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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자매의 가슴에 품은 꿈의 아리랑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8월18일 09시57분    조회:2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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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타령》을 열창하고있는 최홍련(오른쪽) 최종화(왼쪽) 자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펼친 《로인절맞이 우리노래대잔치》프로에서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오성촌에서 온 74세나는 최홍련과 최종화(70세) 두자매는 민요 《꽃타령》을 성수나게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들 자매가 이 노래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와 시도를 해왔는지 아는이는 많지 못할것이다.

그들 자매는 지난해 7월 11일 삼차구진조선족중학교를 빌어 《자매의 꿈무대》를 꾸며 친구들 모임삼아 《공연》을 하였다. 프랑카드도 걸고 종목소개자도, 음향조정사도 따로 두고 꾸민 이 무대는 최홍련선생이 70세때부터 친히 작사작곡한 10여곡의 노래로 엮어냈다. 이 공연을 보고 사람들은 《우리 말 우리 노래로 우리 민족 문화예술을 전수하는 무대, 그것도 친히 작곡작사한 노래로 공연무대를 펼치기는 삼차구진력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찬탄들을 아끼지 않았다.

최홍련선생은 워낙 삼차구진오성촌 촌소학교에서 평생 교편을 잡아온분이다. 시골학교는 음악교원이 따로 없어 학생들에게 노래를 배워주려면 혼자서 7일 넘게 발풍금을 누르면서 음을 익히고 악보를 익혀야 했다. 그렇게 배운 음악지식이 전부였고 어린시절부터 민요를 즐겨불렀던것이 전부의 음악밑천이였다.

하지만 최선생은 퇴직을 하고 병약한 남편의 병시중을 들어오면서 산과 들로 나물캐러 다니던 어느 날 문뜩 작곡작사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그때가 바로 70세나는 해였다.깊은 산속을 헤매며 산나물을 뜯노라니 오랜 묘자리 하나 스산하게 풀이 우거진채 눈에 띄였다. (우리 엄마의 산소도 이렇게 찾아주는이 없이 풀만 무성하겠지?) 엄마생각에 눈물이 앞섰다.

우리 노래 무대에서 자작노래 《우리 가락 아리랑》을 선보인 두자매. 

12살에 밑며느리로 들어와 열다섯살에 결혼하고 서른다섯에 청상과부가 된 엄마, 세 자매를 눈물로 키우시던 엄마는 늘 밤이면 석유등잔불빛아래서 바느질을 하면서 슬피 울었다. 울다가는 또 아리랑을 부르고 아리랑을 부르며 흐느끼다가는 또 말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다. 이불밑에서 엄마와 함께 눈물 흘리던 세 자매가 한결같이 뛰쳐나가 엄마 치마자락에 매달렸다. 《엄마! 엄마 죽으면 안돼!》 엄마를 목놓아 부르는 세자매를 한품에 그러안아주며 《너희들 두고 엄마가 왜 죽어? 엄마는 안 죽는다!》하시던 엄마!

그런 엄마를 그리며 생각나는대로 글로 적고 또 곡을 붙여보았다. 그리고는 북대황에 있는 큰언니에게, 대경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로 들려주었다. 셋은 네 한마디 내 한마디씩 보탬을 해가며 노래 한수씩 지어냈다. 그러는 과정에 새자매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아리랑》이 완성되였다.

《밤이면 밤마다 부르던 그 노래/ 아직도 내 마음에 울리여퍼지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겨나주요/ 지나온 세월이 야속해선가/ 살아갈 앞날이 걱정이런가/ 아리랑에 시름실어 구슬피 부르시던/ 엄마의 아리랑 엄마의 아리랑

가물거리는 등불아래 부르던 그 노래/ 수십년이 흘렀어도 귀전에 맴도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고개/ 기막힌 운명을 한탄해선가/ 자식들 앞날이 걱정이런가/ 아리랑에 희망실어 정겹게 부르시던 / 엄마의 아리랑 엄마의 아리랑

바느질감 손에 들고 부르던 그 노래/ 뜸마다 눈물이 방울되여 떨어지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는 님오는 고개요/ 행복한 앞날을 꿈꾸며 밝아올 새날을/ 기다리며 아리랑에 기쁨 실어 웃으며 부르시던/ 엄마의 아리랑 엄마의 아리랑 》

열다섯살나는 해에 북대황 선발대로 간  큰언니 최종례, 평생을 북대황에 바쳐가며 전국3.8붉은기수로 활약했던 큰언니는 로년에 암병에 걸려 신음하고있었다. 붉은기수도 늙고 병드니 그만이라 큰언니를 위로하며 《언니아리랑》을 지어 생일날에 선물하였다. 그뒤로 《북대황의 후대들》을 지어 조카들에게 어머니를 잘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어머니의 뒤를 이어 훌륭하게 살아가길 당부하였다.

