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 속 폭염 겹친 인력사무소 가보니
기록적인 무더위에 일자리 대폭 감소
매일 새벽부터 10~20명 장시간 대기
지난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한 인력사무소 앞에서 일감을 찾이 못한 이들이 하염 없이 일거리를 기다리며 앉아 있다. 김혜진기자
"더워도 별 수 있간. 폭염이니 땡볕이니 해도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니 일할 곳이라도 있으면 고맙제."
지난 3일 오전 5시 30분 광주 광산구 월곡동의 한 인력사무소.
이른 새벽 공기마저도 뜨거웠던 이날 인력사무소 내부는 텅 빈채 더운 열기만 가득했다. 인력사무소를 찾은 10여 명의 일용직 근로자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듯 그나마 시원한 길가에 앉아 오늘은 일을 나갈 수 있을 지 걱정반, 기대반으로 대화를 나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력사무소를 찾는 사람들은 늘어났고 일감을 찾지 못한 이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역력했다.
불볕 더위가 이어지는 데다 휴가철이 맞물리면서 최근 들어 일자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이곳 인력사무소에 얼굴 도장을 찍는다는 고모(70)씨의 얼굴에도 불안함이 엿보였다.
사나흘 일감을 찾지 못했다는 고씨는 “여름철인 것 치고는 일거리가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의 외국인들까지 몰리면서 인력이 일자리보다 많아 올 때마다 ‘오늘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온다”며 “또 요즘같이 더울 때는 기력 좋은 젊은 사람들을 더 선호해 나같은 노인네들은 써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더운 날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면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고 너무 뜨거워 힘들지만 그래도 아들 내외 걱정 안 시키고 밥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하지 않겠느냐”며 “그래도 나 찾아주고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은 공사현장 뿐”이라고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일자리를 찾아 지난해 4월 광주에 터를 잡은 조선족 조모(64)씨도 고씨의 이야기에 공감의 뜻을 내비쳤다.
조씨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는데 조선족이라는 신분으로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 힘들기도 하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 인력사무소를 찾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요즘 폭염이라 해서 쉬는 현장이 많아지다보니 일이 더 떨어지고 있어 걱정인데 또 휴가철이라 일거리가 더 없어질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단 둘이서 산다는 그는 땡볕 아래서 꼬박 7시간을 일해야 근근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월세는 물론이고 전기비, 생활비, 식비를 하려면 매일 나올 수 밖에 없다”며 “더운데서 일하고 있으면 핑하고 머리가 어지러울 때도 있고 땀도 많이 나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항상 나를 걱정하는 아내를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 없다”고 가장의 부담감을 드러냈다.
이날 오전 6시가 채 되지 않아 10여명의 근로자들이 일터로 나갔다.
인력사무소 소장은 “그래도 오늘은 좀 적게 와서 다들 일자리를 받아갔다”며 “많을 때는 20명도 넘게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사무소랑 연락을 주고받아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월곡동 특성상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는데 최근에는 현장에서 기본적으로 H2 비자를 갖고 있는 외국인을 찾고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기 때문에 오랜 시간 기다리다 허탕을 치고 가는 이들도 많다”며 “그럴 땐 내가 다 미안하기도 한데 아마 오늘도 이따 느즈막히 올 것 같다”고 씁쓸히 웃으며 사무소로 들어갔다.
한 무리의 근로자가 빠지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또 다시 일용직 일이라도 나가볼 요량으로 인력사무소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사무실은 금세 구직 열정으로 후끈거렸다.
일용직 근로자 정모(58)씨는 "건강이 좋질 않아 더운날에 움직이는 것을 자제해야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 할 수 없이 이렇게 일감을 찾아 나오고 있다"며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인데 공사장에서 일을 하려면 죽을 맛이지만 그나마도 일을 마치고 일당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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