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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의 눈물①] 남편에게 "통장 조심하라"는 한국 사람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14일 18시50분    조회: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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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4시경 한국인 남편 김모(36) 씨가 베트남 출신 아내 A(30)씨를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 돼 파문이 일었다. /페이스북 영상캡처

사랑해서 왔는데 "돈‧국적 노렸다"…자녀도 차별대상

최근 두 살 아기와 함께 있는 베트남 출신 아내를 무차별 폭행하는 한국인 남편의 영상이 공개됐다. 가해자인 남편 김모(36) 씨는 지난 4월 베트남에서 2차례, 6월과 7월 각각 한 차례씩 아내 A(30) 씨를 폭행한 전력이 있었다. 12일 특수상해,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김씨는 이달 초 아들에게 까지 손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영상에는 엄마를 울부짖으며 우는 아들 앞에서 아내를 주먹과 발로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담겨 공분을 샀다. 그러나 직접적인 범행 영상이 공개된 것이 처음일 뿐 이주여성의 가정폭력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결혼이주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정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42.1%에 달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외국인 범죄피해자 지원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2017)에 따르면 결혼이주 외국인 범죄피해자가 당한 범죄 유형 중 가정폭력이 64%로 가장 높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따뜻해야할 보금자리에서 폭력에 눈물짓는 이주여성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더팩트>는 이주여성을 직접 만나 한국에서 이주여성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김지원(37, 베트남 이름 응우옌 티 하이) 씨는 2005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올해로 한국생활 15년차를 맞았다. /송주원 인턴기자
김지원(37, 베트남 이름 응우옌 티 하이) 씨는 2005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올해로 한국생활 15년차를 맞았다. /송주원 인턴기자

◆한국 생활 행복하지만 다른 이주여성은 "글쎄요"

수도권 내 한 다문화 관련 기관에서 통역 일을 하는 김지원(37) 씨는 2005년 한국에 왔다. 2004년 베트남 현지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올해로 결혼 15년차인 지원 씨는 현재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통번역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대학생이다. 지원(持源)이라는 이름은 지원 씨의 남편과 친정 부모님의 합작이다. 베트남 이름은 응우옌 티 하이(Nguyễn Thị Hai)다. 한국이름을 갖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은행이나 병원처럼 이름을 호명하는 곳에 가면 늘 이목이 집중됐어요.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 입에는 베트남 이름이 잘 안 붙잖아요.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가 아이 보호자를 찾으며 제 이름을 부르는데 발음을 잘 못했어요.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고요. 그래서 남편과 구상해 친정 부모님이 부르기 쉬우면서 뜻도 좋은 이름을 지었어요. 그래서 '지원'이예요."

스물 셋 나이에 밟은 낯선 땅에서 생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남편 없이 집밖을 나가기도 두려웠다. 그래도 지원 씨는 용기를 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걱정하는 남편을 설득한 끝에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했다. 아직 늦깎이 새내기 대학생이지만 석‧박사과정까지 밟아 전문적인 통번역가가 되는 게 꿈이다. 지원 씨의 남다른 의지와 추진력에 우려하던 남편도 한시름 놓고 응원하게 됐다.

"원래 우리 베트남 여성들이 독립적이고 책임감도 강해요. 가정에 충실한 것도 아내로서 일, 엄마로서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 거예요. 국제결혼중개업자들이 말하는 ‘시부모, 남편 말에 순종하는 착한 베트남 여자’라는 건 엇나간 거죠. 우리는 우리 일을 할 뿐, 누군가의 말을 무조건 듣고 사는 건 아닙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린 지원 씨지만 최근 발생한 베트남 이주여성 폭행 영상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한국생활이 오래된 만큼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들과 교류가 잦다. 그런 지원 씨가 가장 많이 본 사례는 알코올 질환을 앓는 한국인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성들이었다.

"아무래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남편들이 나이가 많잖아요. 그 나이까지 혼자 지내다 보니 힘든 일이 많았나 봐요. 그래서 알코올 중독자가 많고 술만 들어가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많아요. 외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했으면 잘 살아야 할 텐데 술을 못 끊고 주사를 부려요. 그 피해를 갓 열아홉, 스무 살이 된 아내가 다 받아내는 거죠."

이주여성을 향한 편견과 차별은 자녀에게 번진다. 한국 부모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어린이집 경쟁에서 다문화가정 자녀가 경쟁을 뚫기란 더 어렵다.

김 씨와 같은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인 B씨는 4년 전 자녀가 다니기로 한 어린이집이 돌연 입소를 취소했다. 서툰 한국어로 거듭 입소 가능한지 확인할 때마다 어린이집 측은 "원래 오기로 한 아이가 이사 가서 자리가 하나 빈다"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입학 날짜가 다가오자 B씨 아이의 자리는 다른 아이로 채워졌다.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정말 한국인 아이'였다. B씨의 아이도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가정학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주여성은 시부모와 남편이 한국 땅에서 유일하다시피한 버팀목이다. 그러나 일부 시부모와 남편은 이주여성이 세상을 향해 날갯짓할 ‘날개’를 꺾어버린다.

"보통 갓 성인이 된 여성이 한국에 와요. 그들이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와서 뭘 알겠어요? 시댁과 남편이 세상의 전부인 거죠. 한국어를 배우고 같은 이주여성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시댁과 남편이 이걸 싫어해요. 이유는 간단해요. 며느리 또는 아내에게 세상을 살아갈 날개를 달아주면 도망 갈까봐 그러는 거죠. 바람 필까봐 못 믿고 의심하려면 왜 결혼하고 부부의 연을 맺었을까요? 연애와 결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뢰잖아요."

