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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에 다 뺏기는 '동대문 상표'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3월19일 07시04분    조회:5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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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추적

4800억 들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장 D-2…더 불안한 상인들

신상 디자인·매장 인테리어…무차별 베끼기
中 '카피 부대' 습격에 속수무책…'샘플 공급기지' 전락 위기
'짝퉁상표' 등록후 독점거래 요구…마진 줄고 수출가 못올려 한숨만
몰래 찍은 사진들 팔아 넘기는 '디자인 파파라치'까지 기승
영세업체들 소송해도 승산 낮아 '보따리 무역' 매출 공개도 부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 있는 A의류업체 디자이너 정모씨는 지난해 3월 대만의 한 거래 업체가 반송한 면바지 한 벌을 받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실을 꿰매는 방식과 원단이 다른 ‘짝퉁’이었다. 대만 바이어들과 6년째 거래하며 월 10억원 이상을 수출하던 A사엔 비상이 걸렸고, 정씨와 A사 사장은 며칠 뒤 대만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에서 정씨는 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대만의 수입업체인 B사가 이미 2012년 12월 A사 브랜드를 그대로 베낀 상표를 출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B사 대표는 적반하장 격으로 “이제 대만 내 상표권은 우리에게 있으니 물량을 우리한테만 달라”고 요구했다. A사는 국내 특허법률사무소 두 곳을 통해 상표권 취소 소송도 검토했지만 승산이 낮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포기하고 결국 B사와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대만 수출 물량은 모두 B사를 통해 판매하고 단가도 기존보다 30% 정도 내리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정씨는 “대만의 다른 거래처에는 새로운 브랜드로 된 의류를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며 “상표를 도둑맞은 뒤엔 대만 중국 일본에 수출하는 상표는 현지에서도 출원과 등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 일대를 세계적인 패션메카로 육성하겠다며 사업비 4800억원을 들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21일 문을 연다.

하지만 정작 동대문 패션타운의 의류업체와 상인들의 위기감이 크다. 의류 디자인과 매장 인테리어부터 상표, 쇼핑몰 명칭에 이르기까지 중국 등 해외 업체의 무차별 베끼기 공세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상품 디자인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디자인 파파라치’들이 수집한 사진이 카탈로그로제작돼 중국 현지에서 권당 10만원 안팎에 팔리는 실정이다. 상인들은 “이러다가 동대문이 중국 업체에 샘플만 제공하는 곳으로 전락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 “사진 찍지마세요” > 서울 동대문에 있는 한 쇼핑몰 매장에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팻말이 붙어 있다. 동대문 쇼핑몰은 몰래 제품 사진을 찍어가는 중국인 디자인 파파라치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몰카’로 찍고, 책자까지 만들어 판매

지난 17일 오후 6시 동대문 쇼핑몰 두타 1층. 최신 K팝이 울려 퍼지는 이곳 매장의 쇼윈도 곳곳에는 ‘촬영금지(No Picture)’와 ‘사진 찍지 마세요’라는 팻말들이 붙어 있다.

구두 판매점을 운영하는 정준호 씨는 “사진뿐만 아니라 동영상으로까지 제품 디자인을 찍어가는 중국인들이 많다”며 “사진 찍는 것을 막으면 오히려 화를 내거나 모른 체 발뺌하는 경우도 많아 마땅히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대문 의류업계 관계자들은 “제품 사진만 찍어 중국 업체에 넘기는 일을 하는 브로커도 활동하고 있다”며 “이들이 고용한 조선족과 유학온 중국인 학생들이 동대문 패션타운의 곳곳을 누비며 상품과 매장 인테리어 사진을 수집한다”고 전했다.

해외서 10여만원에 팔리는 한국 의류 사진집.

해외서 10여만원에 팔리는 한국 의류 사진집.

