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두번째 고향, 연변이 나를 있게 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0월14일 08시59분    조회:187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변, 나는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내 고향 연변에 대한 찬가를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상해지식청년 석토영(石兔瑛, 62세)씨의 절절한 이 한마디에 나는 전률을 느꼈다. 그녀의 여전히 힘있는 눈매에 실린 진솔한 감정이 피부로 느껴졌다. 연변을 떠난지 수십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선말을 류창하게 구사하는 그녀가 놀라웁기만 했다.

석토영씨는 당의 호소에 주동적으로 하향을 신청했다. 하지만 정작 연길현 지신공사(현 룡정시 지신진)에 도착했을 때 상상도 못해본 생활조건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중을 나온 소달구지도 태여나서 그때 처음 봤다는 그녀의 나이 16세였다.

어려서부터 자력갱생형의 아이였던 그녀는 재빨리 생활에 적응했다. 함께 내려온 15명의 지식청년중 고된 일을 이기지 못하고 병들어 눕는 사람도 있었지만 석토영씨만은 오히려 부모에게 절대로 부담을 드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일을 해제꼈다. 조선말, 조선글도 제꺽 배워냈다.

“조선족 녀성들은 참 대단한것 같습니다. 모두들 열정이 드높았지요. 저는 그런 모습을 닮고싶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산대의 추천하에 그녀는 부녀주임을 맡게 되였고 2년후에는 생산대장으로 당선됐다. 밤낮이 따로 없이 일했고 휴일이 따로 없이 일했던 고된 나날들이였다. 마을의 오보호로인들을 도와 물도 길어주고 남새도 보내주었는데 한번은 겨울이 오기전 땔나무를 장만해주려다가 도끼에 다리를 찍힌적도 있었다. 쉴새 없이 돌아치는 그녀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철의 아가씨”라고 친절히 불렀다.

“마을에서 공수가 제일 높았어요. 600공 아가씨로 불렸지요.”

그런 “철의 아가씨”에게도 무서운것은 있었다. 매일 저녁 불빛 하나 없는 산을 넘어 대대로 회의하러 갈 때면 저도 모르게 달음박질을 쳤다. 깊은 밤, 조용한 마을에 타박타박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들리면 약속이나 한듯이 집집마다 불을 켰다. 그 창가에서 흘러나오던 따스한 불빛을 떠올릴때마다 석토영씨는 가슴속에서 감동이 여울친다.

겨울이면 함께 온 지식청년들은 상해로 돌아갔지만 석토영씨는 한번도 돌아간적이 없었다. 1972년의 겨울, 상해지식청년들의 현황을 살피러 내려온 조사조는 석토영씨의 사적을 듣고 모든 지식청년들이 따라배울만한 본보기라고 칭찬하며 상해시정부일군 환영회에도 초대했다. 1973년 석토영씨는 상해에서 모든 지식청년들을 상대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석토영씨는 연변에 하향해있는 동안 겨울이면 일거리가 없는 상황을 고려하여 지식청년들을 상대로 한 가공공장을 세우기도 했고 옥수수 영양모단지를 보급시켜 그해 산량을 높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불태우는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그녀는 여기에서 입당을 했고 공사 당위 부서기로까지 당선됐다.

드디여 1979년 모든 지식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변에 내려왔던 1만 8000여명이 모두 상해로 돌아갔다. 10년 청춘을 불태웠던 제2의 고향 연변에 남아서 발전하려는 그녀에게 이번에는 상해가 손짓했다. 170만명에 달하는 지식청년들의 일자리문제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던것이다.

상해라는 훨씬 큰 활무대에서 그녀는 인생의 두번째 장의 막을 열었다. 상해복개경영회사 총경리, 상해흥화회사 총경리, 상해통용자동차부속품공장 공장장, 상해이거얼집단 부총재… 거칠것이 없었다. 그녀가 상해에서 왕성하게 펼친 활동들도 모두 상해지식청년들을 위한 일이였다.

“상해에서 아주 많은 발전의 기회가 나에게 차례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식청년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간고한 곳일수록 일할 힘이 솟구쳤다는 석토영씨는 연변에 하향해서 고생하던 시절이 인생의 큰 밑거름이였다고 고백했다. 청춘을 불태웠던 잊을수 없는 고장, 많은 지식청년들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석토영씨는 퇴직후 “상해연변지식청년련합회”를 설립하고 일심전력 지식청년들을 위한 사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것은 연변을 위한 사업이기도 했다. 10년 동안 회비를 전혀 거두지 않고 사재로 운영해온 그녀를 두고 가족들은 리해를 하면서도 가끔씩 안타까운 마음에 “기부 방식이 틀렸다”고 꼬집기도 했지만 그녀는 허허 웃으며 넘겼다.

