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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지킴이 진용선(왼쪽) 강원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이 2005년 중국 길림성 왕청현 길상촌에서 조선족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아리랑을 녹음하며 기록하고 있다. 정선아리랑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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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풍경] ‘정선아리랑 가사사전’ 낸 진용선씨
20여년 발굴 외길…한·중 발품 5503수 기록
‘아리랑 사전’이 나왔다.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이 최근 내놓은 <정선아리랑 가사사전>이다. 사전은 진용선(52·사진) 강원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의 땀과 열정의 결실이다. 진 소장은 1991년부터 2013년까지 정선지역과 아리랑 흔적이 남아 있는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마을 등에서 조사한 정선아리랑 가사 2만3000여수 가운데 중복된 가사를 뺀 4993수와 나라 안팎의 문헌과 음반 속 가사 등 5503수를 사전에 담았다. 토속단어·사투리·특수어 등도 해설과 함께 담았으며, 노래를 부른 이의 이름과 주소, 채록일까지 실렸다.
“소리가 너무 좋아, 정선아리랑에 청춘을 다 바쳤습니다.” 진 소장의 인생은 아리랑 인생이다. 2012년 12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을 때 이재열 정선군청 아리랑담당은 “진 소장이 발품과 청춘을 팔아 마련한 정선아리랑 연구자료가 바탕이 됐다”고 했다.
정선 출신인 진 소장은 한때 유능한 통·번역사이면서 유명 어학 강사였다. 또래 대기업 직원보다 5배 이상을 벌기도 했다. 한 독일인에게 아리랑을 번역해준 것이 그를 정선아리랑으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아리랑 가사 속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대목을 번역해줬더니, 그가 ‘갑자기 왜 발병이 나지요’라고 반문하더군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죠. 그때 누군가는 아리랑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길로 진 소장은 고향 정선으로 내려왔다. 26살 때였다.
집안에서는 애를 태웠지만 그는 틈만 나면 녹음기와 수첩을 챙겨 9개 읍·면 곳곳을 누비며 만난 이들의 이름을 적고, 소리를 녹음하고 가사를 기록하는 데 몰두했다. <정선아리랑 찾아가세>, <정선아리랑-강원학 총서>, <정선아리랑 가사집> 등이 이런 식으로 쓰여진 책들이다. 20여년 아리랑 가락과 함께 살아온 그는 지금까지 아리랑 관련 책 54권을 펴냈다. 2009년엔 국가기록원에서 기록관리 유공으로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가 아리랑 지킴이로 나서면서 정선아리랑은 진도·밀양아리랑과 함께 3대 아리랑으로 자리잡았으며,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부창부수’, 말 그대로 아내 배경숙(52)씨도 자료 조사에서 출판까지 진 소장과 함께하는 아리랑 부부가 됐다.
진 소장은 “아리랑에는 우리 민족의 삶의 애환과 사랑, 역사,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거인 동시에 현재, 그리고 미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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