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난 팔이 언제 나와?' 묻던 아이, '팔꿈치 피아니스트' 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2월10일 23시00분    조회:339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키 150㎝, 자그마한 소녀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왼쪽으로 몸을 약간 틀어 앉은 소녀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건반을 두드린다. 연주하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가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소녀의오른 어깨가 크게 들썩인다. 건반을 수놓은 건 소녀의 왼손과, 오른 팔꿈치. 오른 손이 없는 소녀에게 오른 팔꿈치는 여섯번째 손가락이었다.

9일 오전 서울 삼성동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15층 갤럭시홀. 최혜연(19)양이 정은현(35) 선생님과 연습 중이었다. 올해 이 학교 특별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혜연양은 입학식에서 기념 연주회를 하기로 돼 있다.
경북 영덕이 고향인 그는 ‘팔꿈치 피아니스트’다. 세 살 때, 부모님이 하던 정육점에서 놀다 고기를 자르는 기계에 오른쪽 팔 아랫부분을 잃었다. 눈 깜짝할 새였다. “저는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엄마 말이 7살 때까지 ‘엄마, 나는 팔이 언제 나와?’라며 물었대요. 그때쯤 스스로 안 것 같아요. 제가 특별하다는 걸….”

그가 피아노와 가까워진 건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이모 덕분이었다. 한 살 터울인 언니가 피아노를 배우는 게 마냥 부러웠다. 하지만 꿈일 뿐이었다. 다섯 손가락만으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던 2011년, 그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갓 예고에 진학한 언니의 피아노 레슨 선생님 정은현(35)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다.

 오른쪽 손이 없어 팔꿈치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최혜연양이 지난 9일 서울 삼성동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에서 정은현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Amazing Grace'를 연주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오른쪽 손이 없어 팔꿈치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최혜연양이 지난 9일 서울 삼성동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에서 정은현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Amazing Grace'를 연주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를 미국 작가로 키워낸 설리번 선생님의 심정이었을까.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처음 만난 2011년 1월 1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혜연이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치는데, 마음이 울컥했어요.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 거절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흔들렸지요. 혜연이에게 ‘꿈이 뭐니’라고 물었는데, 대답을 듣곤 ‘아, 이 아이는 내가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를 움직인 혜연이의 대답은 “희망을 주는 피아니스트”였다.

두 사람의 지옥훈련이 시작됐다. 혜연양은 매주 경북 영덕에서 대전까지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가 정 선생님을 만나 피아노를 배웠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위한 왼손 연주곡을 찾고, 오른손 멜로디가 비교적 쉬운 곡을 맞춤용으로 편집했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이 이해하기 쉽게 오른손은 주먹으로 피아노를 쳤다. 대전의 예고에 진학한 혜연양은 하루에 3~6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했다. 허리가 틀어진 상태에서 연주하다보니 장시간 연습할 순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정 선생님은 “많이 힘들었을 텐데, 혜연이는 포기하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팔꿈치 피아니스트' 최혜연양과 정은현 선생님. /오종찬 기자
 
'팔꿈치 피아니스트' 최혜연양과 정은현 선생님. /오종찬 기자
 
혜연양은 딱 한번 눈물을 보였다. 고1 때 멀리 떨어진 부모님이 그립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을 때다. 다른 친구들이 화려한 곡을 치는 걸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고 한다. 며칠 간 피아노를 보지도 않다가 자신이 가장 행복할 때가 피아노 앞이란 걸 깨달았다. “그땐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짜증이 났어요. ‘왜 자꾸 쳐다보지?’란 생각이 들고, 불쾌했어요. 근데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 내가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대단하다’, ‘감동받았다’고 말해주는 게 정말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혜연양은 독주회를 2013년, 2014년 두 번 열었다. 그는 “지금은 다르다는 게 피아니스트로서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보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래도 팔꿈치로 연주하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타고난 무대체질’이라고 했다. 그는 “베테랑 피아니스트들도 떨리기 마련인데, 혜연이는 무대 위에 올라가면 더 잘 한다”고 했다. 혜연양은 공을 선생님에게 돌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선생님이 공연을 다 준비하세요. 늘 감사한데, 쑥스러워서 그동안 제대로 표현을 못했어요.”

