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동북항일련군 제3군 군장 - 허형식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7월20일 08시48분    조회:1377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허형식

       


        허형식(1909년~1942년 경상북도 선산군)동지는 1929년 조선에서 흑룡강성 빈현에 이주, 혁명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듬해 5월 1일 중공북만특위가 할빈에서 시위행진을 단행할 때 허형식은 10여명 공청단원을 이끌고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삐라를 살포하다가 군벌당국에 의해 심양감옥에 투옥됐다가 1931년 '9.18'사변후 석방됐다.

  출옥후 빈현에 돌아와 중공빈현특별지부 위원을 담임했다.

  1934년 6월 28일 주하유격대가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로 개편됐는데 허형식은 지방에서 유격대로 조동돼 제3대대에서 정치지도원을 담임, 가을에는 제1대대의 대대장으로 됐다.

  1935년 1월 28일 합동유격지대는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 제1사로 개편됐는데 허형식은 2퇀 퇀장으로 임명되여 대오를 이끌고 주하철도, 연수현, 빈현, 방정현 일대에서 항일유격활동을 펼쳤다.

  겨울에 3퇀 정치부주임으로 임명, 일본군과의 한 전투에서 100여명을 소멸함으로써 군사지휘재능을 보여줬다.

  1935년 겨울 3군 사령부는 3퇀을 3사로 확대, 편성했으며 허형식이 3사를 직접 지도했다. 3사는 반일련합지휘부의 핵심대오로서 항일전투에서 매우 활약적이였다. 고려영자전투에서 증원부대가 오기전에 첫 전투의 승리를 거뒀으며 라라툰, 5도강, 18층전자 등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둬 련합지휘부를 위해 국면을 열어놓았다. 그는 또 3사, 도북, 도남의용군과 련합해 1천여명을 이끌고 적들을 타격하여 3사의 이름을 떨쳤다.

  1936년 9월, 주하, 탕원현위 및 3, 6당위의 련석회의에서 그는 중공북만림시성위 위원으로 선거됐으며 동북항일련군 제3군 제1사 정치부주임을 맡게 됐다. 1937년 7월 그는 항일련군 제9군 정치부주임으로 발탁됐다.

  1938년 1월 3군 3사 사장으로 임명됐으며 이듬해 4월 동북항일련군 제3군 군장으로 임명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제3로군 총 참모장으로 임명됐다.

  1941년 가을 항일련군 3로군 당위는 그를 제9지대에 보내 대중사무를 비밀리에 전개하도록 했다. 그의 지도하에 수많은 항일구국회 조직들이 일떠섰다.

  1942년 8월, 허형식과 그의 경호원은 산을 수색하는 적을 피해 산림지대를 지나다가 결국 발견되였으며 2시간 남짓한 전투끝에 적의 화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장렬하게 희생됐다.  /흑신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6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10돐 기념운동대회에서 씨름1등을 하고 모교인 화룡고중 교문앞에서 황소고삐를 쥐고 포즈를 취했다.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마장군이라 부른다”  샅바끈 하나에 건 씨름왕 마동일의 인생 넘실거리는 구름관중들에 둘러쌓인 모래판우에서 건장한 사나이들이 서...
  • 2011-12-26
  • 연길시제2고급중학교 음악교원 강철산의 이야기       소학교시절부터 노래를 배우면서 아련하게 가수를 꿈꾸어오던 어린 소년은 중학교시절에 기타에 흠뻑 빠졌다가 고중에 진학한후에는 손풍금을 배워가지고 음악학원에 입학했고 졸업후에는 음악교원으로 되였다. 비록 교원생활 10여년이 흐른...
  • 2011-12-26
  • 지난해 3월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열린 신문기자협회 만찬장. 2400명에 달하는 정·재계 인사와 기자들이 몰려든 자리에 어리숙한 표정의 동양인 남성 한 명이 등장했다. 짧고 검은 스포츠머리에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낀 그는 조 바이든 미 부통령 바로 옆에 서서 영어로 된 유머 한 방을 날렸다.   ...
  • 2011-12-23
  •    한민족신문창간식에서의 전길운씨(왼쪽 두번째) .                        재한조선족 권익보호에 앞장설터    [인터넷료녕신문 2011-12-20 리덕권 기자]  2008년...
  • 2011-12-20
  •       학창에서 공부하고 농촌에 돌아와       부지런히 일하여 첫수확을 거두었네       로동으로 가꾸어온 오곡의 물결은       농촌에 뿌리박고 꽃피운 열매       시련을 이겨나온 투...
  • 2011-12-19
  •   핵심기술은 성형미용 안전과 시술효과의 유력한 담보    장춘중한KC시즈미성형미용원 차영옥원장을 찾아서 차영옥 프로필 1974년 장춘 출생 1996년 연변대학 의학원 림상의학학부 졸업 1996-2001년 길림성의학회부속병원 근무 2001-2004년 장춘신인의료미용센터 근무 2004-현재 장춘중한KC시즈미의료성형...
  • 2011-12-16
  •   [종합신문 2011-12-13 김혁]  조선족 녀류작가 김인순이 우리 민족의 고전 《춘향전》을 번안한 장편소설 《춘향》으로 길림성의 최고문예상- 《장백산문예상》을 수상했다. 중국문단에서 그 독보적인 기량을 보이고있는 조선족작가 김인순은 신작 《춘향》에서 한민족의 불후의 고전을 국계와 시공간을...
  • 2011-12-14
  • [인터넷료녕신문 2011-12-13 리덕권 기자]정학철 조선 한국 노래 중국어번역에 혼신을   음악사이트에 100여수의 조선, 한국 노래를 번역해 올려                       국내 최대의 음악사이트인 “...
  • 2011-12-13
  •   우리는 일상에서 늘 이런 말을 하게 되고 듣게 된다. 더욱이 40대 후반이나 50대 이상 분들이 그러하다. 지금의 음식은 어릴 때 먹던 것처럼 맛이  없다고. 무우도 이전에는 달콤하고 맵고 그러면서 수분이 질벅하고 먹은 후에는 트림이 나면서 속 시원하지만 지금은 그런 무 찾아 볼 수 없다. 소고기 졸임에 늘...
  • 2011-12-13
  • [인터넷료녕신문 2011-12-13 리덕권 기자]  수수한 옷차림에 텁텁한 말투, 직업외교관과는 어쩐지 거리가 멀어보이는 계옥근(1963년생)씨, 그러나 그는 분명 근 20년을 외교관으로 보내온 오리지날외교관이였다.   심양의 한 조선족군인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어려서부터 한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도 료녕성실험중...
  • 2011-12-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