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농악무의 스승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1월17일 16시30분    조회:744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하태일

10월중순의 하루 한 낯선 녀성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옛날에 우리 아버지가 연변문공단에서 농악무를 배워줬고 연변예술학교에서도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농악무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변의 농악무에 관한 보도나 론문에는 우리 아버지의 업적이 하나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필자는 전화를 받은 즉시 북경에 살고있다는 60여세의 언니와 연길에 살고있는 동생 자매들을 만났다. 사연은 이러했다.

하태일(河兑镒)선생은 1906년 경상남도 남해군 동천리의 한 농민가정에서 셋째아들로 태여났다. 가난때문에 학교문앞도 못 가본 소년 하태일은 다행히도 어릴 때부터 농악무를 가르치는 고향의 전통에 힘입어 7세부터 농악무를 배웠다. 그것도 농악무중에서 가장 인기높은 상모춤을 배워 그 어느 아이보다 뛰여나게 춤을 잘 추는 춤군으로 자라났다. 매년 추석이나 설명절이 돌아오면 소년춤군은 농악대를 따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공연하러 다녔다.

1936년 하태일선생은 식구를 이끌고 《북간도》라 부르는 지금의 연길시에 와 등짐을 풀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연길시내에서 땅을 파고 상수도를 설치하는 고된 육체로동을 하면서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그는 일이 없을 때는 경상남도에서 이주해온분들이 모여사는 지금의 서시장북쪽에 있는 친구네 집에 모여 농악놀이를 했다.

1951년 비오는 어느날, 하태일선생에게는 반가운 일이 생겼다. 그때 연변문공단에서는 민족문화예술을 발전시키라는 당의 지시와 자치주 주장이신 주덕해동지의 직접적인 배려로 연변문공단 김태희단장이 나서서 민간연예인들을 초빙했는데 하태일선생도 그 민간예인중의 한분이였다. 그때부터 연변문공단에서는 《매일 저녁 양마차로 아버지를 모셔가 배우들에게 농악무를 가르치게 하고는 양마차로 집에 모셔왔다》. 얼마후 그는 문공단원에 채용되였다.

연변문공단의 저명한 발레무용가 조득현선생은 그때부터 하태일선생한테서 한보한보 농악무를 배우면서 그 농악무를 무대공연 프로로 개편, 창작하게 되였다. 하태일선생은 농악무를 가르치는 한편 젊은이들과 함께 주와 길림성, 동북3성의 문예콩클무대에 올라 여러차례 상을 탔다. 1957년 국가문화부에서 주최한 전국무용대회에서 연변가무단에서는 농악무를 무대에 올려 조득현선생은 농악무 안무우수상을 받았고 하태일선생은 주연 우수상을 받았다. 그때 모주석 등 령도동지들의 접견을 받았다.

1957년, 주덕해주장의 관심과 배려하에 연변예술학교가 창립되였다. 연변문공단에서 무용교원으로 50세를 훌쩍 넘긴 하태일선생은 1959년 7월부터 연변예술학교 무용교원으로 전근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태일선생은 춤군이면서 소리군이여서 《춘향전》,《진도아리랑》 등을 썩 잘 불렀다.

1975년 9월, 농악무의 스승인 하태일선생은 그 소중한 농악무유산을 후대들에게 더 많이 전수하지 못한 유감을 안고 이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하태일선생의 딸들이 연변무용계와 문예계의 여러 선배들을 만나 얘기를 해보니 이러한 《옛말》을 모두 잘 알고있었고 그외에도 생동한 《옛말》이 많았다고 한다.

이번에 얻은 교훈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우리가 아직 이러한 력사적인 조선족문화예술인물 특히는 이미 세상을 뜬 인물을 발굴하고 상세한 기록과 연구를 하는데 노력이 부족하다는것이다. 현재 우리앞에는 여러가지 력사저작이 펼쳐지고있지만 력사인물에 관한 더욱 구전하고 학술적가치가 있는 저작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혁명투쟁시기 력사인물에 대한 연구는 많은편이지만 반면 문화예술인물에 대한 발굴과 연구가 적은것도 사실이다. 더우기 지금의 열린 세상에서 많이 흩어져 살아가면서 이러한 연구사업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영원히 되살릴수 없는 흠집을 남길것이다.

또 한가지는 우리가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정리함에 있어서 그 뿌리를 정확히 찾아내고 그 문화유산의 전승과정을 되도록 정확하게 밝혀내여 문화유산의 력사적인 흐름을 밝히고 계속 전승하는것이다. 민요 《아리랑》, 《도라지》, 《노들강변》 등은 어떻게 우리에게 전승되였을가? 《농악무》, 《장고춤》, 《물동이춤》 등은 어떻게 전승되였을가? 《춘향전》, 《심청전》 등 고전은 어떻게 전승되고 무대에 올려졌을가? 이러한 과제는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깊이 진행될뿐만아니라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그런 문화유산들이 대중속에서 계속하여 전승되게 하는것도 아주 중요한 사명이다.

