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우-재한 조선족실태 조사연구하는 조선족학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4월2일 09시35분    조회:821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재한조선족류학생네트워크 박우회장과의 인터뷰
재한 조선족 실태조사차 대림동을 찾은 박우박사
 
한마음협회 리림빈회장으로부터 재한 조선족 생활실태 조사를 위해 대림동을 찾은 조선족박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무척 호기심이 생겼다. 곧 그의 전화를 알아내 련계하였고 이튿날 대학강의가 끝나자 바람으로 약속을 어기지 않고 대림동에 달려온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할수있는 기회를 얻게 되였다.

그는 배낭식 가방을 메고 어딘가 먼 려행을 떠나는 보행객의 차림새였지만 빠진데 없이 준수한 얼굴에 엷은 안경을 건 모습은 보다 웅숭깊고 모든걸 꿰뚫어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재한조선족들의 생활실태를 비교적 전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기록해 중국과 한국에 알리려는 목적에서 대림동,가리봉,안산 등 중국인(주로 조선족)집거지역을 답사하게 되였습니다.〈코리안드림〉이 시작되여서부터 오늘까지의 전반 과정 역시 우리 조선족력사의 한단락으로 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문자로 기록하여 후세에 남겨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선 중국인집거지를 찾게 된 리유를 간단명료하게 밝혔다. 그리고 집거지에 올 때마다 5명 이상의 조선족을 만나 주로 한국에 오게 된 계기, 그 경과 및 현재의 상황을 화제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지런히 자료를 수집하고있으며 명년 중한수교 20주년때 책자를 펴내려는 의향도 내비치였다. 비록 골목길을 누비며 사람을 많이 찾아다녀야 하고 걸음도 많이 걸어야 하는 등 힘든 과정이지만 스스로 사명감을 갖고 착수한 일이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경력 역시 하나의 공성을 갖는 소재라 하면서 곡절많은 지난날에 대해 감회깊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의 고향은 길림성 룡정, 2005년에 연변대학 식품과학 공정계를 졸업하고 그해에 서울대학 사회학과 석사생으로 류학왔다.그런데 당시 어머니가 정리실업으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아버지 또한 봉급의 70%밖에 받지 못하고있는 상태에서 집의 재산을 깡그리 털다싶이 하여 학교에 왔으나 겨우 등록금이나 낼수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인터넷에 리력서를 올렸더니 마침 어느 려행사의 통역자리에 걸려 여유시간에 일당을 뛰게 되였다.그렇게 간고한 나날을 보내면서 2008년에 석사를 졸업했고 이듬해부터는 박사과정을 시작, 여전히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있을 때 지도교사로 있는 장경섭교수님으로부터 등록금 및 생활비를 지원받아 2년간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무엇때문에 학과 전업을 바꾸었는가 하는 물음에 그는 중국과 한국의 사회현실 특히는 조선족사회의 변화 현실을 탐구하려는 욕망으로 사회학을 전공하게 되였다고 말했다. 석사, 박사과정을 하면서 《재한 조선족로동자집단의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 《재한 중국류학생의 이주현상과 특성에 대한 연구》, 《중국농촌의 사회주의시장경제전환과 교육의 사회경제적 효과》, 《경제적 인센티브와 도구적 민족주의》 등 론문을 집필, 그 가치를 충분히 긍정받아 학계의 중시를 받았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조선족 관련 연구에 성과가 뚜렷하여 서울대 중국연구소, 사회발전연구소를 비롯한 연구기관에 보조연구원으로 추천받아 활약하기도 하였다.