어쩌다보니 마음의 슬픔만을 노래로 짓던 그들은 《그만 이젠 신나는 노래를 지어보자》 며 합의를 본다. 그리하여 고향의 사계절과 산천초목, 고향사람을 노래하는 가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농부아리랑》, 《…선조들의 피땀으로 개척한 이 땅/ 후대들의 사명으로 지켜온 이 땅/ 노래하세 자랑하세 천하의 농부들/ 대대손손 이 땅에서 웃음꽃 피우세》

《우리 가락 아리랑》- 《언제나 어데서나 누구나 부르는 아리랑 그 노래/ 아리랑 아리랑 우리 가락 아리랑/ 한 많은 아리랑 사랑이 애끓는 아리랑/ 백의동포 아리랑 우리 겨레 아리랑/ 아리랑 우리 가락 아리랑 우리 가락

혼자서도 아리랑 둘이서도 아리랑/ 대대손손 전해가는 우리 가락 아리랑/ 고향에서도 아리랑 타향에서도 아리랑/ 일터에서도 아리랑쉼터에서도 아리랑/ 아리랑 우리 가락 아리랑》

최홍련선생은 신명나는 노래를 부를 때면 밥상장단을 쳤고 호미 잡고 밭고랑 타고 노래를 부를 때면 마을사람들 쟁기를 두드리며 함께 박자를 맞췄다. 슬픈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나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면 춤이 나왔다. 기분에 맞춰 50여수의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세 자매는 함께 CCTV 《스타의 길》(星光大道)프로에 오르기로 약속하였다.

노래 연습을 하는 한편 손재간이 좋은 막내동생 최종화선생은 이불등을 뜯어 한복을 지으며 준비를 다그쳤다. 그러던 3년전의 하루, 큰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 이듬해 병석에 누워 시름시름 앓던 최홍련선생의 남편도 저세상으로 갔다. 최홍련선생은 죽기전에 꼭 한번 우리 노래 무대에 올라 실컷 노래를 부르고싶었다. 동생 최종화선생 또한 언니를 꼭 연변무대에 올려 원을 풀어드리고싶었다.

위성텔레비죤을 통해 연변TV 《우리노래대잔치》프로를 즐겨 시청하던 그들은 예시된 전화번호를 스무번도 넘게 눌렀다. 연락이 안되자 아예 문앞이라도 찾아가보기로 작정하고 연길행을 하였다. 동생은 대경에서 오성촌까지 와 언니와 함께 뻐스를 갈아타며 8시간 걸려서야 연길에 도착하였다. 

 로인절맞이 우리 노래 대잔치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고 칠보산관광권가지 받아안았다.

칠순넘은 로인네들이 먼 길을 떠나는것을 자식들이 알면 걱정할가봐 몰래 길을 떠난것이다. 물어물어 연변TV 대문앞까지 왔으나 《노래를 부르고싶고 앨범내고싶어 왔다》는 말에 문지기들은 음향회사를 찾아가라며 들여놓지조차 않았다. 노래하는 곳을 바라고 근처의 모든 간판들을 훓어보며 찾아 찾아간 곳이 연변민족전통례절문화원이였다.

문화원 홍미숙원장은 로인들이 찾아온 사연을 듣고 너무도 감동되여 《우리노래대잔치》프로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하였다. 그제야 우리 노래 무대에 오를수 있게 된 최홍련, 최종화 두자매는 《우리노래대잔치》무대에서 《꽃타령》(2006년목단강지구조선족노래경연에서 금상을 수상)을 목청껏 노래불렀다. 그리고 또 우수상까지 수상하여 조선 칠보산 2박3일 관광권까지 받아쥐게 되였다.

꿈을 이루게 되여 더 없이 기쁘면서도 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 뜬 큰언니 생각에 어쩔수 없이 눈물 짓는 두자매, 이제 또 다른 꿈이 있다면 자신들이 직접 창작한 노래를 우리 민족 기악으로 연주하여 앨범을 만들고 그 노래를 부르고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보급하는것이란다. 

지난해 삼차구조선족학교에서 《자매의 꿈무대》를 공연할 때 큰언니네 자식들이 《엄마의 꿈을 대신 이뤄달라》며 10여수의 노래반주를 먼 광주에서 지어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퉁소며 새장구 같은 우리 민족 악기로 된 가락이 들어있지 않아 그처럼 유감스러웠다고, 이번 걸음도 그 조카들이 경비를 대주며 밀어주는바람에 《꿈무대》에 오를수 있었다고, 이제는 연변과 연줄이 닿았는지라 우리 가락 반주로 된 연주곡을 만들어 평생의 꿈을 이루어낼것이라고 그리고 전문가들의 가르침도 평가도 받아보고싶다고 한다.

꿈은 이렇듯 그대로 삶의 원동력으로 되는것이다.

길림신문 김청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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