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시 조양가두 련의사회구역에는 어릴 때 입양한 오빠의 아이를, 그것도 지력장애에 당뇨까지 앓고있는 조카를 십여년간 자기 자식처럼 살뜰히 키워준이가 있다. 그가 바로 남영자씨(48세)이다.
“자기 아이 둘을 키우면서 지력장애조카까지 돌본다는것은 쉬은 일이 아니죠.”
남영자씨를 잘 알고있는 한 지인이 안타깝게 하는 말이다.
사연은 이러하다. 농촌에 살고있는 그녀의 오빠가 아이가 없어 고민하던 끝에 수소문하여 한돐이 지난 녀자아이를 입양하였다. 그런데 오빠가 일본에 가고 올케가 아이를 나몰라라 하는바람에 할머니가 아이를 도맡다싶이 키웠다.
문제는 믿고 의지하던 할머니가 사망하면서부터이다. 당시 15살 좌우밖에 안된 그 아이는 타격을 받아서인지 정신질환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쓰레기더미도 뒤지고 남이 먹다버린 음식을 주어먹기도 하였다.
남영자씨는 “아이한테 무슨 죄가 있겠느냐”며 그때로부터 아이를 자기집에 데려다 키우기 시작했다.
지력장애도 문제지만 손버릇까지 좋지 않아 그 애는 그야말로 집안의 화근덩어리였다. 값비싼 목걸리를 눅거리로 내다 팔지 않으면 돈을 훔쳐 간식을 사먹군 하였는데 막을 방법이 없었다.
“참아야죠. 지력장애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해야죠… 하지만 매일 함께 지내는 6살 난 늦둥이아들이 나쁜 습관을 보고 배울가봐 걱정이예요…”
인정이 많고 배려심이 많은 남영자씨는 결코 그 아이를 내팽개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가 불쌍하여 친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몰부으면서 때로는 아이처럼 다독이고 얼리고 때로는 엄하게 가르치고 일깨우며 키워나갔다.
십여년 세월이 흘러 이젠 그 아이도 열댓살 소녀로부터 32살 처녀로 나이를 먹었지만 지력만은 여전히 6살 아이 정도이다.
게다가 한달에 쓰는 약비만 해도 1000여원, 한번에 석달씩 병원에 들어갔다 나오면 만여원의 의료비가 훌쩍 달아난다고 한다.
이는 남편이 일본에 돈벌러 갔다왔지만 고정직장이 없는 그들로서는 앞날이 막막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녀의 오빠가 미안한 나머지 “고맙다. 이젠 그만해도 된다”며 “시설에 보내달라”고 하지만 돈도 돈이지만 키워온 정도 정이라 차마 생소한 곳에 보내고싶지 않다는 그들이다.
“힘이 자라는대로 돌보아야죠. 제 조카니깐요…”
부모도 키우기 힘들어 포기한 한 아이를 남다른 정성으로 열심히 돌보고있는 남영자씨부부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선행으로 전해지고있다.
연변일보 차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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