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평생을 창작사업에 바친 원로작가 리홍규옹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6월17일 14시13분    조회:98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길림신문 2011-06-17 김청수 기자]2009년말 자신의 소설작품《대홍수》(최현순 공저)상하권과 다년간 소중히 간직해온 문학예술도서 총 765권을 산재지구 조선족들에게 기증하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원로작가 리홍규옹은 5월 15일, 우리의 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가셨다.

하지만 그이께서 남겨주신 그의 작품과 서책들은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신변에 남아있다. 1985년에 탈고하였으나 장장 20여년이나 볕을 보지 못하다 드디여 출판한 심혈의 기록《대홍수》, 전대미문의 일대재난 문화대혁명이 전반 사회를 암흑의 나락으로 추락시킨 과정, 인간의 존엄을 무지막지하게 유린한 장면, 험악한 환경속에서도 여러 민족 형제들이 마음을 합쳐 악세력과 두려움없이 대결하는 정의를 사실주의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주었던 로작가의 필적은 쉼없는, 퇴직이 따로 없는 로작가의 분투과정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2007년 12월 연변주당위, 주정부로부터 《민족문화사업 특수기여인물》로 표창받았다.

리홍규원로작가는 1927년 흑룡강성에서 동녕에서 출생하여 1946년3월 혁명에 참가하였다. 1946년 7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선후로 목단강 《인민신보》, 할빈 《민주일보》, 연변《동북조선인민보》에서 기자, 편집조장으로 근무하였다. 1946년 소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뷰하고 1956년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하였으며 50년대초 아세아작가련락위원회 위원, 연변주인대 대표, 정협위원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1954년 연변가무단 단장, 연변주문화처 처장, 연변문련주임, 작가협회 전직 부주석, 전업작가로 정진하였고 1987년 리직휴양을 하였다.

그는 문단에 데뷰한 뒤로 반세기에 걸쳐 문학창작에 심혼을 몰부은 우수한 소설가였고 국가와 인민의 운명을 관심한 우수한 지성인이였다. 다년간 그는 사회발전변혁에 대해 민첩하고도 열정적인 관심을 보여왔으며 창작과정에 줄곧 력사적인 비판과 현실적인 비판의 정신을 곁들여왔으며 자신의 지혜와 열정을 문학창작사업에 이바지하였다.

1958년 그는 선후로 장춘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중국조선족의 첫 영화씨나리오 《봄우뢰》(공저)를 써냈고 영화문학 《꾀꼬리련가》, 장편소설《대홍수》, 단편소설집《다시 한 선거》 등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장편소설《연안보위》《구양해노래》등 문학작품을 번역출판하였다.

그의 작품은 깊은 사고력과 독특한 시야, 열린 사유로 력사사건과 인물들을 민첩하게 포착해냈으며 격정어린 언어풍격으로 광범한 독자들과 문학계의 찬양과 사랑을 받게 되였다. 그는 중국조선족문학계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굳혔고 중국조선족과 연변지역 기타 민족문학사업에 큰 공헌을 하였다.

리홍규원로작가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서 필을 놓지 않고 완강한 의지로 창작활동을 견지하여 우리 나라 민족문학사업에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하였다. 그는 또 재해구지원활동과 각종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자신의 괴춤을 털어놓음으로써 후대들에게 훌륭한 본보기를 수립하였다.

필생의 정력을 조선족문학사업발전에 이바지한 그의 업적과 정신은 영원한 귀감으로 우리들속에 살아있을것이다.

