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81년만에 고향 연변에 돌아온 항일녀렬사의 충혼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월3일 09시46분    조회:541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건국 65주년 맞이 특별기획 《81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항일녀렬사의 충혼》 -서언

색바래져가는 전설앞에서

건국 64주년을 맞으며 안도현 현성 토월산기슭에 안도현혁명렬사릉원이 새로 건설되였다. 안도현민정국에 따르면 1만 2000평방메터 부지에 550만원의 투입으로 건설된 현대적인 렬사릉원에 전 현 907명 혁명렬사를 모시였다. 그중 여직 각지에 분산되여 있었거나 최근년 추가 발굴한 렬사들이 50명되는데 렬사릉원에서는 별도로 단묘(单体墓)묘지구역을 설치해 모시였다고 한다.

묘지 앞줄 《항일전쟁시기》구역 5번째로 《최계옥렬사》묘비가 보이는데 주인공 최계옥렬사는 안도현항일유격대 통신원으로 1932년 10월 24일 임무 수행중 일본놈들에게 붙잡혀 머리태를 말꼬리에 묶이워 끌려가 안도현 석문진 동흥툰에서 놈들의 불에 타 희생된분이다. 81년만에 최계옥렬사는 이곳에 귀안해 목숨바쳐 지킨 사랑스러운 고향을 굽어볼수 있게 된것이다. 비로소 최계옥렬사의 후손 두 세대의 소원이 실현된셈이다.

최계옥렬사의 사적은 여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최계옥렬사의 후손들이 81년만에 외할머니를 혁명렬사릉원으로 이장해 모시는 장면이다.  /김영자

 

최계옥렬사는 연변(연길시)혁명렬사릉원 영명록에 이름은 있었지만 봉분, 사적기재는 없고 , 알게모르게 가족 혹은 촌급관리렬사기념시설에서 《관리》하는 렬사로 있었다고 할수 있다. 최계옥렬사의 영명은 혁명렬사릉원에 새겨지기전 1958년 가문 기타 4명 렬사의 영명과 함께 가문 후손들이 비준을 받고 세운 기념비에 새겨져 있었다. 그 비석을 가족들은 《최씨렬사비》라 불러왔다고 한다.
 
《최씨렬사기념비》에 영명이 새겨졌던 가문 기타 4명 렬사들도 당과 국가의 《분산된 렬사기념시설 천이, 정합, 구급보호》정책으로 바야흐로 연변(연길시)혁명렬사릉원묘지에 묘소를 앉혀 모시게 된다.
 
렬사의 위훈은 가슴 울먹이는 전설이자 정신적재부이고 힘이다. 지난 세월 우리는 눈앞의 물질적재부거나 실용적인 리득에만 집착하다보니 우리 주변에서 살아숨쉬던 소중한 정신적재부를 너무나 많이 잃어버렸다. 기실 그 정신적인 재부는 여유로운 오늘을 선물해준 보이지 않는 소중한 얼이였다. 세월이 흘러흘러서 전설의 주인공들이 시야에서 멀어져가고 관련 당사자들이 얼떠름해지는속에 한때 하늘땅을 울리던 렬사들의 충혼은 아쉽게도 기억속에서 망각되고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당과 정부에서는 당면 그 어느때보다도 렬사기념사업에 대해 중시를 돌리고있다.
 
2014년 10월 1일 즉 건국 65주년전으로 전국 61만 5000개소의 분산된 렬사묘소와 1만 2000여곳의 분산된 렬사기념시설에 대한 구급보호사업을 완수하며 장기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는 관리기제를 실시하기로 한다. 2011년 3월 15일 민정부, 재정부에서 련합으로 공포한 《분산된 렬사기념시설건설관리보호사업을 강화할데 관한 민정부, 재정부 통지》에서 이 목표를 제출하였고 그뒤로 련이어 새롭게 《렬사찬양조례》, 《렬사기념시설보호관리방법》이 제정되였으며 또한 처음으로《렬사안장방법》(2013년 4월)이 제정, 실시되였다.
 
2013년 7월, 중공중앙판공청, 국무원판공청, 중앙군사위원회판공청은 《진일보로 렬사기념사업을 강화할데 관한 의견》(이하《의견》으로 략칭)을 발부하였는데 《의견》의 서문에서는 이렇게 쓰고있다.
 
