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백성이야기21] 리옥렬할머니와 그의 두 손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0월13일 09시37분    조회:157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리옥렬할머니 의지가지없는 두 손자를 어른으로 키워

조선전쟁에서 공을 세운 리옥렬할머니

장백조선족자치현에는 수십년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의지가지없는 두 손자를 어른으로 키워낸 리옥렬할머니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미담으로 전해지고있다.

말못하던 친손자를 키워 로무송출까지

리옥렬할머니는 일찍 김씨가문에 시집을 와서 평생 5남매를 키웠다. 지금으로부터 38년전인 1977년에 리옥렬할머니의 맏아들 김윤남(장애인)은 친척들의 소개로 장백현 금화향 리전촌의 지력장애인 리씨녀성과 결혼하고 후에 귀여운 아들 김수용을 보게 되였다. 그런데 손자애가 6살이 될 때까지도 《아버지, 엄마》라는 말 한마디도 번질수 없게 되였다. 지력장애였다. 자식에 대한 일루의 희망을 품고 살아오던 김윤남의 안해는 실망한 나머지 아이를 남편한테 맡기고는 어데론가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며느리가 있을 땐 그래도 온 집안 세 식구가 그럭저럭 배불리 먹고 가정살림을 유지해나갈수 있었지만 정작 며느리가 훌쩍 떠나고보니 불쌍한 손자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신체장애로 자립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김윤남으로서는 도무지 감당해내기 어려운 가무였다. 하는수 없이 리옥렬할머니는 아예 손자를 자기집에 데려다 키우기로 했다.

그런데 손자는 8살이 될 때까지도 말을 할수 없었다.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란 말 한마디라도 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이대로 나가다간 애가 벙어리로 되겠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수 없다.》고 생각한 리옥렬할머니는 남편 김봉길씨와 함께 애를 업고 곳곳을 다니며 수소문하고 린근의 병원들을 찾아다녔다.

정성이면 돌우에도 꽃이핀다고 그의 아낌없는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어느날 손자는 차츰차츰 피색이 좋아지더니 마치 한두살짜리 어린애마냥 《아-아버지, 하-할아버지, 하-할머니》하면서 말을 떼기 시작하였다.

후에 손자 김수용은 마침내 룡강촌소학교에 입학하여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고 우리 말 우리 글을 열심히 배우게 되였다.

그러나 손자의 공부뒤바라지를 하기란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리옥렬할머니는 봄이면 산에 올라 고사리, 산더덕 등 산나물을 캐 현성에 내다 팔았고 여름이면 인삼장에 들어가 삼밭의 풀을 뽑았으며 가을이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오미자, 산포도 등 산열매를 뜯어다 팔아 한푼두푼 모았다. 이리하여 손자는 끝내 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부터는 떳떳한 사회의 일원으로 되였다. 지금은 로무송출로 한국에 나간지 3년째 된다.

외손자한테 쏟은 지극한 정성

리옥렬할머니의 맏딸 김복단은 일찍 남편을 여인후 아들 박철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산전수전 다 겪어왔다. 20년전의 어느해 가을이였다. 복단이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잣나무우에 올라 잣을 뜯다가 불행히도 나무에서 떨어져 현병원에 입원, 척추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머니의 처지를 측은하게 여긴 박철은 물고기를 잡아다 어머니에게 대접하려고 친구들과 함께 강변에 나가 물남포를 놓았다. 그런데 부주의로 물남포가 갑자기 그의 옆에서 터지는바람에 박철이는 그만 두눈과 손을 크게 다쳤다.

10년전에 남편을 잃은 일만 해도 더없이 가슴아픈데 맏딸이 또 척추수술을 해 일어나지 못하는데다 외손자까지 눈과 손을 크게 다쳤으니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격이였다. 리옥렬할머니는 밤낮으로 그들의 병시중을 들었다. 때론 깊은 산속에 들어가 병에 좋다는 세신, 룡담초 등 초약을 캐여오기도 했다.

하지만 복단이는 병세가 악화되여 저세상으로 가게 되였고 손자 박철이는 눈이 실명되여 더는 이 세상을 볼수가 없었고 오른쪽 손가락도 셋이나 자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리하여 리할머니는 눈먼 외손자를 데리고 장백진경로원에 입주하게 되였다. 하지만 매달 30원밖에 안되는 그의 복원비로는 두 사람의 경로원비용을 해결할수 없었다.

하는수 없이 그는 박철이를 홀로 경로원에 남겨두고 자기는 다시 농촌으로 되돌아갔다. 정든 고향사람들의 관심과 마음씨 고운 이웃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농촌에서 10년간 밭을 다루고 돼지도 기르고 엿장사도 하면서 돈을 벌어 외손자의 눈병을 치료하는데 전념하였다.

