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민족정체성 회복은 경쟁력의 선제 조건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9월30일 10시09분    조회:695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오세천
주칭다오 대한민국총영사관 동포업무 담당 오세천 영사 인터뷰

  비교 우세의 포기는 자멸의 길

       중국 관련법규에 편입되는 제도적 장치 마련 시급

  오세천 영사 프로필

  주로스안젤레스총영사관

        주루마니아대사관

        주프랑스대사관

        주상하이총영사관 근무

  (흑룡강신문=칭다오) 장학규 특약기자, 박영만 기자 = 산둥지역 한겨레인구가 30만 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00년도부터 조선족 인구가 한국의 재외동포 현황 조사에 포함된 이후 산둥 한겨레인구는 꾸준한 증장세를 기록, 대한민국 주칭다오총영사관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재산둥 동포수는 28만 8,800명으로 2009년에 비해 106% 증가했다. 이에 대해 총영사관은 "제조업 환경 여건 악화로 사업 철수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재외국민 사업체 인수 등으로 유입인구가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지 동포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총영사관이 인구의 지속적인 증장세에 따른 여러 가지 사회 현안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 경제, 교육, 환경의 차이로 말미암아 생겨난 민족간의 이질감을 극복할 복안은 어떤 것이고, 또 어떤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가지고 동포사회를 리드해나갈 것인지?

  일전 기자는 주칭다오총영사관에서 동포 업무를 담당한 오세천 영사를 찾아 동포사회의 궁금증에 대해 알아볼 기회를 가졌다.

  기자: 새로 동포 업무를 담당하시게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오영사: 금년 3월 2일에 부임하어 주로 교육, 문화, 체육 분야를 담당해왔습니다. 그러다가 8월부터 재외동포 관련 업무를 겸해 맡게 되었습니다. 현지 진출 한국인은 물론 관할지역에 있는 조선족동포 업무까지 포함하여 보게 된 것이지요. 통상적으로 한국교민과 관련되는 업무는 각 지역 한상회나 한인회를 통해 진행하는데 중국동포 업무는 각 지역별 조직이 미비한만큼 일단 기업협회나 여성협회, 노인협회 등 기능별 협회를 통해 접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자: 중국동포 업무란 무엇이죠?

  오영사: 제가 보기에 중국동포 업무란 굉장히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범주로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조선족동포가 중국내에서 생활하면서 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유지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가는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국동포에게 한국, 한국인과의 내왕과 교류의 장을 마련해주어 민족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추동하고 나아가 중국 현지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이 공관으로서 해야 할 일인 것이죠.

  기자: 동포 업무에 언제부터 접하게 되었지요?

  오영사: 미국에서 첫 근무를 했었습니다. 1991년부터 4년간 주 로스앤젤레스총영사관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동포 관련 업무에 간여하지는 않았지만 동료 영사들을 통해 미국동포들의 현실을 많이 요해하게 되었어요. 70년대에 미국에 건너간 동포들은 소위 자녀들을 현지화시킨다는 명목하에 한글교육을 등한시하고 영어 교육만 시켰었습니다. 그렇게 주류사회 편입은 된 거 같았지만 실제적으로 그리 많은 실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코리안 아메리칸 하면 당연히 한국말도 잘할 줄 알고 한국, 아시아, 극동 등 부서에서 일할 인선으로 먼저 한국인 후예를 선발하는데 웬걸 영어만 할줄 알고 한국어는 전혀 몰랐습니다. 인사 담당자는 그럴바엔 주류사회내의 백인을 초빙하는게 오히려 나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부모 자식간에도 소통이 되지 않아 자주 모순이 생겨나고 문화의 단절이 심했지요.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미국동포들은 한글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했습니다. 조선족의 경우 모국어는 물론 주재국어에도 밝고 또 일어나 영어를 배우는 등 최소 3개 국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에도 이런 언어적인 우세로 중국, 일본, 미국 등 나라의 유수의 기업이나 연구기관에서 활약하는 조선족 고급 인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위기는 있는 것입니다. 개혁개방에 따라 칭다오를 위시해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이우 등지에 조선족들이 퍼져나가면서 민족교육의 부재가 심각합니다. 현지에 민족학교가 없는데다 조선족동포 스스로 민족교육을 홀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현재 산둥성내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이 15,000명이 넘는 걸로 집계되고 있는데 그중 대부분이 한족으로 역설적으로 조선족의 한국어 우세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자체 우세를 포기했던 미국동포들의 굽은 길을 답습하는 느낌입니다. 교육 부문도 담당하는 영사로서 무척 가슴이 아픕니다.

  기자: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데 하다면 대안은 있다면요?

  오영사 :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늦었다고 인식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둥성에만 해도 중국동포 인구가 20만 명이 넘습니다. 조선족동포 기업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유학파와 원로인사들이 힘을 합쳐 우선 중국의 관련 법규에 편입되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에 서둘러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부응하는 맞춤형 인재를 배양한다는 착안점에서도 한글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칭다오에 있는 2개의 조선족학교가 비록 사립이기는 해도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기자: 어떤 구체적인 업무추진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오영사: 아직은 모색단계에 있습니다. 일단 교육협력방안부터 강구하려 합니다. 한국과 연계를 지어 학생들에게 한국 내 적절한 학교에 유학을 안내해주는 일부터 착수 하고저 합니다. 그리고 칭다오시에는 다수의 조선족 예술단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단체들이 산둥성내에 있는 한국인, 한국인 단체와 연계하여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으로 보는데 현지의 조선족예술단체와의 교류의 장을 펼치면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민족간의 화합과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각 기능별 단체와 소통함으로써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어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기자: 낡은 화제이긴 하지만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는 아직도 서먹서먹한 구석이 있습니다. 동포 업무 담당자로서 해결책들이 있다면?

