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한국어를 잘 못하는 50대 중반 중국동포 아저씨였어요. 자전거를 타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크게 다쳤었거든요. 말도 안 통했지만 무작정 법원에 찾아온 이 아저씨에게 도움이 돼 보람이 컸습니다."
서울대 법대 일반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중국 산시성(山西省) 출신 왕양(王洋·23·여)씨는 1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최근 자신의 상담안내 사례를 소개하며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왕씨는 올해 4월 서울남부지법에 위촉된 중국어 민원 상담관이다. 이 법원에는 왕씨 이외에도 같은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첸링시안(全玲賢·29·여), 자오칭(趙靑·31·여)씨가 같은 활동을 한다.
공부하기도 바쁠 이들이 개인 시간을 쪼개서 민원 상담관에 지원한 것은 한국어와 한국 법률에 익숙지 않은 동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 출신 조선족인 첸씨는 "조상이 있던 나라라고 해서 무작정 오는 중국동포들이 많지만 법을 잘 몰라 어려움에 부닥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위해 법을 전공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업무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찾아온 이들의 사정을 듣고, 그에 맞는 법원 행정 절차를 안내하며 필요한 서류 작성을 돕는 일이다.
민원 상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은 임금체납이지만 형사나 가사 사건 등도 안내하고 있다.
아직 한국법을 배우는 학생 신분이라 전문적인 법률 지식이 필요한 사례가 생기면 한국인 민원 상담관에 연결해 주고 즉석에서 통역사로 나서기도 한다.
수당을 받기는 하지만 사실상 봉사활동이나 다름없는 민원 상담관 업무를 하면서 이들은 오히려 일을 통해 더 많은 도움을 받고 간다고 했다.
왕씨는 "외국인에게 법원은 고국에서도 어려운 곳인데 동포가 상담하고 안내하니 많이 신뢰하고 안도한다"며 "그런 모습에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첸씨는 "어린 시절 법조인을 꿈꾼 것은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아직 목표를 향해 가는 중인데도 이미 누군가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진정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톈진(天津)에서 2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서울대로 유학을 온 자오씨는 "상담 업무를 하며 한국의 법원 절차에 대해 많이 배우게 돼 오히려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고 겸연쩍어했다.
지난달까지 이들은 교대로 매주 하루씩만 상담했지만 방학을 맞은 이달부터는 목요일을 제외한 주 4회로 상담을 확대했다.
첸씨는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지 몰라 법원의 문을 두들기기 전에 이미 체념하는 이들이 많다"며 "법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원 상담관들은 앞으로 한국과 중국 사이의 법률 가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오씨는 "중국 변호사 경험과 한국에서 익힌 법률 지식을 토대로 중국으로 돌아가 한국인을 돕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왕씨는 "국제법을 전공 중인데 한국이나 중국 두 나라 어디에서든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첸씨는 "조선족으로서 북한에도 가깝고, 공부한 한국과도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조만간 통일이 됐을 때 남과 북, 그리고 중국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법조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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