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홉자식 훌륭하게 키워주신 우리 어머니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1월15일 14시48분    조회:413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953년 아홉자식들과 함께 있는 아버지, 어머니(뒤줄 오른쪽 첫벗째 13세 나는 작자 김영자)

나의 어머니는 93세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림옥련이라 부르는 어머니는 글공부를 하지 못해 평생 자기 이름을 써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러나 빈궁속에서도 아홉자식을 낳아키워준것만도 고마운데 공부까지 시켰다. 자식농사를 잘해 최대 행복을 느끼는 어머니이시다.

우리 집안에는 박사생지도교원, 교수, 과학연구원, 고급공정사, 고급회계사, 농업전문가, 중소학교 교원, 의사, 운동선수, 체육심판원, 기업가 등등 여러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심혈이 슴배여 있다.

연변 로투구 《동궈》라는 마을에서 맏딸로 태여난 어머니는 18세때 15세 나는 아버지와 결혼했다. 그때 아버지는 룡정 영신중학교 학생이였다.

기차 타고 하이야에 앉아 부자집 며느리로 된 어머니는 결혼한 이튿날부터 온 집안 식구들의 밥을 짓고 빨래를 해야 했다.

그 이듬해 첫아기가 태여났고 아버지가 38세, 어머니가 41세때가 되여서는 아들 셋에 딸 여섯 아홉 자식을 두었다.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시는것이 《아는것이 힘이고 배워야 산다》이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일곱살이면 학교에 보내 공부시켰다.

인물체격이 좋고 정직하고 지식도 있는 아버지와의 만남은 어머니에게 있어서 더 없는 행복이였다. 아버지는 뽈도 잘 차고 달리기도 잘하여 당시 간도성선수로 뽑혀 《만주국》대회에 참가한적도 있다.

할아버지는 일찍 연길 조양천의 한 골안에서 땅 개간하여 10헥타르 되는 밭을 일구었고 딸 셋에 아들 둘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중의 막내였다.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할아버지는 자식을 거느리고 룡정에 이사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첩을 두고 돈을 흥정망정하게 써 빚까지 걸머쥐였다. 중학교졸업을 두달 앞두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빚을 갚으려고 다시 골안에 갔고 3년 농사를 지어 할아버지 빚을 다 갚았다.

큰아버지는 약담배를 피워 40세에 세상을 떠나갔다. 하기에 아버지는 약담배를 피우고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

1937년 아버지는 조양천 철도기무단에서 일을 시작하고 광복후에는 도문철도분국에 전근했고 1951년부터는 길림철도관리국재무과 과장으로 있었다.

해방직후 아버지는 로임으로 통옥수수를 타올때가 있었다. 비록 어머니도 피복공장에 다녔지만 로임이 얼마 안되였다. 아이들을 잘 먹여야 공부할수 있다는 도리를 알고있는 어머니는 통옥수수로 엿을 만들어 팔았고 두부를 해 팔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머니는 엿과 두부를 함지에 담아 시장에 가 팔아 쌀을 사가지고 왔다. 우리 형제는 숙제를 다 하고나면 힘이 자라는 대로 어머니를 도와 나섰다. 5살인 나는 철길옆에서 콕스를 주었고 언니들은 솜실을 뽑아서는 양말이랑 장갑이랑 떴다. 나는 6세 되는 해에 언니들한테서 뜨개질을 배워 양말이랑 떠 신었다.

동지섣달 눈내리는 어느날 아침, 어머니는 고무신을 신고 솜바지도 입지 못한 채 두부를 이고 얼어붙은 강을 지나다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함지를 떨어뜨렸다. 그바람에 두부가 다 헤여져 팔지 못해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 슬피우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우리는 멍이 든 어머니의 무릎을 어루만지면서 엉엉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매 학기 방학할 때면 아버지는 《너희들의 통신부를 가지고 내옆에 앉으라》하시면 우리는 통신부와 최우수생, 우등생, 개근생 등 상장을 아버지께 드린다. 학습성적이 낮으면 아버지의 꾸지람을 들을 가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였다.

오빠가 고중 2학년이 되던 해의 일이다. 계속 우등을 하던 오빠가 우등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원인을 캐물으며 오빠를 비평했고 옆에 있는 우리도 많은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하에 우리는 늘 여러 가지 상장을 받았고 중학교, 대학교에 척척 붙었다.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큰언니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18세때 소학교 교원이 됐고 둘째 언니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학교교원으로 있었다. 두 언니가 출근하게 되면서 우리집 생활이 많이 펴이게 되였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배워야 산다는 도리를 알려주었고 어머니는 우리 집 생활부장으로 알뜰살뜰 살림을 잘하셨다.

