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05년 7월18일
약 8개월 후, 한국에서 화상을 입은 어린이들을 돕는 <어린이 화상환자 후원회 비전호프>라는 단체와 장로님이 연결을 주선했습니다. 이 단체의 도움으로 KBS 병원24시에 방영되면서 각계 각층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다시 한국으로 치료받으러 가게 되였습니다.
한국 가자마자 금방 수술 받으려고 했는데 그간 여러차례의 수술로 앓고있었던 요도염으로 열이 심하게 오른 상태에서는 수술 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입원하고 염증 치료를 하면서 체력회복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주일간 치료 받고나서 교수님이 진찰후 수술 일정을 잡을수 있었습니다. 한강성심병원 오석준 교수님과 서 선생님이 저를 담당하셨습니다. 치료 받아야할 부분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부위를 이식할 피부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럴때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상반신만 다쳤더라면 다리의 피부를 마음껏 떼어다 이식할수 있을텐데, 정말 반만 다쳤더라면 딱 반만 다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가, 얼굴만 아니 손만 다치지 않았더라면.. 욕심인줄 잘 알고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욕심은 끝없이 커져만 갑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저를 받아드리기로 했습니다. 더도 덜도 다치지 않은 지금 저의 모습이 딱 려나라는것을 기억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수축되어 붙어버린 겨드랑이와 팔꿈치를 떼어주는 첫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비교적 성공적이였습니다. 움직일수 없었던 팔을 어느정도 올리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전호포는 저에게 참 고마운 곳이였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되었고 또 안현주(비전호프 대표) 이모를 비롯한 많은 좋으신 분들도 만나게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화상을 심하게 입었지만 저처럼 전신이 다친 환자는 드물었습니다. 한편으로 속상하기도 했지만 많은 친구들이 생겨서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보고싶었던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지선 언니는 저처럼 뜻밖에 사고로 화상을 입었지만 낙천적인 성격으로 밝게 살아가는 한국의 유명인사입니다. 전에도 지선언니 이야기를 많이 듣고 책도 보고는 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놀랐습니다. 저처럼 똑같이 화상을 입었지만 언니는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용감하게 세상과 마주하였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언니말대로 언니는 '눈에 보이는 희망'이였습니다. 참 씩씩한 언니 모습이 저도 꼭 나을수 있다는 희망을 두눈으로 확인할수있었습니다. 그리고 언니를 통해 말로 표현할수없는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바깥세상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여름에 짧은 반팔티를 입고 외출도 해보고 밥 먹으러 갈때 모자도 벗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집가까이에 있는 교회에도 혼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중국이였더라면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지요.
김정수 신부님이랑 명동성당 앞에서.
입원 치료기간이 끝나고 퇴원해서 나와있을때에는 가리봉 이주노동자의 사무실에서 지냈습니다. 고맙게도 이 곳 김정수 신부님이 한국에서 치료 받는동안 여기서 지내게끔 해주셨습니다. 가끔씩 집 안에서만 지내는 제가 답답해 할가봐 시간 나실때마다 저를 데리고 밖에 나와 많은 곳을 구경시켜주시군 했습니다. 또 저한테 노트북도 선물해주셨습니다. 할수 있는게 많지 않는 저를 위해 혼자서도 충분히 무언가를 배우고 할수 있으니 용기내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을 비롯한 그곳에서 알게 된 박마리아 수녀님, 현정이모, 영순언니 등등 많은 분들을 만나서 참 행복했습니다.
(계속)
전신화상 최려나의 일기(1)
전신화상 최려나의 일기(2)
전신화상 김려나의 일기(3)
전신화상 최려나의 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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