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신용은 기업의 생명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7월18일 10시49분    조회:1447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정만흥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4)

다롄정흥석화유한공사 정만흥 총경리와의 대담



 




정만흥총경리 프로필

  1956년 5월1일,출생

  1973년 1월~1978년8월,하향지식청년,공청단서기,생산대장,농전건설병단 부단장(农田建设兵团副团长)

  1978년 9월~1982년 7월,지린농업대학 학생회 부장

  1982년 8월~1988년 8월,연변인민출판사 편집실 주임

  1988년 9월~1991년 6월,동북3성 성위당교 정당건설학 연구생

  1991년 7월~1995년 5월,다롄개발구관리위원회 외자유치국 처장

  1995년 5월부터 현재,다롄정흥석화(大连正兴石化)유한공사 총경리

  2004년 5월5일,박사학위 취득

  주요저서

  "김일성회고록"중문번역본1-8권

  "간부의 직책을 논함(不称职的干部)" 등 도합 8권

  주요논문

  "맑스-엥겔스 건당활동의 몇가지 특징을 논함(略论马克思恩格斯建党活动的几个特点)"

  "당의 사상건설에서 반드시 중시해야 할 세가지 중요환절(党的思想建设必须重视的三个重要环节)"

  "비권력의 영향력을 논함(论非权力影响力)"

  "우리나라 소수민족출판사업을 강화할 문제에 대하여(试论加强我国少数民族出版工作)"등 10여편

 


다롄시조선족기업가협회 설립식에서 초대회장으로 위촉받고 있는 정만흥 총경리.(오른쪽)

  (흑룡강신문=하얼빈) 국내 최초로 고무가공유(橡胶加工油)와 왁스원료(蠟膏)를 수입하고 경영하는 국내 최대의 민영기업 다롄정흥석화유한공사(大连正兴石化有限公司)를 찾았을 때 정만흥(郑万兴) 총경리가 조선족이라는 것은 미리 알았지만 그가 '김일성회고록'의 중문본 번역자이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학자라는데 놀랐다.

  단독저서만 8권이나 펴낸 학자가 어떻게 세계 23개 국가와 무역거래를 하고 해마다 무역액 2억위안이상을 달성하는 굴지의 기업인으로 되었을까?

  기자는 정만흥 총경리의 널직한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ㅡ정 사장의 이력서를 보면 기업인이기에 앞서 출판사업을 하는 문화인이었으며 또 당 선전부와 조직부에도 자취를 남긴 정치인이며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기업경영에 입문하게 되었는가?

  ㅡ뿌리부터 이야기하면 부친이 정치간부였다. 1969년 하향하여 훈춘현 영안공사병원에서 원장으로 근무했다. 나는 5형제중 둘째였는데 형제들 모두가 지금은 학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해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에 하향한 후 당시 읽을 수 있는 책들인 수호전, 삼국지, 전쟁과 평화 등 서적들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1977년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자 첫기로 시험을 쳐서 합격했는데 입학하고보니 중등전문학교였다. 그래서 자퇴하고 이듬해 다시 시험을 쳐서 지린농업대학에 진학했다. 1982년 졸업 후에는 연변인민출판사에 배치받아 편집실주임으로 있었다.

  그후엔 동북3성 성위당교에 가서 연구생공부를 했다. 연변주위 선전부와 조직부에서도 1년씩 파견근무를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사업환경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3차에 걸쳐 102일간 남하(南下)했다. 하이난, 선전, 광저우, 상하이, 닝버, 칭다오, 다롄 등 지역을 돌면서 자신을 홍보했다. 가는 곳마다에서 문을 활짝 열고 환영했다. 나중에 닝버와 다롄을 놓고 고민하다가 고향과 가까운 다롄을 선택했다.

