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대미문화상응모글2] 엄마의 빨래줄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2월4일 10시43분    조회:184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엄마의 빨래줄
김금단

 
점심을 먹고 거실에서 베란다를 마주선 나의 육안으로 베란다의 물기를 걷혀가고 있는 빨래들이 들어온다. 나의 청바지며 가슴이 볼록해진 딸애의 속옷이며 치마가 대롱대롱 걸려있는 빨래줄을 바라보며 문득 낯익은 풍경 하나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고향집 기둥과 대나무 말뚝 사이를 이어놓는 한갈래의 끈-엄마의 빨래줄, 엄마의 빨래줄은 엄마의 삶을 신통히도 닮아있었다.

동지 섣달에도 가녀린 몸으로 자기 몸에 걸친 묵직한 옷들의 무게를 감당해내며 차가운 랭기와 윙윙 불어치는 거친 바람의 시련에도 끄덕없이 고드름 같은 빨래를 달고있는 엄마의 빨래줄은 다섯 자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만 했던 엄마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이 가난을 부르는 틈새에 끼여 삶을 살아온 엄마는 옷자락에 조롱조롱 매달린 어린 자식들을 먹여살린다는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빨래줄은 늘 색 바래고 소박하기만 했다. 아버지가 입다 버린 옷을 입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가셨던 엄마, 우리 집 빨래줄에는 단 한번도 엄마의 이쁜 옷들이 걸려본적 없었다. 엄마의 하얗고 이쁜 외모와 매끄럽던 피부는 람루한 옷속에 감춰진채 빛을 잃어갔다.

제 몸에 달린 무게가 버거울 때에는 유연성 있게 축 늘어진 몸으로 빨래를 믿고 품어주는 빨래줄처럼 엄마는 무거운 짐들을 머리에 이고 오셨고 빨래줄의 묵직한 믿음처럼 힘든 모든것을 품어주셨다.

수많은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엄마의 내리사랑은 희망과 절망의 계곡을 무수히 오르내렸을것이다. 어깨에 진 짐이 천근만근 무게가 되여 엄마를 내리눌러 엄마는 깊은 신음조차 토해내지 못하면서도 용케도 그 험난한 보리고개를 잘 버텨올수 있었던것은 빨래줄의 묵직한 믿음을 닮아서였다. 엄마는 올망졸망한 우리가 언젠가는 커서 가정에 보탬이 될것이라고 굳게 믿으셨다. 그 믿음 하나로 때로는 허리 펼 틈조차도 아끼면서 땀방울 송송 맺힌 얼굴로 소마냥 억척스레 일하면서 우리만 믿고 앞을 향해 달려오셨다.

엄마가 정성스레 직접 가꾼 햇강냉이며 토실토실한 감자들은 엄마 머리우 똬리에 무겁게 얹혀져 시장에 나가 인심 좋게 팔렸다. 우리들의 밥상을 조금이나마 윤택하게 해주었던 감자는 때로는 엄마와 얼굴을 붉힐 때도 있었다. 감자 줄거리밑에서 감자를 찾다가 찾지 못해 손이 흙밑으로 깊게 파고드는 순간 감자가 손톱밑 가시가 되여 엄마의 손톱눈사이로 파고들었고 엄마의 손톱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건만 엄마는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생계가 제일 급했던지라 엄마한테는 아픔조차 외면된 세계였다. 삶은 햇강냉이는 똬리우에 얹혀졌건만 한여름의 뜨거운 햇강냉이 주무니속 열기는 엄마의 머리를 찜질하였다.

