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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서울 속 연변(延邊) - 영등포구 대림동 주말 풍경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7월29일 02시24분    조회: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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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 대림중앙시장 밤 풍경.
지난 7월 12일 토요일밤 9시50분.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에 있는 대림파출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림파출소 인근 대림중앙시장 부근 ‘양꼬치(羊肉串)’ 집에서 조선족 동포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전화였다. 밤 10시30분 머리에 하얀 붕대를 두른 중년의 조선족 동포 남성이 순경 2명의 부축을 받으며 파출소로 들어왔다. 뒷목에는 피가 흐르기도 전에 말라버린 핏자국이 선명했다. 팔뒤꿈치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중년의 조선족 남성은 “내가 피해자예요”라며 파출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파출소 내부는 역한 고량주(高梁酒)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개XX, 씨X, 죽여버릴 거야”라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휴대폰 버튼을 계속 눌렀다. 아들을 찾는 전화였다. “여기 와서 빨리 날 좀 데려가”라면서 그는 계속 대림파출소가 아닌 “구로파출소에 있다”고 횡설수설했다. 답답했던지 한 경찰관이 휴대폰을 건네받아 파출소 주소를 알려줬다. 조선족 중년 남성은 “난 열심히 산 사람인데 자기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벌었다고 날 무시하잖아요. 한국에서 살기 너무 힘들어. 동포들 세상이 엉망진창이야”라며 계속 앉았다 섰다를 반복했다. 분을 참지 못한 듯 보였다.
   
   경찰관들이 사건 경위를 캐물었다. 기자가 파출소에서 전해들은 사건은 이랬다. 대림동 양꼬치집에서 술을 마시던 도중 그는 옆 테이블 손님들과 언쟁을 벌였고 언쟁이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와 함께 있던 친구는 옆 테이블 손님이 휘두른 맥주병과 대걸레 마대자루로 얼굴을 얻어맞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조선족 동포로 추정되는 가해자들은 도주를 해버려 경찰이 추적에 나선 상황이었다.
   
   밤 11시45분, 중년 조선족 동포의 아들이 대림파출소에 도착했다. 그는 아들에게 “경찰관한테 니가 좀 얘기해, 아빠 내일 일 나가야 하잖아. 경찰서 잡혀 들어가면 안 돼. 아버지가 너만 바라보면서 남부끄럽지 않게 살았는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라며 울부짖었다. 그는 눈물을 흘렸고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아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김진문 대림파출소장은 “영등포구 대림2동은 전국 최대의 중국 동포거리가 조성된 밀집지역”이라며 “주말을 이용해 일일 최대 5만명의 중국 동포들이 지하철 7호선 대림역 12번 출구 앞을 ‘만남의 장소’로 정해 운집한다. 이로 인한 무단횡단, 음주소란, 집단폭력, 절도 등 각종 크고 작은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대림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의 각종 순찰과 방범활동은 새벽 2시까지 이어진다. 김 소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6월까지 7개월 동안 대림2동에서 발생한 폭력 범죄는 272건. 김진문 소장은 “지난 4월 중국 동포 대상 비자발급 완화로 조선족 동포들의 유입이 늘면서 조선족 동포 관련 폭력범죄 발생건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취업을 제외한 자유왕래가 가능한 ‘중국 동포 단기방문비자(C-3-8)’의 신규 도입으로 조선족 동포들의 고국 방문 및 거주 수요가 폭증한 바 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서울 속 연변(延邊)’이다. 지난 7월 14일 안전행정부가 발표한 ‘2014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장기체류 외국인은 총 156만9470명. 이 중 중국 국적 외국인은 84만3655명이다. 이 중에서 조선족 동포를 뜻하는 ‘한국계 중국인’은 모두 60만808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서울에 사는 중국 동포의 수는 23만5645명인데, 영등포구청에 따르면 2만9033명이 영등포구에 거주지를 두고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귀화한 조선족 동포들까지 포함하면 영등포구에 5만199명이 산다.
   
   영등포구 중에서도 대림2동은 조선족 동포들의 밀도가 가장 높은 조선족 특구다. 영등포구 도림로를 기준으로 남쪽에 있는 대림2동 대림중앙시장 인근을 중심으로 조선족 동포 7524명이 거주하고 있다. 전체인구(1만6241명)의 46.3%가 조선족 동포이다. 이 밖에 도림로 북쪽 대림3동에 3389명, 대림1동에 2894명이 거주 중이다. 대림1·2·3동에 적을 둔 조선족 동포만 모두 1만3807명에 달한다. 대림1·2·3동 전체인구 6만204명의 23%에 달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순수 중국인과 소수의 탈북자도 함께 어우러져 거대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을 중심으로 만주(滿洲)계 한족(漢族), 소수의 탈북동포들이 어우러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인구구조와 흡사하다.
   


