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논판에 울려퍼지던 사원들의 노래소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7월25일 09시15분    조회:77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28)

◇조동관(장춘)

로인회 활동에서 연설하고 있는 필자

1970년대 중엽의 어느 한 초여름의 청명한 날씨였다. 서란시를 끼고 있는 영안대대 순인소대에서는 모내기 고조에 진입했다.

하긴 하지까지 가지 않고 다문 2-3일이라도 앞당길 예산이다.

논판에 심어놓은 모들은 새파랗게 줄이 쪽쪽 서있고 아지랑이 춤추는 논에서는 사원들의 모내기가 한창이다.

줄모를 심는 사람들, 모를 뜨는 사람들, 써레질하는 손잡이뜨락또르, 모를 나르는 남정네들- 볼 만한 일판이다.

모내기는 시간성이 강하기에 실은 어린애로부터 로인에 이르기까지 총출동한 셈이다. 그중에서 20여명 주력은 줄모 심기에 여념이 없고 나이 지긋한 로인들과 학생들은 한쪽에서 따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재미 있는 일은 줄모를 심는 사람들이 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노래자랑을 하는 것이다. 후에는 노래하는 사람은 아예 서서 노래만 했다.

아리랑고개 넘어가는 앞집 아주머니의 노래, 노들강변 봄바람에~ 새각시의 노래, 어랑타령 부르는 김서방의 노래… 너무도 성수나고 재미난다. 노래곡이 틀려도 상관없다. 누구나 다 한곡조씩 넘기는 노래, 사원들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순진한 노래들이다. 노래는 바람 타고 멀리까지 퍼져갔고 지나가는 길손들도 한참씩이나 지켜보다가는 박수까지 쳐준다.

나는 그 때 대장직을 맡았었는데 모내기를 제때에 완성하기 위한 조치로 만출근하는 사람은 장려하고 점심에는 시내 타래떡집에서 매일 일정한 수량의 타래떡을 공급하도록 해서는 일터에 나오는 사원들은 하루에 두가락씩, 어린애 젖먹이러 오는 할머니들과 논판에서 뛰노는 꼬맹이들도 한가락씩은 차례지도록 했다.

이렇게 모내기는 힘들어도 사원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흥겨운 일터로 되게 하였다.

실은 재미 있는 일은 또 있다.

애숭이들이 논뚝에서 돌아치다가 논물에 빠져 우는 애가 있는가 하면 모짐을 논에 거꾸로 박는 이도 있다. 모두가 우습고 재미 있는 일들이다.

그 때 사원들은 생산대를 자기 집으로 생각하며 이 큰 가정에 똘똘 뭉쳐서 겁나는 일이 없었다. 년수입도 좋아 한공에 2원 50전까지 되니 도시의 출근족 부럽지 않았다.

거기다가 식량은 소대 정미간에서 좋은 입쌀로 분배해주니 등 뜨시고 배 부르고 얼마나 좋은가. 그것도 도시 속에 사니 말이다.

그 때 우리 소대는 규모가 작아 량식 총생산량은 많지 않았지만 호당 량식산량은 만근에 접근했고 우리 영안대대(15개 소대)는 720만근 량식을 생산해 전 성의 모범대대로 되여 삼릉패(三菱牌) 일본 화물차까지 상으로 탔다. 그 때 우리 영안대대 량식산량은 작은 공사 둘을 초과했다.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 해 ‘10.1’국경절에 영안대대는 40명의 관현악대를 조직해 주석대 앞을 지나며 국가를 연주해 또 한번 이름을 크게 떨친 것이다.

“아! 영안, 영안!” 감동된 시민들의 목소리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 전 시적으로 아직 악단이 없는 실정이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하지만 1980년대 개체농사가 시작되면서 이 모든 것은 중국 농촌의 한단락의 력사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대대는 영안, 영춘 두개 대대로 갈라지고 내가 있던 동네와 생산대의 토지에는 수십채의 아빠트가 서고 상점, 병원도 섰다.

그간 세월은 30여년이 흘러갔다.

