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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웃긴 조선족 개그스타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2월23일 10시31분    조회:8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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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황시

지난해 3월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열린 신문기자협회 만찬장. 2400명에 달하는 정·재계 인사와 기자들이 몰려든 자리에 어리숙한 표정의 동양인 남성 한 명이 등장했다. 짧고 검은 스포츠머리에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낀 그는 조 바이든 미 부통령 바로 옆에 서서 영어로 된 유머 한 방을 날렸다.
   
   “오바마 대통령이 안 보여서 다행입니다. 나는 내 아들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영어와 중국어를 둘 다 가르치고 있어요. 영어로 된 법안에 서명도 할 수 있고, 중국의 채권자들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 중국임을 빗댄 풍자였다.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해 좌중에서는 머쓱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동양인 개그맨 황시(黃西·41)가 미국과 중국을 휘젓고 있다. 동양인 최초로 백악관에서 개그를 선보였고, 유명 토크쇼인 ‘데이비드 레터맨의 레이트쇼’에 출연해 입담을 자랑했다. 미국 시청자들은 그를 “코미디계의 요밍(姚明·중국 출신의 NBA 롱구스타)”이라 불렀다. 중앙텔레비죤방송(CCTV)은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인물 다큐멘터리를 최근 편성하기도 했다.
   
   최근 그가 펴낸 ‘황과(黃瓜·오이)의 황, 시과(西瓜·수박)의 시’란 중국어 자서전도 화제다. 자서전 출간 직후 그는 칭화대를 비롯 푸단대, 우한대, 중산대, 지린대 등 중국 전역의 8개 명문대학을 순회하며 학생들을 상대로 그의 인생과 도전을 주제로 강연도 했다. 학생들은 그의 인생 역정에 열광적 반응을 보였다.
   
   
   길림성 백산시에서 자란 조선족
   
   미국과 중국에서 모두 주목하는 이 개그맨은 조선족 동포다. 황시는 1970년 조선족자치현이 형성된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의 하구(河口)공사(인민공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전형적인 한국식 이름의 황룡길(黃龍吉)씨와 리혜숙(李惠淑)씨다.
   
   이들 부부는 “우리는 한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제3세대”라고 CCTV에서 밝혔다. 아버지 황씨는 “중국에 살면서 40년 만에 배운 중국말도 겨우 이 정도 수준으로 머물렀다”며 “아들이 미국에 건너간 지 1세대 만에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영어로 개그를 하니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도수가 높은 안경에 어리벙벙한 표정은 그의 전매특허다. 그는 길림성의 산골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유독 강조한다. 자신을 소개할 때 “제 이름은 황시, 황과(黃瓜·오이)의 황, 시과(西瓜·수박)의 시예요”라고 하는 식이다. 개그 스타일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면서 현상을 풍자하는 식이다.
   
   그는 개그맨으로서는 드물게 이공계 박사학위까지 갖춘 엘리트다. 수학 성적 1등으로 길림대학에 들어갔고, 화학 성적 만점으로 중국과학원에 입학했다. 미국에 건너간 것도 명문 라이스대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사노피 아벤티스에 입사해 연구에만 몰두하던 그가 개그를 접한 것도 미국에서다.
   
   지금은 영어로 자유자재의 언어 유희를 구사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 알아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시험인 GRE를 준비하며 영한(英漢)사전을 8회 독파하고 85%의 단어를 외워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지도교수와 얘기를 나눌 때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자괴감에 불면증에도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스탠딩 개그클럽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개그의 매력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후 그는 낮에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스탠딩 개그를 익혔다. 영어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덤이었다. 비록 2002년 첫 번째로 선 무대에서는 참패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10년간의 노력 끝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만담(相聲)의 진수 선보여
   
▲ 조선족 개그맨 황시가 미국 코미디스튜디오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과감하고 신랄한 풍자는 그의 주특기다. 미·중관계를 비롯해 인종차별 같은 무거운 소재도 그가 즐겨쓰는 풍자거리다. 이런 식이다. “제 중고차 범퍼에 떼기 힘든 스티커가 여러 장 붙어 있었어요. 스티커를 해석하는 데는 2년이 걸렸죠. 알고 보니 그 내용은 ‘영어 못하면, 집으로 꺼져’였어요.”
   
   이런 그의 개그에 언론들은 열광하고 있다. 신화(新華)통신과 CCTV를 비롯한 언론들은 중국 출신의 개그맨이 미국에서 영어 개그로 두각을 나타냈다는데 초점을 맞춰서 각종 보도를 내보냈다. “중국 개그맨이 미국 땅에서 영어 개그로 미국을 풍자한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일견 엿보인다.
   
   더욱이 언론들은 “황시가 중국 전통 ‘만담(相聲)’의 진수를 미국에 선보였다”는 평가를 내린다. 만담은 생활 속 소재를 통해 웃음을 유도하는 전통극이다. 혼자서 진행하는 ‘단구(單口)만담’, 두 명이 서로 주고받는 ‘대구(對口)만담’, 여럿이 떠드는 ‘군구(群口)만담’ 등이 있다. 황시 토크쇼의 원류를 만담에서 찾는 것이다.
   
   “조본산과 함께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것은 황시의 꿈이다. 조본산(趙本山·54)은 ‘이인전(二人轉)’으로 불리는 ‘대구만담’으로 개그계를 수십 년째 석권 중인 중국 연예계의 대부다. 이에 중국에서는 “황시가 조본산과 함께 ‘음력설야회(春晩)’에 나와 만담을 할 것”이란 기대도 팽배하다. 매년 춘절(春節·설) 전날밤 CCTV를 통해 생중계되는 ‘음력설야회’는 경이적 시청률과 광고료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 음력설야회 출연 여부는 중국 연예인의 인기순위를 매기는 척도다.
   
24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황시는 2008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미국에서 공연할 때는 ‘조 웡(Joe wong)’이란 미국식 이름을 쓴다. 한국어 교실서 만난 김(金)씨 성의 조선족 안해와 아이들도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민족의 피를 타고나, 조선족으로 중국에서 자라고, 미국으로 이민해 성공한 세계인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황시의 트위터에서 그는 자신을 ‘미국의 저명한 화예(華裔) 토크쇼 개그스타’라고 소개했다.


주간조선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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