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이 눈앞인 5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조무래기들과 함께 하며 동심으로 나이를 잊은 중년교원이 있다. 잘 숙성이 된 와인처럼, 농익은 이 가을의 과일처럼 진하고 향긋한 꽃중년의 향기를 피워올리는이가 바로 연변대학 사범분원부속소학교 5학년 5학급 담임 김순태교원이다. 단정한 옷차림새, 씩씩한 걸음걸이와 시원시원한 말투, 끓어넘치는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 그리고 책임감?… “나이는 수자에 불과할뿐”이라는 생각이 내내 뇌리를 감돌았다. 녀성교원이 많은 소학교에서, 그것도 어린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씨름해야 하는 담임사업을 30년째 계속하고있는 김순태교원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반해” 오늘까지 달려왔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소학교 학급담임사업은 수십명의 어린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품고 돌보면서 교육을 병행해야 하기에 고도의 정력투입을 필요로 한다. 젊은 교원들도 저어하는 경우가 많고 더우기 남성교원들은 쌀알의 뉘처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하지만 매번 학교에서 담임사업을 맡기면 김선생님은 “내가 아직도 쓸모 있구나, 조직에서 믿어주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선뜻 림한다고 한다. 1978년 흑룡강성 목릉시의 한 향촌소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서부터 1994년에 사범부속소학교에 전근해 지금까지 그는 30년의 담임교원사업을 이어왔다. 그의 품에서 소학생활을 마친 학생이 수백명, 스스로 “마음의 부자”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교원사업을 즐기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겁니다.” 교직을 천직으로 여긴다는 그는 늘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보고싶어 아침에도 출근을 서두르게 된다고 한다. 교실을 깨끗이 청소해놓고 설레임과 기대를 안고 아이들을 기다리며 시작하는 하루하루가 그렇듯 행복하고 신난다는 그다. 30년 경력의 담임교원은 아이들 교육에서 어떤 비결을 가지고있을가?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 사랑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강압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아요.” 김순태교원은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대하고 특히 “못난” 학생일수록 더 따뜻하게 대한다고 한다. “문제교원이 있을뿐 문제학생은 없으며 어떠한 스승이 있으면 어떠한 제자가 있다”는것이 그의 지론이다. 종이쪼박이 보이면 말없이 주으며 무언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특히 학생들과의 약속을 중히 여긴다. 금연교양을 하면서 아이들과 손가락을 걸고 금연을 약속했고 바로 그 순간부터 담배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그들이 즐겨보는 예능프로를 찾아보기도 하고 활동에도 늘 함께 한다. 남성교원 특유의 대범함과 활동적인 성격의 영향까지 받아 그의 학급은 전교에서도 가장 활기차고 단합된 학급으로 정평났다. “우리 선생님은 친구 같아요.” 학급장 리성한학생의 말처럼 그는 아이들과 함께 사탕알을 녹여먹으면서 행복해하는 "키다리아저씨" 같은 친구였다. 아이들이 따를 때는 온 세상을 혼자 가진것처럼 행복하고 교육이 생각대로 효과가 나지 않을 때는 피가 마를 지경으로 애간장이 타지만 “그것이 사는 멋”이란다. 그는 “교원사업에 지름길은 없다”면서 “오직 교직에 애착이 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해내기 어려운 직업”이라고 개괄한다. “한낱 생존에 필요한 밥줄 정도로 생각하면 견지하기 어렵다”는것이다. 로교원이지만 언제나 활력으로 차넘치고 현시대교육리념을 실천하며 모범적인 삶을 보여주는 김순태교원을 두고 학교에서는 "우리 학교의 보배이자 재부이며 기치"라며 극찬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윤택한 가정살림을 위해 한국행을 한 안해의 몫까지 감당하며 18년간 홀로 두 딸을 잘 키워 대학으로 보냈고 지금은 류학까지 마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활약하고있다.“교육자로서 내 자식도 바로 키우지 못하고서야 어찌 남의 자식을 잘 교육할수 있겠는가?” 그의 삶의 신조였고 행동력이였다. 매일 운동으로 건강을 가꾸고 아이들과 동심을 나누면서 젊은이들 못지 않은 정열로 신나게 교단에 올라서는 김순태교원, 그에게서는 완숙의 미를 보여주는 꽃중년의 향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연변일보 김일복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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