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외지인들이 우리 주 각 현,시를 찾아 일을 하며 도시건설의 중요한 력량으로 부상하고있다. 이들중에는 기댈 곳 없이 떠돌며 애타게 사랑을 기다리거나 기러기아빠, 기러기엄마가 되여 고향에 남은 자녀들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도시에서 사랑을 이루어내는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안휘에서 온 큰 눈망울을 가진 리해연은 올해 24살이다. 뛰여난 외모 덕에 연길시의 모 대형마트에서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하고있다. “고향에서 제 나이또래면 모두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죠. 부모님들이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하지만 연애도 제대로 못해보고 시집가긴 억울하죠.” 리해연의 말이다.
리해연은 도시에는 적지 않은 맞선 활동, 가두, 부련회 등 조직에서 조직하는 친목회도 많지만 맞선자리에 나온 사람들 모두 좋은 직장을 둔 사무직에게만 쏠릴뿐 외지에서 온 로무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25살에 나는 하남 청년 류자강은 안도현의 한 아빠트단지에서 경비로 일하고있다. 녀자친구인 소왕도 하남사람, 아빠트단지 근처 마트의 수금원이다. 사귄지 2년이 가까와오지만 혼담이 오가면서 둘의 관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올해 설에 고향에 돌아가 녀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렸죠. 그런데 두분 모두 결혼식은 간단하게 올리더라도 도시에 신혼집 한채는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어요.” 류자강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취재하는 동안 30살 미만 외지 로무자 20여명과 교류한 결과 이들중 대부분이 싱글이였으며 적당한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것이 꿈이였다. 그러나 이 소박한 꿈은 늘 현실의 벽에 부딪혀야만 했다.
“좀 작은것을 보여줄수 없나요?” 설 전야, 연길백화청사 금장신구매장에서 35살 나는 호북 농민공 전래금이 판매원에게 소심하게 말한다. 안해를 위해 너무 비싸지는 않지만 기쁨을 줄수 있는 결혼기념일 선물을 고르기 위해 벌써 백화에서 몇고패 돌고있다는 그다.
전래금은 연변에서 목공으로 일한지 4년이 넘는다. 안해는 고향에서 아이 둘의 공부뒤바라지에 땅 몇무를 돌봐야 하니 여간 고생스러운것이 아니란다. “타지에서 일하는것이 쉽지만은 않죠. 그러나 집에 있는 안해도 고생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고향 떠난 이 몇년간 해마다 한번밖에 돌아갈수 없으니 집안 대소사를 안해 혼자 도맡아하죠. 올해는 결혼 10돐이 되는 해이니 안해를 기쁘게 해주고싶네요.” 그의 말이다.
미혼인 농민공은 결혼이 어렵고 기혼인 농민공은 두곳에 떨어져 생활하다보니 혼인생활의 질이 떨어지고 리혼률이 높아지는 국면을 조성하고있다. 새 시대의 농민공들은 “질풍, 폭우”와도 같은 변화를 겪고있으며 도시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 돼버렸다. 농민공들의 혼인과 련애 문제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있으며 구체적인 책임부서도 없어 사회의 불안정한 요소로 부상하고있다.
주내 일부 전문가들은 사회 각계에서 농민공 급여대우 및 권력보장 등 문제에 주목하는 동시에 이들의 감정생활에도 관심을 돌릴것을 제안했다. 정부에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 농민공들이 도시에 정착할수 있도록 조건을 창조해주고 농민공 부부가 함께 도시에서 로무에 종사할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며 “기러기부부”의 수를 줄여나가야 한다는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연변일보 정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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