혜연양은 선생님이 외래교수로 있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의 꿈은 4년여가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제 연주를 듣는 분들이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좀더 공부해서 저만의 곡을 만들고 싶어요.” 정 선생님도 제자에 대한 기대가 크다. “혜연이의 연주는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혜연이가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을 힐링해주는, 선물같은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조선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양로사업을 영원한 직책으로 여기는 ‘이쁜 아가씨’ 박진화의 이야기 “로인을 돌보고 어린 애들을 보살필수 있는 양로원, 고아원을 차리는것이 어릴적 저의 꿈이였습니다.” 아니운서라는 화려한 후광을 벗어둔채 2011년 2월, 호리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지금 사회복리원 특수호리구역에서 주임...
  • 2018-01-03
  • 뻐스정류소에서 길다랗게 줄지어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일본인들/리홍매특파원 일본인들의 줄서기를 그들의 문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조금은 망설임이 앞서는 일이다. 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에 거부감이 전혀 없는 듯한 일본인들에 대해 처음에는 생소함을 느끼다가 점차 거기에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
  • 2017-12-26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5) ◇서정숙(중경)     언니가 보낸 다시 돌아오지 않는 〈2016년의 렬차〉란 글을 읽으며 감개가 무량하다.   무정한 세월은 드팀없이 꾸준히도 흘러 장장 45년이 지나 그제날의 갓 사업에 참가했던 짧은 량태머리 언니도, 늦은 공부라도 하려고 학교 다니던...
  • 2017-12-2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4) ◇주청룡(룡정) 1973년, 내가 생산대대의 과학실험소조에서 일할 때였다. 그 때 우리 대대에도 주에서 공작대들이 내려와있었는데 당시 주당위 선전부 리휘 부장이 우리 공사에 온 공작대의 총 책임자로 우리 대대에 와 주둔해있었다. 그 해 여름의 어느 날 리휘 부장은 대...
  • 2017-12-2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3) ◇남걸(목단강) 1976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목단강시전염병병원에 배치받아 의사사업을 한 지도 어언 4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매번 백설같이 흰 의사복을 떨쳐입고 병원 각 과실(科室)을 순시할 때마다 나에게 진정한 의사자격을 가져다준 감명 깊었던 40년 전 그 날의...
  • 2017-12-19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2) ◇황혜영 (길림) 50년 전 추억의 색바랜 사진(왼쪽이 어린 시절 필자) 어제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아침에 나가보니 아직 익지 못한 시퍼런 복숭아 열매가 나무 밑에 쭉 깔렸다. 복숭아를 볼 때마다 복숭아의 맛보다 그 씨가 어떨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해보는 나다...
  • 2017-12-19
  •   남편류학시절의 경제담보인이였던 노토 아키히로(能登昭博)씨는 대학교 졸업론문을 이라는 테마로 썼을 정도로 중국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치바(千葉)동부지역의 판촉업무를 총괄하는 회사경영인이였던 그는 내가 일본에 온 이듬해에 새로운 사업으로 지역신문인 《호오지로》(ほお...
  • 2017-12-18
  • 일본의 선물보따리(자료사진) 어린 시절 엄마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눈으로 얻은 깨달음이라고 할가,“받은 그릇은 절대 빈채로 돌려 보내지 않는다”였다. 이웃사이에 주고 받고 빌리고 빌려 주고 하면서 살았던 그 시절, 동네집 잔치가 온 마을의 기쁨이였고 어느집에 상사가 나면 온 동네가 슬퍼했다. 그...
  • 2017-12-18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9년을 하루와 같이 문화봉사를 해온 석복순녀사의 감동 스토리 석복순(맨 앞)강사가 춤을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보니 내가 2007년 둘째딸을 따라 한국에 올 때 나이가 예순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오늘 어언 일흔이라는 고희의 나이로 되였다. 그간 줄곧 소외된 사람들에게 춤을 ...
  • 2017-12-12