석토영씨는 상해의 연변지식청년, 연변에 남은 상해지식청년들의 일뿐만아니라 연변이라면 발벗고 나설만큼 연변사랑이 대단하다.

2012년 사과배 판로때문에 고민하는 연변재배농의 사연에 팔걷고 나서서 해결해줬고 연변가무단이 상해공연을 갔을 때 숙박을 전부 배치해주기도 했다. 연변에서 손님이 오면 그녀의 집은 비공식적인 거처이다. 연변손님들을 위해 그녀는 커다란 대야에 김치를 담그고 찰떡도 쳤다.

석토영씨는 최근 연변의 관광업에 큰 관심을 갖고있다. 앞장서서 상해, 나아가 전국과 연변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데 취지를 두고 관광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 운신하지 못할 때면 연변에 와서 지내고싶을만큼 연변을 사랑하는 석토영씨, “연변이 나를 있게 했다. 내 말에 호소력이 남아있을 때까지 연변을 위한 일에 나서고싶다”고 고백한다.

연변일보 글· 사진 리련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흔 기자 = 어린시절 한족가정에 입양됐던 조선족 조향염씨가 현재 생모를 애타게 찾는 사연이 본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 7월 30일 오전 조향염씨는 기사를 읽고 전화했다는 길림성 부여시 도뢰소(陶赖昭)진 홍성촌의 방금녀씨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서 방...
  • 2014-08-20
  •   “저는 마음 잇기 차대의 성원입니다. 택시에 두고 내린 물품을 임자한테 되돌려주는것은 저의 응당한 책임입니다.” 19일, 17년간 도문시에서 택시운전수로 근무하면서 선후로 15만원에 달하는 금품과 수십대의 핸드폰을 주어 임자를 찾아 돌려준 양계걸(53세)은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2000년 여름, 한 ...
  • 2014-08-20
  •   지난 12일 한화 1550만원(9만원좌우)를 택시에 두고 내렸다가 세시간만에 되찾은 김승호(61세)씨는 연길 택시운전수 왕소(王潇)의 아름다운 소행에 련신 고마음을 표했다. 한국에서 귀국한지 이틀째 되는 날인 12일, 김승호씨는 친구한테서 꾼 돈을 돌려주려고 훈춘으로 떠났다. 아침 7시 50분경에 그는 동생과 함께...
  • 2014-08-20
  •   “자식들이 다 쓸데 없어유... 늙어서 손에 갚힌게 없으니 이 모양이 잖아유...” 어느 김씨로부부는 한때 유족한 생활을 누리다가 정년에 되자 저금도 없는데다 안로인이 시름시름 앓기까지 해 늘 자식들 넉두리만 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양로혜택으로 점점 자식한테 기대려는 로인들이 ...
  • 2014-08-19
  • 왕청현 공상은행에는 현재 50여명의 리퇴직인원이있다. 한때 이 은행에서는 “자관회(自管会)”라는 방식으로 로간부를 관리하였는데 자아관리에 애로가 많았고 누구도 관계하지않는 상태로 되여 로인들이 흩어지게 되였다. 10년전 이들은 전주 은행계통에서 처음으로 로인협회모식을 인입하여 관...
  • 2014-08-18
  • 《꽃타령》을 열창하고있는 최홍련(오른쪽) 최종화(왼쪽) 자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펼친 《로인절맞이 우리노래대잔치》프로에서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오성촌에서 온 74세나는 최홍련과 최종화(70세) 두자매는 민요 《꽃타령》을 성수나게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들 자매가 이 노래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
  • 2014-08-18
  • 18일 오전 10시경, 연변천지예술단에서는 “절씨구씨구 세월 좋아~”가 흘러나온다. 남들이 다양한 문예공연들로 로인절을 축하하는 가운데 이들은 절로 “세월 좋아”를 부르면서 춤판을 벌리는것이다. 가족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며칠 남지 않은 공연준비에 다급해진것이다...
  • 2014-08-18
  • 훈춘 농장로인협회의 미담   “우리 농장의 로인들은 그야말로 보배랍니다. 지금 전 주의 조선족농촌마을의 형편은 서로 엇비슷하지 않습니까. 젊은이들과 장년들은 모두 로무송출에 나서다보니 마을에는 로인과 어린이들만 남아있지요. 그러다보니 마을을 지키고 가꾸는 중임이 로인들의 어깨에 놓여졌지요.&rdq...
  • 2014-08-18
  • 90세 고령의 시아버지를 살뜰히 보살펴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킨 며느리가 있습니다. 연길시 하남가두 춘광사회구역의 마귀금녀성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올해 67세인 마귀금이 아침에 일어나 하는 첫 번째 일은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것입니다. 이어 따뜻한 음식을 시아버지에게 대접하고 세수를 시키고 면도질을 ...
  • 2014-08-15
