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인유치원생 참변’ 부모들 오열
“편히 잠들거라” 사고현장서 어린 넋 위로 10일 중국 산둥 성 웨이하이 시 타오자쾅 터널 내 사고 지점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화가 놓여 있다. 전날 이곳에서 발생한 유치원 통학버스 사고로 한국인 유치원생 10명 등 12명이 숨졌다. 웨이하이=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아빠, 나 오늘 유치원 가기 싫어요. 차가 너무 뜨거워요.”
2014년 12월에 태어나 30개월이 채 되지 않은 이상율 군(3)은 9일 오전 유난히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썼다. 이 군의 아버지 이정규 씨(37)는 10일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상율이가 뭔가를 예감했던 것”이라며 끝내 오열했다.
아빠는 아들을 달래 여느 때처럼 꼭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다. 유달리 입맞춤이 달콤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유치원에 다닌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던 상율 군은 9일 오전 중국 산둥(山東) 성 웨이하이(威海) 시 중세(中世)국제학교 부설 유치원 통학버스에 몸을 실었다가 화마(火魔)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씨는 “아이가 집을 나간 지 1시간도 안 돼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숯덩이가 되어 돌아왔다”며 “상율이가 지금이라도 손을 흔들며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믿기지 않는다”며 흐느꼈다.
13년 전 태권도 사범으로 와서 이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했던 김미석 씨(40)의 만 다섯 살이 채 안 된 딸 가은이도 이날따라 마른기침을 하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김 씨는 아침도 먹지 못한 가은이를 야단치다시피 해서 보냈다. 오전 10시 반쯤 유치원으로부터 전화로 통보를 받았다. 웨이하이 시 당국이 시신을 안치한 장소를 알려주지 않아 병원 세 곳을 아이 엄마와 함께 헤매고 다녀야 했다.
유전자 검사까지 마쳐 아이 신원이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고 ‘웨이하이 빈의관(장례식장)’에 도착한 것은 10일 0시 반. 가은이는 아침에 입고 나간 분홍색 옷이 불에 탄 채로 심하게 신체가 훼손돼 있었고, 한쪽 다리는 심하게 부러져 있었다. 통학버스 앞쪽에 불이 붙자 맨 뒤쪽으로 피했던 아이들은 불길이 덮쳐오자 피할 곳도 없이 참혹한 마지막을 맞았다. 김 씨는 딸 가은이 말고도 자신이 체육수업을 했던 아이 2명도 잃었다. 그 역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엉엉 울었다.
아버지 2명이 유족 대표로 나온 기자설명회는 참석한 취재진과 유족 모두 흐느끼는 가운데 1시간가량 진행됐다. 김 씨는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왜 이렇게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는지 신속하고 투명하게 조사가 이뤄져 아이들을 빨리 편한 곳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중세국제학교 이용규 이사장(71)은 “소중한 보배와 같은 아이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어 죄송하고 죄스럽다”며 “17년간 중국에서 학교를 운영하면서 안전을 가장 중시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며 사죄했다. 이어 “사고 버스 안에 소화기는 있었지만 유리창을 깰 망치는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예리윈(葉立耘) 웨이하이 시 부시장 겸 공안청장은 별도 기자회견을 갖고 “유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도 큰 관심을 보이며 철저한 사고 조사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통학버스 차량이 앞서가던 쓰레기 운반차량을 추돌한 뒤 버스에 화재가 발생했다”며 “운전사 과실 여부 등 정확한 사고 조사를 위해 베이징(北京)에서 전문가가 와서 감식을 했다”고 말했다. 전날 이 이사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를 조사했던 현지 당국은 터널 내 폐쇄회로(CC)TV 화면 등 사고 관련 영상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차량의 운전자들이 구조에 나서지 않고 사진이나 동영상만 찍어 올렸다는 비판에 대해 예 부시장은 “다른 차량이 멈춰 구조활동을 하다 터널에 많은 차량이 갇히는 경우 인명 피해가 더 클 수 있었다”며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 등은 옆 차로를 지나는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는 9일 오전 9시경 환추이(環翠) 구 타오자쾅(陶家.) 터널 북쪽 입구에서 약 460m 지점에서 발생했다. 사고 직후 쓰레기 운반차량 운전사가 신고해 9시 5분 소방차가 터널 입구에 도착했으나 현장까지 접근하는 데 7분이 더 걸렸다. 9시 12분 진화가 시작돼 9시 27분 끝났지만 결국 한국 국적 유치원생 10명, 중국인 유치원생과 운전사 등 총 12명이 숨졌다.
10일 오전 사고 현장은 불에 탄 차량이 철거되는 등 정리가 끝나 통행이 재개됐다. 하지만 북쪽 터널 입구에서 100m를 채 들어가기도 전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났다. 사고 현장은 물로 씻겨 있었으나 벽과 바닥이 불에 그슬리고 유리 등 작은 파편이 남아 있었다.
웨이하이 교민들이 차를 타고 가다 내려놓은 남쪽 터널 입구의 꽃다발이 희생된 어린 넋들을 위로했다.
웨이하이=구자룡 특파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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