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함순녀-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3월10일 11시10분    조회:782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다"

--함순녀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인터뷰

[CRI 량회특파기자 한경화 03-09]

중국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4차회의가 베이징에서 개최되고 있다. 오늘은 중국 제11기 전인대 대표이고, 국가1급 무용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연변가무단의 일급 무용가 함순녀 대표를 만나 양회와 조선족문화예술사업의 발전에 대해 알아본다.

∆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서 이번까지 4번째로 양회 연례회의에 참석하고 계시는데요, 개막식에서 온가보 총리의 정부사업보고를 들으신 후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은 어떤 내용이였습니까?

--전국인대 대표로서 금년에 4년째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금년 보고가 예전과 다른 점은 금년 "11차 5개년" 계획을 마치고, ""12차 5개년"계획을 시작하는 첫해잖습니까?! 5년동안의 사업을 총화를 지었고, 앞으로 5개년 계획의 전망에 대해 제시해 주는 보고였습니다. 저는 듣는 가운데 지난 5년동안에 정부가 해온 사업에 대해 충분히 긍정해 주었고, 특히 지난 5년간 중국은 많은 재해를 입었고 또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도 받았지만 중국은 온당하고 비교적 빠른 발전을 이룩하면서 많은 성과를 이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저는 중국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12차 5개년"기간의 주요목표와 임무를 명확히 확정해 주었습니다. 이 계획을 들으면서 저는 느끼는 바가 정말 이대로 진행되면 우리나라의 전망은 매우 아름답고, 듣는 가운데서 신심이 북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2011년은 "12차 5개년" 계획을 실시하는 첫해인만큼 금년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주 관건적인 한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11년의 사업을 10개 방면으로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중 7번째에서 문화건설을 강화할데 대해 강조했습니다. 문화는 한개 민족과 국가에 대해 보다 심각하고 장원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인민대중의 다차원의 다양한 문화수요를 더욱 잘 충족시키고, 문화의 사회선도, 인민교육, 발전추진의 기능을 발휘시킴으로써 민족의 결집력과 창조력을 증강시킬수 있다고 온가보총리는 강조했습니다. 저는 문화예술사업에 종사하는 대표로서 이 단락의 말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 전인대 대표로 선출된 후 연변의 민족문화사업 발전, 조선족 예술산업 발전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폭넓게 고민하고 연구해 온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몇년간 제기했던 건의나 이미 현실화된 건의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최근 몇년간에 제기한 건의 중 2가지가 이미 낙실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년간에 한국어능력시험제도가 실시되면서 중국에 살고있는 조선족들이 출국해서 치부의 단꿈을 무르익힐수 있는 길이 넓어졌거든요, 그런데 전국적으로 조선족이 제일 많이 집결되어 살고있는 연변에 2008년도에 한국어능력시험 명액이 1000명밖에 차례지지 않아 많은 조선족들이 청도,상해 등 대도시에 가서 시험에 참가하는 불편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변의 명액을 늘여줄데 관한 건의을 제기했고, 2009년에는 6천명이 연변에서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를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어떤 건의 혹은 의안을 갖고 오셨습니까?

--올해에는 "중국 조선문 출판물 공공복무체계와 열람 플랫폼을 건설할데 관한"건의를 가지고 왔습니다.

∆ "중국 조선문 출판물 공공복무체계와 열람 플랫폼을 건설할데 관한"건의를 제기하셨다구요? 이 건의는 단독으로 제기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 이 건의를 제기하게 된 원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죠?