《론문을 집필하면서 보니 한국에 조선족과 유관되는 자료가 너무 결핍한 상태였습니다.우리가 이 공백을 메우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재한 조선족에 대한 연구가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진행되여야 할것입니다.이는 조선족사회의 존속과 금후 발전 및 중한 교류에도 극히 유리한것이지요.》

조선족관련 연구뿐만아니라 중한경제문화교류에도 남다른 소견을 갖고있는 그는 현재 한성대학에서 한국학생들을 대상으로 《중국사회문화의 리해》, 《중국정치경제의 리해》를 내용으로 한 강의를 담당하고있으며 중국류학생들에게는 《한국인과 한국사회》라는 테마로 강의하고있다.

대학강의뿐만아니라 하루가 멀다하게 각종 세미니에 참가해야 하고 또 나름대로 학술연구를 해야기에 눈코뜰새없이 바쁜 상황이지만 더욱 그를 다망하게 만든것은 재한조선족류학생네트워크 회장을 맡은 후였다.

현재 한국에는 조선족류학생이 4000여명이나 된다. 그중 한국의 각종 명문대학에 있는 류학생이 상당수를 차지하며 석사연구생,박사생도 수두룩하다. 민족의 미래를 이어나갈 조선족 젊은 세대의 인재가 어느 정도 집결돼있는것이다. 이들은 재한조선족사회 이미지 향상과 류학생 정보교류 및 인적네트워크 구축, 나아가 중한친선 및 경제문화교류를 위한 뉴대역할을 취지로 2003년에 재한 조선족류학생 네트워크를 설립,그간 많은 유익한 일들을 해왔다.

《이젠 재한 조선족 이미지 변신에 주력할 때입니다. 한국에서 재미동포는 자본, 재일동포는 기술분야에서 한국사회에 기여해 이미지가 좋은 반면 중국 조선족은 로동력을 제공하고있어 이들이 사회 최하층이란 이미지가 있는데 이젠 조선족도 한국의 주류사회에 당당하게 진출하고있음을 보여줄 때입니다.》

이번 실태조사를 하면서 그는 간고한 창업으로 성공한 인물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러한 성공인물의 출현은 재한 조선족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극히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고 말했다. 현재 조선족류학생네트워크에서도 각종 세미나를 통해 재한 조선족들의 한국사회진출을 위한 네트워크구축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이미 3차례나 되는 인적네트워크 세미나를 개최했고 여러 분야의 성공자와 전공자들이 주제발표를 하는 등 월례 세미나도 진행하고있다. 금융, 경영, 전자, 기계, 통신, 학계, 연구기관, 법률, 창업 록색산업 등 분야의 세미나도 정기적으로 열리고있어 좋은 이미지와 영향력을 과시하고있다.

이 네트워크에서는 여러 가지 자원봉사행사도 진행하고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있다. 중국동포 컴퓨터교육봉사,한국 로인복지관 봉사, 중한교류 축제 및 이주로동자 관련 행사봉사 등은 상호 리해와 화합을 촉구하고 조화로운 사회 구축에 한몫 담당하는것으로 인정받아 해당 부문과 사회의 적극적인 지지, 성원을 받고있다.