▲ 대림중앙시장 안 개고기 상점.
지하철 7호선 대림역 12번 출구 앞 대림중앙시장 일대는 수도권 곳곳에 퍼져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귀환하는 토·일요일 주말 밤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지난 7월 12일 토요일 밤 8시, 지하철 7호선 대림역 12번 출구를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니 어디니? 빨랑 대림으로 오라”며 친구를 찾는 중년 남성의 통화 소리가 들렸다. 대림역 12번 출구를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곳은 대림중앙시장이다. ‘동포 여러분, 우리 이미지 스스로 개선합시다’란 현수막이 내걸린 대림중앙시장은 주말을 맞아 모여든 조선족 동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토요일 밤의 서울 홍익대 앞을 연상케 했다.
   
   차량 한 대가 들어갈 법한 대림중앙시장 길을 따라서 연변(延邊)냉면, 연길(延吉)개고기 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특산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 즐비했다. 한글 간판보다 한자로 된 간판이 오히려 더 많았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보다 연변냉면집이 더 많았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취급하는 식당보다 ‘거우(狗肉·개고기)’란 간판을 단 식당이 더 많이 보였다. 개고기는 조선족 동포들이 즐겨 찾는 육류고, 연변냉면 역시 ‘중국의 10대 면요리’에 드는 연변의 명물 음식이다.
   
   연변냉면을 먹기 위해 들어간 한 음식점은 이미 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식당 한쪽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중년의 조선족 동포 6명의 술자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동안에 쌓였던 회포를 푸는 듯 목소리는 식당 입구 밖에까지 들렸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왔다는 동포 박선희(51)씨는 “주말에 같이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맥주 한잔 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했다. 다른 테이블의 한 중년의 조선족 남성은 “내일 새벽에 또 공장 가야 해, 하루 벌고 하루 사는 인생 너무 힘들어”라며 한국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이 너무 컸던 탓일까. 주말 밤 대림중앙시장 곳곳에서는 술에 취해 거리를 활보하는 조선족 동포들이 너무나 많았다. 조선족 동포 남성 두 명은 어깨동무를 하고 쓰러질듯 휘청거리며 대림중앙시장을 걷다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림중앙시장 한복판에서 세상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던 그들은 또 어깨동무를 하고 걸었다.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림중앙시장 한쪽 대동초등학교 옆 다사랑공원에는 20대 조선족 동포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중화(中華)와 중남해(中南海) 등 중국에서 많이 피우는 담뱃갑과 꽁초들도 보였다. 공원 옆 쓰레기통에는 분리수거 전용 비닐봉지에 담기지 않은 쓰레기가 한가득이었다. 음식물쓰레기의 악취가 새어 나왔다. ‘분리수거’ 제도를 도입하기 전인 중국의 쓰레기 처리방식이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합시다’란 다사랑공원 담장 한편에 붙어 있는 영등포구청의 경고글은 전혀 아랑곳없었다.
   
   지난 7월 13일 일요일 오전 11시30분, 기자는 다시 대림동을 찾았다. 대림2동 대림중앙시장 거리에는 여전히 낮술에 취한 취객들이 많았다. ‘일요일은 조금 차분하지 않을까’란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거리에서는 연변 조선족 동포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찾아간 곳은 대림웨딩홀. 대림웨딩홀에서는 한 조선족 동포 노인의 환갑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의 환갑연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다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뜻의 ‘오래오래 앉으세요’라는 연변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이 독특했다.
   

▲ 대림중앙시장 한복판에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영등포구 대림2동 도림천변에는 조선족 동포 노인들이 여가를 보내는 영등포구립 행복경로당도 있다. 원래 대림중앙시장 안에 있던 노후 경로당의 전세 계약이 만료되자 지난 4월 10일 도림천변 임시건물로 이전한 곳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이곳의 문이 잠겨 있었다. 영등포구청에 따르면 행복경로당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을 하고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영등포구청은 지난 3월 서울시에 주민참여 예산을 신청해 조선족 동포 노인들이 이용할 경로당을 새로 마련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루 30여명 정도가 이용하는 행복경로당에 등록한 노인 106명은 전원 조선족 동포들로 구성돼 있다.
   
