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죄가 터질 때면 ‘또 조선족이냐’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반지하 방에서 코리안드림의 끝자락을 붙잡고 사는 이들이 있다. 우리 안의 또다른 우리인 중국동포다. CBS노컷뉴스는 주민 80%에 달하는 중국동포가 모여 사는 서울 대림2동 르포를 통해 그들의 오늘과 내일을 그려본다.[편집자 주]
대림역 12번 출구 앞 거리의 모습 (사진=김광일 수습기자)
붉은 배경에 노란색으로 쓰인 중국어 간판들 사이로 작은 파란색 안내판을 단 서울 대림파출소는 예상과 달리 비교적 한산했다.
지난 23일 취재진이 찾은 대림파출소에서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접수된 112신고는 단 두 건.
취객이 길가에 누워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관과 동행해보니, 인근 장례식장을 찾았던 경기도 파주시의 50대 주민이었다.
1년째 근무를 하고 있다는 정문수 경사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사건에 큰 차이도 없고, 중국동포들은 일용직이 많아 평일엔 사건이 많지도 않다”면서 “살인 사건은 아직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경기도 수원시 일대에서 팔달산 토막살인 피의자 박춘봉의 범행에 대한 현장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박종민기자
◇끊이지 않는 '조선족 포비아'…통계상 근거 없어
그런데도 각종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술렁이는 곳이 중국동포 사회다.
2012년 오원춘, 지난해 박춘봉 사건을 비롯해 영화 ‘황해’처럼 조선족 청부살인 사건까지 발생하는 와중에 ‘범죄집단’으로 손가락질 받을 때마다 대림동은 숨을 죽여야 했다.
최근에도 ‘시화호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이 중국동포 김하일로 밝혀지면서, 다양한 중국음식으로 북적였던 대림동 중앙시장은 또다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중국동포 황성주(41)씨는 “한국 손님이 확실히 줄었다”면서 “매출에도 타격이 있다”고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 10월 입국해 대림동에 살고 있는 황옥란(46)씨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조선족들은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냐. 진짜 무섭다’를 대화를 듣게 됐다"며 “왜 싸잡아 욕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얼마전 기능사 자격증을 따 취직했다는 중국동포 현태룡(24)씨도 “인터넷 댓글은 일부러 안 본다”면서 “사람마다 다 다른데, 어떻게 같은 민족에게 침을 뱉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외국인 밀집지역의 범죄와 치안실태 연구(2012년)’를 보면,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매해 등록외국인 10만 명 당 검거된 범죄자 가운데 중국 국적은 2921명이다.
몽골과 미국, 캐나다, 러시아, 태국,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8번째다.
보고서는 “국내 외국인 중 중국 국적이 많아 범죄자수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인구 대비 범죄발생률도 높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전체 외국인의 평균치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므로 이들이 유난히 범죄가담율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자율방범대 팔 걷어…스스로 이미지 변신 노력
그럼에도, 스스로의 이미지 변신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중국동포들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거리에 담배꽁초 버리지 않기, 내 집 앞 쓸기 등의 캠페인은 물론 자율방범대 활동에도 중국동포들의 참여가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07년부터 자율방범대에서 활동 중이라는 중국동포 이태근씨는 “동네 치안 문제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돕고 싶다”고 말했다.
29일부터는, 그동안 따로 활동해온 중국동포 자율방범대 60여 명이 한국인 방범대와 통합 운영된다.
한국인 위주의 방범대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부분까지 섬세하게 살펴보자는 취지다.
대림파출소 최승천 경감은 “중국동포 자율방범대가 직접 동포들의 문제 해결에 나서면 훨씬 부드럽게 문제가 해결되고, 이미지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늘어선 음식점들이 화려한 불빛을 밝힌 대림동 중앙시장부터 가로등 불빛마저 희미한 으슥한 골목까지.
대림동 곳곳을 누비며 편견 깨기에 나선 그들이, 공존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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