외손자 박철은 비록 실명된 눈을 될돌리수 없었지만 할머니의 덕분으로 2002년도부터 5년간 자비로 단동료동학원에서 중의내과를 졸업하고 단동복지병원에서 반년간 실습을 한후 끝내 대학전과학위를 얻고 의료증, 의사증을 타게 되였다. 졸업후에는 단동에서 맹인진료소를 꾸리고 자립자강하였다.

두 손자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할터

박철은 비록 맹인이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키가 훤칠한데다가 진료소의 경영이 잘되여 단동에서 쉽게 한 녀자친구를 사귈수 있었다.

그러던 2012년의 어느날, 80고개에 이른 리옥렬할머니는 갑자기 중풍에 걸려 근 한달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 사연을 알게 된 박철은 모든 일을 재쳐놓고 장백현으로 돌아왔다. 박철은 할머니에게 초약도 달여주고 건강안마도 해주면서 석달간 한시도 외할머니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자 단동에 있는 녀자친구가 안달아났다. 박철이가 외할머니의 곁을 쉽게 떠날수 없게됨을 알게 된 그 녀자친구는 아쉬운 나머지 그와 갈라지기로 하였다.

이렇게 박철은 오직 할머니를 위해 사랑하는 녀자친구를 포기해야만 했다. 지금 박철이는 현소재지의 한 골목길옆에 맹인안마원을 꾸리고 부지런히 일하면서 외할머니를 살뜰히 보살펴주고있다.

올해에 38세에 나는 친손자 김수용도 곧 귀국해 할머니의 로고에 보답하련단다.

리옥렬할머니 당과 정부의 혜택에 감사

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사회복리원을 곧 떠날무렵, 파란만장한 인생살이를 힘들게 해온 리옥렬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는 60년전에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해 조선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생끝에 락이 온다더니 저의 노력으로 지금 두 손자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있으며 오늘날 저도 사회복리원에서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당과 정부의 혜택은 물론 혈육답게 저희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보내준 사회와 고마운 분들이 있었기때문입니다. 이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다. 이는 리옥렬할머니의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러 나오는 진실한 고백이다.

