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녕파조선족협회를 찾아서 - 새 터전을 개척하는 사람들, 녕파(닝보)편(3)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5월10일 07시54분    조회:185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조선족이 남방에 오면 조선말 하나 아는것이 큰 우세입니다. 거기다가 대학전업 하나 잘 쥐면 잘 나갑니다. 어지간하면 관리직에서 일할수있습니다.”

“협회 하나 만들자, 서로 교제를 하고 서로 도우면서 지낼수있는 조선족협회를 만들자고했습니다.”

녕파조선족협회의 형성

녕파 호혜영성무역유한회사(昊惠永星貿易有限公司) 사무실에서 리영환(李永焕) 사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나서 대학졸업후 녕파에 오게 된 경위로부터 녕파 조선족협회의 설립까지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리영환 사장의 무역회사 현판

 리영환 녕파조선족협회 회장

[리영환]  “저도 연변사람입니다. 왕청에서 태여나 왕청에서 학교 다녔습니다. 왕청 화신이라는 곳인데 심한 시골입니다. 거기서 초중을 다니다가 진으로 이사해서 고중까지 다녔습니다. 연변대학 일어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전업을 일본어학부로 한것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였다고할수있습니다. 제가 녕파에 올때만하더라도 일본어를 할수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지요.”

[리영환]  “제가 녕파에 오게 된데는 재미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연변의 룡정에 연변농학원이라는 학교가 있고 거기에 일본어센터가 있습니다. 제가 졸업할때 그곳에서 교원을 모집한다고하여 찾아가 면접까지 보았습니다. 다 합격되여 졸업하면 그냥 와서 취직하면 된다고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몇달후 제가 졸업장을 들고 가니 이미 다른 사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누군가 뒷거래를 하여 저를 제치고 농학원의 일본어교원에 취작했던 것입니다. 그때 울화도 치밀고 또 취직하지 못해 속도 썩이고 그러고있는데 어느날인가 웃학년을 다니던 학교선배가 전화왔습니다. 녕파에 일본어 통역이 필요하다며 와서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고말입니다. 그래 아무생각도하지 않고 그냥 짐을 싸들고 녕파에 달려온 것이 지금까지입니다. 올해로 23년째입니다.”

[리영환] “회사는 지난해에 공식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명이 좀 까다롭습니다. 원래는 두자로 등록하자고했는데 이곳 의류업과 무역회사가 하도 많은지라 계속 등록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세글자로도 해보다가 지금처럼 회사명을 달게 되였습니다. 저의 부부는 딸 하나와 아들하나하여 자식 둘입니다. 그래서 네 식구의 이름자중 한자씩 선정해 무역회사명을 달고 등록하게 되였습니다.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지만 저의 회사를 공식 등록한 것은 지난해 3월이였습니다. 길지 않지요.”

[리영환]  “지금 고향에는 가족이 없습니다. 어머님은 지금 녕파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사실 어르신님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친척도 없지 아는 사람도 없지 말입니다. 젊은이들은 일때문에 정신없이 보내기에 그래도 괜찮은데 부모님들은 외롭고 쪽쪽합니다. 자녀들이 날마다 뜨겁게 얘기해 드릴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로인협회가 있어서 많이 좋아진것 같습니다. 로인님들은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원족도 다니시고 마작도하시면서 보냅니다.”

[리영환] “녕파조선족협회를 이번 원단에 갖 설립했습니다.녕파시 조선족협회라구말입니다. 제가 녕파에 온지 23년째인데 물론 뜨문뜨문 조선족끼리 모여 활동을 하군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할때뿐이지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 이전부터 많이 생각하던바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들은 처음에 토요일일요일 모여 함께 배구치면서 조선족을 많이 만났습니다. 또 계속 만나니 점차 그룹이 형성되였습니다. 그래 설을 맞으며 함께 모인 자리에서 저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협회하나 만들자, 서로 교제를 하고 서로 도우면서 지낼수있는 조선족협회를 만들자고했습니다. 그러니깐 모두들 찬성해 나섰습니다. 우리도 같은 생각이지만 이때까지 앞에 나서는 사람이 없어 이러고있다면서 찬동했습니다. 그래 원단에 어디어디서 설맞이 모임을 가지자는 통지를 내고 또 조선족협회도 만드니 여러분들이 용약 참가하라고했습니다. 지금 위챗이 발달하지 않습니까? 위챗의 우리 췬(群)에 통지를 돌렸습니다. 그냥 3,4십명정도 모일거라 생각했는데 1월 1일 놀랍게도 백 40명이나 모였습니다. 그래 설맞이 행사를 재미나게 하고 조선족협회를 세우기로했습니다.”

