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혼자서라도 록색입쌀진지 지키려는 서선촌 서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2월7일 09시16분    조회:543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경수

<농촌에 가보다 > 새농촌건설에서의 통화현 조선족농촌 현황(2)

지난 세기 50년대 량질입쌀생산으로 주은래총리로부터 상장 수여받아

서선촌 리경수서기.

[길림신문 2011-12-06 장춘영 홍옥 기자 ]서선촌은 통화현 강전진의 소속으로서 통화현의 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통화현 소재지인 쾌대무진과 31킬로메터 떨어져 있다. 통화현 강전진에는 13개 촌이 있는데 이중 서선촌, 민생촌, 동평촌 3개 조선족촌이 있다. 서선촌은 산좋고 물좋고 공기 또한 좋고 공장오염이 없는 곳으로 통화현의 소강남이라고 부르고있다. 서선촌은 또 길림성의 유명브랜드입쌀 《서강공미(西江贡米)》의 원산지이자 록색입쌀 생산지이기도 하여 이름이 있다.

서선촌ㅡ 유명브랜드입쌀 《서강공미》의 원산지

현재 중국 특히 길림성의 입쌀생산판매자라면 《서강공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통화현의 《서강공미》는 지난 세기 50년대에 벌써 중국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당시 서선촌에서 생산하는 입쌀로 주은래총리로부터 상장을 받아안은 영광까지 지녔다.

당시 대천원향 서강작업구라고 불리던 곳에 벼농사를 하는 조선족마을이 있었는데 그 조선족마을에서 생산해낸 입쌀이 향기롭고 감미로와 1957년에 대천원향 서강작업구가 전국선진으로 평의받고 주은래총리로부터 상장을 받아안았다. 그 조선족마을이 바로 지금의 서선촌이다. 당시 서선촌이 대천원향 서강작업구에 귀속되였는지라 서강작업구의 한족서기가 주은래총리로부터 상장을 받았었다.

그후 서강작업구가 서강촌이 되고 촌에는 조선족과 한족들이 함께 살고있었다. 조선족들이 근면하고 부지런하여 농토수리건설이나 농업생산을 막론하고 모두 앞장에 섰고 향, 진의 선진이라면 대부분 조선족들의 몫이였다.

1980년에 서선촌은 서강촌에서 분리되여 단독으로 서선촌을 설립했다. 초대서기는 김병무, 초대촌장은 최용서, 제2기 서기는 정영곤, 촌장은 김창도, 제 3기에는 김재홍이 서기로 지금의 서선촌의 서기 리경수가 촌장을 맡았다.

올해 58세 나는 리경수서기는 1987년도에 촌장으로 당선된후 촌주임, 서기를 력임하다 지금은 서기 겸 촌주임을 맡고있는데 올해가 촌간부로 있은지 24번째 되는 해이다.

리경수서기에 따르면 시장경제가 실시되면서 당시의 강전진 식량창고에서 서선촌에서 생산되는 입쌀을 《서강공미》로 등록하는 바람에 현재 서선촌에서 생산되는 입쌀이 진짜 《서강공미》이나 《서강공미》 상표를 달지 못하고있는데 그 피해가 막심하다.

서선촌의 량질입쌀을 토대로 현재 통화현에서는 《서강공미》 생산지를 약 700, 800무 늘리고 브랜드판촉을 강화하고있다. 현재 《서강공미》는 길림성 유명브랜드농산물, 중국록색식품, 중국(회안)량질입쌀박람교역회 10대 금상제품이란 미명을 갖고있다.

2005년 8월 13일, 통화시를 시찰하러 온 10기 전국정협 부주석인 장회서가 《서강공미》를 소개받고 친히 서강공미 원산지인 서선촌의 리경수서기를 만나 담소하면서 기념사진까지 남겼다.

안개속의 서선촌.

성실과 근면으로 록색입쌀 생산

서선촌에는 98호 농가에 호적인구가 357명 있으며 80여명이 한국로무를 떠났고 60여명이 연해지역에서 일하고있다. 현재 150명 촌민이 마을을 지키고있는데 대부분 로약자들이다. 서선촌의 경작지면적은 966무(1무에 667평방메터), 이중 764무가 논이고 200여무가 밭이다.

리경수서기는 《서선촌은 이미 토지류전을 완성했고 토지임대시 반드시 촌민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현재 농사를 짓는 조선족이 두집뿐이고 대부분 토지를 기타민족이 다루고있다》며 《앞으로 이 두 조선족농가에서도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리경수서기에 따르면 서선촌의 700여무 논중에 200무를 록색입쌀생산지로 만들었는바 통화현강달미업과 10년 계약을 맺고 주문생산을 하고있다. 서선촌의 록색입쌀은 통화현강달미업에서 판매를 책임지고 록우(绿优)상표를 달고 팔고있으며 기타 입쌀은 정급 등 상표로 팔고있다.

리경수서기는 《록색입쌀 생산기지를 더 늘일수는 있으나 판매때문에 더 늘이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중개소를 거쳐 팔기 때문에 생산지에서 쌀로 500그람에 3원 50전좌우로 팔리고있으나 정밀포장을 거친후 500그람에 30원씩 파는 슈퍼도 있다》고 밝혔다.