--지금 연변을 놓고 말하면 조선족인구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거든요, 그래서 많은 학교들도 축소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오기 전에 출판사에 가서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조산 결과에 의하면 현재 조선문 출판물에 많은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족들의 일인당 도서 열람량이 너무 낮았습니다. 지금 조사에 근거하면 선진국가들에서는 도서 열람량이 일인당 14권이고, 중국에서도 중문으로 보면 일인당 5권인데, 연변조선족의 일인당 도서 열람량은 0.2권밖에 안되거든요. 그래서 나라에서 제기한 최저수준에도 도달 못되고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족 학교의 도서실에도 보면 책들이 나라의 규정에 의하면 학생 일인당 40권이여야 하는데, 조선어로 된 책은 너무 적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도 문화의 대 번영, 대발전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이런 건의를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 조선족뿐 아니라 기타 소수민족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건의가 앞으로 낙실이 돼서 소수민족들의 문화보급에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인대 대표로서 평소에 짬짬히 틈을 타서 좋은 건의를 갖고 오셨습니다. 또 지금 하고 계시는 사업을 보면 연변가무단의 부단장으로 계시잖습니까? 연변가무단의 부단장으로서 연변의 민족문화사업의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진력하고 계시는데요, 현재 중국 조선족 예술산업이 직면한 어려움이나 존재하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선족은 예로부터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민족으로서 다 인정을 받는 민족이잖습니까? 그리고 역사를 보면 연변가무단은 우리 조선족의 최고 문화단체로서 많은 국가행사에 참가해 많은 상도 타고 영예도 많이 안아왔거든요, 그런데 지금 시장경제시대에 문화예술도 시장으로 진출하는 시대에 접하면서 많은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나라에서 시장경제로 나가는 추세에 발맞춰서 좋은 작품을 많이 생산하고, 특히는 작품에 있어서 민족성을 강조하고 예술성도 강조하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많이 생산하고 이걸 어떻게 시장에 진출시키겠는가 하는 분야에서 최근 몇년간 많은 곤란을 겪었고, 앞으로는 좋은 작품들을 큰 도시로, 세계에로 내밀수 있는 길을 닦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 그렇다면 지금 하고 있는 대외교류나 참가하는 문화행사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최근 몇년간을 보면 2009년에 국경 60주년에 우리 단위에서 창작한 대형가무 "장백산아리랑"을 창작해서 국경 60주년 공연에 참가했고, 또 작년에는 상해엑스포 공연에도 참가했고, 또 금년은 당 창건 90년이잖나요,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서 참가해야 되고… 할 일들이 많아요. 또 내년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설립 60주년이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또 창조해야 되고, "장백산아리랑"은 또 내년에 진행하게 되는 제4회 전국소수민족 문예회보공연에 참가하게 됩니다.

∆ 온가보총리의 정부사업보고에서도 언급이 있었고, "제12차 5개년 계획"요강 초안에도 제10장에 12차 5개년 계획기간에 문화의 대발전과 대번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한장의 편폭으로 있는데요, 그중 눈에 띄는 것이 문화혁신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공연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그걸 시장화하고 상품화하려면 혁신이 아주 중요하지 않나 싶은데요, 문화혁신과 관련해 대표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 지금 있는 작품도 보면 우수하지만 또 새시대의 발걸음에 맞추려면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우리 전통문화의 바탕을 가지고 현시대인들의 기분에 맞게끔 현대적으로 개혁을 가져오겠는가 하는데 모를 박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시대성에 맞는 많은 작품이 생산되어 인민들에게 만족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2008년부터 전인대 대표로 활약을 해오시다 보니까 평소에 가정을 돌볼 시간이 많이 적어졌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가족은 몇분 되고, 가정과 사업간 모순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합니다.

--가족은 남편이 있고, 자식 둘-아들 쌍둥이입니다. 금년에 대학시험을 보게 됩니다. 저희 남편은 같은 단위에서 일하면서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교학을 하고 있고. 물론 내가 일을 하려면 가정일도 잘 처사해야 하기 때문에 모순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남편이 같은 분야의 일을 하니까 저를 이해를 잘해주고 지지를 잘해줍니다. 그리고 애도 한명이 아니고 두명이지만 부모 속을 태우지 않고 자기 앞에 공부를 제절로 잘해주니까 뿌듯합니다.

∆ 다른 부모님들 같은 경우에는 자식이 올해 대학입시를 본다 그러면 3월정도면 자식한테 모든 정력을 몰붓게 될텐데, 전인대 대표로 뛰면서 자식들 후원을 못해주셔서 점도 마음 한구석이 미안한 부분이 있지 않을가 싶은데요.

--저는 우리 애들을 믿습니다. 잘하고 있으니까 잔소리를 안하거든요, 때로는 고무격려의 말도 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잘 될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 전인대 대표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민족을 위해서 제가 뭔가 할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인민들이 수요하는 뭔가를 했다고 느낄때 제일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 내 자신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다는데 감동을 받게 되네요. 앞으로도 전인대 대표로서의 직책을 원만히 수행을 하고, 가정과 사업 모두,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수 있는 훌륭한 대표로, 하시는 일들 모두 순조롭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되게끔 노력하겠습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