  •   1일,연길시적십자회에서 한국에 무료수술치료를 보냈던 6명의 선천성심장병어린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귀국했다. 연길시적십자회에서 한국 구세군, 한국 동의성단원병원과 련합하여 전개하는 이 “적십자심장병어린이구조항목...
  • 2014-08-14
  •   아껴 먹고 아껴 쓰며 모은 돈 선뜻이 기부 지진재해구를 향한 연변인민들의 자발적인 사랑의 손길이 이어지고있다. 5일,연길시 공원가두 원신사회구역의 김주일로인(84세)이 적십자봉사소를 찾아 로당원으로서 운남 로전지진재해구에 저그마한 성의라도 표하고싶다며 성금 200원을 내놓았다.료해한데 따르면 김주일로...
  • 2014-08-14
  •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12일, 40여명 로인과 15명의 봉사자가 탄 뻐스에서 신나는 노래소리가 울려퍼진다. 연길시 진학가두 네잎클로버자원봉사협회가 로인절 30돐을 맞아 독거로인들과 “연길구경”에 나선것이다. 9시경, 뻐스는 연길시 진학가두판공실앞에서 출발해 첫 지...
  • 2014-08-14
  •  “1984년 8월에 주로인협회가 정식으로 설립됐고 또한 8월 15일을 연변의 로인절로 정했습니다. 올해 우리 주에서는 문예공연, 좌담회, 로년사업 30년 대사기, 화책, 정책자문 등 일련의 활동으로 로인절을 맞이하게 됩니다”고 7일 주로인협회 전평선회장이 로인절 30돐을 맞으면서 우리 주에서 펼치게 될...
  • 2014-08-14
  • 연길시공원소학교 3학년 3학급 담임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이 더운 여름 선생님 학급의 동가영학생이 방학간의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저의 단위에 와서 사무실을 청소하고 책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면서 저의들의 손을 도와주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마냥 뛰여놀고 싶을텐데 그래도 저의 단위 선생님들의 심부름도 생글생글...
  • 2014-08-13
  • 만성신부전증(뇨독증)으로 한국 서울성모병원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있던 가수 송경철씨가 석달간의 국외치료생활을 잠시 접고 지난 8월 8일 연길로 돌아왔다. 12일, 연길시 공원가의 한 세집에서 송경철가수를 만났다. 거액의 병원치료비때문에 진달래광장부근에 있던 살림집을 팔다보니 귀국해 부득불 조촐한 세집생활...
  • 2014-08-13
  • 10일 연길시 10명의 로인들은 팔도 강락장수원 홍명옥원장의  초청에  복숭아 두광주리를 사가지고 팔도로 향하였다.  홍원장은 오래전 같이 글쓰던 통신원들이라고 잊지 않고 로인절도 곧 돌아오는데 물좋고 공기좋은 곳에 와서하루를 즐기라면서 자리를 마련하였다. 홍원장은 장수락원의 50여명 로인들 보...
  • 2014-08-13
  • 지난 3월, 뻐스 탈 때 있은 일이다. 차에 오르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짧게 전화 받고 급한대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마음으로 콩나물시루속 같은 차안을  비집고 올라갔다. 오른손으로 공중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서서 정신줄을 놓고있는 사이 도적이 손쉽게 웃옷호주머니의 쪼르래기를 활짝 열고 스...
  • 2014-08-12
  • 8월 8일 연길공원 남쪽광장은 한복차림에 알룩딸룩 모자를 쓴 로인들로 붐비였다. 이날 연길시 진학가두에 자리잡고있는  흔흔로인락원에서 축수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고령로인들이 조용히 모이여 자아양로를 해오는 흔흔로인락원은 지금  60여명으로 80세이상 로인이 30여명 년장자는 92세이다. 연변로인절을 ...
  • 2014-08-12
  • 닷새전 서울에서 악몽 같은 비보가 갑자기 날아왔다. 한국 카톨릭대학 서울성모병원에서 골수의식 치료를 받고있던 박운봉교수가 엄중한 합병증으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는것이다. 몇달전 모두가 큰 기대를 안고 한국으로 병치료를 떠나는 교수님을 배웅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 2014-08-12
  •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 단장 황성렬씨   “우리 합창단을 전문화된 합창단으로 승격시켜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싶습니다.” 11일,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퇴직하고 2013년 3월에 퇴직일군들로 구성된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을 설립한 황성렬(65세)단장을 ...
  • 2014-08-12
‹처음  이전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