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렴청화 연변특파원= 요즘의 중국은 그야말로 위챗(微信)공화국이다. 서비스를 개시한지 6년만에 단순한 모바일앱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안착됐으니 말이다. 올해 1분기를 기준해 월평균 9억 3800만명으로 집계된 위챗 사용자수가 이를 립증해준다.
음식을 주문하거나 관광지 해설을 원할 땐 QR코드를 쓱 스캔하고 썸(본격적인 련애를 시작하기 전의 미묘한 관계) 타고 싶을 땐 흔들기(摇一摇) 버튼을 누르면 된다. 일반 채팅은 물론이고 업무까지도 단체방 공유를 통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지페를 휴대하는건 번거롭고도 촌스러운 일이다. 위챗페이(微信支付) 하나면 되니까.
하여 요즘은 무수한 일상이 위챗과 혼연일체를 이루며 돌아간다. 편리한 면도 있지만 "어떡하지?" 고민하게 만드는 상황도 종종 불거진다.
얼마전 지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선 이같은 얘기가 나왔다.
지인 A가 "요즘은 위챗이 투표장이야.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내가 왜 투표해줘야 하는데?"라고 푸념하자 B는 "자기 말만 한 뒤 쏙빼는 사람도 꽤 있더라. 내 말은 무시하고 있으면서 모멘트엔 게시물을 올리는걸 본적 있지. 리기적인거니, 교양이 없는거니?"라 토로했다. C는 "모멘트를 욕으로 도배하는 사람은 또 어떻구?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를 피하려고 난 바로 차단했다지."라며 웃었다. 그러자 D는 "아무리 장사라지만 하루에 사진만 수십, 수백장씩 올리고 싶을까?"라며 성토했다.
혹자는 개인적 자유라 반박할지도 모른다. 허나 위챗은 이미 간단한 련락도구를 넘어 원스톱(一条龙)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생필품으로 발전했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 활동에 필요한 모든 것을 위챗에 담으려는 턴센트(腾讯)의 노력까지도 목하 진행중이니 향후 그 뉴대는 더 깊어질 것이다. 하여 위챗 례절은 더이상 간과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유감이라면 기술과 례절의 발전폭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데 있다.
삭제 여부를 확인하는 메시지는 야밤에 보내기 딱 좋다. 내가 한가하니까. 단체방에 끌어들일 때 상대방의 의견따윈 중요하지 않다. '옆구리 찌르기' 식으로 물건을 팔아보니 꽤 짭짤하다, 철판 깔아야 돈을 벌지. 사진은 나만 잘 나오면 된다, 내 공간에 올릴건데 뭐. 짜증날 경우엔 모멘트가 최고다, 보란듯이 욕해줄 수 있잖아. 무법자가 참 많다. 책임질 주체도 없다.
다시 일상을 상기해본다. 현실속 우리는 어떤 사람이였나.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반듯하게 인사하는 등 실제로는 대인관계의 례절을 무척 중요시한다. 주사를 부렸거나 부부싸움이 들킨 날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그뿐이랴. 하고싶어 하는게 아니라 남눈치에 연연할 때가 참 많다.
극과 극이다. 위챗을, 개인의 억압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자유공간이라 말하기엔 그 론리가 옹색하다. 개인적 자유의 고귀함을 내세우기엔 위챗에 만연해 있는 불쾌감이 너무 크다. 하여 최근에는 "한 사람을 알려면 모멘트를 보라"는 문구가 류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위챗은 개인적 공간이고 현실의 도피처로 기능할 수 있다. 다만 그 칼날은 번번이 '나'를 겨눈다는걸 알아야 한다.
결국 '교양'이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던 시인 폴 발레리는 분명 태엽인형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자률을 지킨 사람이였을 것이다.
"5번이 저의 조카입니다." 투표를 부탁하는 메시지는 오늘밤에도 받았다. 미안하지만 관심도, 투표할 생각도 없다. 늦은 밤, 꿀잠을 밟아준 그대라서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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