   대림웨딩홀 맞은편 지하철 7호선 대림역 9번 출구 앞 하나은행 대림역출장소의 금전자동출납기(ATM)기 앞에도 조선족 동포들이 모여 있었다. 중국 길림(吉林)은행과 제휴하고 있는 이 은행 출장소는 조선족 동포들의 송금 편의를 위해 일요일에도 은행창구를 열어두고 있었다. ATM기 등을 이용해 중국으로 국제 송금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나은행 대림역 출장소는 한글 간판보다 ‘한아은행(韓亞銀行)’이란 중국어 간판이 더 컸다. 대림역 일대는 하나은행뿐 아니라 중국 최대 중국공상은행과 중국 최대 외국환은행인 중국은행 지점이 있어 한국에서 가장 활발한 대(對)중국 송금거래가 이뤄지는 위안화 거래 중심지다.
   
   은행을 찾은 40대로 보이는 조선족 동포는 검정 비닐봉지에 5만원권 지폐를 한가득 담아왔다. 중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기 위해 은행을 찾은 듯했다. 은행에 온 한 동포 남성에게 “무엇을 하냐”고 묻자 “뭘 궁금해 해요, 돈 보낼라고 왔지요”라는 답이 경계하는 눈빛과 함께 돌아왔다. 대림2동에는 은행뿐만 아니라 원화와 위안(元)화를 교환할 수 있는 사설환전소도 많이 보였다. 기자가 눈으로 확인한 사설환전소만 대림중앙시장 일대로 15곳이 넘었다. 일요일을 이용해 사설환전소를 찾아 검정색과 노란색 비닐봉지에 한가득 담아온 돈을 교환하는 조선족 동포들이 적지 않았다.
   
   요즘 대림동의 이 같은 주말 풍경은 대림역 일대를 넘어 영등포구 전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대림중앙시장 가운데 있는 대림부동산의 이성철(63) 사장은 “올해부터 대림동의 신규 매매 계약이 뚝 끊겼다”며 “대림동에 거주하는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영등포구청과 정부의 특별단속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 대림을 떠나 신도림이나 영등포구청 주위로 점차 떠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영등포구가 밝힌 2014년 국적별 외국인 인구통계에 따르면 ‘한국계 중국인’으로 분류되는 조선족 동포들이 점차 영등포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하철 1·2호선 인근 영등포구 도림동(2517명), 1호선 영등포역 인근 영등포본동(2376명), 1·5호선 신길역 인근 신길1동(2327명)에도 점차 조선족 동포가 몰려들고 있다. 또 지하철 7호선 신풍역 인근 신길5동(2326명)도 조선족 동포 거주지로 변하고 있다. 영등포구 관내에서 여의도와 문래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조선족 동포 인구는 동별로 수천 명을 훌쩍 넘는다. 과거 노후 불량 주택들이 밀집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시작해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남구로역, 대림역까지 동북상한 조선족 동포들의 밀집거주지가 여의도 턱밑까지 치고 온 셈이다. 반면 집세가 상대적으로 비싼 여의도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들은 아직 34명에 불과하다.
   
   이질적인 문화의 조선족 동포들의 거주지가 영등포 전역으로 확산되는 움직임을 보이자 현지 주민들은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림역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조선족 동포들을 태우면 늘 불안하다”며 “한 조선족 동포 손님이 ‘한국에서 사고를 쳐도 우리는 중국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우리는 다시 배 타고 중국으로 돌아가면 된다’며 탈출할 수 있는 루트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말했다.
   
   현재 대림파출소에서는 주 1회, 조선족 동포들로 구성된 외국인자율방범대가 활동을 벌이고 있다. 토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대림2동 관내 주택가 밀집지역 및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에서부터 중앙시장 일대를 집중순찰, 합동순찰, 캠페인 등의 방법으로 자율 방범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진문 대림파출소장은 “올해부터 대림파출소에서는 ‘안전한 중국동포거리 조성’을 목표로 중국 동포들이 이 지역에서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생활방식, 문화적 차이 해소, 법률적 문제를 담은 홍보전단지를 배포하거나 기초질서를 확립하는 단속활동을 하고 있다”며 “유동인구가 많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 11시부터 2시까지는 대림파출소와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와 외사계가 합동으로 대림역 12번출구 앞에서 ‘등대치안’이란 이름의 방범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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