《재한조선족은 부단한 이미지 개선을 통해 보다 생기있고 희망찬 모습으로 거듭날것입니다.》

박우회장은 재한조선족류학생네트워크는 력사적인 사명감을 지니고 민족사회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더욱 큰 기여를 할것이며 자신도 항상 민족사랑 잊지 않고 민족을 위해 벽돌 한장 더 쌓을것이라 다짐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일전 길림성 영길현 구전수리전업1국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하였다는 김기영씨(71)가 불편한 몸으로 기자를 찾아왔다. 두툼한 자료봉투를 꺼내놓으며 털어놓는 사연인즉 독립군의감(醫監)출신인 부친 김환(金煥)의 독립투쟁경력이 해빛을 보게 해달라는것이였다. 본인의 조사자료와 한국, 연변대학 등지에서 수집한 문헌자료...
  • 2005-12-15
  • [원제: 동심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일찍 중국선진생산자의 일원으로 중국군영회(群英會)에 참가하고 소수민족대표로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던 최윤복로인(76세)은 근 반세기가 지난 오늘이지만 그때의 그 영광이 새삼스럽기만 하단다. 최윤복은 1948년에 화룡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화룡...
  • 2005-12-14
  • 중국 일류 대학생들의 선두인물 권정 김호림ㅣ중국국제방송국 기자 jinhulin@hanmail.net 권정(權靜), 그 이름에 사람들은 거개 생소함을 느낀다. 그러나 북경 대학입시 수석합격자라고 하면 대뜸 “아, 그 애 말이예요”하고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밀군 한다. 북경에서는 2000년에 아주 드물게 2000년에 대학입시성적 성적...
  • 2005-12-14
  • [한겨레] 말총머리 휘날리며 날카롭게 상대를 쏘아보던 자오즈민. 2.5g짜리 탁구공 하나의 마술로 세계를 제패하며 중국 마녀군단의 선봉에 섰던 그는 1989년 한국 남자탁구 국가대표 안재형(41)과 결혼해 큰 화제를 뿌렸다. 한국과 중국이 적대국이었던 시절, 이 둘은 탁구를 통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으로 모두...
  • 2005-12-10
  • 장백조선족자치현 십이도구진 십이도구촌의 리병권농민은 북오미자재배로 치부의 길을 개척하고있다. 올해 49세인 리병권농민은 2003년에 과전현 등지에 가 자비로 북오미자재배기술을 배운후 퇴경환림으로 지난해 촌의 42무에 달하는 다락밭을 도급맡았다. 그는 선후로 9만여원의 자금을 들여 외지로부터 당지 기후에 적합...
  • 2005-12-08
  • [원제:김부인모피복장회사 신장 개업] 조선족 기업가 최명철씨가 총경리를 맡고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가 지난 2일 할빈 도외구에서 성대한 의식을 가지고 신장개업에 들어갔다. 40여년이란 오랜 력사를 가지고 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는 최근 년간 미국, 한국, 일본 등 나라들을 비롯한 국내외 수십여개 모피복장유명회사...
  • 2005-12-08
  •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연구 발명해낸 “일종 대퇴골괴사치료약물 및 그 제법”이 국가발명특허를 따내여 린근의 주의를 끌고 있다. 훈춘시에 거주하고있는 김영자(50세)는 다년간의 투병중 꾸준히 병마와 싸워가며 자기 몸을 제1실험실로 삼아 마침내 국가특허약물을 연구발명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18살 꽃나이시절에 그...
  • 2005-12-08
  •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에서 두손을 잃었으나 《이 생명 다할때까지 혁명하겠다》는 호언을 남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퇴역해 한생을 묵묵히 농업생산에 종사한 이가 있다. 그가 바로 전국군인모범으로 주덕, 주은래의 접견을 받았던 리수봉(78세)로인. 유소년시절부터 심양, 할빈 등 지를 류리걸식하던 리수봉씨는 1945년...
  • 2005-12-07
  • 우리 민족이 북방지역 벼재배력사를 개척한지 120여년이 되는데 그동안 북방입쌀 생산, 발전에 불후의 기여를 하고 많은 시대적과학기술일군을 배태시켰다. 20세기말 특히는 시장경제가 활성화하여 입쌀미질경쟁이 치렬할 때 국가특수대우향수자이며 길림성농업과학원 김윤주(지금 김심인이라 부름)연구원은 세계에서 처음으...
  • 2005-12-06
  • 12월 4일 제5차 《전국법제선전일》을 맞으며 2005년 《년도10대법제인물》 평선결과가 발표되였다. 이들로는 허문유: 료녕성공안청 형사정찰총대 대장 형사경찰의 본보기. 동려화: 공익변호사 약자의 권익 수호자. 진건교: 호남성인대 대표 마음은 언제나 민중과 함께. 중국법률원조기금회: 약세군체를 위해 소송을 걸고 자...
  • 2005-12-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