  오영사: 우리 민족은 과거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구한말을 전후해 세계 각지로 뿔뿔히 헤쳐졌습니다. 중국동포의 경우 92년 한중수교전까지 1세기이상 한국과 단절되어 있었지요. 그러니 여러 분야에서 차이를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실정입니다. 한국내에서도 지역, 언어상의 차이로 모순이 빈발한 형편입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한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유지,발전시키는 일입니다. 고무적인 일들이 소리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올해 MBC "위대한 탄생"에서 연변출신의 백청강씨가 1등을 했습니다. 칭다오조선족여성협회에서 한민족여성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홈스테이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을 경험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한상대회도 그렇고 월드 옥타 행사도 그렇고 한민족글로벌네트워킹이 서서히 발전되고 있고, 교류와 왕래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감으로써 서로의 곬을 메워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6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10돐 기념운동대회에서 씨름1등을 하고 모교인 화룡고중 교문앞에서 황소고삐를 쥐고 포즈를 취했다.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마장군이라 부른다”  샅바끈 하나에 건 씨름왕 마동일의 인생 넘실거리는 구름관중들에 둘러쌓인 모래판우에서 건장한 사나이들이 서...
  • 2011-12-26
  • 연길시제2고급중학교 음악교원 강철산의 이야기       소학교시절부터 노래를 배우면서 아련하게 가수를 꿈꾸어오던 어린 소년은 중학교시절에 기타에 흠뻑 빠졌다가 고중에 진학한후에는 손풍금을 배워가지고 음악학원에 입학했고 졸업후에는 음악교원으로 되였다. 비록 교원생활 10여년이 흐른...
  • 2011-12-26
  • 지난해 3월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열린 신문기자협회 만찬장. 2400명에 달하는 정·재계 인사와 기자들이 몰려든 자리에 어리숙한 표정의 동양인 남성 한 명이 등장했다. 짧고 검은 스포츠머리에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낀 그는 조 바이든 미 부통령 바로 옆에 서서 영어로 된 유머 한 방을 날렸다.   ...
  • 2011-12-23
  •    한민족신문창간식에서의 전길운씨(왼쪽 두번째) .                        재한조선족 권익보호에 앞장설터    [인터넷료녕신문 2011-12-20 리덕권 기자]  2008년...
  • 2011-12-20
  •       학창에서 공부하고 농촌에 돌아와       부지런히 일하여 첫수확을 거두었네       로동으로 가꾸어온 오곡의 물결은       농촌에 뿌리박고 꽃피운 열매       시련을 이겨나온 투...
  • 2011-12-19
  •   핵심기술은 성형미용 안전과 시술효과의 유력한 담보    장춘중한KC시즈미성형미용원 차영옥원장을 찾아서 차영옥 프로필 1974년 장춘 출생 1996년 연변대학 의학원 림상의학학부 졸업 1996-2001년 길림성의학회부속병원 근무 2001-2004년 장춘신인의료미용센터 근무 2004-현재 장춘중한KC시즈미의료성형...
  • 2011-12-16
  •   [종합신문 2011-12-13 김혁]  조선족 녀류작가 김인순이 우리 민족의 고전 《춘향전》을 번안한 장편소설 《춘향》으로 길림성의 최고문예상- 《장백산문예상》을 수상했다. 중국문단에서 그 독보적인 기량을 보이고있는 조선족작가 김인순은 신작 《춘향》에서 한민족의 불후의 고전을 국계와 시공간을...
  • 2011-12-14
  • [인터넷료녕신문 2011-12-13 리덕권 기자]정학철 조선 한국 노래 중국어번역에 혼신을   음악사이트에 100여수의 조선, 한국 노래를 번역해 올려                       국내 최대의 음악사이트인 “...
  • 2011-12-13
  •   우리는 일상에서 늘 이런 말을 하게 되고 듣게 된다. 더욱이 40대 후반이나 50대 이상 분들이 그러하다. 지금의 음식은 어릴 때 먹던 것처럼 맛이  없다고. 무우도 이전에는 달콤하고 맵고 그러면서 수분이 질벅하고 먹은 후에는 트림이 나면서 속 시원하지만 지금은 그런 무 찾아 볼 수 없다. 소고기 졸임에 늘...
  • 2011-12-13
  • [인터넷료녕신문 2011-12-13 리덕권 기자]  수수한 옷차림에 텁텁한 말투, 직업외교관과는 어쩐지 거리가 멀어보이는 계옥근(1963년생)씨, 그러나 그는 분명 근 20년을 외교관으로 보내온 오리지날외교관이였다.   심양의 한 조선족군인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어려서부터 한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도 료녕성실험중...
  • 2011-12-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