엄마는 맏며느리로 시동생 둘, 시누이 한명 딸린 김씨 집안에 발을 들여놓은 날부터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을 지내오시면서 살아왔다. 아니, 어쩌면 대가정에 있는 날 모두 그렇게 보내셨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금방 시집 왔을 때 동네에서 아버지가 핵에 로출되여 2~3년 밖에 살지 못할것이라고 수군덕거리는 말이 엄마의 귀에 들려왔다. 잔페군인인 아버지는 자신의 운명과 지친 삶을 종종 술로 새김질하셨다. 그때마다 엄마의 삶을 붙들어준것은 무엇이였을가? 술 마시고 주정하시는 아버지를 엄마는 “원쑤”라고 불렀지만 그 말속에 들어있는 끈끈함이 어머니를 지탱해준 힘이 아니였는지도 모른다. 못된 시집살이에 겹쳐 아버지를 향하는 원망도 컸지만 엄마의 시선은 늘 아버지를 향하였다. 엄마는 유연한 마음으로 주어진 모든것을 순리로 받아들이고 삭이면서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셨다.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순간들은 자칫 마음속 사랑의 끈을 썩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가 마음속에 간직한 그 사랑의 끈은 썩지 않고 빨래줄마냥 대나무 말뚝과 집 기둥 사이에 있었다. 우리들은 엄마의 빨래줄에 나붓기는 빨래였다. 그래서 엄마는 그 끈을 놓을수 없었다. 힘든 비바람속에서도 엄마는 마음속 끈을 고운 물감으로 색칠하면서 마음속에 굳게 뿌리를 내려갔다. 그 힘의 근원이 자식이였지만 엄마에게 있어서는 아버지도 가족이기에 결코 외면할수 없는 함께 손 잡고 걸어야만 했던 존재였다.

푸근한 엄마처럼 엄마의 빨래줄은 때로는 자연의 휴식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봄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재잘거리며 빨래줄에 촘촘히 앉아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마치 콩나물 대가리와 같은 오선보와 흡사하다. 빨래줄에는 가끔 지나가던 참새들도 머무르기도 하고 여름이면 고추잠자리며 왕잠자리들이 사뿐히 내려앉아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련상시킨다.

살면서 나는 이따금씩 엄마의 빨래줄 존재를 새록새록 떠올린다. 세월이 많이 흘러 강산도 몇십번 변하고 지지리도 어렵던 생활도 끝났건만 엄마의 빨래줄에는 지금도 비싼 옷들이 나붓기는 일은 절대로 없다. 빨래가 넘쳐날 때면 울바자가 엄마의 빨래줄이 되여주기도 한다. 엄마곁에서 말없이 보아온 엄마의 빨래줄은 우리들에게 알뜰살뜰 소박하게 사는 거울이 되여주었다.

엄마는 여직껏 살아오시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오로지 자식들과 집안을 위해서만 자신을 바쳤다. 엄마가 자식들의 마음에 새겨주신 그 빨래줄은 엄마곁을 떠난지 이삼십년이 되여가고있건만 지금도 생생히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그 힘으로 우리 자식들은 머나먼 타향에서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모든것들을 삶의 섭리로 자연스럽게 받아내며 살아가고있다. 아마 우리도 엄마처럼 서로에게 빨래줄 같은 존재가 되여주었기때문이라고 믿는다.

내 키를 엇비슷이 따라오고있는 딸애를 두고보니 엄마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인제야 알것 같고 엄마가 되고나서야 내 마음을 안다는 엄마의 말을 어렴풋하게 리해하게 되였다.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내리사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것을 내여주고 한평생을 껍데기뿐인 몸으로 살아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것 같다. 여태껏 무심했던 엄마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엄마를 이젠 알것 같다.

든든한 빨래줄밑에서 빨래가 떨어지지 않고 정결하게 마를수 있듯 가정도 사회도 부실한 빨래줄아래에서는 건강할수 없을것이다.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져가고있고 가진것이 점점 많아지고있지만 인심은 되려 점점 각박해져만 간다. 하지만 이런 세상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함께 살아나가야만 하는 인연이다. 하찮은 존재더라고 서로에게 빨래줄의 묵직한 믿음마냥 조화가 되여주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고싶다.

