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연변축구인프라구축 잘해야 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8월8일 08시53분    조회:1028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추명

저명한 조선족축구인이며 광주항대팀 코치 겸 통역 추명씨

“연변조선족출신이라서 그런지 타성에 몸담고있어도 항상 연변축구를 관심하게 되며 따라서 안타까운 점도 안두가지가 아니다. 연변축구는 수년전부터 슈퍼리그진출이란 목표를 내걸었는데 물론 연변축구의 슈퍼리그진출이란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것이다. 하지만 목표란 반드시 과학적이 되여야 한다.  즉 연변축구의 인프라구축이 잘 보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슈퍼리그진출을 운운해서도 안되거니와 설사 운이 좋아 슈퍼리그로 진출한다 해도 인차 떨어지기마련이며 떨어진 뒤의 아픔은 더 클수밖에 없다.”

이는 일전 광주항대팀 코치 겸 통역인 추명씨가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밝힌 일가견이다. 추명씨를 놓고말하면 일찍 지난 세기 90년대에 한국 한양대학 체육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완료, 축구리론을 체계적으로 연구한후 연변오동팀, 상해신화팀, 남경유유팀과 광주항대 팀에 몸을 담그면서 리론과 실천을 병행해온 저명한 축구인이다. 또한 일찍 1996년말 최은택교수더러 연변팀의 사령탑을 맡도록 알선해준이며 연변축구에도 한몫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국내의 여러 구단들을 돌면서 추명씨는 연변축구의 발전을 두고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굴려봤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연변축구를 놓고볼 때 선수들의 정신력외 기타의 환경은 다른 구단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거리감이 있다는것이다. 그 정신력 또한 현재 국내의 많은 구단들에서도 중시, 특히 리장수감독이 이끄는 항주항대같은 구단은 한국의 그 어느 프로팀에 못지 않게 강하다고 했다. 

“모두들 연변은 경제가 락후한 산간오지라고 하는데 그 말에 나는 잘 동의할수 없다. 물론 연변이 북경, 상해, 광주와 같은 대도시에 비해 경제가 처지고있는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갑급구단 하나쯤 운영하지 못하도록 상황이 렬악한것은 아니다. 문제는 구단의 자체건설을 잘해야 한다. 유럽이나 남미의 허다한 구단들을 놓고보면 스폰서의 후원이 없이도 모든것이 잘 돌아만 간다. 스타디움을 꽉 메우는 관중들로부터 벌어들이는 티켓수입으로만 해도 구단을 운영할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연변 역시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의 관중수를 보장하면 넉넉하진 못해도 구단 하나쯤은 얼마든지 키울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스타디움이 열광적이면 스폰서도 자연히 따라오기마련이 아닐가? 현재 연변시장을 노리는 내지의 기업들이 많은데 축구를 리용하지 않고 물 리용하겠는가? 이러자면 우선 구단의 노력과 더불어 주정부 모모한 분들의 중시와 축구팬들의 열광 등이 잘 결합돼야 한다.”

한편 추명씨는 연변축구계의 인재랑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연변에서 빠져나가는 축구인재는 많으나 연변으로 들어가는 축구인재는 거의 없다면서 모든것을 객관에만 너무 밀지 말고 주관적으로도 자아검토해볼바라고 하면서 연변의 감독선정, 구단과 상급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안타까움과 유감을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추명씨는 “연변축구가 언젠가는 중국의 1부리그인 슈퍼행렬에 가담해야 한다. 다만 높은곳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기대감으로 뒤말을 함축했다.  