이번 베트남 아내 폭행사건처럼 의사소통이 어렵고 치킨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기 앞에서 아내를 폭행한 가해 남성도 이해할 수 없다. "좋아서 결혼한 거잖아요. 국제결혼 특성상 대화가 힘든 것도 당연하잖아요. 그렇게까지 때릴 거면 대체 왜…" 통번역가로서 꿈을 말할 때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던 지원 씨지만 가정폭력에 노출된 이주여성을 볼 때마다 말문이 막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와 인터뷰하고 있다. /송주원 인턴기자" border="0" src="http://img.tf.co.kr/article/home/2019/07/13/201941971562949265.jpg"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display: block;" />
차홍숙(49)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 관악을 위원장이 12일 서울 관악구 한 커피숍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고 있다. /송주원 인턴기자

◆"조부모 북한‧외조부모 경상도" 같은 뿌리도 피하지 못한 차별

1997년, 중국 본토를 누비며 고객에게 관광지 한 곳이라도 더 보여줄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 가이드가 있었다. 그의 조부모는 북한, 외조부모는 경상도 출신으로 식민 지배와 전란으로 어지러운 틈을 타 중국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어가 더 자연스러운 양가 조부모 아래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2개 국어를 배웠다. 재능을 살려 가이드를 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그 남자는 한국인이었다.

1998년 한국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오게 된 차홍숙(49) 위원장의 이야기다. 조선족인 차 위원장은 지난해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에서 관악을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주여성을 비롯해 다문화가정을 위한 각종 지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의원님들 만날 때마다 '징징'대고 있어요. 다문화가정 정책 좀 많이 펴달라고요."

지자체를 넘어 정치권까지 폭넓게 활동하는 차 위원장이지만 이주여성이 받는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한국은 조부모의 고향이자 조선족과 같은 뿌리의 한국인이 사는 나라였다. 차 위원장은 사랑하는 남편과 화목한 가정을 꾸릴 기대로 가득 찼다. 그러나 갓 결혼한 차 위원장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따가웠다.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시댁은 아이를 가지라고 압박했다. 이유는 “아이라도 있어야 안 도망간다”였다. 국적과 돈을 바라고 한국남성과 결혼했다는 의심은 늘 그를 따라다녔다. 신혼의 단꿈이 가시지 않은 결혼 7개월 차에 상상임신을 겪기도 했다.

"뒤통수에 눈이 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가 내 뒤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게요. 스트레스가 엄청 났어요. 남편의 친구들은 제가 자리를 비우면 '통장 관리 잘하라'는 소리를 일삼았다고 해요. 저는 제 힘으로 돈을 벌고 싶어서 안 해본 일이 없어요. 공사현장에서 시멘트 바르는 일까지 했었거든요. 그래도 그들 눈에는 돈과 국적을 바라고 온 외국여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죠."

이제 지천명을 바라보는 차 위원장은 '조선족 새댁'에서 돌잡이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됐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지만, 이주여성이 살아가는 한국사회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컴퓨터를 처음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죠. 그런데 사람들의 인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어요. 여전히 '피부색과 언어가 달라도 같은 인간이다'라고 여러 번 말해야 돼요. 제가 아직도 이 말을 하고 살줄 몰랐네요."

베트남 이주여성 폭행 영상을 본 차 위원장은 다음날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펑펑 울었다.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으면서 옆에 있는 아이를 의식한 듯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피해 여성의 모습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문화위원장으로 일하는 그에게 낯선 광경은 아니었지만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비극이다. 한 번은 일면식도 없는 이주여성이 수소문해 그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 적도 있었다. 중국 한족 출신이었던 여성은 "동생, 나 좀 봐봐"라며 대뜸 옷을 벗었다. 몸에는 시퍼런 멍이 가득했다.

"이주여성들에게 묻고 물어서 저를 찾아온 사람이었어요. 남편이 툭하면 '너 본국으로 보낸다'며 폭력을 휘둘렀어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보란 듯이 '저 여자 한국인 아니다. 중국으로 강제 추방하라'고 당당하게 소리쳤대요. 경찰관 앞에서 바지를 벗고 상처를 보여줬지만 구두 경고에 그쳤어요. 한국말이 서툴러 더 이상 어떤 조치를 요구할 수도 없었죠."

차 위원장은 한국어교육에서 더 나아가 이주여성의 실생활과 맞닿은 가정 관련 법률, 재한 외국인법 등을 가르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소식을 들은 여러 변호사들이 강의 의향이 있다며 러브콜을 보내온 상태다. 차 위원장은 이주여성이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언어뿐만 아니라 법과 행정 지식 등이 필요하다. 아내를 때려 경찰이 출동한 사건 현장에서 가해자인 남편이 당당하게 강제 추방을 외쳤던 '갑질'의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폭행 영상이 공개되자 국제결혼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남성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피해 여성이 국적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영상물을 남긴 것 아니냐는 2차 가해성 댓글이 속속 등장했다. 차 위원장은 "피해 여성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좁은 방안에서 소리도 제대로 못낸 채 맞아 전치 4주가 나왔다. 하마터면 사망할 수도 있었다"고 분노했다. 지난 한주 간 피해 여성이 친정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 사실, 가해자의 전처라고 주장하는 익명의 작성자가 피해 여성이 내연녀였다는 글이 알려지자 "혹시"라는 2차 가해성 댓글은 "역시"로 기정사실이 됐다. 어린 자녀 앞에서 얼굴도 들지 못한 채 폭행당한 여성의 모습은 기억에서 지운 듯 “역시 한국 국적을 바라고 온 것”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이주여성 절반이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는 정부 통계에 범죄 현장을 담은 영상이 공개됐는데도 국적 취득을 두고 갑질을 한다. 그런 이들부터 이런 한국 사회가 국적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가치가 있는지 되돌아볼 때다.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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