 

녕파조선족협회 창립 기념사진(녕파조선족협회 제공)

[리영환]  “조선족협회 설립이 이제 몇달 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3.8절에 로인님들을 대접했고 이제 5월에는 야외 산책놀이도 조직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6월이면 우리의 전통명절 단오가 되는데 화동(华东)지구 조선족 배구시합을 조직할것입니다. 우리 녕파가 아니라 전반 화동지구 조선족배구시합이 있습니다. 그러니 상해, 소흥, 가흥, 의우(의오义乌), 항주, 녕파 적어도 5개 이상 배구팀이 조직되여 경기를 치를것입니다. 신청과 등록사업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경기장소는 소흥일것입니다. 거기에 한국회사가 있고 조선족도 많습니다.”

[리영환] “녕파는 참 이상한 곳입니다. 다른 곳은 일반적으로 조선족이 비교적 집중해 사는데, 식당도 한데 모였는데 녕파는 아닙니다. 이쪽에 한집있고 또 저쪽에 어쩌다 한집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자주 모여 활동하기에 불편이 많습니다. 우리 위챗 췬에는 백 50여명이 등록되여있는데 아직 모르는 조선족이 많은 줄로 압니다. 최소 천명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녕파에서도 조선족 운동회를 조직해도 될것 같습니다. 녕파에는 한국인협회도 있습니다. 그래 한국인들을 통해 한국회사에 다니는 조선족직원들이 더 없는가 알아볼 생각입니다.”

[리영환]“지금도 조선족 젊은이들이 녕파에 많이 오는것 같습니다. 상세히는 모르지만 배구를 함께 하는 친구들을 보면 가정을 이루고 온지 몇년씩 되는 사람들은 좀 괜찮습니다. 차도 있고 대우도 괜찮은데 젊은이들은 어렵습니다. 집세가 비싸지 소비가 높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회사에서 숙사를 제공하지 않으면 월급만 받아 세를 내고하면 살기 힘듭니다. 지금 녕파에서 조선족 젊은이들은 한국회사를 많이 선호합니다. 한화, 삼성, 엘지 등 한개 회사에 한 3,40명정도의 조선족 직원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회사가 녕파 교외에 있기 때문에 흩어질수밖에 없습니다.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지요. 일본회사에도 통역하는 조선족 친구가 몇명 있더라구요. 또 녕파에는 “니싼(日产)”이라는 일본클럽이 있습니다. 제가 취직한 첫 회사가 일본회사였는데 그때 우리 사장님이 이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저도 가입했는데 지금까지 일본인이 아니여도 일본회사 직원이라도 가입할수있습니다. 그러니 이 협회에도 조선족이 얼마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곳 일본회사들이 한국회사만 적지 않습니다.”

리영환(오른쪽) 조선족협회 회장과 함께

지금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국내에서 발전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국에 나가려하고있다. 이와 관련해 리영환 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리영환] “정말 연변보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가서 최하층에서 힘든 일을하며 산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대부분 어렵게 사는 줄로 알고있습니다. 물론 돈도 벌겠지요. 이곳에서는 출근해서 월급을 받는데 거기서는 정말 진종일 체력로동을 해야하니 말입니다. 특히 중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배운 것이 있다면 한국보다는 그래도 여기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족이 남방에 오면 조선말 하나 아는 것이 큰 우세입니다. 거기다가 대학전업 하나 잘 쥐면 잘 나갑니다. 어지간하면 관리직에서 일할수있습니다. 특히 한국회사는 한국어에, 중국어에 플러스 전업하나 있으면 잘 쓰입니다.”

조선족 청년들의 직업관에 대해 리영환 회장도 유감을 표한다. 조선족 젊은이들의 자세가 틀렸다는것이다.

