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두번째 고향, 연변이 나를 있게 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0월14일 08시59분    조회:192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변, 나는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내 고향 연변에 대한 찬가를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상해지식청년 석토영(石兔瑛, 62세)씨의 절절한 이 한마디에 나는 전률을 느꼈다. 그녀의 여전히 힘있는 눈매에 실린 진솔한 감정이 피부로 느껴졌다. 연변을 떠난지 수십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선말을 류창하게 구사하는 그녀가 놀라웁기만 했다.

석토영씨는 당의 호소에 주동적으로 하향을 신청했다. 하지만 정작 연길현 지신공사(현 룡정시 지신진)에 도착했을 때 상상도 못해본 생활조건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중을 나온 소달구지도 태여나서 그때 처음 봤다는 그녀의 나이 16세였다.

어려서부터 자력갱생형의 아이였던 그녀는 재빨리 생활에 적응했다. 함께 내려온 15명의 지식청년중 고된 일을 이기지 못하고 병들어 눕는 사람도 있었지만 석토영씨만은 오히려 부모에게 절대로 부담을 드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일을 해제꼈다. 조선말, 조선글도 제꺽 배워냈다.

“조선족 녀성들은 참 대단한것 같습니다. 모두들 열정이 드높았지요. 저는 그런 모습을 닮고싶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산대의 추천하에 그녀는 부녀주임을 맡게 되였고 2년후에는 생산대장으로 당선됐다. 밤낮이 따로 없이 일했고 휴일이 따로 없이 일했던 고된 나날들이였다. 마을의 오보호로인들을 도와 물도 길어주고 남새도 보내주었는데 한번은 겨울이 오기전 땔나무를 장만해주려다가 도끼에 다리를 찍힌적도 있었다. 쉴새 없이 돌아치는 그녀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철의 아가씨”라고 친절히 불렀다.

“마을에서 공수가 제일 높았어요. 600공 아가씨로 불렸지요.”

그런 “철의 아가씨”에게도 무서운것은 있었다. 매일 저녁 불빛 하나 없는 산을 넘어 대대로 회의하러 갈 때면 저도 모르게 달음박질을 쳤다. 깊은 밤, 조용한 마을에 타박타박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들리면 약속이나 한듯이 집집마다 불을 켰다. 그 창가에서 흘러나오던 따스한 불빛을 떠올릴때마다 석토영씨는 가슴속에서 감동이 여울친다.

겨울이면 함께 온 지식청년들은 상해로 돌아갔지만 석토영씨는 한번도 돌아간적이 없었다. 1972년의 겨울, 상해지식청년들의 현황을 살피러 내려온 조사조는 석토영씨의 사적을 듣고 모든 지식청년들이 따라배울만한 본보기라고 칭찬하며 상해시정부일군 환영회에도 초대했다. 1973년 석토영씨는 상해에서 모든 지식청년들을 상대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석토영씨는 연변에 하향해있는 동안 겨울이면 일거리가 없는 상황을 고려하여 지식청년들을 상대로 한 가공공장을 세우기도 했고 옥수수 영양모단지를 보급시켜 그해 산량을 높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불태우는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그녀는 여기에서 입당을 했고 공사 당위 부서기로까지 당선됐다.

드디여 1979년 모든 지식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변에 내려왔던 1만 8000여명이 모두 상해로 돌아갔다. 10년 청춘을 불태웠던 제2의 고향 연변에 남아서 발전하려는 그녀에게 이번에는 상해가 손짓했다. 170만명에 달하는 지식청년들의 일자리문제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던것이다.

상해라는 훨씬 큰 활무대에서 그녀는 인생의 두번째 장의 막을 열었다. 상해복개경영회사 총경리, 상해흥화회사 총경리, 상해통용자동차부속품공장 공장장, 상해이거얼집단 부총재… 거칠것이 없었다. 그녀가 상해에서 왕성하게 펼친 활동들도 모두 상해지식청년들을 위한 일이였다.

“상해에서 아주 많은 발전의 기회가 나에게 차례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식청년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간고한 곳일수록 일할 힘이 솟구쳤다는 석토영씨는 연변에 하향해서 고생하던 시절이 인생의 큰 밑거름이였다고 고백했다. 청춘을 불태웠던 잊을수 없는 고장, 많은 지식청년들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석토영씨는 퇴직후 “상해연변지식청년련합회”를 설립하고 일심전력 지식청년들을 위한 사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것은 연변을 위한 사업이기도 했다. 10년 동안 회비를 전혀 거두지 않고 사재로 운영해온 그녀를 두고 가족들은 리해를 하면서도 가끔씩 안타까운 마음에 “기부 방식이 틀렸다”고 꼬집기도 했지만 그녀는 허허 웃으며 넘겼다.

