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일체화의 실현을 가속화하기 위하여 국가에서는 호구제도를 개혁하여 농촌호구도 도시호구로 마음대로 고칠수 있게 하였다. 숱한 농민들이 《만세!》를 부를것만 같은 개혁이였는데 생각밖으로 랭랭하기 그지없었다. 왜 이렇게 되였을가?
지난 세기 70년대 초반이라고 기억된다. 하루는 붉은꽃을 단 《해방표》자동차가 마을어귀에 들어서자 진규네 아버지가 둥근 술상을 들고 앉은걸음을 쳤고 진규네 어머니가 두팔을 너울거리며 빙글빙글 돌아쳤다. 《저팔계》라는 별명을 달고다니는 진규형님이 장가를 든단다. 동네에서 세상 보기 부끄럽게 생겨서 장가들기도 부끄럽겠다고 한해두해 나이를 먹어가며 로총각으로 몰리던 젊은이가 장가를 든다니 모두들 궁금증이 동했다. 어떤 색시가 그런 로총각한테로 시집오는걸가? 입이 귀쪽으로 째지게 된 진규형님이 조수석에 앉은 색시를 건뜩 들어서 노오란 돗자리우에다 살짝 내려놓았을 때 동네 아낙네들부터 절찬이 터져나왔다.
《어마나, 곱기도 곱네!》
《어쩜, 기울어도 너무 기운다니까》
……
왕청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시집온다는 색시가 우리 아이들 눈에도 호박꽃같이 곱다는 감이 들었다. 그때 나는 리해할수가 없었고 어딘가 불공평성을 느꼈다. 그처럼 고운 녀자가 왜 진규형님같이 못생긴 남자한테로 시집오게 되였을가? 헌데 그런 불공평성이 진규형님네 집에서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것을 보아냈다. 그후 마을 여러 집에서 그처럼 고운 시골색시를 며느리로 맞아들이고있었다. 그런 불공평성이 생기게 된 그 원인은 호구제도에 있었던것이다.
농촌호구와 도시호구, 상품량 배급과 비상품량 불급, 당시 그 차이가 얼마나 컸을가? 그 고운 얼굴을 가진 시골처녀들이 예쁜 얼굴과 미끈한 체격을 가지고 도시의 로총각들한테로 시집오는것만큼 더 컸다고 나는 인정했다. 도시로 시집온 그녀들의 앞에는 고운 인물값을 깎아내리는 흥정이 끊임없이 진행되였다. 젊은 나이에 일자리를 찾자고 해도 호구가 없기에 받아주는데가 없었고 아이를 낳아도 호구를 붙일수 없었고 호구 없는 아이는 학교에 붙어도 돈을 더 내야 했고 여러 면으로 되는 섧은 대우를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처녀들의 도시진출은 혼인이라는 이 외나무다리로 점점 더 몰리게 되였다.
《이원화》제도의 불공평성이였다. 도시와 농촌, 자원공유에서의 불평등이였다. 경제수입, 교육문화, 의료보험, 출생양로 등 모든 삶의 조건과 환경을 제도적으로 차별있게 제정해놓은것이다. 다시 말해서 출생자의 출생지와 가정성분에 따라 《팔자》가 정해지는것이였다. 도시사람들은 평생 도시에서 살수 있고 농촌사람들은 평생 농촌에서 살아야 할뿐만아니라 그 자녀들까지도 그 팔자를 이어가게 되였다. 그래서 농촌처녀들은 자기의 청춘과 그 권익을 바꾸려고 한것이다. 거기에는 앞으로 있게 될 자녀들의 앞날도 기탁되는것이였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불공평적이던 호구제도가 공평적으로 개혁된다고 하는데도 왜 농민모두들 주저하고있을가?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주요하게는 아래와 같은 몇가지 면에서 개혁이 심화되고있기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제일 주요한 문제는 경제문제이다. 경제문제가운데서도 제일 관건적인 문제는 토지문제이다. 도시생활에서 일자리가 관건이라면 농촌생활에서는 토지가 관건인것이다. 도시에서는 일자리에서 돈이 나오고 농촌에서는 토지에서 돈이 나온다. 돈이 나오는 토지에 대한 정책이 바뀌고있고 토지에서 나오는 돈의 줄기가 갈래갈래 여러갈래로 뻗어지고있다. 토지가 개조의 대상이 되고있을뿐만아니라 자본의 원천으로도 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되였고 그 어떤 기대감을 가지게 되였다. 도시사람들보다 더 높은 경제수익을 얻을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게 된것이다. 그래서 주저하고있다.
