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양(瀋陽)에서 통번역과 무역업을 하는 조선족 김성진(42)씨는 한글 서체 수백 가지를 직접 개발해 쓰는 '한글 마니아'다.
2009년부터 2년 동안 김씨가 컴퓨터를 이용해 만든 글씨체는 벌써 240가지가 넘는다.
폰트들은 1만1천172개의 한글 음절을 모두 지원하고 이름도 글자 모양에 따라 '엉겅퀴체', '까꿍체', '곰귀체', '마름체' 등 우리말로 예쁘게 지었다.
김씨는 번역과 관련된 책자를 만들거나 한국과 무역을 하려는 중국 기업에 한국어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면서 이 폰트들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글 모든 음절을 바코드에 담은 '한바 No1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초성과 중성ㆍ종성이 결합해 한 음절을 이루는 한글은 알파벳이나 숫자에 비해 1차원 바코드에 직접 담기가 무척 까다로워 그동안 개발 시도가 거의 없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김씨가 한글 서체를 직접 개발해 쓰기 시작한 것은 번역에 필요한 전문용어사전을 만들면서부터다.
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씨는 각종 서류와 문서를 번역하면서 여러 분야의 전문용어를 컴퓨터로 정리했지만 기존에 있던 폰트로는 특수기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내친 김에 폰트를 직접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모음과 자음의 배치에 따라 글자 모양이 달라지는 탓에 글자를 조합하는 데만 하루 12시간씩 꼬박 2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김씨는 "지금은 글자 조합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개발해 폰트 한 가지를 빠르면 하루 안에 완성한다"며 "길을 가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걸 버리기 아까워서 계속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어렸을 때 지린(吉林)의 한족 밀집지역에 산 탓에 학교에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한중수교가 이뤄지기도 전인 대학 때 어렵사리 한국어 교재와 국어사전을 구해 독학을 시작한 게 사실상 처음 국어를 제대로 배운 것이었다.
탁월한 어학 감각과 끈질긴 노력으로 지금은 '토종 한국인' 수준의 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중국인들이 한국어를 좀더 정확히 배울 수 있게 돕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옛날에는 중국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도 제대로 몰랐지만 지금은 '보행금지'처럼 별 뜻 없는 한글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닐 정도로 관심이 많다"며 "유학을 준비하는 중국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학교를 차리고 문화콘텐츠 분야의 전문용어 사전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 김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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