석토영씨는 상해의 연변지식청년, 연변에 남은 상해지식청년들의 일뿐만아니라 연변이라면 발벗고 나설만큼 연변사랑이 대단하다.

2012년 사과배 판로때문에 고민하는 연변재배농의 사연에 팔걷고 나서서 해결해줬고 연변가무단이 상해공연을 갔을 때 숙박을 전부 배치해주기도 했다. 연변에서 손님이 오면 그녀의 집은 비공식적인 거처이다. 연변손님들을 위해 그녀는 커다란 대야에 김치를 담그고 찰떡도 쳤다.

석토영씨는 최근 연변의 관광업에 큰 관심을 갖고있다. 앞장서서 상해, 나아가 전국과 연변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데 취지를 두고 관광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 운신하지 못할 때면 연변에 와서 지내고싶을만큼 연변을 사랑하는 석토영씨, “연변이 나를 있게 했다. 내 말에 호소력이 남아있을 때까지 연변을 위한 일에 나서고싶다”고 고백한다.

연변일보 글· 사진 리련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윤주임이 아니였더라면 어찌 오늘의 태흥촌이 있겠습니까? 윤주임이 진날 마른날 가리지 않고 진심으로 촌민들을 위해 동분서주한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기와집에서 살고 마을의 길도 다 닦았...
  • 2016-03-08
  • 좋은 일을 하는데는 남녀로소 너나할것없다.오늘은 3월 5일 “뢰봉 따라배우기 날”이다.신흥소학교 2학년 4반 학생들은 최미화 담임교원의 지도하에 은하양로원을 방문해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양...
  • 2016-03-05
  • 시아버님 사랑 태명숙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이다.”란 말이 있다. 시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나로서는 이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다. 내가 23살 꽃나이에 꽃너울 쓰고 박씨가문에 시집 온지도 어언 2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옛날부터 한동네 혼사는 힘들다고 했건만 나는 복받은 녀자인지 한동...
  • 2016-03-03
  •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선뜻 나서야죠. 이후에도 이런 일에 부딪치면 서슴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겁니다. 다만 이번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더욱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택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2일, “내 고장 훌륭한이 ” 영예를 수여받은 주신흥공업집중구 사업일군인 서염봉(38세)을...
  • 2016-03-03
  • 소고기명세장에 깃든 이야기 백순천   전야에 황금오곡 무르익고 산등성이마다 단풍이 빨갛게 불타던 맑은 가을날 나는 오랜만에 내가 나서 자란 그립던 옛 고향을 찾아가 고향사람들을 만나보려고 서둘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촌로인협회에서는 대형뻐스를 세내여 훈춘 방천으로 관광을 떠나는 날이였다....
  • 2016-03-02
  •   * 음악과 함께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 왔어요 모든 사람의 축복에 사랑의 서약을 하고 있죠 세월이 흘러서 병들고 지칠때 지금처럼 내 곁에서 서로 위로해줄수 있나요 함께 걸어가야 할 수많은 시간 앞에서 우리들의 약속은 언제나 변함없다는것을 믿나요 힘든 날도 있겠죠 하지만 후...
  • 2016-03-02
  • 결혼전엔 몰랐던 남편의 모습 미정    련애시절 남편은 생일이나 기념일에 꼭꼭 생화를 한묶음씩 안겨주면서 근사한 식당에도 자주 데려가 맛 있는 음식도 사주었다. 난 그의 자상함에 반했다. “결혼하면 너만을 바라보며 밥도 빨래도 청소도 육아도 다 도와줄게.”라던 그가 결혼후 달라졌다. 물론 결...
  • 2016-03-01
  • 한국인도 반한 중국식 정통 양꼬치의 맛 ‘북경양꼬치’ 북경양꼬치 중국동포가 운영하는 중국식 정통 양꼬치 요리 인기 [디트뉴스24] 고기 마니아들 사이에서 요즘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가 양고기다.최근 양고기 요리가 대중화되면서 양꼬치 업소가 늘고 있다.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양고기는 꼬치라...
  • 2016-03-01
  • 일본 도쿄에서 '샘물 한글학교'를 이끌고 있는 전정선(60) 교장. 그는 2008년 이 학교를 세우고 재일 조선족 2 세인 어린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일본 내 조선족 2세에 한국어 교육   "한중일 3국 잇는 '코리안' 키울 것"   "새 친구들 환영합니다! 입학생, 재교생 다같이...