  다롄시개발구 외자유치국에 찾아갔는데 책임자가 일주일내로 "한국경제의 어제와 오늘, 미래"에 관한 견해를 내놓으라고 했다. 컴퓨터도 없는 시절이라 밤새껏 1만여자의 자료를 원고지에 작성한 후 이튿날 아침 교부해 결국 합격했다. 이렇게 다롄에 발을 붙였다. 1991년 7월 12일부터 출근했는데 당시 나는 다롄개발구의 첫 연구생이었고 일본과 한국을 상대로 외자유치사업을 하면서 다롄개발구의 외자유치사업을 위해 대량의 기초자료를 만들었다.

  그렇게 외자유치사업과 자료작성사업을 하는데 중앙에서 공무원들의 하해(下海)를 고무하는 정책이 나왔다. 하해했다가 실패하면 1년내에 복직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처음엔 주저했지만 생각해보니 중국에는 "'재정밥'을 먹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하해를 결심했다. 다롄개발구에서만 50여명이 나왔는데 1년후 성공한 사람이 나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ㅡ현재 "다롄정흥"의 제품은 국내 타이어업종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제품이 되었고 "다롄정흥"은 국내 고무타이어업종, 와이어로프그리스 업종(钢丝绳表面脂行业), 도로콜타업종(重交沥青行业)에서 "반드시 원료를 안정하게 공급해야 하고 사용업체들의 정상적인 생산을 보장"해야 하는 중요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회사 관리일군들과 기계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ㅡ고초야 많았다. 헌데 나는 아마 하느님이 돌봐주는 것 같았다. 차를 몰고 다니면서 지금까지 십여차례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한번은 차가 박살이 났는데도 사람은 멀쩡했다. (허허…)

  경영품목은 방직품 위주로부터 점차 석유화공제품으로 전이하면서 네개의 발전단계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엔 조선과 한국을 상대로 기전(機電), 방직, 화공 등 무역을 했다. 독립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니 하는 일들이 자신의 소신대로 할 수 있고 활동범위도 넓어져서 성격에 맞았다. 사업이 일사천리로 추진되었다.

  두번째 단계에는 방직품 위주로 추진했는데 당시 우리가 생산하는 내프킨(면물수건)은 한국시장의 80%를 석권했다. 조선에 생산공장 7개를 임대가공할 정도였다. 이 시기 조선에서 '김일성회고록' 중문출판권을 쟁취했다. 김일성 주석이 아직 생존해있던 때였다.

  세번째 단계는 1997년 한국의 금융위기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페인트제품을 수입하여 국내에 공급하기로 했는데 중국총대리를 맡았다. 그런데 제품이 자꾸 적치되었다. 알고보니 한국측에서 나에게 중국총대리를 맡겨놓고 국내 다른 경영자한테도 제품을 공급했던 것이다. 내가 출자해서 "제비표"광고를 전국각지에 뿌렸는데 이득은 엉뚱한 사람들이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측에서는 처음의 약속을 어기고 "동북지역만 하라"고 했다. 북으로 치치할, 남으로 정저우까지 수십개 체인점을 설립했는데 그러면 안되었다. 각지 작은 대리상들 손에서 제품을 회수하는데만 1년이 걸렸다.

  2003년 기업의 안정하고 지속적인 발전방략을 연구한 결과 유류제품(油類制品) 경영을 확정했다. "정흥"의 네번째 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국내에는 왁스(石蠟)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안되었기에 일약 왁스수입의 제일인자로 되었다. 세계적으로 연간 왁스유통량은 400만톤인데 중국의 수요량은 140만톤이다. 수입과 수출을 동시에 하는데 고급과 저급을 수입하고 중급을 수출한다.

  현재 회사는 고무가공유(橡胶加工油)와 왁스의 수입을 위주로 하고 겸하여 고무와 기타 석유화학제품의 무역을 추진하고 있다. "정흥"은 국내에서 최초로 고무가공유와 왁스를 수입한 회사이며 또 현재까지도 고무가공유와 왁스원료(蠟膏)를 제일 많이 경영하는 기업이다. 단일품목으로 고무가공유 연간 경영수량만도 4만톤 이상이다. "정흥"의 제품은 이미 중국타이어업종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제품으로 낙인되었다. 이런 성과로 2007년 중국고무공업협회는 "정흥"을 정식회원단위로 결정했다.