[리영환] “유감스럽게도 저의 회사 7명 직원은 모두 한족직원입니다.조선족 젊은이들이 직원으로는 썩 마음에 안듭니다. 어찌보면 조선족은 향락주의라고 할까, 고생하자는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겸손하게 갖 졸업하면 가장 밑바닥부터 배우면서 올라가면 좋겠는데 졸업하자 좋은 대우를 요구하고 좋은 로임을 요구합니다. 한족들은 시키는대로 꾸준히 잘해줍니다. 어찌보면 조끔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혁개방이후 녕파는 지리적인 우세를 빌어 본격적인 발전을 가져오면서 중국 대중도시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하는 중요도시로 급부상했다.  이러는 가운데 중국조선족은 없던데로부터 있는데로 적은데로부터 많은데로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으며 드디어는 조선족협회까지 있게 되였다. 못이 크면 고기가 모이기 마련이다. 이 세대 조선족의 노력을 거쳐 앞으로 언젠가는 이곳에서도 청도대련 못지 않게 조선족의 생기넘치는 터전이 마련되리라 생각해본다. 
 글, 사진/김성룡 
중앙인민방송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모임에서 아버님들이 합창하고 있다.       (흑룡강신문=칭다오)이계옥 특약기자=재칭다오용정향우회가 8월 15일 오전 11시, 칭다오시 청양구에 위치한 세한레포츠내 박대감숯불구이에서 회원 부모 20여 명을 모시고 노인절 맞이 효도잔치를 펼쳤다.   칭다오에서 자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부모님...
  • 2017-08-18
  • 일전에 3년 넘어 ‘잠복’했다던 리종환씨를 만났다.‘군중문화연구원’리종환은 60대 중반으로서 연변군중문화무대에서 손꼽히는 연구원이며 노래지휘가이다. 왜 ‘잠복’했는가를 캤더니 난치병으로 한국 나들이를 하면서 치료에만 수십만원의 거금을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마주한 ...
  • 2017-08-18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1) ◇강성범(룡정) 고마운 동창들과 함께 세월이 갈수록 내 가슴속에 력사의 한페지를 차지하며 지울 수 없는 흘러간 일들이 기억의 파문 따라 오늘도 머리속에 생생 떠오르며 이 가슴속을 깊이깊이 파고든다. 물은 건너보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고 하루 건너 흥청망청 먹어...
  • 2017-08-1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0) ◇윤성문(통화) 1959년 여름에 찍은 가족사진. 뒤줄 오른쪽 첫 사람이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필자.   현재의 필자 나는 올해 78세 나는 로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인 1959년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를 키워주고 공부시켜준 삼종할아버지(주...
  • 2017-08-15
  • 수마에 핥퀸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재계에서 모범을 보이며 지역사회의 발전, 민족의 아픔을 보듬어온 길림성 조선족기업인들이다. 올해 길림성에는 특대홍수로 피해가 막심했다. 특히 영길현 조1중과 조선족실험소학교 두 민족학교와 조선족집거지인 연변이 피해가 극심했다. 수해 피해소식을 접...
  • 2017-08-11
  • [수재지역 후속] 8월10일 길림시조선족기업가협회에서 영길현 수재지역을 순방위문했습니다. 길림시조선족기업가협회 조약걸회장, 김광국상무부회장, 량해봉부회장 박용수 부회장 겸 비서장을 비롯한 일행 10여명은 영길현 조선족실험유치원, 중소학교와 구전진조선족로인협회, 금풍촌...
  • 2017-08-11
  • 밥 한술 뜰 시간도 없이 바삐 보낸다는 요즘 세상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동네 책방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동네 책방 관련 기사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
  • 2017-08-11
  • 할아버지 령전에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유일한 사진(앞줄 오른쪽 두번째 사람) 나의 할아버지는 극히 평범한 농민이였고 155센치메터의 왜소한 체구였지만 나에게는 항상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한 형상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가 전선에서 희생된 후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랐...
  • 2017-08-08