우리는 모두가 엄마의 빨래줄마냥 믿음을 주는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다.

뭉게뭉게 흘러가는 하얀 구름 너머로 고향집 엄마의 빨래줄에 하얀 빨래가 하느작거린다.

<청년생활>잡지 2016년 2호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독서가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될 때까지 ‘들리는 도서관’은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이 되고 누군가에겐 독서시간이며 또 누군가에겐 힐링의 순간을 선사하는, 새벽 다섯시를 알리는 차분한 목소리가 세상의 아침을 잔잔하게 열어준다. 책을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 2020-02-01
  • 내가 동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 마을은 장백산 아래 첫 동네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심심산골 화룡시 룡성진 청산촌이다. 마을 3면은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고 옹기종기 초가집이 늘어진 마을 앞으로 해란강이 흐른다. 마을 뒤의 넓은 신작로로 아름드리 통나무를 실은 차량들이 실북나들 듯 달린다.   필자...
  • 2020-01-31
  • 나와 남편은 내가 대학교 3학년 되던 해 겨울방학에 처음 만났다. 음력설 휴가로 길림에서 직장을 다니던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고 나의 아버지와 남편의 엄마가 같은 위생계통에서 근무하는 인연으로 만남의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때 남편은 엄마의 손에 끌려 직접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남자 치고는 너무 말쑥하고...
  • 2020-01-22
  •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꿈을 이룬 조선족 왕훙들을 소개합니다 ‘왕훙’은 인터넷에서 뜨는 사람(网络红人)의 줄임말로 ‘인터넷에서 인기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중과 접촉하며 오락, 쇼핑, 려행, 료리, 패션,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시간 온라인...
  • 2020-01-19
  • [청춘노트] 문학임을 알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나는 그랬다. 갓 상해에 도착했을 때의 나의 모습은 문학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찌는듯 한 8월의 오후, 나는 40여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상해역에 내렸다. 출구를 빠져나오면서 나의 시야에 들어온 건 사면이 빼곡히 들어 앉은 고층건물과 그 아래에 꼬...
  • 2020-01-19
  • [노래는 추억을 싣고] 음악은 우리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 중 하나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무심코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저도 모르게 코노래가 나올 때도 있고 힘이 들 때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물론 기쁠 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그 기쁨이 배가 되기도 하지요.  같은 노래일지라도 듣는 ...
  • 2020-01-16
  • [청춘노트-김명순]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는 계절이 또 한번 봄의 얼굴로 걸어오고 있다. 혹은 조금 늦게 혹은 조금 빠르게 올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꼭 찾아오는 계절, 나는 그 계절의 시작과 끝이 참 좋다. 자연의 순리대로 때가 되면 가고 또 새로운 계절이 오는 것처럼 사람 사는 일도 그렇게 순리대로 이루어...
  • 2020-01-13
  • 나는 중학시절을 하늘아래 첫 동네로 불리우는 안도현 석문진 무학이란 곳에서 보냈다. 안도현, 룡정시, 화룡시가 접경한 금삼각 지대에 자리 잡은 무학은 경치 좋고 인품 좋은 고장이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지세가 마치 선학이 춤을 추는 것 같다하여 지명을 무학(舞鹤)이라 하였다. 필자 한창국 마을 주변에는 뭇산들...
  • 2020-01-10
  • 새해 벽두를 달리는 청춘들의 이야기, 그 뜨거운 현장 속으로 # 룡정시병원 부산과 부주임 김선화(35세)씨는 새해의 아침을 일터에서 새 생명들과 맞이했다. 올해로 근무경력 13년 차, 산부인과 문진과 주원부에서 환자진찰을 맡고 있는 김선화씨는 부산과의 각종 수술, 신생아 접생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중견의사이다...