리경수서기는 《록색입쌀을 생산하려면 우선 농약을 써왔던 땅을 3년 넘게 잘 가꾸어야 농약잔류가 없어진다. 이외에도 토지영양성분이 표준에 도달해야 하고 공기, 물, 일조시간이 표준에 부합돼야 하며 공장오염이 없어야 한다. 서선촌은 통화현의 소강남으로서 록색입쌀 생산에 알맞는 고장이다. 서선촌에서는 또 삼도하(三道河) 물로 관개하는데 이 강은 샘물로 형성된것이다. 거기에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농가비료와 사람에게 해가 없는 생물농약을 쓰며 김을 맨다》면서 《록색입쌀을 생산하는데 원가가 높은것은 물론 정성이 더 든다. 특히 진짜 록색입쌀을 생산하려면 성실함도 록색입쌀생산 조건중의 하나이다》고 털어놓는다.

촌의 유일한 재산ㅡ 원 동평소학교의 건물과 운동장은?

서선촌에는 호도거리를 시작하기전에 인삼장이 있은 외에 다른 집체경제는 없었다. 학생원천때문에 원래 강전진정부에서 지은 종합교수청사에서 공부하던 조선족소학반도 2010년에 페지되였다.

조선족소학교였던 동평소학교는 서선촌과 조선족촌인 동평촌이 함께 투자건설했다. 2004년 강전진정부에서 촌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평소학교의 15무 땅을 점하고 종합교수청사를 지었다. 진정부에서는 조선족소학반으로 쓰였던 종합교수청사 3층을 서선촌과 동평촌에 주려고 하나 촌민들은 원 동평소학교 건물과 나머지 운동장을 돌려줄것을 요구하고있다.

이 문제로 리경수서기는 동평촌의 간부와 함께 진정부와 진일보로 되는 협상을 할 계획이다.

《계획경제시기 조선족들은 부지런하고 일 잘하고 열정이 높아 전 향에서 이름을 떨쳤다. 시장경제에 들어서면서 많은 조선족들이 해내외로 떠난데다가 자원우세가 결핍하고 교제범위가 좁은 등 원인으로 조선족촌들은 새농촌건설에서 기타 촌에 비해 뒤떨어지고있다. 통화현에서는 3년전에 기업, 단위에서 농촌과 손을 잡는 보보(包保)제도를 실시했다. 재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기업이나 단위의 도움을 받고 일어선 촌들이 많으나 서선촌은 그렇지 못하고있다》. 리서기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래도 통화현민족종교국에서 우리 촌을 맡았기에 도랑을 만들고 집집마다 담장을 쌓게 되고 현재정국의 투자로 보행거리도 만들게 되였다》고 기뻐했다.

 자식반대 불구 록색입쌀 살리려고 농사짓는 촌간부

리경수서기의 슬하에는 딸 둘과 아들 하나 있다. 두딸은 통화지구에서 슈퍼를 경영하고있고 아들은 심양에서 슈퍼를 경영하고있는데 모두 장사가 잘 되는 편이다.

리경수서기는 자류지를 다루어오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련속 5년간 50무되는 논을 혼자 다루어왔다. 성실함과 근면으로 록색입쌀진지를 지키고싶단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로고를 헤아려 농사를 짓지 말것을 권고하나 리서기는 금년에는 개인일로 농사를 짓지 않았지만 래년에는 계속 농사를 지을 타산이다.

리경수서기는 《자그마한 땅을 붙이는것으로 잘 살수 없기에 능력이 있는 청장년들이 살길을 찾아 외지로 떠날수밖에 없다. 서선촌는 그래도 록색입쌀을 생산하기 때문에 그나마 남보다 농사수입이 좀 높다하지만 대규모 생산을 해야만 더 많은 수입을 얻을수 있다. 촌간부후계자로 5, 6명 넘게 입당시키며 양성했지만 살길을 찾아 모두 떠나갔다. 지금은 조선족촌민에게 시집온 고중졸업생 한족녀성이 부녀주임 겸 회계를 맡고있다》며 서선촌의 우세인 록색입쌀생산을 계속 이어가고 발전시키려면 인재가 수요된다고 말했다.

리경수서기는 5년 유효한 한국방문비자가 있지만 올해 한국에 갔다가 촌사무가 걱정되여 인차 돌아왔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는 대부분 조선족들은 아침에 일찍 일하러 나가서는 저녁 늦게 돌아오는데 참말 힘들게 살고있다. 텔레비나 신문을 볼 사이없이 보내고있는데 이대로 10년만 지나면 현시대의 뒤꽁무니에 설수밖에 없다.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과학영농을 해야 하는 지금 시대에서 밀려나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한국에 있는 조선족들이 앞으로 10년사이에 중국에 돌아와 고향건설에 몸담그고 우수한 인재들이 찾아와 촌경제를 춰세웠으면 하는 바램을 내비쳤다.