  • 월드옥타 연길지회 차세대, 안도현 유수천촌에 사랑의 손길을 보내   8월6일, 월드옥타 연길지회 차세대들은 모은 성금 6047원으로 가전제품을 사가지고 유수천촌으로 향했다. 올해 홍수재해로 인해 연변 각 지역에서 인명피해, 물질피해를 받게 되였다. 이런 가슴아픈 사연에 사회각계는 너도나도 구원의 ...
  • 2017-08-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춘식(한국) 조카딸의 말에 의하면 요즘 자기네 직장에서는 다들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혼자 싸던 도시락이 한명 한명 늘어나더니 이제는 회사 도처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바람이 불고 있단다. 회사에서 주는 식비 4000원(한화)을 아끼려고 녀직...
  • 2017-08-07
  • '연변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웃사랑에는 국경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지난 8월 5일, 연변한국인상회(회장 신주열)에서는 한국인들의 사랑이 담긴 성금 6만120원으로 쌀을 구입해 수재지역인 왕청현 왕청진의 6개 촌에 전달했다. 한국인회 임원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비가 오지 않는 좋은 날로 ...
  • 2017-08-07
  • 일전 장백조선족자치현 당위서기 송흠위, 현정부 상무부현장 전조명, 현당위 상무위원 윤효원, 현인대 부주임 정학량, 현정협 부주석 정희전 등 현급 지도일군들로 구성된 위문단은 수재가 가장 심했던 길림시 풍만구, 룡담구, 창읍구, 선영구 등 여러 지역에 심입해 수재상황을 상세히 알아보고 여러 구의 지도일군들과 친...
  • 2017-08-07
  •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만 기자=중국인민해방군 창건 90돐을 맞이하는 8.1절을 며칠 앞둔 7월 27일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와 옌볜 ‘지부생활’잡지사, 옌지텔레비죤방송국, 흑룡강신문사 산둥지사 등 4개 조선족언론매체가 칭다오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 노전사 이윤근 노인을 집중 ...
  • 2017-08-04
  • 은지와 준승이 엄마의 육아이야기   (흑룡강신문=일본)남들처럼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은것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삶이다.자식의 잘되기를 바라는것은 세상 모든 부모들이 바램이다.그리나 자식이 잘된다는것도 정답은 없는거 같다.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
  • 2017-08-02
  • 밀산시 해방촌 로년협회 김정문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정명자 기자= 밀산시 련주산향 해방촌에 가면 모든 일에 솔선하며 바삐 보내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가슴이 설레이는 일'을 하는것을 만년의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는 퇴직교사 김정문(70)씨이다.       32년간 련주산향조선족중...
  • 2017-08-02
  • 7월 31일, 영길현조1중에서 재해복구 자원봉사를 하고있는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와 길림신문사 ‘애심1번지’기부금 전달팀 성원들. 올 7월13일과 20일, 일주일 간격으로 두번이나 홍수 습격을 받은 영길현 조1중과 조선족실험소학교, 두 민족학교를 향한 민족사회의 사랑릴레이가 봇물처럼 이...
  • 2017-08-02
  • (흑룡강신문=하얼빈) 진종호 기자=졸업 30주년을 맞아 오상시조선족고급중학교 84-87기 졸업생들이 은사들을 모시고 7월28일부터 31일까지 3박4일간의 뜻깊은 동창회를 가진 동시에 모교를 방문해 성금 5만원을 기부함으로써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오상시조선족고급중학교 84-87기 졸업생들은 오상시조선족고급...
  • 2017-08-01
  • 좌로부터 주수덕씨, 리귀우씨, 장혜민씨, 김덕택회장. 자전거를 타기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국내에 꼭 자전거를 타고 가봐야 한다는 몇개 로정들이 있다고 한다. 청해호를 한바퀴 돌기, 중화 대북을 한바퀴 돌기,&nb...
  • 2017-08-01
  • 연변조선족녀성기업인들 수재지역에 온정을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한 물품을 전해주려고 했는데 피해 상황을 보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연변조선족녀성기업가협회(회장 손향)에서는 7월 31일, 54명 녀성기업인들의 마음을 담은 구호물품들을 싣고 수해지역인 안도현 명월진으로 향했다. 명월진에서도 구룡사...
  • 2017-08-01
‹처음  이전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