  • 2020-01-06
  • 《김찬해전》을 집필하기 위해 현지답사를 다니던 일화를 들려주는 저자 김순희녀사와 그의 아들 장상권 2019년 한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후 연길시에 살고 있는 한 평범한 퇴직교원 김순희녀사(65세)는 연변대학에서 건교 70주년을 맞으면서 갓 출판한 《림민호평전》(한문)과 함께 올해 초 자신이 집필출판했...
  • 2020-01-02
  • 12월 19일, 단동시조선족애심협회는 봉성시의 어려운 조선족로인가정을 방문하는 위문활동을 펼쳤다.   일행이 방문한 장금숙 로인은 페, 간, 담낭 등 여러 질환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해왔으며 올해 7번이나 입원해 친척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연명중이다. 딸 마저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상태이며 지금껏 모든 생계 및 ...
  • 2019-12-23
  • 한 녀자애가 있었어. 시장에서 식품 매대를 하는 엄마가 있다 보니 남들보다 시장에 훨씬 많이 가는 편이였지. 엄마 매대 주변의 아주머니들이 “고븐 아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른다며?”라고 슬슬 띄워주면 서슴없이 목청을 뽑아 노래를 부르곤 했어. 그 정도면 세상물정을 알 만한 나이였을 텐데 오고 가는 뭇사...
  • 2019-12-20
  •   남을 돕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도 아니고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다는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순수하게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 가운데는 공통분모가 바탕에 깔리는데 바로 사랑이라는 분모에 희생과 봉사하는 마음을 나누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소개할 주...
  • 2019-12-20
  • [수기 28] 대채를 참관 학습하러 가던 나날들 김삼철 51년전에 대채대대를 참관 학습하던 나날을 잊을 수 없다. 비록 반세기를 넘었지만 지금도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다. 1970년대까지 산서성 석양현 대채대대는 우리 나라 농업전선의 훌륭한 본보기로 전국 인민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채라 하면 누구나 진영귀를 떠...
  • 2019-12-20
  •      지난 12월 13일 오후, ‘한민족글로벌돈고래’ 띠모임에서는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하고 즐거운 교육을 실천하는 칭다오서원장학교(2006년 설립)에 장학금 6천위안을 전달했다.   이날 장학금 전달식에는 ‘한민족글로벌돈고래’ 신임회장 김덕기, 글로벌돈고래 칭다오지회 강춘란 회...
  • 2019-12-19
  •   제2인생의 첫해를 마무리하면서             최미화   “퇴직간부는 요즘 어떻게 보내고 있죠? 앞으로 뭐 할 타산이죠?” 금년 1월에 정년 퇴직한 후 수십번 듣는 인사말이다. “저는 연변애심어머니협회 일 돕고 있어요” 나의 자랑찬 대답이다. 그도 그럴...
  • 2019-12-19
  • 2000년 4월 25일. 나는 난생처음으로 중국 땅을 떠나서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당시 한창 유행됐던 일본유학의 붐에 떠밀려서 이기도 하고 4년간 공부했던 회계 전업이 나하고 맞지 않은 듯하여 다른 공부를 하고 싶어서 이기도 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 생활비를 자체로 해결할 수...
  • 2019-12-16
  • 1 아버지께서 저세상으로 떠난 지 어언간 4년이 된다. 생의 마지막 반년을 아주 못된 구강암으로 앓으시면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미이라처럼 말라가던 아버지.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시면서 오직 고통으로 절여진 퀭한 두 눈으로만 겨우나 의사표달을 하시던 아버지. 나는 세상에 이런 절망의 눈빛도 있...
  • 2019-12-16
  • '다문화가정 지키는 또 하나의 영웅'…'레인보우 히어로즈' 발족 강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다문화가정 아빠 자조모임  "머나먼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여성의 '오빠·남동생' 될 것" (서울=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레인보우 히어로즈'는 머나먼 고국에 가족과 친구를 ...
  • 2019-12-05
‹처음  이전 2 3 4 5 6 7 8 9 10 11 1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