서선촌의 록색입쌀발전에 대해 리경수서기는 가공공장은 꾸릴수 있으나 판매가 걱정이다, 다시 말해 창업은 쉬우나 경영에 어려움이 있다는것이다. 그는 판매가 가능하다면 서선촌에서 록색입쌀생산지를 300무는 더 늘릴수 있다고 했다.

리서기는 《앞으로 상황이 악화되여 록색입쌀을 지을 사람이 없다하면 나 혼자서라도, 단 수십무 땅이라도 서선촌의 록색입쌀진지를 굳건히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서선촌의 전화: 139-4351-2922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 매편의 기사 모두 작품처럼] 《훌륭한 기자, 편집이 되려면 우선 신문사업이 신성하고 영광스러운 사업이라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 《문화대혁명》이전부터 신문 기자, 편집 사업을 해온 김경석선생은 신문사업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기자, 편집을 하기 어렵다고 력설한다. 김경석선생은 1960년 연변대학 조선언어문...
  • 2005-11-09
  • 중앙 1호문건이 시달되자 농민들의 농사열정이 크게 제고되여 왕년에 버려져있던 묶은 경작지마저 다시 부치고있다. 그런데 경작지 면적에 비해 농촌의 로력이 딸리여 농망철이 되면 모두가 인력난으로 쩔쩔매고있다. 이를 감안한 화룡시 투도진 룡원촌 제2조의 황명선 촌민은 대담하게 7만 5000원의 돈을 들여 종합수확기 ...
  • 2005-11-08
  • [원제: 중국 진출 선진기술 앞세워라] 중국 진출 4년만에 발을 붙였다는 소문을 듣고 방문을 갔더니 대화 첫 머리부터 “중국은 시장이 큰만큼 기회도 많지만 그래도 진출시에는 반드시 선진기술을 앞세우고 들어 와야 한다”며 총화발언을 하는 김인규사장, 그는 건축도료 전문회사인 장춘(주)코미톤건자재유한회사의 주인...
  • 2005-11-08
  • [원제: 인생은 끝없이 일하면 사는것]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큰 사업이 아니더라도 창업이란 얼마나 신고스러운 일인지 잘 알고있다. 그리고 우리는 쉽사리 창업의 마음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넉넉한 퇴직금에 자식들마저 잘 되고있어 아무런 뒤근심이 없다 할수 있는 퇴직자가 창업에 뛰여든다면 리해를 하지...
  • 2005-11-08
  • 상해 미술 전문학교 우등졸업 한낙연이 중국공산당에 입당할 당시 중국국민당과 공산당은 항일이란 큰 목표 아래 국공합작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한낙연에게 상부로부터 특별한 임무가 부여됐다. 그것은 국민당에 위장 입당해 대외적으로는 국민당으로 활동하라는 지시였다. 물론 중국공산당당적은 비...
  • 2005-11-07
  • 10월 21일 오전, 도문시 량수진 량수촌 21촌민소조의 조장 문영금씨로부터 시동생 최동원일가에 대한 소개를 듣고 그들을 찾았다. 《정말 그들처럼 착실하게 살면 외국에 돈벌러 가려고 아득바득 할 필요가 없습니다.》 량수촌권복순서기도 문영금조장의 말에 동을 달았다. 《부부가 손잡고 올해 논과 밭을 5헥트를 다루고있...
  • 2005-11-07
  • [원제:12살 연변소년 리소명 하버드대학생으로] 어린시절부터 《대통령》이 꿈, 올 대학입시서 660점 6월에 있은 전국고등학교입학통일시험에서 12살밖에 안되는 연변조선족소년 리소명이 6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따낸 뒤 7월 그리고 8월에 있은 2차례의 하버드대학 중국류학생선정시험에서까지 계속 우수한 성적을 확보해...
  • 2005-11-07
  • [원제:비룡실업의 진로밑에 깔린 《문화감각》] 박성룡총경리의 남다른 속궁리를 적어본다 1997 년 3 월18 일에 중국광전부의 허가를 받고 길림성광전청에서 전문 국내외 위성설비판매설계설치허가증을 취득하여 설립된 길림성비룡실업유한회사(간칭)는 현재 중국내에서 유일하게 국내외위성방송설비 판매, 설계,설치, 권한...
  • 2005-11-05
  • [원제:력사를 알아야 자존심 지킨다] [img count='1' img] 20여년간 조선인혁명가들을 조사연구해온 최룡수교수를 만나 9월중순, 길림대학 조봉빈교수로부터 중앙당학교 최룡수교수가 쓴 글을 받았는데 그것은 혁명과 예술을 결합시킨 한락연의 사적을 담은 글이였다. 그 글에서 우리 민족혁명가들의 사적을 발굴하기 위해 ...
  • 2005-11-05
  • [원제: 79세로인 웅변대회에 참가해] 발표시간: 2005-11-03 오후 3:33:10 주당위 선전부 문명판공실에서 주최한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가 어제(2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있었습니다. 이는 올해 67세에 나는 훈춘시교육국 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인 량조희가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에서 한 말입니다. 전...
  • 2005-11-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