올해 7월, 《연변인물연구회》가 연변인물과 중국조선족인물 연구의 대장정을 위해 닻을 올렸다. 앞으로 《연변인물연구회》가 실사구시적이고 력사적이며 넓은 시각으로 연변의 인물과 중국조선족인물들을 발굴하여 권위적인 《인물록》, 《인물평전》, 《인물전기》 등 책자와 인물영상다큐를 펼쳐낼것이라 믿는다.

김희관(원 연변텔레비죤방송국 국장)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ㅡ한국 KBS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선생 인상기지난 9월 11일 오전, 중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KBS전국노래자랑(심양편)을 사회하기 위해 송해선생이 심양에 왔다. 점심식사를 할 때까지도 손명식, 권유현, 길경갑 등 현지의 주최측책임자들과 행사준비상황을 료해하고 체크하기에 경황이 없던 선생은 오후에 짬이 좀 나...
  • 2009-10-20
  • 저명한 촬영가 황범송 만나본다 황범송은 장백산에 300여차 올라 천지사진만 해도 100장 찍었다. 《장백산천지》는 국가 교육부, 수리부에서 지정한 《천지표준상》으로서 초고중 교과서에 올랐다 1959년 8월부터 연변을 시찰한 중앙지도자들을 촬영, 선후로 주은래, 주덕, 동필무, 호요방, 등소평, 강택민, 리붕, 양상곤, ...
  • 2009-10-20
  • 충북서 배워간 ‘명사 시낭송회’길림에서도 자리잡아동양일보 초청 연변동포 6명 단장으로 방문97년 옥천 지용문학상 수상 충북과 인연연길 포석회 회장… 8회째 조명희문학제 개최명사들이 무대에 올라 시를 읊으며 깊어가는 가을의 낭만을 전해주는 ‘2009 명사 시낭송회’가 지난 9월 25일 청...
  • 2009-10-19
  • 무진장 큰 중국시장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청도성신온돌유한회사 김룡웅 총경리를 만나전자파측정기로 제품을 측정해보이는 김룡웅 총경리 (왼쪽사람). 룡정시와 훈춘시에서 상업, 무역에 종사하던 김룡웅씨가 청도시 성양구에 온것은 2004년경, 처음에는 한국회사와 합작하여 전기온돌판넬을 생산하다가 지금은 한국성신전...
  • 2009-10-15
  • 우리 문화는 우리 경제가 살려야 합니다산동성 청도시 청도코리아수정실업유한회사 회장 남룡해 인터뷰남룡해 프로필: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연변촬영가협회의 직원, 부비서장,부주석,주석. 길림성촬영가협회 부주석, 중국예술촬영가협회 부주석 등 직무를 력임연변조선족자치주《진달래문화상》  수상전국덕예...
  • 2009-10-15
  • 나라가 부강해야 모두가 잘살수 있다 북경건국60돐경축에 참가한 김죽화교장의 감수10월 10일, 기자는 북경건국60돐경축행사에 참가하고 돌아온 무순경제개발구리석채조선족소학교 김죽화교장을 만났다. 그는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고 하늘땅이 크다 해도 공산당의 은덕에 비기지 못한다”며 아직도...
  • 2009-10-14
  • 80년대중반 연변가요계에서  《살구나무》노래를 불러 새별로 떴던 김경자씨가 일본생활 17년만에 고향행을 하면서 그 이름《살구나무》앨범을 선물로 들고 찾아왔다. 특히 모교인 연변대학 성립 60돐기념행사에 모처럼 《교정의 종소리》를 불러올릴 예정이란다. 고향과 모교, 그에게 가수의 꿈나래를 키워준 곳, 오매...
  • 2009-10-14
  • 성실신용은 금이다도문시 보이라공장 김룡식공장장 인터뷰일전 기자는 30여명의 종업원들을 이끌고 팽이처럼 돌아치는 도문시보이라공장 김룡식공장장(55)을 만났다. 월동준비때라 꺼질줄 모르는 핸드폰, 할빈서 온다는 손님들… 여하튼 오전에 시작한 인터뷰가 밤 약속으로 이어졌다. 그도 그럴것이 지나온 17년간 눈...
  • 2009-10-13
  • 작은 인연이 커 갑니다 -북경 왕징 중심호텔 강하연사장을 찾아서 지난 10월 10일 오전 9시 30분경, 기자는 전날의 약속대로 북경시 조양구 왕징리택중원3구 301번지 중심호텔(北京市朝阳区望京利泽中园3区301号 中心宾馆)의 7층 사무실에서 강하연사장(39세)을...
  • 2009-10-13
  • 단편소설 《몽당치마》의 작가 림원춘 만나본다● 《가무단 한쪽구석에 처박힌 〈논물관리원〉이 입었던 한복을 입고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한복차림으로 나타나자 수백명 기자들이 샤타를 누르는데 ...》 ● 《농촌에 내려가 하숙집의 나무도 패주고 불도 때주고 배갈 한병 받아놓고 주인집 량반과 술 한잔 나누면서...
  • 2009-10-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