  •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 기자 = "저희 기금회는 2012년에 랴오닝성민정청의 2급 법인으로 설립되어 대략 2년 여 동안 운영하다가, 2014년에 독립법인을 신청해, 2015년 1월에 정식 허가증이 내려왔습니다. 기금회가 설립되어서부터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의 많은 지원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문...
  • 2017-12-12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9년을 하루와 같이 문화봉사를 해온 석복순녀사의 감동 스토리 석복순(맨 앞)강사가 춤을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보니 내가 2007년 둘째딸을 따라 한국에 올 때 나이가 예순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오늘 어언 일흔이라는 고희의 나이로 되였다. 그간 줄곧 소외된 사람들에게 춤을 ...
  • 2017-12-12
  • 우리 집 가까이에 살고 있는 량씨는 일본에 온지 10년째 되는 한족 료리사이다. 어느 날 그가 찾아와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장가 보내고 나니 빈털터리가 됐어요” 18살 때부터 료리를 배웠다는 량씨는 일본어를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였다. 갓 마흔살에 접어들면서 일본...
  • 2017-12-11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1) ◇김동화(연길) 30수년전 그 때 그 학생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세월은 류수와 같다더니만 정말 만질 수도 걷잡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의 흐름인가 본다. 어언 70을 코앞에 두고 보니 가끔씩 따르는 크고 작은 추억들로 머리를 메운다. 올해 제33회 교사절을 즐...
  • 2017-12-11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0) ◇김규칠 구술 김숙자 대필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김규칠 로인 부부 내 나이 금년에 80이다. 긴 세월 수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잊혀지지 않는 사연도 많다. 그런데 요즘 인정세태가 삭막해서 그런지 그 때 그 일이 어쩐지 더 자주 떠오르군 한다. 온 나라가 문화대혁...
  • 2017-12-11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나는 스승을 잘 만나 성공했다” 가수, ‘아리랑 난타’ 단장 아이수의 성공담에서 내가 한국 온 년도가 2004년이니 올해로 벌써 10년 하고도 3년이 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간 나의 한국생활에도 적지 않는 변화가 있어 자부를 느낀다...
  • 2017-12-11
  • 며칠전 묵직한 편지봉투 하나가 우리집에 날아왔다. ‘항상 감사합니다. 더 받은 송금료 164엔을 돌려 드립니다. 또 기회가 되면 잘 부탁합니다’ 짤막한 메모용지와 함께 동전 164엔이 들어 있는 봉투였다. 나는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영문을 물었다. 사실은 지인의 부탁으로 인터넷경매에서 옛...
  • 2017-12-10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9) ◇리희숙(안도) 애청자협회 열성자로 뛰고 있는 필자 리희숙 격정과 활력에 끓어넘치며 정열에 불타던 그 청춘시절, 걸탐스레 지식을 배워가며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던 학창시절을 마치고 ‘광활한 천지에는 할일이 많다’는 모주석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1965년...
  • 2017-12-0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8) ◇전영실(연길) 등산길에서의 필자 전영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취업통지서를 받고 우전국 인사과로 등록하러 갔던 때의 일이 어제런듯 눈앞에 삼삼하다. 한 나이 지긋한 책임일군이 반가이 맞아주며 “동무는 무슨 특장이 있소?” “어떤 일을 하고 싶소?” 하며...
  • 2017-12-05
  •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일본에 온지 일년후였다. 그때 야마모토 타마에(山本 多摩江)씨는 우리가 사는 지역의 국제교류협회 책임자였다. 영어에 능한 그녀는 외국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대부분의 일본인들에 비해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일본...
  • 2017-12-05
  • 각 지역 촌마다 빈곤해탈 난관 공략전이 치렬하게 펼쳐지고 있는 요즘, 누구보다 마음 한켠이 조급해나는 한 젊은이가 있다. 연거퍼 몇달동안 집에 내려가지 못한 채 농촌사업터에서 빈곤해탈사업을 위해 뛰여다니느라 낮과 밤을 잊은 그는 바로 룡정시 백금향 빈곤부축판공실 주임 홍광철(33살)씨다. 룡정시 백금향 빈곤부...
  • 2017-12-01
‹처음  이전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