이들이 촬영한 사진은 상태에 따라 장당 1000~2000원에 중국 업체로 전송되거나 아예 100쪽 안팎의 두꺼운 책자로 편집돼 권당 10만원 정도에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동대문에서 15년간 디자이너로 일해온 박모씨는 “중국 광저우의 대형 패션몰에 갔더니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몰래 찍어온 사진을 묶어 만든 책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며 “책자엔 내가 디자인한 옷 사진도 여러 벌 실려 있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이처럼 디자인 파파라치들의 ‘몰카’가 극성을 부리자 도매 전문 쇼핑몰 유어스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스티커를 제작해 이달 말부터 360여곳의 매장에 배포하기로 했다.

○작심하고 동대문 베끼는 중국 업계

한류 열풍을 타고 동대문 패션타운의 제품과 디자인이 중국 대만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큰 인기를 끌면서 현지의 ‘동대문 베끼기’는 더욱 전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KOTRA 칭다오 무역관은 지난 1월 보고서를 통해 중국 광저우 의류시장이 동대문의 제품과 영업 노하우를 고스란히 가져가면서 한국 패션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저우 최대 의류 도매시장인 잔시루에서 가장 인기있는 쇼핑몰인 후이메이는 아예 1개층을 한국관으로 꾸며 동대문 출신을 대거 영입했다. 단순 모방을 넘어 한국 상인들로부터 매장 운영 노하우 등을 배우려는 시도라는 설명이다.

후이메이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원용연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디스플레이나 인테리어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광저우 상인들이 동대문을 드나들면서 품질 수준을 크게 높였다”고 전했다. 광저우 의류업체들이 한국산 방직 기계와 한국 의류 기술자까지 함께 영입해 현지에서 제작한 제품을 중국 내수시장은 물론 한국으로 역수출하기도 한다.

유선규 유어스 운영기획팀장은 “동대문 패션타운 출신 상인 120여명이 2012년 중국의 한 쇼핑몰로 대거 진출하기도 했다”며 “한국 상인들이 운영하는 매장의 영업이 잘되자 쇼핑몰 측이 임대료를 대폭 올려 결과적으로 노하우만 알려주고 되돌아온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쇼핑몰 명칭을 현지에서 상표로 등록한 사례도 있다. 동대문 한 유명 쇼핑몰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 하자 쇼핑몰 상표를 먼저 등록한 홍콩 출신 사업가가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세금 문제로 피해 입어도 ‘쉬쉬’

중국 대만 등 해외에 상품을 수출하는 동대문 의류업체들이 이처럼 짝퉁 제품과 상표 도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지만 보호 대책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해외 업체가 동대문 업체들과 같은 상표로 자국에 상표를 출원하더라도 ‘상표가 일반 소비자에게 폭넓게 인식될 정도로 유명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소송에서 그나마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 의류업체의 해외 상표 출원을 담당했던 김석만 시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소송을 하려면 상표가 얼마나 유명한지 등 저명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신문 등 대중매체에 광고한 실적이 많아야 한다”며 “대부분 영세한 동대문 의류업체로서는 많은 비용을 들여 소송을 벌이더라도 승산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동대문 의류업체들로선 비용을 들여 해외에서 상표를 미리 출원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거래 자료 남기기를 꺼리는 동대문 의류업체의 특성도 상표 침해에 적극 대응할 수 없는 요인이다. 동대문 의류업체들의 수출은 대부분 정식 세관이 아닌 보따리 무역(일명 ‘따이궁’)을 통해 이뤄진다. 관세를 물지 않으려는 해외 거래처의 요구와 매출 규모를 숨기려는 동대문 업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생긴 거래 관행이다.

그러다보니 상표권를 침해당하더라도 그동안 숨겨왔던 매출이 드러날까봐 정부가 운영하는 지원센터나 지방자치단체 등에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차경남 서울봉제산업협회장은 “상표 침해와 복제품으로 피해를 입고도 세금을 물게 될까봐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자료 거래 등 그동안의 잘못된 동대문 관행을 개선해야 이 같은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선표/박재민 기자 rickey@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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