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봉사자팀 10돐 기념모임의 희열속에
“100세시대”, “로령화시대”는 어느 누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연스럽게 맞이하게 되는 사회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오래 살아야 하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의식적으로 또는 막연하게 나마 고민하거나 사색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줄로 안다.
이같은 문제앞에서 연변가정연구소 산하 문화봉사자팀 성원들은 언녕 10년전 고민을 끝냈다. 올 12월의 첫날 문화봉사자팀은 함께 단란히 모여앉아 “문화봉사자팀”을 무어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속에서 자신들이 걸어온 려정을 되돌아 인생을 즐겁게 멋있게 사는 비결을 “평생교육”에 귀결시키며 소감들을 나누었다.
2007년 3월 연변가정연구소 문화봉사자팀 (팀장 최옥자 운영위원 김행자, 김인옥, 전순희)을 출범시킨 뒤로 지원자들은 “평생교육강좌”수강생으로 등록하고 정기적인 강좌를 통해 자신의 자질을 제고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들은 퇴직후로 어쩔수 없이 갈마드는 “성 쌓고 남은 돌”이라는 허무한 의식부터 깨끗이 지우고 "나를 필요로 하는 하는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봉사하자”는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우선 “위로받기보다 위로하기를 리해되기보다 리해하기를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기”를 실천하기로 작심한것이다.
녀성평생교육강좌를 지도했던 대학교수와 뜻을 함께 했던 유지인사들 함께.
문화봉사자팀은 사회 각계의 유명인사, 대학교수, 사회단체 회장 등 지성인들을 초청하여 녀성평생교육강좌를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동시에 재능기부를 위한 작품전시회도 개최하였으며 자체 회지 “한알의 씨앗”을 14호 출간하여 함께 공감하면서 문화품위를 구비하였다.
그들은 “누군가 해야 하는 일에 앞장서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자”는 의지로 농촌지역 민족학교(배초구진제2소학교) 학부모교실을 개설하고 각종 도서와 장학금(3000원)을 지원하였다. 중국조선족차세대양성프로그람을 위해 “1004”(천사)회원으로 가입하였고 연변TV "사랑으로 가는 길"에 출연하여 성금 5000원을 지원하였다.
또한 중국부녀발전기금회에서 발기한 “어머니소포” 사회공익활동에 동참하여 빈곤지구 어머니들에게 따뜻한 사람의 마음을 전하였고 서장고아원에 쌀 10포대와 된장 24통, 의류 등을 지원하였다.
그들은 또 “영원히 살것처럼 배우자”는 명제를 내걸고 배움을 락으로 구지욕을 불태웠다. 팀원들은 모두가 그들 말대로 “6학년”, “7학년”생들이다. 하지만 배움에는 년령대가 문제될것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저마다 컴퓨터강습반에 참가하여 타자부터 판면설계, 포토샵응용기술을 배웠고 위챗을 통해 정보를 장악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시대와 함께 성장”하기를 원했다. 이것이 “늙은이”로 밀리지 않고 “어르신”으로 대접받고 세상과 대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문화봉사자팀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것인가?” 하는 고민을 사회적, 민족적인 차원으로 그 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고 류연산 저 “혈연의 강”을 필독서로 읽으며 고향문화탐방, 력사탐방, 지역문화행사(생태문화축제, 진달래축제, 된장문화축제)에도 참가하면서 력사의식, 민족의식을 키우면서 단순 취미활동이 아닌 배움과 나눔을 사명으로 실천하는 "격"을 갖춘 사회단체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 노력으로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느덧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의 ‘리더’가 되여있더라”, “완전 성격이 활달해진 나를 발견하였다” “손군들의 ‘보모’가 아닌 ‘선생님'이기도 하였다”라고들 하면서 서로가 만나 교류하고 함께 배우면서 성장해온 나날의 보람과 감격을 가슴 뿌듯이 느끼고있었다.
그들은 "마음만은 파랗게 젊어있는것이 인생인데 내가 하고싶은 일이 있고 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면서 "문화봉사자팀"이라는 이 평범하면서도 품위있는 이름앞에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며 신들메를 조이고있다.
길림신문 김청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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