차산업에 있어서는 대우종합시장, 안산시신발소재회사, 민족식품거리 등을 건설하였다.

달도만진은 29건의 천만원이상 프로젝트를 실시하였고 지역외자본 14억원을 유치하였으며 루계로 36억원의 고정자산투자를 하여 향후의 경제발전을 크게 뒤받침해주었다. 2009년 달도만진의 국내생산총액은 36억원, 상납세금 3.24억원, 재정수입은 1.47억원, 수출총액은 623만딸라에 달했다. 이는 각각 2003년의 2.7배, 66.5배, 21.1배와 12배 증가한 셈이다.

달도만진은 경제건설과 사회 각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룩함과 동시에 농업분야에서는 식량, 남새, 사육, 관상업 등 4대기지를 구축하였다.

김태복진장은《올해 진의 재정수입은 2억원을 돌파할것으로 보인다》고 가슴뿌듯해하면서《이는 달도만진의 전체 지도자들과 성원들 그리고 사회 각계 지명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지, 다함없는 노력과 갈라놓을수 없다》고 말한다.

 

안산홍기성환보설비유한회사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는 조선족민속촌

 2006년, 달도만진은 안산시정부의 공업단지 이전에 따라 천산구 달도만진의 대부분 부지가 포함되여 달도만진 조선족촌들의 집단 이전이 불가피하게 되였다. 진정부에서는 조선족들을 한곳에 집중시키고 총 부지면적이 6만 3000 평방메터, 건축면적이 9만 8000 평방메터이고 안산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조선민족음식점과 오락, 문화, 민족풍속 등을 아우르는 민속촌을 건설하여 9개 조선족촌을 집중시켰다. 아파트 내부구조는 한국아파트 형식으로 화원형태의 주거환경을 조성했다. 뿐만아니라 또 단지 내에 5000평방메터의 문화광장과 대형 조선족문화활동센터를 건설하였는바《민족문화를 발굴하고 민족문화의 맥락을 정리하고 민족문화산업을 발전》하는 이미지를 형성하여 민속촌을 안산의 관광명소로 조성했다.

또한 달도만진은 2005년부터 토지를 잃은 농민에 대한 최저생활보장정책을 실시하여 매년 6800여명 농민 (남 50주세, 녀 55주세)들에게 매달 최저생활보장금 240원을 지급하던데로부터 현재 도시 최저생활보조금의 증가에 따라 292원으로 조절하여 총 1920만원에 달하는 최저생활보장금을 지급하였다. 신형농촌합작의료체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여 매년 80만원을 농업합작의료보험가입 비용으로 투입하고 별도로 50만원을 중병치료구조에 투입함으로써 병으로 앓는 농민들이 당과 정부의 배려와 관심을 절실히 느끼게 하였다.

현재 달도만진은 본터 입주면적이 30여만평방메터에 달하는 판부소진, 금상가원, 민복원, 예달도시화원, 네개 고급 본터 입주단지를 건설하는 등 근교 도시화단지식신촌과 원교생태형화신촌 두가지 모델의 조성에 주력하여 본터에 입주한 여러 민족 인민들의 찬사를 받고있다.

 

 

 

황페했던 오막살이는 옛말, 현재 농민들이 입주하고있는 예달화원.

 

전국 민족단결진보모범집단으로

달도만진 정부는 자금을 집중시켜 선후로 달도만학교 강의동, 조선족소학교 강의동과 예술관, 진 행정봉사센터 사무청사, 형업중학교 강의동, 중심유치원, 양로원 및 랑가장렬사릉묘 등을 건설하는데 총 7000만원을 투자하여 기반시설을 보강함으로써 달도만진의 이미지를 크게 향상시켰다.

국경 60주년 맞이하는 2009년, 달도만진은 전국 민족단결진보모범집단으로 선정되였으며 김태복진장은 모범집단의 대표로 국무원제5차전국민족단결진보표창대회에 참가하여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친절한 접견까지 받았다.

 

2009년,국무원제5차전국민족단결진보표창대회에 참가한 김태복진장.

 

[김태복 프로필]

조선족, 1959년생, 중국공산당원.

1978년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 선후로 패장, 련 지도원, 정치간사로 활약.

1994년 9월부터 달도만진 인민정부에서 사업,

선후로 당위, 정부사무실 주임, 투자유치사무실 주임, 부진장.