《…렬사들의 정신은 전국 각 민족 인민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키 위하여 끝임없이 분투해가는 힘의 원천이다. 당중앙은 력래로 렬사기념사업에 고도로 되는 중시를 돌려왔고 일련의 정책조치로 렬사기념사업에 있어서 선명한 효과성을 거두었다. 형세임무의 발전변화에 따라 렬사기념사업에 아직 일부 부족점이 존재한다. 특히 어떤 지방과 부문에서는 이 사업에 대한 중시가 부족하고 공중의 참여도가 높지 못하며 관련 제도기제가 완벽화되지 못했다. 18차당대회정신을 관철하고 사회주의핵심가치관체계건설을 전력추진하기 위하여 당중앙의 동의를 걸쳐 중공중앙판공청, 국무원판공청, 중앙군사위원판공청에서 진일보로 렬사기념사업을 강화할데 관해 의견을 제출한다》고 했다…
 
우리 나라에서 렬사기념사업에 관한 정책법규가 이렇게 밀집공포된적은 없었다. 동시에 분산된 렬사기념시설에 대한 천이, 통합, 신축 및 구급보호공사에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중앙재정과 지방재정에서는 100억원을 전문 배치하였는데 이 역시 있어본적 없는 일이다.
 
이 세기적인 대역사속에서 기자는 80여년간 전적지의 산기슭에 소리없이 묻혀져있은, 뼈 한줌 찾을길 없이 이름석자만 남겨진 최계옥렬사 및 그 최씨가문 5명 렬사의 묘비를 령사릉원으로 천이, 통합하는 과정을 추종 취재할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기자는 민족과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3대가 목숨바친 전형적인, 여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최계옥렬사와 최씨가문의 혁명사적을 료해, 정리하게 되였고 그 과정에서 기자는 국가적으로 렬사와 렬사사적에 대해 발굴, 정리하고 그 기념시설에 대해 구급보호하는 일대공사는 민족부흥의 길로 가는 관두에서 얼마나 절실하고 적시적인가를 절감하였다.
 
렬사기념시설에 대한 천이, 통합, 신축 및 구급보호공사를 비롯한 렬사기념사업을 강화하는것은 중화민족의 가장 보귀한 정신적 재부를 구급보호하는, 천추만대에 남겨주는 근본적인 민생공사이라고 본다.
 
몇년간 기자는 렬사들의 유적지와 렬사비를 찾아가는 한 국민의 반사(反思)행동과정을 통하여 력사의 귀중함을 알게 되고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이 력사의 절박함과 시급함을 알게 된다. 한세대를 뛰여넘어오도록 늦었지만 고래희를 딛고서라도 거룩한 영령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로심초사하는 주인공, 최계옥렬사의 후손인 박영철선생의 사명감과 용단은 우리에게 감동과 교시를 안기고있다.
 
또 당면 당과 정부에서 이토록 렬사기념사업에 대해 중시하고있음에도 기자는 최씨렬사이장공사와 관련되는 유관 집행인원들의 렬사기념사업에 대한 판이한 두가지 리해와 자세를 보았다.
 
기실 정의(正义)롭게 살고 응분의 책임과 사회적 의무에 충실해가느라면 그 자체가 하나하나의 찬란한 전설로 남게 될것이며 렬사든 보통인이든 그 전설은 우리가 민족의 명맥을 이어가도록 떠밀어주는 소중한 정신적문화유산으로 전해지리라고 확신한다.
 
 
기자는 9년전 《길림신문》의 해남도의 유일한 독자였던 박영철(73세)선생을 인터뷰한 적있다. 선생은 《길림신문》에 게재되는  《우리민족의 전통과 례절》을 꼬박꼬박 스크랩해오던중이였는데 두기의 신문이 빠져 연길행차에 특별히 신문을 복사하려다 기자와 만나게 되였던것이다. 그때 《언제 어디서든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잊어서는 안된다. 배우면서 자손들에게 전해주련다.》라는 선생의 말씀에 너무 인상깊었다.
 
그러시던 선생이 3년전, 외가집 충주최씨족보와 함께 《내 생에 완수해야 할 숙제》라는것을 안고 기자를 찾아왔다. 항일투사인 외할머니 최계옥렬사와 3대 4대로 이어지는 최씨가문 10여명 렬사들의 혁명사적을 내놓으면서 뼈아픈 자책과 남겨진 사명을 남은 생에 꼭 풀어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렇게 기자는 그로부터 3년간 선생이 그 뜻을 실천하는 과정을 견증하게 되였다.