박철씨 백산시장애자직업기능콩쿠르에서 건강안마 3등상 획득
 

길림신문 최창남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윤주임이 아니였더라면 어찌 오늘의 태흥촌이 있겠습니까? 윤주임이 진날 마른날 가리지 않고 진심으로 촌민들을 위해 동분서주한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기와집에서 살고 마을의 길도 다 닦았...
  • 2016-03-08
  • 좋은 일을 하는데는 남녀로소 너나할것없다.오늘은 3월 5일 “뢰봉 따라배우기 날”이다.신흥소학교 2학년 4반 학생들은 최미화 담임교원의 지도하에 은하양로원을 방문해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양...
  • 2016-03-05
  • 시아버님 사랑 태명숙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이다.”란 말이 있다. 시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나로서는 이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다. 내가 23살 꽃나이에 꽃너울 쓰고 박씨가문에 시집 온지도 어언 2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옛날부터 한동네 혼사는 힘들다고 했건만 나는 복받은 녀자인지 한동...
  • 2016-03-03
  •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선뜻 나서야죠. 이후에도 이런 일에 부딪치면 서슴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겁니다. 다만 이번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더욱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택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2일, “내 고장 훌륭한이 ” 영예를 수여받은 주신흥공업집중구 사업일군인 서염봉(38세)을...
  • 2016-03-03
  • 소고기명세장에 깃든 이야기 백순천   전야에 황금오곡 무르익고 산등성이마다 단풍이 빨갛게 불타던 맑은 가을날 나는 오랜만에 내가 나서 자란 그립던 옛 고향을 찾아가 고향사람들을 만나보려고 서둘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촌로인협회에서는 대형뻐스를 세내여 훈춘 방천으로 관광을 떠나는 날이였다....
  • 2016-03-02
  •   * 음악과 함께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 왔어요 모든 사람의 축복에 사랑의 서약을 하고 있죠 세월이 흘러서 병들고 지칠때 지금처럼 내 곁에서 서로 위로해줄수 있나요 함께 걸어가야 할 수많은 시간 앞에서 우리들의 약속은 언제나 변함없다는것을 믿나요 힘든 날도 있겠죠 하지만 후...
  • 2016-03-02
  • 결혼전엔 몰랐던 남편의 모습 미정    련애시절 남편은 생일이나 기념일에 꼭꼭 생화를 한묶음씩 안겨주면서 근사한 식당에도 자주 데려가 맛 있는 음식도 사주었다. 난 그의 자상함에 반했다. “결혼하면 너만을 바라보며 밥도 빨래도 청소도 육아도 다 도와줄게.”라던 그가 결혼후 달라졌다. 물론 결...
  • 2016-03-01
  • 한국인도 반한 중국식 정통 양꼬치의 맛 ‘북경양꼬치’ 북경양꼬치 중국동포가 운영하는 중국식 정통 양꼬치 요리 인기 [디트뉴스24] 고기 마니아들 사이에서 요즘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가 양고기다.최근 양고기 요리가 대중화되면서 양꼬치 업소가 늘고 있다.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양고기는 꼬치라...
  • 2016-03-01
  • 일본 도쿄에서 '샘물 한글학교'를 이끌고 있는 전정선(60) 교장. 그는 2008년 이 학교를 세우고 재일 조선족 2 세인 어린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일본 내 조선족 2세에 한국어 교육   "한중일 3국 잇는 '코리안' 키울 것"   "새 친구들 환영합니다! 입학생, 재교생 다같이...
  • 2016-02-29
  • 아빠의 빈자리 청목   나의 직업은 의사이다. 그것도 하루에도 몇번씩 수술실을 드나들어야 하는 외과의사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참 매력적인 직업일지는 모른다.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수입도 괜찮고 참 이처럼 완벽한 직업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매력뒤...
  • 2016-02-29
  • 선인장의 웃음 김화 “그동안 수고했다. 참 예쁘구나!” 색갈이 선명하고 깔끔한 세개의 봉오리가 자기를 보라는듯 의기양양하게 행복한 웃음을 보내고있다. 그동안 거의 방치하다시피 돌보지도 않았는데 선인장은 잘 견뎌내고 고운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너무 예뻐 허리를 굽혀 입을 바짝 대고 칭찬을 해주었다....
  • 2016-02-26
  • 숨 차게 달려온 나날   박영옥 장백산아래 안도현에는18년동안 이름을 떨쳐온 한 민간단체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안도현백두산아동문학협회”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전인 1997년 1월의 어느날, 리룡득선생이 날보고 지금 연변에 아동문학협회가 공백인데 안도에 이 협회를 설립할 계획이니 김동철씨가 ...
  • 2016-02-25
  • 시력을 잃은 안해에게 꽃향기를 선물하기 위해 수천송이의 꽃을 집주변에 심은 한 일본인 남편의 지극정성이 화제를 모으고있다. 미야자키현 신토미초에 사는 구로유키 쿠로키와 그 안해 야스코 쿠로키는 매일 60마리의 소를 돌보아가며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지난 1956년에 결혼한 이래 슬하에 두 자녀를 둔 부부의 꿈은...
  • 2016-02-24
  • 아버지와 술 문 호    늘 한결같은  친구가 나에게 고급술 한병을 선물하였다. 왠지 술병을 마주하니 눈앞이 흐릿해진다. 친구와의 소중한 우정도 그렇지만 문뜩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아버지는 애주가였다. 어쩌면 술은 아버지에게 어쩌면 밥같은것이였다. 아마도 밥과 술중에서 선택하라면 아버지는...
  • 2016-02-24
  • [경남맛집]창원 양덕동 '어린양양꼬치' 왁자한 선술집 느낌이다.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 않아서 부담 없이 색다른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어린양양꼬치'다. 양꼬치집이라고 듣고 들렀더니, 중국 요리 메뉴가 빼곡하다. 중국어로 쓰인 메뉴판도 있다. 조선족 출신의 박순화...
  • 2016-02-23
  • [더 나은 미래] "결혼 이주 여성이라면 모국어 살린 통역사 어때요?" 소셜벤처 '온아시아'의 도전 이상선(37)씨는 열한 살 아이의 엄마이자, 중국이 고향인 결혼 이주 여성이다. 10여년 전, 한국인 남편을 따라 서울에 터를 잡은 후 5년은 '육아'에 올인했다. "애가 좀 자라서 취직하려고 보니 나이가 30대...
  • 2016-02-23
  • 300원의 가치 조홍매                                       대학교를 졸업한지도 어느덧 올해로 강산이 한번 변할만큼의...
  • 2016-02-23
  • 세뱃돈을 고향도 아닌 이국타향에서 값지게 사용하는 이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한국 인천남동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장상훈 군이다. '타인에게 베푼다는 것은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도 행복해지는법이다.'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서인지 장상훈 군도 약세군체에 후원의...
  • 2016-02-20
  • 추억의 손목시계 리기춘 어느날 나는 책상서랍을 정리하다가 서랍구석에서 22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스란히 잠들어있던 《상해표》손목시계를 꺼냈다.입김을 홀홀 발라가면서 하얀 손수건으로 먼지를 살살 닦으니 깨끗한 모양새가 그대로 깔끔하게 들어났다.어찌보면 보잘것없이 평범한 손목시계이지만 나에게는 애뜻한 감회...
  • 2016-02-18
  • 그래도 다홍치마가 더 곱지 않을까? 맹영수   지난1년남짓한 기간에 친척, 친우 그리고 지인들의 부름을 받고 20번의 결혼식에 참가했다. 결혼식은 평생의 연분을 맺는것으로써 응당 즐거운 맘으로 축하하여 주고 술잔을 들어야 했다. 허나 번마다 그런 즐거운 기분만은 아니였다. 왠지 어떤 결혼식에 참가하고 귀로에...
  • 2016-02-17
‹처음  이전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