  "정흥"은 현재 중국석유(中國石油), 중국석화(中國石化), 중국해양석유(中國海洋石油), 중국중화집단(中國中化集團), 요하유전(遼河油田), 남양유전(南陽油田)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과 무역거래를 하고 있으며 국내 및 세계 23개 국가와의 연간 무역액이 2억위안을 추월한다. 이외 국내의 광저우, 닝샤, 닝버, 장자강, 톈진, 잉커우 등 6개 연해지구에 스토리지 기반(仓储基地)을 마련했고 천진 대항, 산둥 량산, 허베이 신집, 랴오닝 반금 등 지역에 합작가공기지가 있다.

  ㅡ참으로 대단하고 쉽지 않은 노정이었다. "정흥"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성공스토리에는 어떤 경영이념이 작용했는가?

  ㅡ한마디로 "신용"이다. 신용은 기업 특히는 무역업자의 생명이다. 중국에 이런말이 있다. "人正卽立,品正卽興" 즉 "인간이 바르면 성공하고 품성이 바르면 흥성한다"는 뜻이다. 저는 기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三年不倒,老板不傻,十年不倒,可有信誉". 즉 "기업이 3년내에 문을 닫지 않으면 기업주가 똑똑하다고 할 수 있고 10년내에 문을 닫지 않으면 신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용이 없는 기업은 절대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10년이상 꾸준히 발전하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신용불량자가 거의 없다. 또 "기업의 신용"은 기업주 한사람만의 신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모든 직원들이, 지어는 청소부까지도 철저하게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ㅡ최근에 있은 다롄시조선족기업가협회 설립식에서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는데 우선 축하하며 한가지 묻고 싶다. 다롄협회는 기타 지역 조선족기업가협회와 비교할 때 어떤 방면에서 차별화하려고 하는가?

  ㅡ우선 다롄시조선족기업가협회는 다롄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선족기업인들이 서로 정보를 교류하면서 발전을 도모하는 큰집으로 되어야 한다. 하여 협회는 회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경제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은행과의 관계, 정부와의 관계, 주변과의 관계, 외국과의 관계 등에서 제공할 수 있는 모든 편리와 이익을 제공할 것이다. 이것은 협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다음, 기업가협회는 조선족사회에 밀어버릴 수 없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문화사업, 교육사업, 노인사업 등등 많은 일들에서 기업인들은 중요한 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ㅡ기업인들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협회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라고 하는데 이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실천하자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현재 협회는 회원들을 위해 어떤 일들을 추진하고 있는가?

  ㅡ우선 협회사무실을 설립하고 전문일군을 두어 회원들을 위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음 다롄민생은행과 1억위안까지의 대출신용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우리 회원은 은행대출을 쉽게 할수 있게 되었다. 또 회원들의 대외교류에 편리를 주기 위해 해당기관과 토론하여 회원들의 F4비자를 해결하려 한다. 이밖에 기업인양성프로그램를 가동하여 프로젝트와 아이디어가 있지만 자금이 없어서 창업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창업에 필요한 기타 요건들을 지원해주고  있다.