하지만 모내기 논판에서 불렀던 사원들의 노래- 로동의 희열과 애착이 있고 안정한 행복과 미래의 희망이 담긴 농부들의 노래는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의 마음속에 길이 살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락을 같이 했던 사원들이 한없이 그립다. 지금 그네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ㅡ룡정온천사우나의 ‘때밀이박사’ 김철수도 아빠트 두채에 자가용 갖춘 부자 지금은 목용탕에서 때밀이를 하는 사람들중 조선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밀이를‘천’한 일로 여기기때문이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17년 째 해오고 있는...
  • 2018-05-16
  • - 아들의 프로 데뷔를 보고 싶은 한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 지난 10일 만난 정명호(46세)씨는 수심이 가득했다. 부모가 돼서 자식에게 자꾸만 부담을 주고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목에 튜브를 낀 정명호씨는 이틀에 한번씩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하는 뇨독증 환자이다. 당뇨합병증을 10여년 앓던 그...
  • 2018-05-14
  • 5월 10일 오전, 연길시 신흥가 민창사회구역에서 점심준비가 한창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념하는 날인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유래된 기념일(5월 두번째 일요일)로 연변에서는 ‘3.8’부녀절이나 ‘8.15’로인절 등에 비해 작은 규모의 비교적 생소한 명절에 불과하나 독거로인을 비롯한 로인...
  • 2018-05-12
  • 4월 22일, 일본국제문화원 정걸씨의 초청으로 메지로대학“스즈키선생과 장연선생을 모시는 모임”에 참가하였다. 이날 모임의 현장 ㅡ 동경 닛포리 HOTEL LUNGWOOD으로 가는 길은 연변의“진달래꽃 축제”를 마중해 언녕 핀듯한 울긋불긋한 철쭉꽃들로 필자의 기분이 더 없이 상쾌하였다. 이날 모임은...
  • 2018-05-10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1) ▩양상태(길림) 필자부부가 당시 두손으로 지은 기와집 내가 결혼할 당시(1967년 겨울)에 우로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이가 계셨는데 누이는 출가했고 형님은 항미원조에 나갔다가 제대하여 흑룡강성 대경시에 배치받았다. 아래로는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
  • 2018-05-09
  • 왕청진후대관심사업위원회 전금선 주임의 사적   (흑룡강신문=하얼빈)리강춘 특약기자= 10년을 하루와 같이 왕청현 왕청진 동진소학교의 학교, 유치원어린이들에게 새 이불, 솜신, 솜옷, 교복, 운동복을 보내주고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에게 온갖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는 공산당원이 있다. 그가 바로 왕청진 후...
  • 2018-05-08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10) ▩김삼철(룡정) 1968년 11월 7일, 맏딸 홍화의 돌생일날에 남긴 기념사진 지금도 우리 부부가 처음 엄마 아빠로 되던 날을 생각하면 나는 기쁨보다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처음 맞게 되는 큰애의 출생이 안해의 난산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 줄을 누가 알았으랴. &lsqu...
  • 2018-05-04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9) ▩김성숙(장춘) 앞줄 왼쪽부터 필자의 올케, 어머니, 오빠. 뒤줄 왼쪽부터 필자의 동생부부, 언니, 필자 김성숙. 어머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우리 네 형제자매를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키우기에 힘썼다. 후에 아들을 장가 보내 며느리를 삼은 후에는 화목한 가...
  • 2018-04-25
