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반다문화 정서의 배경에는 민족우월주의부터 타인종에 대한 편견까지 다양한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력이 유입돼 우리나라 고용시장이 나빠졌다는 주장도 대중의 공감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다문화 정서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혐오를 표출하는 이들의 주장이 공감을 얻는 이유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 "개인 사례를 집단으로 확대…순혈주의도 영향"
실제 반다문화 관련단체 종사자 가운데 이주민으로부터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영숙 삼육대 교수가 학술지 '사회복지연구'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 '한국의 반다문화 담론 내용 분석'에 따르면 2013년 6월부터 10개월 동안 반다문화주의 활동가 21명을 인터뷰한 결과 인터뷰 대상자 가운데 8명이 이주민에게 개인적인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국제결혼 사기부터 외국인 직장동료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는 사람까지 그 사연도 다양했다.
외국인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한 활동가는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애들만 봐도 그렇고 동남아 애들이고 뭐고 외국 애들은 다 없애버리고 싶다"며 외국인 전체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실제 피해 경험이 객관적이고 냉정한 자세를 잊게 했고 극단적이고 반동적인 정서를 형성했다"면서 "당사자들은 개인 차원의 피해 경험을 사회 차원으로 공유하고 확산하는 데 열의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종종 순혈주의와 결부된다.
반다문화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민족의 정통성과 특수성을 강조한다.
1만 명의 회원을 둔 '다문화 정책 반대' 카페는 공식 입장을 천명한 글에서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다인종·다민족 사회를 경험하지 못했다"며 "대한민국은 결코 다문화 국가로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부 단체는 "반다문화가 한국 사회의 특성에 근거한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외국인 혐오(제노포비아)나 인종차별과는 거리를 두려 한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주장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유럽만 보더라도 민족과 인종 갈등이 사회 혼란을 부추긴다"며 "단일민족 국가의 장점도 많은데 마치 다인종·다민족 사회만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 "경제난과 치안 불안 앞세워 다문화에 대한 공포심 조장"
반다문화 담론의 주요 근거로 경제논리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임금 근로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한국인 근로자의 임금 상승을 막았고 취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
류병균 우리문화사랑 국민연대 대표 역시 "외국인 노동자로 인해 한국인에게 일종의 진입 장벽이 생겼다"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임금 수준도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주장이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돌려 본질을 흐리려는 움직임이라고 비판한다.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다문화연구센터장은 "반다문화주의자들의 주장은 사실상 한국 사회 내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라며 "외부에서 온 이주민은 내부의 불만을 표출하는 대상이 되기 쉽다"라고 풀이했다.
외국인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위험해지고 있다는 주장도 단골 메뉴다.
오원춘이나 박춘풍처럼 이주민에 의한 잔혹한 범죄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인터넷은 이주민(조선족) 때문에 불안하다는 글로 넘친다. 외국인 범죄가 내국인을 압도한다는 각종 통계도 인터넷을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실제 외국인의 범죄율은 내국인보다 낮다.
경찰청에 따르면 외국인 검거자 수는 2010년 1만9천445명에서 지난 2013년 2만4천984명으로 28% 늘었다. 외국인 범죄가 증가 추세이긴 하지만 전체 인구 대비 범죄율은 외국인이 1.59%로, 내국인 3.42%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김영숙 교수는 논문에서 "이런 현상은 '공포의 정치학'으로 볼 수 있다"며 "반다문화주의자들은 이주민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 전체의 피해라는 추상적 피해 의식과 함께 곧 그 피해가 우리 옆에 와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정부 주도의 급격한 다문화 정책이 반감 키워…생색내기 지원도 한몫"
정부 주도의 급격한 다문화 정책이 반감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은 2006년 관계 부처가 공동으로 '결혼이민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면서 본격화했다. 불과 10년 동안 각종 정책이 쏟아지다 보니 사회 인식이 이를 따라가기 역부족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단기간에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손쉬운 복지 정책에 치중하게 됐고, 공적 영역 전반에서 다문화 감수성을 증진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이주민을 위한 각종 생색내기용 사업은 다문화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과거보다 줄긴 했지만 여전히 다문화가정은 병설유치원 우선입학부터 공공주택 특별분양까지 각종 정책에서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여기에 민간단체까지 다문화가정을 위한 복지사업을 앞다퉈 내놓으면서 일반 시민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자극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는 '다문화 특례'라는 제목으로 전기세 할인과 고국 방문비 지원 등 사실이 아닌 정보들이 떠돌기도 한다.
지원 대상인 이주민도 이 같은 현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장은 "다른 국민보다 혜택을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라며 "우리도 똑같은 한국인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소득이나 연령 등 일반적인 기준에 맞춰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