다음 농촌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규제가 점차 완화되고있는 추세를 새롭게 보이고있다.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있는 중국에서 만약 농업이 발전하지 못하면 절름발이가 되고마는것이다. 지금 여러 선진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고있는데 제일 복잡하고 시끄럽고 껄끄러운 장애가 농업의 미발달에서 빚어지고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국가적으로 더욱 우월한 혜농정책을 제정해내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농업이 점차 현대화적인 산업으로 부상하는데 경제개혁의 심화, 문화교육제도의 개혁, 양로보험제도의 개척, 의료위생제도의 합리화 등 자원공유의 공평성이 관건적인 역할을 놀 때가 된것이다.
이 모든 변화를 지금까지 농민호구를 가지고있는 농민들이 페부로 느끼고있고 무언가 알릴듯말듯한 《천도복숭아》가 하늘에서 떨어지고있다는 감을 느끼고있어서 주저하고있는것이다. 수천수백년동안 이 큰 대지에서 농민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있었고 토지의 대다수를 다루어왔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제일 최하층에 억눌려있었고 문화적으로도 언제나 미개화상태에 빠져있었으며 여러 면에서 사회의 주류계층에 서지 못했었다. 그런 그들이 오늘날 하루 아침사이에 모든걸 바꾸고 《팔자》를 고칠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누구도 담보할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농민호구를 가지고있는 우리 조선족농민들은 어떻게 할것인가? 이 좋은 기회에 《농민모자》를 활 벗어버리고 말것인가?
신중해야 할 문제이다. 고장에 따라 가정에 따라 정황이 다르고 각기 다 자기의 특수정황이 있겠지만 아래와 같은 몇가지 문제는 꼭 짚고넘어가야 할것 같다.
국가적으로 미래에는 도시호구나 농촌호구나 다 똑같게 자원공유를 하게끔 만든다고 하지만 앞으로 농촌에 호구를 붙이기가 지난 세기 70년대에 도시에 호구를 붙이기만치나 어려워질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농촌호구를 가지고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호구에 따라 토지를 가지고있는 사람들과 토지를 내놓은 사람들이 있다.
토지를 가지고있는 사람들은 농촌토지정책을 잘 장악해야 한다. 지금이나 앞으로도 많은 혜농정책이 토지를 통해 관철되게 되고 그것이 또한 장기적인 일종 자원수입으로도 될수 있게 된다. 그리고 토지가 없는 농민이라도 각종 사회보장혜택이 차례질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절대 홀시하지 말고 루락이 없게 하면서도 적극적인 조건을 창조하여 더 많은 혜택을 쟁취하기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또 농촌집체수익분배권도 있기에 어느땐가에 가서는 하늘에서 금덩이가 떨어질만큼이나 큰 목돈이 생길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우리의 농민호구를 보존하고 여러 면의 다원화수익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려면 우리 마을마다에 기존했던 촌민위원회와 당조직을 정돈하고 강화해야 한다. 농촌에서 이 두 조직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토지가 있어도 제대로 리용할수 없고 《3권재확인》이 된다고 해도 땅에서 나오는 수익을 제대로 받아챙길수도 없게 되며 나아가서는 《팔자호신부》로도 될수 있는 농민호구도 보존하기 곤난하게 된다. 이 점에 좀 중시를 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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