  • 료녕성 무순시에서 해방전쟁시기 전투영웅 리형선 로인을 만나 취재중인 김광현. 출판기념모임에서《백년실록》교육편의 주필인 허청선 교수와 담소하고 있는 김창석. (지난 기에 이어) 김광현과 김창석은 아예 우리 지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남도로부터 취재를 시작하기로 기획을 하고 일시불로 동영상카메라 4대를 샀다...
  • 2018-04-20
  • -10여년간 불우이웃에 따뜻한 애심손길 보내준 김선희씨 이야기 휴빈스의 애심천사 “영채꽃”은 누구? “불우이웃을 돕는데 전혀 사심이 없고 항상 앞장선다” 는 짤막한 기사제보를 보내준 사람은 화룡시 팔가자진에서 옹기된장기업을 운영하고있는 장청옥, 김경남씨 부부였다. 함께 애심활동을...
  • 2018-04-16
  • 연변주봉체육양성쎈터 양매 외지에 오래 있다 보면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창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줄곧 외지에서 사업했던 연길시주봉체육양성쎈터 교장 양매(43세)도 그중 한 사람이다.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줄곧 장춘, 심양 등지에서 기업관리에 종사했습니다. 외지에 나간 시간이...
  • 2018-04-13
  •     광둥 후이저우에 조선족 노인협회가 탄생되기까지   (흑룡강신문=하얼빈) 자녀따라 광둥에 진출한 노인들은 악착같이 버텼다. 적응기는 빡셌고 슬펐다.   친구도, 말 동무도 없었던 노인들은 정착 과정에서 문화적응, 언어장벽, 여가생활의 부족, 병원 등 사회 공공 기관  사용의 불편은...
  • 2018-04-1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7) ◈김철우(위해) 40여년전 유치원 문예공연을 마치고 남긴 기념사진(중간 필자) 오늘 나는 책상서랍을 뒤지다 우연히 흑백사진 한장을 땅에 떨구었다. 허리를 굽혀 손에 쥐여들고 보다가 나는 세월 속에 깊숙이 묻힌 추억의 바다 속에 저도 몰래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 2018-04-11
  • 일본에 온 지가 어느덧 18년이 돼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두번이나 변할 정도의 기나긴 세월이 눈깜짝 할 사이에 흘러갔다. 일본은 나에게 희망도, 행복도, 저주도, 슬픔도 배워준 희로애락의 인생교과서이다 . 나는 처음부터 그 어떤 웅대한 포부나 꿈을 가지고 일본류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였다. ...
  • 2018-04-10
  • 5일 새벽, 깊은 산속에서 54년간 묵묵히 렬사기념비를 지켜온 리은기 로인이 지팡이를 짚고 오솔길을 따라 마을에서 그닥 멀지 않은 산속을 향해 걷는다. 길의 저 끝에는 혁명렬사기념비 하나가 조용히 서있었다. 기념비에 도착한 로인은 손으로 기념비 우에 앉은 먼지를 살살 닦아내고는 기념비 앞에 두 발 모아 바로 선 ...
  • 2018-04-09
  • 일본전통씨름대회인 오오즈모 현장 지난 4월 4일 일본 교토 마이즈루 (舞鶴) 시에서 있은 봄철 오오즈모(大相撲:일본전통씨름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던 시장이 갑자기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다. 긴급한 상황에서 관객석에 있었던 두 녀성(간호사)이 도효(土俵:경기장)에 올라 구급조치를 취하게 되였고 잇따라 다른 두명...
  • 2018-04-09
  • [편집자의 말] 을 펴내면서 북경 등 전국 각지 네티즌들 뿐만 아닌 한국 네티즌까지 아낌없는 고무격려와 응원의 박수에 감사를 드린다. 에서는 서로 떨어져있는 부모와 자식간의 그리움, 원망으로부터 서로 리해해주고 서로 응원해주는 가족사랑을 담은 내용이였다면 (3)에서는 부모와 자식간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가면서...
  • 2018-04-08
  •    든든한 "무송서기"로 불리우는 룡정시 석문촌 김무승 제1서기   (흑룡강신문=하얼빈)류설화 렴청화 연변특파원= "우리 무송서기한테 토닭알하고 된장을 좀 줘야겠는데, 우리 아바이는 매일 저녁만 되면 날이 추워져서 무송서기가 잠을 못잘가봐 '우리 집으로 데려올까'하고 물어보오. 어디 그뿐이오...
  • 2018-03-2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 ◈김삼철(룡정) 당년의 ‘땅소나기’ 김병인로인(84세). 당시 조선에 사는 한 친척 화가가 놀러 왔다가 그렸다고 함.
  • 2018-03-29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