  • 2016-02-29
  • 아빠의 빈자리 청목   나의 직업은 의사이다. 그것도 하루에도 몇번씩 수술실을 드나들어야 하는 외과의사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참 매력적인 직업일지는 모른다.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수입도 괜찮고 참 이처럼 완벽한 직업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매력뒤...
  • 2016-02-29
  • 선인장의 웃음 김화 “그동안 수고했다. 참 예쁘구나!” 색갈이 선명하고 깔끔한 세개의 봉오리가 자기를 보라는듯 의기양양하게 행복한 웃음을 보내고있다. 그동안 거의 방치하다시피 돌보지도 않았는데 선인장은 잘 견뎌내고 고운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너무 예뻐 허리를 굽혀 입을 바짝 대고 칭찬을 해주었다....
  • 2016-02-26
  • 숨 차게 달려온 나날   박영옥 장백산아래 안도현에는18년동안 이름을 떨쳐온 한 민간단체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안도현백두산아동문학협회”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전인 1997년 1월의 어느날, 리룡득선생이 날보고 지금 연변에 아동문학협회가 공백인데 안도에 이 협회를 설립할 계획이니 김동철씨가 ...
  • 2016-02-25
  • 시력을 잃은 안해에게 꽃향기를 선물하기 위해 수천송이의 꽃을 집주변에 심은 한 일본인 남편의 지극정성이 화제를 모으고있다. 미야자키현 신토미초에 사는 구로유키 쿠로키와 그 안해 야스코 쿠로키는 매일 60마리의 소를 돌보아가며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지난 1956년에 결혼한 이래 슬하에 두 자녀를 둔 부부의 꿈은...
  • 2016-02-24
  • 아버지와 술 문 호    늘 한결같은  친구가 나에게 고급술 한병을 선물하였다. 왠지 술병을 마주하니 눈앞이 흐릿해진다. 친구와의 소중한 우정도 그렇지만 문뜩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아버지는 애주가였다. 어쩌면 술은 아버지에게 어쩌면 밥같은것이였다. 아마도 밥과 술중에서 선택하라면 아버지는...
  • 2016-02-24
  • [경남맛집]창원 양덕동 '어린양양꼬치' 왁자한 선술집 느낌이다.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 않아서 부담 없이 색다른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어린양양꼬치'다. 양꼬치집이라고 듣고 들렀더니, 중국 요리 메뉴가 빼곡하다. 중국어로 쓰인 메뉴판도 있다. 조선족 출신의 박순화...
  • 2016-02-23
  • [더 나은 미래] "결혼 이주 여성이라면 모국어 살린 통역사 어때요?" 소셜벤처 '온아시아'의 도전 이상선(37)씨는 열한 살 아이의 엄마이자, 중국이 고향인 결혼 이주 여성이다. 10여년 전, 한국인 남편을 따라 서울에 터를 잡은 후 5년은 '육아'에 올인했다. "애가 좀 자라서 취직하려고 보니 나이가 30대...
  • 2016-02-23
  • 300원의 가치 조홍매                                       대학교를 졸업한지도 어느덧 올해로 강산이 한번 변할만큼의...
  • 2016-02-23
  • 세뱃돈을 고향도 아닌 이국타향에서 값지게 사용하는 이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한국 인천남동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장상훈 군이다. '타인에게 베푼다는 것은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도 행복해지는법이다.'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서인지 장상훈 군도 약세군체에 후원의...
  • 2016-02-20
  • 추억의 손목시계 리기춘 어느날 나는 책상서랍을 정리하다가 서랍구석에서 22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스란히 잠들어있던 《상해표》손목시계를 꺼냈다.입김을 홀홀 발라가면서 하얀 손수건으로 먼지를 살살 닦으니 깨끗한 모양새가 그대로 깔끔하게 들어났다.어찌보면 보잘것없이 평범한 손목시계이지만 나에게는 애뜻한 감회...
  • 2016-02-18
  • 그래도 다홍치마가 더 곱지 않을까? 맹영수   지난1년남짓한 기간에 친척, 친우 그리고 지인들의 부름을 받고 20번의 결혼식에 참가했다. 결혼식은 평생의 연분을 맺는것으로써 응당 즐거운 맘으로 축하하여 주고 술잔을 들어야 했다. 허나 번마다 그런 즐거운 기분만은 아니였다. 왠지 어떤 결혼식에 참가하고 귀로에...
  • 2016-02-17
‹처음  이전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