아침마다 아버지와 아이들의 점심밥을 사고나면 어머니한테는 누룽지만 남았다. 로임이 나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닭고기랑 사오는데 솥에 물을 많이 붓고 끓인다. 식구가 많다보니 어머니한테는 뼈만 차려졌다.

집에서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여 아버지는 토요일 저녁이면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구경 떠난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가지런히 서서 걸어가시는것을 보고 우리는 자못 흐뭇해 했다.

문화대혁명때 아버지는 일본특무로 몰려 호된 매를 맞았는데 얼마나 맞았는지 둔부수술을 해 땅땅하게 얽힌 살덩어리를 10개나 빼냈다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들의 인생길에 방향을 비추어주는 등대로 우리들의 본보기였다.

보고싶다 어머니, 아버지, 머나먼 나라에서 편히 주무십시오. 

장춘 김영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흔 기자 = 어린시절 한족가정에 입양됐던 조선족 조향염씨가 현재 생모를 애타게 찾는 사연이 본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 7월 30일 오전 조향염씨는 기사를 읽고 전화했다는 길림성 부여시 도뢰소(陶赖昭)진 홍성촌의 방금녀씨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서 방...
  • 2014-08-20
  •   “저는 마음 잇기 차대의 성원입니다. 택시에 두고 내린 물품을 임자한테 되돌려주는것은 저의 응당한 책임입니다.” 19일, 17년간 도문시에서 택시운전수로 근무하면서 선후로 15만원에 달하는 금품과 수십대의 핸드폰을 주어 임자를 찾아 돌려준 양계걸(53세)은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2000년 여름, 한 ...
  • 2014-08-20
  •   지난 12일 한화 1550만원(9만원좌우)를 택시에 두고 내렸다가 세시간만에 되찾은 김승호(61세)씨는 연길 택시운전수 왕소(王潇)의 아름다운 소행에 련신 고마음을 표했다. 한국에서 귀국한지 이틀째 되는 날인 12일, 김승호씨는 친구한테서 꾼 돈을 돌려주려고 훈춘으로 떠났다. 아침 7시 50분경에 그는 동생과 함께...
  • 2014-08-20
  •   “자식들이 다 쓸데 없어유... 늙어서 손에 갚힌게 없으니 이 모양이 잖아유...” 어느 김씨로부부는 한때 유족한 생활을 누리다가 정년에 되자 저금도 없는데다 안로인이 시름시름 앓기까지 해 늘 자식들 넉두리만 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양로혜택으로 점점 자식한테 기대려는 로인들이 ...
  • 2014-08-19
  • 왕청현 공상은행에는 현재 50여명의 리퇴직인원이있다. 한때 이 은행에서는 “자관회(自管会)”라는 방식으로 로간부를 관리하였는데 자아관리에 애로가 많았고 누구도 관계하지않는 상태로 되여 로인들이 흩어지게 되였다. 10년전 이들은 전주 은행계통에서 처음으로 로인협회모식을 인입하여 관...
  • 2014-08-18
  • 《꽃타령》을 열창하고있는 최홍련(오른쪽) 최종화(왼쪽) 자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펼친 《로인절맞이 우리노래대잔치》프로에서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오성촌에서 온 74세나는 최홍련과 최종화(70세) 두자매는 민요 《꽃타령》을 성수나게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들 자매가 이 노래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
  • 2014-08-18
  • 18일 오전 10시경, 연변천지예술단에서는 “절씨구씨구 세월 좋아~”가 흘러나온다. 남들이 다양한 문예공연들로 로인절을 축하하는 가운데 이들은 절로 “세월 좋아”를 부르면서 춤판을 벌리는것이다. 가족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며칠 남지 않은 공연준비에 다급해진것이다...
  • 2014-08-18
  • 훈춘 농장로인협회의 미담   “우리 농장의 로인들은 그야말로 보배랍니다. 지금 전 주의 조선족농촌마을의 형편은 서로 엇비슷하지 않습니까. 젊은이들과 장년들은 모두 로무송출에 나서다보니 마을에는 로인과 어린이들만 남아있지요. 그러다보니 마을을 지키고 가꾸는 중임이 로인들의 어깨에 놓여졌지요.&rdq...
  • 2014-08-18
  • 90세 고령의 시아버지를 살뜰히 보살펴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킨 며느리가 있습니다. 연길시 하남가두 춘광사회구역의 마귀금녀성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올해 67세인 마귀금이 아침에 일어나 하는 첫 번째 일은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것입니다. 이어 따뜻한 음식을 시아버지에게 대접하고 세수를 시키고 면도질을 ...
