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위장ㆍ비자 취득 자격증 학원 등 루트 다양화
고용한 사업주는 물론 근로자 본인도 피해
건설산업 현실고려한 불법인력 근절책 필요
# 건설사업주 A씨는 인근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중국 국적의 B학생을 자신의 건설현장에 고용했다. B학생이 건설업취업등록증이 없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유학생이 잠시 아르바이트한다는 데 괜찮겠지”라고 A씨는 생각했다. 그러나 때마침 나온 법무부 단속에서 ‘외국인 불법취업’으로 적발됐고 결국 A씨는 불법고용주로 벌금 등의 처벌을 받아야 했다.
# 국내에서 합판마루 시공을 했던 중국동포 C씨는 H2(방문취업제) 비자 만료가 다가오자 대림동의 비자 취득 자격증학원을 찾았다. ‘초단기 건설현장 100% 합법취업 가능’이라는 광고문구에 끌려서다. 학원이 권유한 대로 C씨는 80만원을 주고 창호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F-4비자(재외동포비자)를 얻어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단속에서 불법취업으로 적발돼 추방됐다. F-4비자 취득자는 건설현장 단순노무를 하는 게 금지돼있다.
# 불법체류 외국인 D씨는 한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기관에서 불법체류자에게도 교육 이수증을 발급해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D씨는 그곳을 찾아가 교육을 받은 후 이수증을 챙겨 건설현장에 취업했다. 해당 근로자와 사업주는 결국 모두 처벌받았다. 현행 ‘외국인근로자 고용법’은 불법 외국인력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200만원 이하 벌금과 3년 이하 징역 및 E-9제 참여 금지 등 처분을 내리고 있다.
불법 외국인력의 국내 건설현장 유입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불법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사업주가 피해를 입는 건 물론 외국인근로자 자신도 피해자가 되고 있다. 국내 건설현장을 향해 끊임없이 밀려드는 불법 외국인력과, 여기서 파생하는 또 다른 사회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현실적 외국인력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기사 3면>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현장에 불법 외국인력이 여러 방법으로 취업하며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건설현장에서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합법적 제도는 ‘방문취업제(H-2)’와 ‘고용허가제(E-9)’뿐이다. H-2는 주로 조선족 동포를 건축 현장에서 단기간 고용할 때, E-9는 태국ㆍ필리핀ㆍ베트남 등 국적의 근로자를 토목 현장에서 장기간 고용할 때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제도 이외에 다양한 ‘편법’이 기승을 부리며, 다른 사회문제와도 결부되는 역(逆)시너지 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열거한 사례 속 중국인 B씨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위장해 한국에 입국한 후 건설현장에 취업했다.
열악한 재정의 지방대학이 대학 평가에서 ‘국제교류부문’점수를 잘 받아 국가지원금을 확보하려고 외국인 학생 입학에 열을 올리는 점을 B씨가 이용한 것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불법 외국인력 문제가 고용노동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성격의 사회문제와 결합된다는 점에서 ‘고착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C씨에게 F-4비자 취득을 권유한 학원도 C씨가 건설관련 ‘기능사’ 자격을 추가로 취득한 후에야 건설현장에 단순노무 아닌‘기능직으로만’ 취직할 수 있다는 설명은 하지 않았다.
사단법인 동포교육지원단 관계자는 “건설현장 불법 외국인력 문제가 심각하지만, 절박한 중국동포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과대광고를 하고 나몰라라 하는 풍조 자체도 문제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설현장 불법 외국인력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불법 외국인력 규모 자체도 합법 외국인력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7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건설현장 외국인 근로자 수가 29만명에 달하고 이 중 불법이 24만명으로 추정된다. 불법이 합법보다 5배가량 많다.
불법 인력이 된 경로는 다양하다. 고용노동부 내부자료에 따르면 ‘사증면제(B-1)’, ‘관광비자(B-2)’, ‘단기방문(C-3)’ 등 세 가지 방법으로 국내 건설현장 등에 취업한 후 불법체류자가 된 경우가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건설현장 불법 외국인력을 한 번에 뿌리 뽑으면 건설산업이 붕괴할 수도 있는 만큼 연착륙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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