길림신문 김영자 기자
 

부록:
《81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항일녀렬사의 충혼 》

 차례:

-서언: 색바래져가는 전설앞에서

-제1편 놈들의 말꼬리에 머리태 끌리워 화형당한 최계옥렬사

-제2편 특이한 《최씨렬사비》에 깃든 사연

 특이한 《최씨렬사비》

《최씨렬사비》의 조우

-제3편 록음테프와 반쪽사진에 남겨진 렬사딸의 평생 여한

-제4편 혁명유적지 답사길에 오른 고래희의 박씨형제

-제5편 끝내 찾아낸 삼도구유적지 그 현장

-제6편 두대에 걸쳐 81년만에 올려진 렬사의 귀안제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838
  •     ▲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 주최로 지난 24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재외동포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정책토론회에는 300여명의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들이 참가해 행사 내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김재원의원 주최 ‘재외동포 문제, 어떻게 해...
  • 2014-02-27
  • '서울 속 옌볜' 가리봉동, 고단했던 삶이 머물렀던 자리… 이국적 풍경이 스며들다 "류,류…뤄미엔. 이,이거어(우,우…육탕. 하,하나)." 이태원에 있는 크래프트비어 전문점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에서 한국어로 음식을 주문했다가 통하지 않아서 당황한 건. 이태원 그 집 점원은 고개를 15도 정...
  • 2014-02-27
  • 재한 흑룡강성 화천적 조선족 삶의 현장 더듬어   (흑룡강신문=하얼빈) 세상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30년 전, 우리는 한국을 암흑한 ‘자본주의 남조선’으로 알고 있었다. 20년 전, 우리 시야에 고국은 ‘선진한국’이었고 금전판이었다. 그 후 우리가 가서 돈 벌며 느낀 한국은 ‘가까우면서도...
  • 2014-02-26
  • 내꺼인듯 내꺼 아닌 내꺼같은 너 ?!? 부모님 세대는 ‘선남선녀’ 사랑, 요즘 젊은이는 ‘썸남썸녀’ 러브 가수 소유와 정기고의 노래 ‘썸’ 뮤직비디오(위)와 tvN 코미디빅리그의 ‘썸&쌈’. 뮤직비디오 캡처·tvN 제공   ‘썸타다’는 말, 아시나요? 요즘...
  • 2014-02-26
  • 【울산=뉴시스】장지승 기자 = 울산지방경찰청은 25일 마작 도박장을 연 A(53·여)씨를 도박개장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도박을 한 탈북민 B(34·여)씨 등 13명도 도박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선족인 A씨는 1년 전부터 외국인 밀집지역인 울산 울주군 온산읍의 한 주택 1층에 전동마작기계 2대와 ...
  • 2014-02-25
  •  한국 법무부 체류 관리과는 지난 2월19일 “최근 국가기술자격증 취득과 관련, 일부 학원 등에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과장 광고를 한다는 언론보도가 있다”며, “동포들이“사기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법무부 체류관리과 담당자는 “국가...
  • 2014-02-25
  • 연길해관에 의하면 17일 연길-한국 인천행 KE826번 비행기에 대한 탑승감독관리임무수행시 해관인원은 한 탑승객이 200만엔화를 휴대하고 출경하려는것을 사출했다. 사출해낸 200만엔화를 당장에서 압수했는데 이는 올해들어 연길해관이 사출한 현찰휴대 제한규정을 어긴 출입경안건이라고 한다. 현찰은 출경금지 물품에 속...
  • 2014-02-25
  • 지난해  연변기상국에서 12월 10일부터 24일까지 연길시모아산삼림공원에 세워진 레이더기상탑(170.5메터,레이더시설까지 포함하면 181.2메터,32층)에 이름공모를 진행한 결과 《연변기상탑》이라 이름지었다고 일전 공포했다. 연변기상국에 따르면 공모활동은 사회각계의 광범한 참여를 불러 일으켰는바 모두 926개의...
  • 2014-02-25
  •     정년퇴직을 앞둔 신현숙씨 “저 멋지죠, 정년퇴직을 앞두고 동료들과 함께 스키를 타봅니다”      “난생 처음 스키를 타보았소” “로천온천은 그래도 겨울에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하는것이라니깐...” 정년퇴직을 앞둔 선배언니와 함께 랑만의 추억을 만...
  • 2014-02-25
  • 2월 24일부터 연변대학 학생들이 정식 수업에 들어가면서 방학간 한적했던 대학가 주변의 슈퍼, 음식점, 서점, 부동산중개소 등은 넘치는 젊은 고객들로 활기를 띠며 잇달아 호황을 구가하고있다. ■ 대학서점 학생들로 붐벼 24일 12시경, 연변대학서점에는 서적을 고르는 연변대학 대학생들로 붐볐다. 2012급 시장마케팅전...
  • 2014-02-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