1982 리홍규옹 저택에서 마라친부 (몽골족작가 왼쪽두번째), 리홍규, 장천민(씨나리오 작가 오른쪽).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현지인 말에 귀 기울여야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어"  "중국에서는 법보다 친구가 중요할 정도로 신용관계가 사업의 핵심요소입니다. 편하다는 이유로 한국인끼리 모여 있어서는 중국 사회 깊숙이 진출할 수가 없습니다." 허영수(53)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일본 지바(千葉)지회 회장은 17일 해외 시장에 진출하...
  • 2013-06-18
  • 중경에 있을 때의 청년시절 리화림(좌)과 로년의 리화림 리화림, 그녀의 본명은 리춘실, 1905년 1월 6일 조선 평양시 경창리에서 태여났다.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원학교에 다닐무렵, 평양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력사문학연구회에 들어가 사회주의사상을 익혔다. 열네살 때 《3.1》운동에 참가했으며 1927년...
  • 2013-06-17
  • 특별기획- 연변을 빛낸 조선족무역인 (6) 가비양 중국총판 김향란사장의 이야기   가비양 중국총판 김향란사장 가비양커피 중국총판 김향란사장이 6월말 상해에 제3호점을 오픈한다.기자는 일전에 가비양커피 중국총판 첫 본점을 시작으로 짧디짧은 2년사이에 연길과 훈춘 등 곳에 각각 분점 하나와 상해 1,2호점 등 ...
  • 2013-06-17
  • -봉산전통장체험관 김봉산 허봉숙 부부의 창업일화 모아산동남쪽기슭에 자리잡은 봉산전통장체험관(锋山朝鲜族传统酱体验馆)은 《6.1》아동절을 맞으면서 큰잔치라도 치르듯 들썽하였다. 학부모들의 손을 잡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찾아온 어린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메주를 만드느라 야단법석이고들있었다. 손매돌을 돌리...
  • 2013-06-16
  • 한국 영문월간 잡지사 임덕규회장 인터뷰 임덕규 지난 4월 26일 필자는 한국 영문월간 (디플로머시)잡지사 임덕규회장을 인터뷰했다. 올해 79세인 임덕규회장은 역시 4년 전에 필자가 만났을 때의 건강한 그 모습이였고 예지로 넘친 그의 실눈은 이어지는 웃음으로 눈을 떴는지 감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 번도 임회...
  • 2013-06-14
  • 길림성정진광고유한회사 최정학 리사장             15년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전국 160여개 도시에 분회사를 세운 한 기업가가 있습니다. 올해 59살인 최정학은 안도현에서 공무원으로 있던중 1995년에 국가민족사업위원회의 초청으로 미국시찰을 가게 됐습니다. 당시 광고회사에서 견습하...
  • 2013-06-13
  • 아리랑방송서 '바로 쓰는 우리말' 프로그램 제작  "청취자 여러분, 무엇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본따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정확한 표현은 '본따다'가 아니라 '본뜨다'입니다." 중국 옌지(延吉)인민방송국의 우리말 라디오 방송 채널인 '아리랑방송&#...
  • 2013-06-13
  • -연변기림병원 침구골과재활센터 리철호주임의 일가견 《뇌성마비어린이들을 구하는것은 의사로서 밀어버릴수 없는 책임입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뇌성마비어린이들을 일찍 발견하고 일찍 치료하는것입니다.》 연변기림병원(延边祺林医院)침구골과재활센터 리철호주임이 기자에게 하는 말이다. 현재 연변기림병원 8층 ...
  • 2013-06-13
  • 류건봉(1865-1952, 산동성 안구현 사람)은 청나라가 1909년 12월에 안도에 지방행정기구인 현을 세운 후에 임명한 제1임 지사--오늘날의 현장이다. 류건봉기념비는 안도현 명월구에서 장백산으로 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맞은 켠 송전탑 밑으로 뻗은 도로가 안도 외곽에서 직접 장백산으로 통하는 관광도로이다.   ...
  • 2013-06-13
  • 한국로사가야금앙상블예술단 정미화단장의 남다른 중국정 중한문화교류음악회서 25현가야금연주를 하고있는 정미화단장. 중국의 조선족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한국연예인이 있다. 바로 한국 로사가야금앙상블예술단 정미화단장이다. 정미화단장은 《로사가야금앙상블예술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지원을 받...
  • 2013-06-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