  /료녕조선문보 김룡호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합뉴스2006.01.08 07:00:20] (서울=연합뉴스) 조계창 기자 = 미국 시카고 근교의 브레들리 대학에서 35년 간 교수로 봉직하고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는 재미 원로학자 황인관(76) 박사. 재미동포 인터넷신문 `민족통신'은 8일 반세기 넘게 한반도의 평화통일안으로 영세중립론을 주장해왔던 황 박...
  • 2006-01-08
  • 황유복교수를 찾아간것은 지난 12월 9일 오전, 오후에 곧 있게 될 그의 수필집 《사랑의 사회학》 출간식과 이튿날 있게 될 《제10회 조선족발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 준비로 너무나 다망한 때였다. 이를 헤아려 일정이 끝나기를 기다릴가고 생각하다가 행여나 하고 인터뷰를 청탁드린것이 선뜻 승낙을 받을줄이야! 반가움...
  • 2006-01-08
  • 신형근 주칭다오(靑島)총영사의 부인 김금룡(52)씨가 `2005 감동 칭다오 10대 인물' 후보에 올랐다. 6일 총영사관에 따르면 '칭다오 10대 인물'은 23명의 후보 중 전화 및 인터넷 등을 통한 투표와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오는 18일 오후 칭다오 방송 QTV-1을 통해 발표된다. 신형근 총영사는 이날 "아내가 자원봉...
  • 2006-01-07
  • “바둑에는 휴전선이 없습니다.” 한반도에서나 국외에서나 갈라진 남과 북의 마음을 바둑으로 이으려는 노력하는 재일동포가 있다. 구쾌만(81) 재일본조선인바둑협회 회장은 바둑을 통해 남과 북의 교류, 민단과 총련으로 나뉜 재일동포 사회의 화합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기원이 주는 문화공로상을 받기 위해 5일...
  • 2006-01-06
  • [원제: 이쑤시개 먹을수도 있나?]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고있으나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는 일개 미물인 이쑤시개로 국가발명특허까지 낸 민영기업가가 있다. 연변록환실업유한회사의 오흥록경리(43살)는 3년간의 연구를 거쳐 100% 전분으로 된 일회용이쑤시개를 개발, 2004년 3월 국가급발명특허를 얻어냈다....
  • 2006-01-05
  • 신춘문예 당선 60세 작가 박찬순씨 한국에 온 조선족 청녕의 비극을 다뤄 예순… 잔치는 시작됐다 - 本社신춘문예 소설부문 최고령 당선 박찬순씨 "요즘 누가 나이 60에 환갑잔치 하나요… 젊은 작가엔 감각, 나에겐 경험이 있어" “젊은 작가를 기대했을 텐데 죄송해서 어쩌나….” 2006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 소설 부문...
  • 2006-01-04
  • [연합뉴스 2006.01.03 07:00:21] 왕길환 기자 전화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모으는 중국판 `사랑의 리퀘스트'로 불리는 연변TV의 `사랑으로 가는 길'에 4년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성금을 낸 조선족 청년이 있어 화제다. 고춧가루 배달 동포 강철수씨 매달 60위안(7천500원)씩 4년 동안 `강씨 형제(小康兄弟)'란 이름으로 이...
  • 2006-01-03
  • [연합뉴스 2006.01.02 07:00:00]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드에 거주하는 동포 김영군(미국명 와이 케이 김) 사범이 이민생활을 담은 영문 자서전 `성공의 선택'을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민족뉴스부 기사참조/문화/ 2006.1.2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드에 거주하는 동포 김영...
  • 2006-01-03
  • [연합뉴스 2006.01.02 06:30:08 왕길환 기자 = 2년 연속 골든 글로브 최우수 TV드라마상 후보작에 오른 `로스트'(Lost)에는 출연배우 김윤진과 대니얼 대 김 외에도 한류를 이끈 한인이 한 명 더 있다. 지난 6월 두번째 시즌을 맞아 합류한 작가 김수진 (미국명 크리스티나 김.여)씨가 그 주인공. 그는 조지타운대 영문학과...
  • 2006-01-03
  • [중앙일보 2005.12.31 06:08:26] 재일동포 인권운동의 구심점으로 활동해 온 김경득 변호사가 12월 28일 밤 일본 도쿄에서 위암으로 별세했다. 56세.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고인의 갑작스런 타계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30일 조촐히 치뤄졌...
  • 2006-01-0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