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시선이 무서워 구급차도 안 타겠다고 한 중국 동포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힘써준 의료진과 대한민국에 정말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93번 환자 김모(64)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지 15일 만에 완치돼 지난 22일 밤 서울 상계백병원에서 퇴원했다. 김씨는 중국 동포로 동탄성심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다 병원을 무단 이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완치 판정받던 날 병상에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는 "병이 나았다는 것이 기뻤고, 그동안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했다. 김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두 아들을 중국에 두고 2008년 한국에 왔다. 이후 한 달 평균 100만원가량 받으며 간병인으로 일했다. 3년 동안은 집도 없이 한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다 2011년부터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인 서울 금천구 소재 방 한 칸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메르스 발생 당시 김씨는 동탄성심병원에서 폐렴 환자를 간병 중이었다. 이 병실에 15번 확진자가 입원했다. 김씨는 "그 환자가 메르스 환자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다만 그 환자 부인이 '남편이 열이 많이 나는데 어느 병원도 뚜렷하게 진단을 못 해 세 번 병원을 옮겼다'고 했다"고 기억했다. 그 환자가 메르스 확진자로 판명됐고, 김씨를 포함한 동탄성심병원 환자와 간병인들은 격리됐다.
이때 동탄성심병원은 구급차로 김씨를 금천보건소로 이송할 계획이었으나 김씨는 혼자 병원을 이탈해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내가 구급차를 타고 가기 싫다고 한 것은 맞다"면서도 "안 그래도 중국 동포에 대한 편견이 심한데 구급차까지 타고 가면 이웃들이 더 안 좋게 볼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무단 이탈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구급차를 타기 싫다고 하니 병원 관계자가 '그럼 다른 사람들 알기 전에 (대중교통을 타고) 가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난달 31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 날 몸에 이상 증세를 느껴 서울 영등포구 소재 복지병원으로 다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했다. 김씨는 "집 근처에도 병원이 있지만 중국 동포들이 많이 가는 병원이 편해서 그 병원에 갔다"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진료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동탄성심병원 간병인이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김씨는 "지금은 빨리 말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면서도 "그때는 내가 그 병원(동탄성심병원)에서 일했다고 말하면 진료를 안 해줄까 봐 겁이 났다"고 했다. 김씨는 "병원에서 '혹시 메르스 아닐까요'라고 물었으나 '이 정도로는 메르스가 아니다'는 답이 돌아와 이후에는 메르스일 것이란 의심을 안 했다"고 했다.
김씨는 7일 동안 이 병원을 오가며 통원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가 낫지 않았다. 김씨 동료가 이를 금천구 보건소에 말했고, 8일 검사를 통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상계백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병원 치료는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며 "그러나 내가 메르스 환자인 것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도망 다닌 사람으로 알려진 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중국 동포들은 작은 잘못을 해도 더 욕을 먹는다"며 "그땐 그런 시선이 무섭고 겁이 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건강하게 메르스를 이길 수 있었던 건 의료진의 극진한 노력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날 얼마나 무섭던지 눈물이 자꾸 났다"며 "그때 한 의료인이 '나는 장갑을 꼈다'며 손을 만져줬는데 그 손길이 정말 따뜻했다"고 했다. 김씨는 "앉아서 밥 먹을 틈도 없어 서서 밥을 먹던 의료진의 모습, 완치 판정을 받던 날 나보다 더 좋아해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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