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유우성 씨 뒤죽박죽 행적도 의문
‘뒤죽박죽. ’ 유우성 씨를 주인공으로 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영화 ‘간첩 리철진’에서나 볼 수 있는 ‘웃기는’ 사건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공세로 코너에 몰렸다. 검찰에 제출된 국정원 증거물들은 위조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 과정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조선족 A씨는 검찰 조사를 받은 3월 5일 서울 영등포 한 모텔에서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졌다. 아직은 이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만 이 사건이 장기화하면서 유씨의 행적에 대한 관심이 새삼 일고 있다. 국정원 측 설명에 따르면 유씨는 대한민국 국민 신분으로 2007년 8월부터 2012년 1월까지 북한에 3번 다녀왔다. 중국에 간다고 출국한 다음 몰래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갔다 다시 불법 도강으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유씨는 국정원에서 조사받을 때는 3번 밀입북한 것을 자백했으나 재판에 들어가 민변의 조력을 받자 이를 부인하고 있다.
국정원 측 설명대로라면 그때 유씨는 함경북도 보위부(도 보위부)의 지시를 받으며 간첩활동을 했다. 그런데 과외(課外) 일로 ‘콩밥’을 먹을 뻔했다. 그는 탈북자 단체에서 활동했기에 조직의 돈을 다뤘다. 예나 지금이나 무역하는 이들은 환전에 신경 쓴다. 금융기관을 통해 환거래를 하면 상당한 수수료를 내야 하기에 ‘환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유씨는 조직의 돈으로 26억 원을 중개하는 환치기를 해주다 2009월 12월 14일 인천해경에 적발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동부지방검찰청(동부지검)에 송치됐다. 당시 국정원은 그가 북한에 3번 밀입북한 혐의가 있다는 점을 동부지검에 통보했다.
유씨는 1980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유가강’이란 이름으로 그곳에 있는 의학전문학교(3년제)까지 졸업(2001)한 화교다. 2004년 3월 두만강을 몰래 건너는 식으로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로 간 그는 ‘유광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탈북자 행세를 하며, 한 달 뒤 라오스와 태국 등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서울시 탈북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우성 씨와 변호인단이 2월 16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검찰 증거의 조작 여부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다(왼쪽).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 부장이 2월 1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사건’의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北 보위부·동부지검도 ‘허방’
그는 동부지검의 조사에서 빠져나오려고 회령에 있는 아버지(유진룡)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는 그를 관리해온 도 보위부 반탐부를 찾아갔다고 한다. 반탐부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북한에 들어온 간첩을 잡는 방첩부 정도에 해당한다. 반탐부 부부장의 지시를 받은 한현남이라는 지도원이 유광일 명의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맹원증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 맹원증을 인편으로 아들에게 보내줬다.
이 맹원증이 모든 것을 해결해줬다. 동부지검은 탈부자를 온정적으로 본 듯, 이 맹원증을 사실로 보고 유씨를 순수 탈북자로 판단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그는 유광일이라는 이름을 유우성으로 바꾸고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바꾸는 형식으로 주민등록번호도 2번 바꿨다.
그러한 유씨를 2012년 간첩 혐의로 다시 조사한 국정원은 그를 살려주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맹원증을 살펴보다 헛웃음을 흘렸다. 동부지검이 놓친 내용을 발견한 것. 이 맹원증은 유씨가 15세이던 1995년 7월 2일 발급한 것으로 돼 있었다. 만 15세는 우리로 치면 중학교 3학년인데, 맹원증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진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더 웃긴 일은 당시에는 이 동맹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1996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개칭했으니, 95년 가입한 것이 맞는다면 그는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맹원증을 제출했어야 한다. 이뿐 아니었다. 탈북한 2004년까지 그가 이 조직에 있었다면, 맹원증에는 맹비를 한 번이라도 납부한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깨끗’했다. 자료를 만들어준 도 보위부도 ‘허방’ 치고, 이를 인정한 동부지검도 ‘허방’ 쳤던 것이다.
허방 친 것으로 따지면 중국도 빠지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출입경 기록 등 때문이다. 2004년 한국에 온 유씨는 2006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북한은 북·중 국경선 부근에서 중국 통신망과 접속하는 중국 휴대전화 사용을 불법으로 금한다. 2006년 5월 회령에서 그의 어머니는 중국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도 보위부원에게 적발됐고, 너무 놀란 나머지 쓰러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는 그의 여동생 유가려의 증언으로 확인한 사실이다.
2012년 오빠처럼 탈북자 ‘유광옥’으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오다 검거된 유가려는 “그때 도 보위부원이 쓰러진 어머니에 대해서는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고 휴대전화만 압수하는 모습을 보고 상처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어머니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유씨는 고향에 가려고 중국으로 날아갔다.
유우성 씨(위)와 유광일 명의의 ‘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 맹원증.
중국인 호구증 이용 위조통행증 발급
중국 경찰인 공안은 북·중 국경선을 관리하는 변방대(邊防隊)를 운용한다. 북한과 접한 지역에 사는 중국인은 여권이 없어도 변방대에서 발급하는 통행증만 있으면 ‘우호국’인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 통행증을 받으려면 우리 호적과 비슷한 ‘호구증’(정식 명칭은 거민호구증·居民戶口證)이 있어야 한다.
유씨는 호구증이 없었기에 지인을 통해 변방대와 통한다는 중국인 조학용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조학용은 나이가 비슷한 자기 아들 조빈화의 호구증을 이용해, 인적사항은 조빈화 것인데 이름은 ‘유가강’으로 한 위조통행증을 발급받게 해줬다. 이 통행증은 30일 이내에 한 번만 다녀와야 하는 단수 통행증이었다.
그런데 민변이 제출한 유가강(유우성)에 대한 옌볜조선족자치주 공안국의 출입경 기록은 5월 23일 오후 2시 54분 그가 북한으로 갔다가 5월 27일 오전 10시 24분과 11시 16분, 그리고 6월 10일 오후 3시 17분 중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돼 있었다. 나간 것은 1번인데 3번 들어온 것으로 돼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과 유씨는 5월 23일 북한에 갔다 5월 27일 잠깐 중국으로 돌아왔고, 1시간도 안 돼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 6월 10일 최종적으로 나왔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5월 27일 오전 11시 16분 중국으로 들어온 두 번째 입경은 잘못 기록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유씨는 단수 통행증으로 북한을 2번 다녀온 것이 된다. 이에 대해 국정원과 유씨는 “중국은 그런 편의를 봐준다”고 설명한다. 지금 유씨는 민변의 조력을 받기에 국정원이 검찰을 통해 제출한 증거를 부인한다. 그러나 북한에 갔다 연속으로 3번 중국으로 돌아오는, 있을 수 없는 일이 기록된 것에 대해서는 국정원과 같은 설명을 한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중국에 나왔다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그는 도 보위부에 검거돼 위조통행증을 사용한 것이 발각됐다. 그러자 놀란 그의 아버지가 북한돈 3000원(한화 약 50만 원)을 써서 풀려나게 했다. 그때 김철호라는 인물이 도 보위부에서 그를 풀어주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정보를 빼내 보내줄 것을 요구했고, 그것에 필요한 교육을 시켜 6월 10일 그를 중국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국정원 측은 그때부터 도 보위부가 회령에 사는 유씨 가족을 볼모로 잡고 그를 부렸다고 주장한다.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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