조글로 미디어 김철균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60
  • -중국프로축구 최년소감독 북경팔희팀 최은랑씨를 만나   19세기 50년대로부터 “축구의 고향”으로 불린 연변은 수많은 축구인재들이 용솟음쳐나왔지만 대다수가 선수로서만 꽃을 피운 축구인들이였다.   특히 1992년 중국축구 프로리그가 개시되면서부터 연변팀 이외의 타팀에서 고삐를 잡은 조선족...
  • 2012-08-02
  • 심양신생활태권도장 박연성관장을 만나 손과 발을 리용하여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무예인 태권도는 시대에 따라 택견, 수박, 권법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전해내려오다가 지난 1954년 태권도로 명칭이 굳어졌다. 1962년부터 한국 국내에서 스포츠종목으로 인정받았으며 1961년 설...
  • 2012-05-24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3세 이야기       서울대 법대 유일한 조선족교수 강광문박사   "10여년동안 학문연구를 해오면서 2중언어, 2중문화를 터득한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였습니다. 학문연구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었던것도 바로 그 덕이였습니다."   한국의 최고명문대학인 서울대학 법대 유일한...
  • 2012-05-18
  •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돐 특별기획-《기억속의 60년》 -1962년 연변주씨름우승을 따낸 씨름장사 마동일선생을 만나 1962년 9월,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10주년경축활동 씨름대회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씨름장사가 있었다. 바로 당시 22살밖에 안된 화룡현고급중학교 2학년 학생 마동일이였다. 그번 경축활동에서 마동일은 ...
  • 2012-05-16
  •   196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10돐 기념운동대회에서 씨름1등을 하고 모교인 화룡고중 교문앞에서 황소고삐를 쥐고 포즈를 취했다.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마장군이라 부른다”  샅바끈 하나에 건 씨름왕 마동일의 인생 넘실거리는 구름관중들에 둘러쌓인 모래판우에서 건장한 사나이들이 서...
  • 2011-12-26
  • 뒤늦게 공개하는 축구운동건장의 인생발자취   [길림신문 2011-11-28 김룡 기자] 60년대 8.1팀의 주력 윙포드─박광철 소꿉시절부터 축구인의 꿈을 무르익혀 박광철은 1936년 11월 14일 도문시교의 농민가정에서 2남1녀의 둘째 아들로 태여났다. 집안은 째지게 가난한 빈농가정이였다. 박광철이는 어린 시절부터 삼촌...
  • 2011-11-28
  •  [길림신문 20211-11-15 김룡 기자] —연변축구평론계 거장 최동섭부교수 소년시절부터 의 꿈을 키워 최동섭은 1933년 9월 17일(음력)에 룡정 조양천의 한 농민가정에서 4남매중 막내로 태여났다. 너나없이 가난에 실달렸던 그 시절, 최동섭가정도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였다. 《가난한 집 자식이 일찍 셈이 든...
  • 2011-11-15
  • —우리 민족 축구사에 간과할수 없는 족적 남겨 소시적부터 남다른 축구재질 뽐내 박만복원로는 1935년 11월 4일(음력) 왕청 하마탕(북하마탕) 일툰(해방후 녕안툰으로 개명)이라는 마을에서 4남2녀중 넷째아들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축구일가로 불리우는 아버지, 삼촌, 형님들의 영향으로 헝겊뽈(당시 고무뽈...
  • 2011-11-07
  • 저명한 조선족축구인이며 광주항대팀 코치 겸 통역 추명씨 “연변조선족출신이라서 그런지 타성에 몸담고있어도 항상 연변축구를 관심하게 되며 따라서 안타까운 점도 안두가지가 아니다. 연변축구는 수년전부터 슈퍼리그진출이란 목표를 내걸었는데 물론 연변축구의 슈퍼리그진출이란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것이...
  • 2011-08-08
  • 46살, 중년 고종훈은 말한다 축구명장 고종훈 재능이 최고의 절정에 오를수 있는 가장 관건적이고 확실한 요인은 결코 기질이 아니라 마음 또는 정신이다. 그 일을 꼭 하고싶다는 강렬한 욕망, 어떤 어려움도 견디여내리라는 강한 의지, 꼭 어떤 경지에 도달하고야말리라는 드팀없는 신념, 이런 내적인 또는 심적인 자기완성...
  • 2011-07-18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