  • 2014-08-15
  •   1일,연길시적십자회에서 한국에 무료수술치료를 보냈던 6명의 선천성심장병어린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귀국했다. 연길시적십자회에서 한국 구세군, 한국 동의성단원병원과 련합하여 전개하는 이 “적십자심장병어린이구조항목...
  • 2014-08-14
  •   아껴 먹고 아껴 쓰며 모은 돈 선뜻이 기부 지진재해구를 향한 연변인민들의 자발적인 사랑의 손길이 이어지고있다. 5일,연길시 공원가두 원신사회구역의 김주일로인(84세)이 적십자봉사소를 찾아 로당원으로서 운남 로전지진재해구에 저그마한 성의라도 표하고싶다며 성금 200원을 내놓았다.료해한데 따르면 김주일로...
  • 2014-08-14
  •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12일, 40여명 로인과 15명의 봉사자가 탄 뻐스에서 신나는 노래소리가 울려퍼진다. 연길시 진학가두 네잎클로버자원봉사협회가 로인절 30돐을 맞아 독거로인들과 “연길구경”에 나선것이다. 9시경, 뻐스는 연길시 진학가두판공실앞에서 출발해 첫 지...
  • 2014-08-14
  •  “1984년 8월에 주로인협회가 정식으로 설립됐고 또한 8월 15일을 연변의 로인절로 정했습니다. 올해 우리 주에서는 문예공연, 좌담회, 로년사업 30년 대사기, 화책, 정책자문 등 일련의 활동으로 로인절을 맞이하게 됩니다”고 7일 주로인협회 전평선회장이 로인절 30돐을 맞으면서 우리 주에서 펼치게 될...
  • 2014-08-14
  • 연길시공원소학교 3학년 3학급 담임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이 더운 여름 선생님 학급의 동가영학생이 방학간의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저의 단위에 와서 사무실을 청소하고 책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면서 저의들의 손을 도와주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마냥 뛰여놀고 싶을텐데 그래도 저의 단위 선생님들의 심부름도 생글생글...
  • 2014-08-13
  • 만성신부전증(뇨독증)으로 한국 서울성모병원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있던 가수 송경철씨가 석달간의 국외치료생활을 잠시 접고 지난 8월 8일 연길로 돌아왔다. 12일, 연길시 공원가의 한 세집에서 송경철가수를 만났다. 거액의 병원치료비때문에 진달래광장부근에 있던 살림집을 팔다보니 귀국해 부득불 조촐한 세집생활...
  • 2014-08-13
  • 10일 연길시 10명의 로인들은 팔도 강락장수원 홍명옥원장의  초청에  복숭아 두광주리를 사가지고 팔도로 향하였다.  홍원장은 오래전 같이 글쓰던 통신원들이라고 잊지 않고 로인절도 곧 돌아오는데 물좋고 공기좋은 곳에 와서하루를 즐기라면서 자리를 마련하였다. 홍원장은 장수락원의 50여명 로인들 보...
  • 2014-08-13
  • 지난 3월, 뻐스 탈 때 있은 일이다. 차에 오르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짧게 전화 받고 급한대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마음으로 콩나물시루속 같은 차안을  비집고 올라갔다. 오른손으로 공중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서서 정신줄을 놓고있는 사이 도적이 손쉽게 웃옷호주머니의 쪼르래기를 활짝 열고 스...
  • 2014-08-12
  • 8월 8일 연길공원 남쪽광장은 한복차림에 알룩딸룩 모자를 쓴 로인들로 붐비였다. 이날 연길시 진학가두에 자리잡고있는  흔흔로인락원에서 축수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고령로인들이 조용히 모이여 자아양로를 해오는 흔흔로인락원은 지금  60여명으로 80세이상 로인이 30여명 년장자는 92세이다. 연변로인절을 ...
  • 2014-08-12
  • 닷새전 서울에서 악몽 같은 비보가 갑자기 날아왔다. 한국 카톨릭대학 서울성모병원에서 골수의식 치료를 받고있던 박운봉교수가 엄중한 합병증으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는것이다. 몇달전 모두가 큰 기대를 안고 한국으로 병치료를 떠나는 교수님을 배웅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 2014-08-12
  •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 단장 황성렬씨   “우리 합창단을 전문화된 합창단으로 승격시켜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싶습니다.” 11일,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퇴직하고 2013년 3월에 퇴직일군들로 구성된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을 설립한 황성렬(65세)단장을 ...
  • 2014-08-12
‹처음  이전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