2002년부터 현재까지 당위부서기, 진장 력임.

2003년 안산시 천산구 인대대표,

2007년 안산시 인대대표로 당선.

2009년 달도만진은 전국 민족단결진보모범집단으로 선정, 김태복진장은 모범집단의 대표로 국무원제5차전국민족단결진보표창대회에 참가하여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친절한 접견까지 받았다.


길림신문 신정자 최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통화일양—핵심기술로 인삼산업 제1인자로 도약한다   ㅡ통화일양보건품유한회사 리청산총경리를 만나 리청산(李青山)프로필 1969년-1975년 군 입대 1975년-1985년 통화백산제약제3공장 주임 과장 당위서기 1985년-1987년 길림공학원 학습 1987년-1992년 통화백산제약제3공장 부공장장 공장장 1992년-2002년...
  • 2011-08-08
  • 저명한 조선족축구인이며 광주항대팀 코치 겸 통역 추명씨 “연변조선족출신이라서 그런지 타성에 몸담고있어도 항상 연변축구를 관심하게 되며 따라서 안타까운 점도 안두가지가 아니다. 연변축구는 수년전부터 슈퍼리그진출이란 목표를 내걸었는데 물론 연변축구의 슈퍼리그진출이란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것이...
  • 2011-08-08
  •   리동휘. 제1차세계대전의 포화가 세계를 뒤덮고있던 20세기초, 인류사상 가장 큰 획기적인 사변이 일어났다. 1917년 부패한 짜리로씨야에서 사회주의 10월혁명이 일어나 첫 무산계급 독재정권을 수립하였다. 10월혁명의 승리는 각국 무산계급투쟁을 고무하여주었고 세계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민족해방투쟁...
  • 2011-08-04
  • 김성만씨가 꾸린 “김예무대공연복장상점(金藝舞台演出服裝商行”은 10여년 줄곧 호황이다. 풍부한 무용전업경험을 갖고 부단히 혁신하여 부단히 변화하는 시장과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한것이 오늘날 그의 성공을 부른것이다.     심양 금가만태생인 김성만씨는 1979년에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 무...
  • 2011-08-02
  •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 ㅡ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심청송사장의 경영관 심청송(沈青松)프로필     1968년 흑룡강성 녕안현 출생 1991년-1993년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 1994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설립(합작) 1996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독립 2002년 단동항풍상무유한회...
  • 2011-07-31
  •       리성적이고 랭철한 두뇌와 판단, 정확한 수치와 판별을 요구하는 우리 나라 유명약학대학의 교수라는 겉모습에 따뜻하고도 감성적인 문학소년의 내면세계를 갖고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심양약과대학 제약공정학원 허영남교수(48세), 사물의 미세한 립자까지 파헤쳐 성분을 분석해내고 세상...
  • 2011-07-28
  • 조선 평안남도 중악군이 고향인 리추악(본명 김금주. 1901년~1936년)은 중국 첫 조선인 녀성공산당원이며 항일투사이다. 3.1 반일운동시 그는 양림과 인연을 맺었고 혁명반려로 되였다.   소련 10월 사회주의혁명의 승리는 조선인민들의 반일투쟁 승리의 신심을 크게 고무했다. 1924년말 그는 중국 광주로 떠났다.   19...
  • 2011-07-27
  •   올 3월 8일 중국인노래자랑에 위문온 민주당 박영선국회의원(오른쪽 세번째)과 함께 있는 윤영숙비서장(왼쪽세번째)과 중국인협회 회원들.   홍콩가수 장명민이 부른 노래 《나의 중국심》이 언제가부터 윤영숙씨의 주제가로 된것은 특별한 리유나 계기가 있은것이 아니다.무슨 가수도 아니고 또...
  • 2011-07-27
  • 칭다오서원장조선족학교 허룡 교장        [흑신 김명숙 기자]   칭다오서원장학교가 하루가 다른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4월 새롭게 부임된 허룡 교장의 심혈이 스며있다.허룡(62세, 길림성 화전시) 교장은 19살 어린나이에 교하시 홍송소학교를 설립했으며...
  • 2011-07-25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5) 민영 민족서점을 복합적인 문화산업기지로 육성할 터 연변민족서점 유한회사 허덕환 이사장을 찾아서          허덕환 이사장이 직원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허덕환 이사장 프...
  • 2011-07-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