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모자에 마스크, 단단히 끈을 조인 등산화를 신고 연신 담배를 태우며 50대로 보이는 남성 둘이 대화를 나눴다. 23일 오전 4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새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하루다.
하지만 남구로역 앞은 본래 최소 수백명에서 최대 1천여명까지 모여 하루의 로동을 사고파는 곳이였다. 남구로역 2번 출구 앞에서 리어카에 목수장갑, 망치, 줄자 등 건설현장에 필요한 물건을 4년째 팔아온 김춘화(가명·53)씨는 "보통 4차선 도로의 반을 차지할 만큼 사람이 모이기도 했다"면서도 "요즘 건설업도 힘든지 지난해보다 사람이 통 줄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에 장마까지, 일이 없다"
보통 건설 현장의 일감이 몰리는 시기는 4~9월이다. 추석이후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일감이 줄어든다. 바람이 세지고 땅에 찬 기운이 스며들면 건설현장은 안전과 부실시공에 주의해야 한다. 얼어붙은 땅에 콩크리트작업을 하기도 마땅치 않고 동절기에는 콩크리트강도가 크게 약해지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동절기가 되면 안전사고와 부실시공 예방을 강조하며 전국 건설현장 안전점검을 한다.
"내가 일요일 빼고 인력시장 서는 날마다 여기 나왔어요. 그런데 9월 들어 딱 6일 일했습니다. 8월에도 마찬가지였고. 작년에는 안 그랬거든. 그때는 쉬는 날이 별로 없었지. 이번 주에도 월·화·수 오전 4시 30분이면 딱 나와 있었는데 어제 하루 일했어요. 오늘은 어떨지 봐야지."
일을 계속하기 위해 담배도 끊었다는 그는 작고 단단한 손을 내밀며 "앞으로 이 손을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추석 지나면 일감 더 없어질 것"
조선족·한족 로동자를 상대로 공구잡화를 파는 최창수(가명·47)씨는 "여기는 주로 조선족이 많은데, 요즘은 일감이 많이 없어보인다"면서 "사람이 많아야 장사가 되는데, 영 마땅치 않아 오전 6시도 안 돼서 가게문을 닫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가게에서 면장갑 다섯컬레를 산 리필규(가명·52)씨도 "8월보다 9월이 더 한 것 같다, 추석 지나면 현장이 줄어들 텐데 이 장갑을 몇개나 쓸지 모르겠다"라고 말을 보탰다.
최근 한은의 '2020년 2분기 기업경영분석'이 국내 건설업 2분기 매출액 증가률은 -3.1%로 지난 1분기 1.1% 대비 4.2%p나 떨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건산연은 코로나19 재확산이 올 년말까지 지속하면 올해(2020년)와 래년(2021년) 건설투자가 각각 1조 9천억 원, 3조 2천억원이 추가 감소한다고 봤다.
20년째 남구로역에서 일자리를 구해왔다는 김필규(가명·58)씨는 "한국인이 1명이면 저쪽은 3~4명이 달라붙어서 일을 구한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가격도 떨어뜨린다"라면서 "중국인 불법체류자들 몰아내야 한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기술자를 제외하고 잡부들은 보통 하루 일당 13만 원~14만 원을 받는데 이를 12만 원으로 낮춰놓은 게 조선족·한족 로동자들이라는 불만이다. 그는 인력시장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오전 6시가 되기 전까지 마땅한 일감을 찾지 못해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에 "처음에 마스크를 잘 안 쓰고 나와서 오전 4시부터 여기에서 마스크를 나눠주기도 했다"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보다 사람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수백명이 모여있어 방역을 철저히 한다"라고 설명했다.
남구로역에서 10년째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리운수(가명·49)팀장은 "지난해보다 경기가 안 좋은 건 사실이다. 거기에 코로나·장마가 겹쳐 현장 진행이 늦어졌다"라면서 "추석 이후에는 더 좋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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